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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는 구라다

양현종의 운명과 80년 독점, 진흙의 비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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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이면 비밀의 장소로 사라지는 노인

수상한 노인이다. 매년 여름이면 어디론가 사라진다. 허름한 옷과 운동화 차림이다. 차에는 플라스틱 통 몇 개와 삽이 실렸다. 그리고는 굽이굽이 몇 시간을 헤맨다. 도착한 곳은 강 어귀다. 델라웨어 강이 대서양과 만나는 어디 쯤이다.

물때를 잘 골라야한다. 썰물 무렵, 강바닥이 조금 드러나야한다. 유심히 진흙을 살핀다. '여기다' 싶으면 살포시 삽으로 뜬다. 차곡차곡 통에 담는다.

혹시라도 마주치면 모른척 하시라. '그건 뭐에다 쓰시려고?' 궁금증은 괜한 거짓말을 부른다. "아이가 벌에 쏘여서 발라주려구요." "화분에 뿌려주면 꽃이 잘 자라서요." "항만청에서 일해요. 토양 조사 중이죠."

그도 그럴 수 밖에. 극비리에 진행되는 작업이다. FBI도, CIA도 모른다. 벌써 80년째, 그와 가족들은 철저하게 함구했다. 정확한 위치와, 시기, 방법은 가문의 비밀이다. 할아버지의 일을 아버지가 물려받았고, 지금은 아들이 하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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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년 독점, 장수 기업의 탄생

100년 전 MLB는 심판들이 고생했다. 매번 공 손질도 업무였기 때문이다. 너무 미끄러우면 안된다. 헬멧이 없던 시절이라, 투구에 맞아 불행한 사고도 있었다. 그렇다고 표면이 상해도 곤란하다. 이래저래 골치 아픈 일이었다.

레나 블랙번이라는 사람이 있다. 필라델피아 애슬레틱스의 3루 코치였다(1938년). 어느 날 낚시하다가 묻은 진흙을 공에 발라봤다. 그랬더니 꽤 쓸만해진 걸 발견했다. 투덜거리던 심판 친구에게 추천해줬고, 금새 요긴한 물건이 됐다.

찾는 사람이 하나둘 많아졌다. 결국 친구에게 권하게 됐다. "이봐, 자네가 한번 만들어서 팔아봐." 그가 창업주 존 하스다. 그는 회사를 사위(번스 빈틀리프)에게 물려줬다. 그리고 3대째 이어지고 있다.

이 회사 제품은 독점이나 다름없다. ML 30개 구단 모두에 공급된다. 벌써 80년이 넘었다. 경쟁자는 있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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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 매출 고작 2천만원, 생계는 인쇄소 알바로

땅 짚고 헤엄치기? 꿀빠는 사업? 천만에. 돈 안되는 일이다.

진흙 32온스(약 900그램)짜리 한 통에 75달러(약 8만 4000원)다. 한 팀이 3~4통이면 1년 동안 충분하다. 마이너리그, 학교, 소프트볼 리그… 판매처를 열심히 늘려봐도 한계가 뻔하다. 이 회사의 1년 총 매출은 2만 달러(약 2250만원) 남짓이다.

때문에 3대째 사장은 알바를 뛴다. 동네 인쇄소 조판원으로 생계를 꾸린다. 진흙 사업은 그냥 숙명일 뿐이다.

그러니까 델라웨어강 어디, 아무도 모르는 극비 장소. 그건 사실 자의반 타의반이다. 누가 굳이 알고 싶지도, 알려고 하지도 않는다는 게 맞을 지 모른다.

그래도 빈틀리프 대표는 꺾이지 않는다. "그곳은 특별하다. 민물과 바닷물이 섞이며 많은 미생물들이 서식한다. 그래서 무척 곱고, 미묘한 진흙이 만들어진다. 그걸로 문지르면 표면이 상하지 않고, 그립감이 좋은 공이 된다."

(이제는 더 이상 비밀도 아니다. 몇 년 전부터 CNN, 스포츠 일러스트레이티드 같은 곳의 취재도 허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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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플리터가 자꾸 손에서 빠져요"

아리하라 고헤이가 첫 선발을 말아드셨다. 3일 시삭스전에 2이닝 3실점으로 털린 것이다. 5피안타 중에는 3점 홈런(앤드루 본)도 있었다. 그는 닛폰햄 화이터스 출신으로 텍사스와 2년 계약했다. 쉽게 말해 선발 경쟁자다.

그는 캠프 초반부터 투덜거렸다. "공이 너무 미끄럽다. 스플리터를 던질 때 손가락에서 자꾸 빠진다. 패스트볼도 마찬가지다.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빨리 빠진다. 메이저리그 공인구에 적응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 특히나 스플리터는 아리하라의 주무기다. 투 스트라이크 이후의 결정구다.

한국이나 일본 공은 다르다. 표면에 약품 처리가 됐다. 착착 감기는 맛이 있다. 때문에 질감이 다른 공은 아시아 투수들이 겪는 어려움 중에 하나다.

물론 그쪽이라고 다를 거 없다. 미국 출신들도 마찬가지다. 갖가지 편법, 술수가 난무한다. 걸핏하면 파인 타르가 도마에 오른다. 펩*콜라, 스프라이*, 면도 크림, 선 크림, 자동차용 윤활유, CBD(대마씨) 오일까지 동원된다. 속칭 고고 주스(Go-Go Juice)로 불리는 칵테일들이다.

"공 핑계는 대지 않겠다"

애리조나가 뜨거운 계절이다. 땡볕 때문이 아니다. 치열한 생존 경쟁 탓이다. 남느냐, 밀리느냐. 하루하루가 피 말린다.

양현종도 예외일 수 없다. 불펜 투구, 라이브 피칭으로 진도를 빼는 중이다. 예년보다 빠른 페이스다. 그래서 보는 마음이 짠하다. 아무 것도 보장된 게 없다. 누구도 알아주는 사람 없다. 방 빼라는 통보가 언제 올 지 모른다. 하루하루 싸워서 이겨야한다.

가뜩이나 신경쓸 게 많다. 낯 설고, 물 설다. 다른 점도 한둘이 아니다. 여기에 공 문제까지 겹친다. 주무기 슬라이더에 영향을 줄 지 모른다.

하지만 그렇다고 주눅들 캐릭터가 아니다. 더 강하게 붙는다. 아니, 아예 핑계 거리를 만들지 않는다. 당차게 선언한다. "공인구에 90% 정도 적응했다고 생각한다. 공 핑계는 대지 않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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델라웨어 강은 특별하다. 세상 유일한 진흙의 공급처다. 통에 담겨 이름을 얻었다. 상품명은 레나 블랙번 러빙 머드(Lena Blackburne Rubbing Mud)다. 첫 발견자의 이름에서 땄다.

길고 어려운 명칭 대신 애칭도 있다. '매직 머드(magic mud)'다. 마술을 일으킨다는 뜻이다. 양현종의 손끝에서도 그런 신비로움이 생겼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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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는 구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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