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는 구라다] 시끌시끌, 끈적끈적 파인 타르..왠지 류현진과 거리가 먼 스캔들

조회수 2021. 1. 15. 07:55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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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8월의 노동법 위반 소송

펩*콜라, 스프라이*, 면도 크림, 선 크림, 자동차용 윤활유, CBD(대마씨) 오일, 기타 등등….

생뚱맞은 것들이다. 이런 걸 야구장에서 쓴다고? 얼핏 연관이 안된다. 그런데 시끄럽다. 며칠 동안 메이저리그가 어수선하다. 질척이고, 끈적거린다. 이른바 파인 타르 스캔들이다.

발단은 1년 전 사건이다. 처음 불거진 건 작년 3월이었다. 에인절스가 직원 한 명을 해고시켰다. 승인되지 않은 물질을 제조해 선수들에게 나눠줬다는 이유 때문이다. 잘릴 당시 직책은 원정팀 클럽하우스 관리 책임자였다. 44세의 브라이언 하킨스라는 이름이다.

그는 억울했다. 구단주에게 몇 차례 편지도 썼다. 하지만 소용없었다. 결국 법정 싸움으로 갔다. 8월에 오렌지카운티 법원에 소송을 제기했다. 상대는 LA 에인절스 구단, MLB 사무국이었다. 노동법 위반, 명예훼손을 주장했다.

출처: 게티이미지 제공

법원에 제출된 증거 - 문자 메시지

몇 달 뒤인 요즘, 다시 불이 붙었다. 고소인이 법원에 제출한 증거가 공개되면서다. 휴대폰에 남겨진 문자 메시지 하나가 ESPN에 보도됐다. 내용은 간단하다.

'이봐, 버바(하킨스의 애칭). 우리가 5월까지는 만날 수 없네. 근데 내가 4월에 추운 곳에서 던져야 해. 전에 받은 물건으로는 잘 안될 것 같아서. 혹시 도와줄 수 있어?' 2019년 1월 17일에 착신된 것이다. 발신자 이름이 놀랍다. 당시 휴스턴의 에이스 게릿 콜이었다.

여기서 등장하는 '물건'은 공에 바르는 이물질이다. 파인 타르 혼합물, 흔히 고고 주스(Go-Go Juiceㆍ에너지 드링크 칵테일을 뜻하기도 한다)로 부르는 것이다. 손 끝에 바르면 공이 착착 감긴다. 문제는 규정에 어긋난다는 점이다.

출처: 게티이미지 제공

"그걸 만들고, 나눠준게 어제 오늘 일도 아니다. 쓰는 선수? 엄청 많다. 우리(에인절스) 투수들도 대부분 사용한다. 구단과 MLB 조사 때 이런 걸 모두 말했다. 그들도 몰랐을 리 없다. 그런데도 선수나 다른 관계자는 모두 멀쩡하다. 나만 죄인 취급이다."

그러면서 그가 까발린 이름들이다. 게릿 콜 말고도 특급 투수들이 수두룩하다. 저스틴 벌랜더, 맥스 슈어저, 펠릭스 에르난데스, 코리 클루버, 애덤 웨인라이트…. 장차 명예의 전당이 유력한 에이스들이다.

특히나 개릿 콜은 처음이 아니다. 트레버 바우어의 공격을 받기도 했다. UCLA 동창생은 이렇게 비아냥거린다. "애스트로로 옮긴 뒤 패스트볼 회전수가 폭발적으로 높아졌지. 훈련으로 그랬다고? 천만에. 이유는 뻔해. (공에) 뭔가를 바른 거지."

출처: 게티이미지 제공
출처: 게티이미지 제공

폭탄주 만큼 다양하고 섬세한 레시피들

고고 주스의 역사는 깊다. 수십년 전부터 암암리에 사용됐다. 하킨스에게 제조법을 가르친 사람도 밝혀졌다. 예전 에인절스 투수 트로이 퍼시벌이다. 현재는 대학팀 UC 리버사이드의 감독이다. 그가 <LA타임스>의 취재에 밝힌 내용이다.

"(2000년대 초반) 애리조나 캠프 때였어요. 거기 날씨가 건조해서 공이 더 잡기 어렵죠. 그래서 파인 타르와 로진을 다른 것들과 섞어서 제조해달라고 했어요. 안 그러면 (공이 손에서 빠져) 타자 머리를 맞힐 지도 모르니까요." 2월에만 썼다는 얘기다. 그것도 타자를 위해서. 살짝 변명같이 들린다.

하킨스의 고소장 일부도 밝혀졌다. '난 절대 배신자가 아니다. 에인절스의 많은 선수들이 알고 있다. 헤어 크림통 같은 것에 담긴 '물건'이 우리 불펜과 클럽 하우스에 항상 비치해놨다. 그들은 늘 아무렇지 않게 쓰고 있었다.'

사진 = 3년전 화제가 된 장면. 끈적이는 공이 몰리나의 가슴 보호대에 붙어있다. 출처 = 시카고 트리뷴 SNS

제조법은 다양하다. 주요 성분은 파인 타르나 로진이다. 여기에 첨가제가 추가된다. 누구는 펩*콜라를 졸여서 쓴다. 스프라이*를 끓이기도 한다. 농도를 맞추기 위해 선 크림, 면도 크림도 들어간다. 차량용 윤활제를 넣기도 한다.

마치 폭탄주 제조법 같다. 종류가 천차만별이다. 꽤 섬세한 레시피들이다. 그 중 하킨스 '제품'이 입소문 났다. 그래서 주문이 많았으리라. 그러다가 원정팀, 그것도 같은 디비전의 휴스턴 것까지 만들어줬다. 그래서 구단에 미운털이 박혔는 지 모른다.

투수들은 이걸 갖가지 방법으로 숨긴다. 목이나 반대 팔뚝(오른손 투수면 왼쪽)에 바르기도 한다. 모자 챙, 글러브 안쪽에 슬쩍 묻혀놓기도 한다.

출처: mlb.com 캡처

공공연한 비밀, 4명 중 3명 이상은 쓴다

한국이나 일본 공은 표면 처리가 됐다. 촉촉한데다, 실밥이 도드라진다. 반면 ML 공인구는 다르다. 맨들맨들하고, 실밥 높이도 낮다. 이걸 보충하기 위해 진흙을 바른다. 하지만 그걸로 부족함을 느낀다. 그래서 뭔가를 추가한다.

이물질은 규정 위반이다. 하지만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워낙 오래 전부터 행해진, 공공연한 비밀이다. 그래서 정색하고 단속하기 어렵다. 몇 년에 한번씩 적발도 나온다. 너무 티나게 한 탓이다. 반대로 얘기하면 이렇다. "웬만한 건 그냥 적당히 넘어갑시다." 왜? 우리 투수들도 쓰니까.

몇 년 전이다. <디 애슬레틱스>가 이 내용을 다뤘다. 투수, 코치 등 20명을 인터뷰했다. 결과가 뜻밖이었다. '상당수는 뭔가를 쓴다'는 응답이었다. '적어도 4명 중 3명 이상'이라는 게 중론이었다. 4~5명은 '100%'라고 대답했다.

출처: 게티이미지 제공

류현진은 어떨까

여기서 한가지. 궁금증/걱정이 생긴다. '류현진은 어떨까'. 미국 간 지 오래다. 그곳 문화에 익숙해졌다. '남들 모두 쓰니까.' 그럴 수 있다.

인성이나, 매너와는 별개일 지 모른다. 콜도 그렇고, 벌랜더나 슈어저도 마찬가지다. 이번 리스트에 오른 선수들이 비슷하다. 성실한 훈련 벌레들이다. 사람들은 심지어 커쇼도 의심한다. 시커멓게 더럽혀진 모자를 보면서 말이다.

물론 <…구라다>는 확신한다. 아니라는 쪽에 건다. 류현진은 우리 편이니까? 국뽕이라서? 그럴 지도 모른다. 하지만 논증의 근거는 있다. 그의 스타일 탓이다. 그러니까 분류상의 문제다.

출처: 게티이미지 제공

논란이 된 투수들은 대부분 파워 피처다. 패스트볼과 그 회전수에 많은 게 걸렸다. 파인 타르로 그걸 급증시킬 수 있다.

반면 99번은 다르다. 숫자로 된 벡터량은 보잘 것 없다. 리그 하위권 10%에 맴돈다. 그것 보다는 공간 개념을 훨씬 중시한다. 정확성에 집중한다는 뜻이다.

그리고 또 한가지, 평소의 관찰을 보탠다. 투구 동작에 대한 것이다. 군더더기 하나 없는 루틴이다. 흔히 땀을 닦고, 침을 묻히기도 한다. 그걸로 손 끝의 촉촉함을 유지한다. (물론 투구 전에는 닦아내야한다.) 그게 아니라면 어디라도 손이 가야한다. 적어도 (이물질을) 만지려면 말이다.

하지만 그에겐 그런 동작이 거의 없다. 하다못해 로진도 별로다. 근처에도 잘 안 간다. 끈적임이나, 수분 관리에 크게 신경쓰지 않는다. 그 건조한 LA에서도 그랬다. 엄청 쿨하고, 담백한 스타일이라는 반증이다. 그렇게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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