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가 10조 원을 6년간 땅에 묵히면서 잃은 기회비용은 이렇습니다

조회수 2020. 5. 31. 09:0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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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 아모레퍼시픽의 과거 사옥 조감도, (우) 현재의 용산 신사옥 전경

부동산은 자산을 불릴 수 있는 가장 완벽한 투자 방식이다. 이 점은 개인뿐만 아니라, 기업에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국내 주요 기업들은 부동산 통해 그들의 현금을 불려 나간다. 그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건 단연 '사옥'이다. 사옥은 직원들의 업무 장소라는 단순한 의미를 넘어, 기업을 상징하는 수단이 되기도 한다. 나아가 인근 부동산 가격을 끌어올리며 지역의 효자 역할을 톡톡히 해낸다.

그러나 모든 것이 생각대로 되지는 않는 법이다. 신사옥 건립이라는 부푼 꿈으로 모두를 설레게 했지만, 6년째 지지부진한 사업으로 되려 기업의 애물단지가 된 곳도 있다. 지난 2014년, 현대자동차그룹이 10조 5,500억 원에 매입한 한국전력 부지가 그 주인공이다. 현대차 그룹은 매입 후 꾸준히 착공을 위해 노력했으나, 너무 높은 빌딩 규모로 번번이 건축 승인을 받지 못해왔다.

6년의 세월이 흐른 2020년 5월 6일, 현대차그룹은 GBC 건립을 둘러싼 이해관계를 합의한 끝에 드디어 착공 허가를 받는다. 결말은 꽤 아름다운 듯 보이나, 10조 원을 훌쩍 넘는 땅이 무려 6년이나 방치되어 있었다. 이는 곧 땅 소유자에게도 엄청난 손해일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현대차가 한전 부지를 묵혀두며 잃은 것은 무엇일까? 그 비용을 한 번 정리해보았다.

6년간 손도 못 대, 승자의 저주 걸린 GBC
(좌) 현대차의 뚝섬개발사업 조감도, (우) GBC 사업 조감도

한국전력이 부지 매각을 위해 경쟁입찰을 실시했을 때 삼성전자와 현대차그룹 간의 줄다리기가 벌어졌다. 그러나 두 기업 간 입찰가는 확연히 달랐다. 당시 부지 감정가는 3조 3,000억 원으로, 삼성전자는 입찰가를 5조 원 안팎으로 적어냈다. 이미 서초동에 삼성타운을 구축한 뒤였기 때문이다.

반면 현대차는 2006년 뚝섬 사옥을 구축하려던 꿈이 무너진 전력이 있다. 좌초된 꿈은 삼성동 한전 부지로 향했다. 현대차그룹은 입찰 감정가의 무려 3배에 이르는 10조 5,500억 원을 써낸다. 당연히 부지는 현대차그룹의 몫으로 돌아갔지만, 재계에서는 입찰 금액을 두고 '무리가 아니냐'는 우려를 보낸다.

투자자 역시 예상외의 낙찰가에 실망을 금치 못했다. 현대차그룹이 한전 부지를 낙찰받은 당일, 현대차의 주가는 전일보다 8.26%나 하락했다. 컨소시엄에 함께하는 이들도 마찬가지였다. 기아차의 주가는 8.64%, 현대모비스는 6.99%나 급락한다. 하락세는 한 달이 지나도 계속되었다. 앞서 언급한 3사는 물론 현대차그룹의 11개 상장사 모두 두 자릿수 하락을 면치 못했다. 이는 곧 시가총액에도 영향을 미쳤는데, 낙찰 한 달 후 증발한 현대차그룹 시총만 32조 7,122조 원에 달한다.

(우) 철거가 한창인 옛 한국전력 사옥

설상가상으로 착공에도 먹구름이 꼈다. 인허가 절차에서 나아가지 못해 6년 동안 첫 삽을 뜨지 못한 것이다. 이 기간 동안 발생한 기회비용 손실 규모는 엄청나다. 이자율을 2%라 가정하면, 부지 매입금에 대한 금융 비용만 연 2,110억 원이다. 현대차그룹이 부지 매입금의 마지막 잔금을 치른 시점이 2015년 9월이므로, 착공 지연 기간(3년) 기회비용만 6,330억 원인 셈이다. 여기에 지방세, 취득세 등의 세금 수천억 원을 더하면 GBC 완공 시점인 2026년까지의 손해액만 수조 원이다. 시공사 또한 공사가 지연될수록 연 1,000억 원으로 추정되는 손실을 본 것으로 전해진다. 

손해에도 매각하지 않은 이유

특히 공사가 지연되던 기간은 현대차그룹의 주요 계열사가 실적 악화를 피해 가지 못하던 시기다. 현대차의 경우, 2018년 2분기 영업이익이 전년 대비 29.3%나 급감했다. 승자의 저주가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자, 일각에서는 현대차그룹의 부지 매각설이 웃돌았다. 그러나 현대차그룹은 GBC 사업의 잠정 중단을 결정할 뿐 매각 단계로까지 나아가지 않았다. 

마이너스만 안겨주는 땅을 갖고 있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먼저 GBC 사업은 정몽구 회장의 숙원 사업이다. 그는 직접 한전 부지의 매입가를 10조 원으로 정했다. 매입 이후 2016년엔 직접 GBC 사업 현장을 방문해 "이곳은 현대차그룹의 새로운 100년 상징이다."라며 강조한 바 있다. GBC를 그룹의 미래 성장의 발판으로 삼겠다는 정몽구 회장의 의지가 돋보이는 대목이다. 

매각이 그간의 손해를 보상해 주는 것도 아니다. 현대차 그룹은 GBC 사업 추진을 위해 매년 1,000억 원 이상의 비용을 지불해왔다. 이미 손해가 막심한 상황에서, 인수 가격보다 낮은 7~8조 원에 부지를 되판다면 확실히 남는 장사라 볼 수 없다. 설사 매각을 진행한다 할지라도 수조 원을 웃도는 매각 비용을 선뜻 내놓을 기업을 찾기도 힘들다.

금융비용으로 인한 손해가 그룹에 피해를 미치지도 않았다. 현재 현대차 그룹의 보유한 현금성 자산은 21조 원 이상이다. 매입 금액과 각종 금융비용, 세금 등을 합해도 그리 큰 타격을 주지 않는 것이다. 게다가 현대차그룹은 지난 3월 자사주 매입에 나섰다. 실제로 위기가 찾아왔다면 상상할 수 없는 행동이다.

애물단지인 줄 알았는데··· 이젠 '황금알 낳는 거위'

GBC를 현대차그룹의 복덩이로 보는 이도 많다. 2014년 GBC 부지의 공시지가는 ㎡당 1,948만 원이었다. 그러나 2019년 해당 부지의 공시지가는 5,670만 원으로, 매입 이후 3배 가량 올랐다. 물론 이를 토대로 GBC 부지의 가격을 산정하면 매입금보다 부족하다. 그러나 삼성동 일대 빌딩의 시세가 공시지가의 2배를 웃돈다는 점을 고려했을 때, 현대차그룹은 GBC 부지로 본전은 달성했다.

실적 악화를 겪고 있는 현대차그룹 계열사 역시 회복의 조짐이 보이고 있다. GBC 사업 시공은 현대차그룹의 계열사 현대엔지니어링과 현대건설이 맡는다. 수주 금액만 2조 6,000억 원이기에, 두 기업이 해당 사업으로 받는 수혜는 엄청날 것으로 예상된다. 현대제철 또한 GBC 사업에 철근 공급을 약속하며 실적 개선을 노리고 있다.

출처: hankyung

물론 GBC를 가장 큰 호재로 보는 건 부동산 시장이다. 삼성역 일대는 GBC의 영향으로 오피스 지역의 중심으로 떠오를 가능성이 높다. 그렇게 되면 삼성동은 기존 강남구-서초구-송파구로 이어졌던 '강남벨트'의 중심지 역할을 해내게 된다. 이러한 기대감에 현재 GBC 부지 인근 재건축 단지 아파트 매수자가 몰리는 상황이다.

실제로 부지에서 얼마 멀지 않은 청담삼익과 홍실은 전년보다 2~3억 원가량이 올랐다. 삼성동 대장주 아파트로 꼽히는 삼성동 아이파크 역시 GBC와 도로 하나를 둔 위치인 덕에, 지난 3월 전용 157㎡가 42억 7,000만 원에 거래된다. 2019년 5월 실거래가보다 8억 원이나 높은 금액이다. 무엇보다 부지 일대에 신규 주택이 공급될 기회가 적어, 기존 주택의 가격이 증가하고 있다.

출처: dailyahn
(좌) GBC 건설 현장에 방문한 정몽구 회장, (우) 실제 GBC 건설 현장의 모습

사업 전 단계에서 번번이 좌절하며 현대차그룹의 숙원 사업이 된 GBC. 금싸라기 땅이라 불리는 곳을 6년간 내버려 두면서 잃은 비용 역시 엄청나다. 2026년 완공까지 이 비용은 계속될 듯하지만, 그 이후의 미래 가치에 더 관심이 쏠리고 있다. 현대차그룹의 뜻처럼 GBC가 그들의 성장 동력이 될 수 있을지 한 번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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