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 되자 또 땅이 파지기 시작했다' 도대체 매년 반복되는 이유는?
카페나 식당에 하나둘 들어서는 크리스마스트리, 화려한 조명으로 치장한 백화점의 외관, 모임 약속으로 채워지는 주말 일정. 연말이 왔음을 실감케 해주는 것들이다. 여기에 한 가지 더, 올해도 다 가버렸다는 것을 불현듯 깨닫게 해주는 일이 있으니 바로 도시 곳곳에서 발생하는 굴착기 소음이다. 오래전부터 "연말만 되면 각 지자체가 '땅 파기'에 돌입한다"는 지적이 있어왔는데, 이는 사실일까? 만일 정말 그렇다면, 이들이 굳이 추운 겨울에 멀쩡한 땅을 뒤엎는 이유는 무엇일까?
'보도블록 뒤엎는다'고 표현하는 연말 공사는 아직 집행하지 못한 예산을 다 써버리기 위한 지자체의 흔한 꼼수로 여겨진다. 책정된 예산을 제때 집행하지 않으면 다음 예산이 줄어들 수 있기 때문에 억지로라도 일을 벌이는 것이라는 말이다. 물론 모든 땅파기 공사가 이런 이유에서 시행되는 것은 아니다. 지하에 매설된 상하 수도관, 도시 가스관, 통신관, 전기선 등을 유지 보수하기 위해 굴착이 이루어지는 경우도 많다.
이처럼 멀쩡한 보도블록을 갈아엎는 관행에 대해 '혈세 낭비'라는 지적이 이어지자. 2007년 국토교통부는 보도 신설이나 전면 보수 준공 후 10년 이내 전면 보수를 금지하도록 '보도 설치 및 관리 지침'을 개정했다. 그러나 도로를 새로 깔거나 공사한지 10년이 안되었다고 해서 보도블록 교체가 완전히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민원이 제기된 사안에 대해서는 공사가 가능하며, 도로법 시행령 제34조에 따라 '도로관리심의회'의 별도 승인을 받은 후 보도 포장 교체가 가능하다.
이 개정을 통해 예산 집행을 위한 마구잡이식 도로 공사가 어려워졌다고는 하지만, 파헤쳐 지는 도로에 대해 시민들은 여전히 불신의 눈초리를 보낸다. "근처에 거주해서 공사 진행과정을 모두 지켜봤는데 상하수도 교체도 아닌 것 같고, 공사가 끝난 뒤에도 별로 달라진 것이 없다"는 의견도 있다. 게다가 보행자들에게 불편을 초래하고, 미관상 보기도 좋지 않은 데다 안전을 위한 시설도 턱없이 부족하다는 불만도 적지 않았다.
보도블록과 관련된 시민들의 불만, 민원이 끊이지 않자 2012년 서울시는 '보도블록 10계명'까지 내놓았다. 보도 공사 실명제, 원스트라이크 아웃제, 보행자 안전, 보도 파손자 원상복구 등의 내용을 포함한 이 10계명에는 '보도공사 클로징 11'도 들어가 있다. 겨울철에는 낮은 기온으로 땅이 얼고, 굴착 공사 시 부실공사나 도로 침하 등 안전사고 발생의 우려가 크기 때문에 동절기가 시작되는 11월까지 모든 보도 공사를 완료한다는 내용이다. 물론 확보된 예산을 소진하기 위해 멀쩡한 보도블록을 헤집는 관행을 없애기 위해서기도 하다.
다만 여기에도 부작용은 있었다. '클로징 11'을 융통성 없이 적용하는 바람에 마무리 작업만 하면 되는데 공사를 중단하고 모래로 어설프게 덮어놓는 현장도 있었던 것이다. 이에 대해 서울시 보도환경개선과 관계자는 "다소 불편할 수는 있지만 12월 이후에는 공사 품질을 보증할 수 없어 긴급공사나 소규모 공사 외에는 굴착공사를 할 수 없다. 예산 낭비 풍토 근절을 위해서도 예외를 둘 수 없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그런데 최근, 정부는 지방자치단체와 지방 교육청에 불용 예산을 연내 집행하라고 주문했다. 이달 초 기준으로 전체 미집행 예산의 규모는 총 95조 원인데, 이를 두 달 안에 최대한 소진하라는 것이다. 정부가 제시한 집행률 기준은 지방 90%, 중앙 97%였다.
정부가 이렇게 예산 집행을 촉구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인영 더불어 민주당 원내대표는 '제3차 당정 확대 재정관리 점검회의'에서 "확장적 재정 기조가 성장의 마중물 역할을 하기 위해서는 올해 예산을 계획대로 집행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경제성장을 촉진하기 위해 일단 주어진 예산을 모두 쓰자는 말이다.
그러나 야당의 생각은 다르다. 특히 자유한국당 의원들은 국회에서 열린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예산이 3년 연속 증가하고 있다"며 재정 확대보다는 지출 구조조정이 시급하다는 의견을 밝혔다. 또한 일부 언론에서는 정부의 불용예산 소진 요구가 불필요한 도로공사를 통한 혈세 낭비로 이어질 것이라는 우려를 드러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