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은 왜 뜬금없이 놀이공원 '에버랜드'를 만들었을까?

조회수 2019. 3. 15. 10:42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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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개장 40주년을 맞이했던 에버랜드이다. 포브스가 선정한 ‘세계에게 가장 환영받는 테마파크’ 4위의 에버랜드는 지난 40년간 총 2억 2300만 명의 누적 입장객 수를 기록하며 우리나라 최대 규모의 놀이공원 위치를 공고히 했다. 이처럼 큰 규모로 에버랜드가 운영될 수 있는 이유는 세계 굴지의 그룹, 삼성에서 이를 소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삼성은 왜 놀이공원 사업에 투자하게 된 것일까? 시대가 변함에 따라 끊임없이 발전해온 에버랜드이지만 삼성이 주력하고 있는 사업체들과의 연관성은 좀처럼 찾기가 힘들다. 삼성이 어찌하여 다소 뜬금없다 싶게 놀이공원 사업을 시작하게 되었는지 그 이유에 대해 알아보자.

에버랜드는 종합 테마파크로서 사파리, 놀이기구, 레이싱, 골프장, 스키, 눈썰매, 수영, 미술관까지 온갖 놀거리가 제공되는 공간이다. 하지만 처음부터 지금처럼 다양한 놀거리와 숙박시설까지 갖춘 ‘에버랜드 리조트’는 아니었다고 한다. 에버랜드의 시초는 이병철 회장이 1976년에 개원한 ‘용인자연농원’이었다. 이후 1996년에 개장 20주년을 맞아 비로소 지금의 ‘에버랜드’로 이름을 변경하였는데 당시 세계 시장 진출을 위해 영문 브랜드명을 선택한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개장 30주년인 2006년에 이르러 국내 최대의 리조트형 복합단지인 ‘에버랜드 리조트’로 거듭나게 되었다. 에버랜드 리조트에는 테마파크인 ‘에버랜드’ 이외에도 수륙양용 사파리 '로스트 밸리', 워터파크인 ‘캐리비안 베이’, 숙박 시설인 ‘홈브리지’, 퍼블릭 골프장 ‘글렌로스’, 문화 시설인 ‘호암미술관’ 등이 포함되어 있으며 2016년에는 판다를 직접 볼 수 있는 '판다 월드'까지 개장하여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즉, 삼성그룹의 지속적인 투자가 있었기에 지금의 에버랜드가 있는 셈이다. 그렇다면 지금부터는 삼성에서 왜 놀이공원을 만들었는지 그 이유를 알아보자. 

“후세를 위해서 꼭 필요한 일이다. 내 생애 마지막 사업으로 생각하고 도전해보자” 삼성그룹의 창업주 이병철 회장의 다짐이었다고 한다. 그는 ‘헐벗은 국토를 푸른 숲으로 가꿔 후세에 남겨야 한다’는 의지로 ‘용인자연농원’ 사업을 시작했다고 전해지고 있다. 1960년대 우리나라 산은 헐벗은 모습 그 자체였다. 일제 강점기와 한국전쟁을 겪으며 우리 국토의 산림은 거의 사라지고 황야와 같은 모습만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를 지켜본 이병철 회장이 국토개발의 시험장을 만들어보겠다며 시작한 사업이 에버랜드의 전신, 용인자연농원이었다. 그는 척박한 산야를 개발해 숲을 조성하고 묘목 육성을 통한 조림사업, 퇴비 공급원으로 양돈사업, 유원지 조성 사업 등을 종합적으로 착수하였다. 


그렇게 생산적인 자원의 공급원으로서 모양을 갖춘 용인자연농원은 1976년에 개원하게 된다. 이병철 회장은 “나무 한 그루, 돌멩이 하나에 온갖 정성을 쏟은 자연농원이 산지 개발의 시범장으로서 후세에 남게 될 것으로 믿어 의심치 않는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의 말처럼 40년이 지난 지금도 꿈과 희망의 공간으로 남아있는 에버랜드이다.

 이병철 회장은 또한, 용인자연농원을 세계적 테마랜드로 키우겠다는 꿈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용인자연농원 설립 당시, "미국의 디즈니랜드처럼 어린이가 자연을 배우면서 꿈을 키울 수 있도록 꾸미라"라는 특명을 내린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의 바람처럼 식물원과 동물원, 놀이동산으로 꾸며진 자연농원은 어린이들이 즐거워하고 온 가족이 함께 즐길 수 있는 공간으로 큰 인기를 모았다. 개원 첫날에만 당시로서는 엄청난 규모인 2만 5000명이 몰렸다고 한다.

그리고 선대의 뜻을 이어 이건희 회장도 에버랜드로 명칭을 변경하며 세계적인 도약을 지시했다. 후룸라이드, 바이킹, 캐리비안 베이 등을 추가하며 에버랜드는 명실 상부한 국내 최대 규모의 테마파크로 자리를 잡았다. 지금도 디즈니랜드에 버금가는 글로벌 테마파크를 목표로 꾸준한 발전과 개발을 지속하고 있다. 에버랜드는 최근 중국인 등 외국인 관광객이 급증하면서 아쿠아리움, 에코파크 등 새로운 개발 의지도 내비치고 있다고 한다.

이런 삼성가의 꿈은 에버랜드의 ‘3간(三間) 주의’라는 경영이념에도 담겨있는데 시간, 공간, 인간을 더해 3간이라 칭하며 ‘삶의 질 향상을 위한 시간과 공간의 무한한 가치를 창조해 나가자'라는 뜻이다. 에버랜드라는 이름 역시 에버가 시간을 의미라고 랜드가 공간을 가리켜 삼성가의 큰 꿈을 품고 있는 셈이다.

후세를 위한 일이자 삼성가의 염원이 담겨있는 용인자연농원사업은 이병철 회장 개인의 취향도 담겨 있었다. 평상시에도 공장부지 안에 있는 나무마다 번호를 붙여 관리했을 정도로 나무를 너무나 좋아했던 이병철 회장이다. 


그의 별장으로 유명한 호암 미술관 역시 사시사철 변화하는 꽃들과 나무로 유명하다. 이처럼 자연경관을 보며 행복감을 느꼈던 이병철 화장이기에 자연농원이라는 이름으로 놀이공원 사업이 시작된 것이라 볼 수 있다. 그는 용인자연농원을 장차 미국의 롱우드 식물원 못지않은 명소로 만들 생각이었다고 한다.

그래서 1485만㎡의 불모지를 낙원으로 만드는 사업에 매진하며 꽃이나 나무 등을 이용한 볼거리 제공에 많이 신경을 썼다. 키울 나무 종류를 엄선하는 것부터 개발을 차례로 진행한 이병철은 최고의 묘목들을 가져와 시험 재배시키고 퇴비를 생산하기 위한 개량종 돼지 종돈까지 600마리나 비행기에 실어 수입했다. 


용인자연농원이 개장할 당시에 세계적으로 희귀한 나무 종도 1200여 종이나 포함되어 있었다. 때문에 지금의 에버랜드도 계절별로 열리는 각종 꽃 축제가 가장 유명하다. 봄에는 튤립 축제, 여름에는 장미 축제, 가을에는 국화 축제가 열리고 있다.

살아서는 진천, 죽어서는 용인이라는 말이 있다. 그만큼 묏자리로 유명한 곳이 용인이다. 그래서인지 유명인 혹은 역사적인 인물들의 묘가 유난히 용인에 많이 위치하고 있는데 이병철 회장 역시 마찬가지이다. 그리고 이병철 회장은 한 지관으로부터 본인의 무덤 아래에 많은 사람이 지나다니면 후대가 번성한다는 말을 전해 듣고 자신의 무덤 밑에 용인자연농원을 조성했다고 한다. 물론 이는 전해내려오는 이야기이기 때문에 100% 정확한 사실인지는 확인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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