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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런버핏이라는 이웃에게 자산관리를 맡기면 생기는 일

조회수 2019. 3. 15. 10:55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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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5년, 도로시 크립키와 마이어 크립키 부부는 평범한 이웃 남자에게 자산 관리를 맡긴다는 어려운 결정을 내렸다. 그들은 당시 많은 중년 커플이 겪는 흔한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었다. 얼마나 노후를 위해 준비하고 있느냐 하는 문제였다. 몇 달 간의 논의 끝에, 부인은 남편에게 이웃에게 맡겨보자는 의견을 제안하였고 심사숙고 후에 남편은 부인의 뜻에 따랐다. 놀랍게도 이들이 자산 관리를 맡겼던 평범한 이웃은 현존하는 최고의 투자자, 워런 버핏이었다. 이 스토리를 좀 더 자세히 알아보자.
도로시와 마이어 부부는 그래도 주변 또래들보다는 노후 계획을 잘 세워둔 편이었다. 물려받은 유산과 저금하는 습관과 덕에 1965년 당시 한화로 약 7500만원 정도의 돈을 모아두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는 오늘 날의 가치로 따지면 대략 5억 6천만 원에 달하는 금액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10년, 혹은 20년 후에 은퇴하고 나서도 그 돈이 여전히 있을지, 제대로 관리할 수 있을지 혹은 더 불리는 것도 가능한지 여러 고민을 하고 있었다.
"여보, 우리 돈을
당신 친구 워런에게 투자합시다."
출처: business Insider

도로시는 당시 네브래스카의 오마하라는 작은 마을에서 돈 관리를 잘하기로 좋은 평판을 얻기 시작한 이웃에게 자산 관리를 맡기자고 제안했다. 마이어는 처음에 도움을 요청하기 민망하다며 이를 만류했지만 결국에는 아내의 의견에 수긍하였다. 그들의 이웃이었던 워런 에드워드 버핏은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그들의 자산을 맡아줄 것을 수락했다고 한다. 이 일화로 인해 이들의 삶은 어떻게 달라졌을까? 

출처: Houston Chronicle

여러분도 예상하다시피 그저 좋은 평판을 얻고 있던 이웃이 바로 그 워런 버핏이었다. 그는 지역 투자 사업으로 나중에 5천억에 이르는 자산을 관리하게 된 사람이자 현재 개인 자산 총 65조의 가진, 세계에서 다섯 번째로 부자인 바로 그 사람이다. 도로시와 마이어 부부는 현존하는 최고의 투자가에레 얼떨결에 돈을 맡기게 된 것이다.

마이어는 처음에는 어린 자산관리사에게 평생의 돈을 맡기는 것이 망설여졌다고 한다. 첫째로는 돈을 맡기는 것이 큰 민폐라고 생각되었고 둘째로는 친구와 비즈니스를 하는 것에 대한 걱정이 컸기 때문이다. 하지만 가장 걱정되었던 것은, 워런에게 투자하기 위해서는 당시 최소 금액 1억이 있어야한다는 점이었다. 그래서 말을 꺼내는 것조차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다.
출처: Business Insider

도로시는 이런 고민을 대수롭지 않게 여겼지만 마이어는 3년 동안이나 워런에게 말하는 것을 고민했다고 한다. 하지만 워런은 그들의 부탁을 듣자마자 망설임 없이 그들의 돈을 맡아주기로 했다고 전해진다. 워런은 당시 상황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저는 마이어를 좋아했었고 혹시나 투자가 잘 안 풀리더라도 친구로 남을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

출처: imagenesmy com

두 사람에게 모두 다행인 것은, 그들이 우려했던 나쁜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3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워런의 사업은 기하급수적으로 확장되었고 그렇게 마이어와 도로시 부부의 전 재산 7500만원은 아주 빨리 불어날 수 있었다. 머지 않아 크립키 부부는 백만장자가 되었으며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더 큰 부자가 될 수 있었다. 1990년 대 중반에는 놀랍게도 약 282억의 자산을 갖게 되었다고 한다. 지금으로 따지면 그 가치는 450억에 이르는 돈이다. 

이처럼 마이어와 도로시 부부는 워린 버핏 덕분에 엄청난 부자가 되었지만 그 이후에도 소박한 삶을 유지했다고 한다. 심지어 한 달 월세가 102만원밖에 되지 않는 오마하의 쓰리 베드룸 아파트에 계속해서 살았으며 지역 유대교회당에서 라비로 임명되었던 마이어는 3300만원의 연봉을 받으면서 일도 계속해나갔다.
크립키 부부가 가장 큰 가치를 두었던 것은 바로 자선사업이었다. 이 놀라운 부부는 평생 동안 수많은 자선 단체에 몇십억에 달하는 금액을 기부하였다고 알려져 있다. 그들이 수십 년 전 처음 만났던 맨해튼의 유대인 신학대학교의 도서관을 새로 짓는 데 70억이 넘는 금액을 기부하였으며 추가로 그들의 모교에도 90억원을 기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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