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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토스

대표 '흙수저’ 출신으로 초일류 대기업을 만들어 낸 중국 창업가 4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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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현대그룹 故 정주영 명예 회장

강원도 통천군의 가난한 소작농 집안에서 8남매 가운데 장남으로 태어난 현대그룹의 故 정주영 회장은 ‘흙수저’ 중의 ‘흙수저’ 였습니다. 그의 인생이 바뀐 것은 자신이 일하던 쌀가게를 인수해 운영하던 정주영에게 한 단골손님이 제안하면서부터입니다.

“아현동에 아도서비스라는 자동차 수리공장이 있는데, 그걸 한번 해보지 않겠나.”


바로 이 말 한마디에 쌀가게의 주인이었던 정주영은 ‘자동차’에 관심을 두게 되고, 몇 번의 실패 끝에 ‘현대자동차공업사’를 설립하게 됩니다. 만약 정주영 회장이 이 제안에 관심을 두지 않고, 계속 쌀가게를 운영했다면 어땠을까요? 그는 재벌이 될 수 있었을까요? 


이러한 터닝 포인트가 정주영 회장에게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흙수저 출신으로 재벌이 된 사람들에게는 그들이 돈을 버는 길로 가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습니다. 오늘은 흙수저 출신으로 재벌이 된 중국의 창립자 4명의 터닝포인트에 대해 알아보고자 합니다. 

1. 미국 출장길에서 ‘인터넷’을 처음 접하다 - 알리바바 창업자 마윈

어린 시절의 마윈

마윈은 1964년 저장성 항저우에서 태어났습니다. 그의 부모님은 중국의 민속 음악인 평탄(評彈·핑탄) 배우였는데, 1966년 시작된 문화대혁명으로 평탄 공연이 금지되면서 생계를 유지하기 힘들 정도로 곤궁해졌습니다.

출처마윈 알리바바 회장과 그의 옛 동료였던 빌 아호

1995년, 저장성 교통청에 공무원으로 채용되어, 통역사로 미국 시애틀 출장길에 올랐던 마윈은 그곳에서 터닝 포인트를 맞이하게 됩니다. 


그를 터닝 포인트로 이끈 인물은 중국에서 함께 일했던 동료 빌 아호(Bill Aho)인데요. 그가 마윈에게 자신의 사위 스튜어트 트러스티(Stuart Trusty)를 소개하면서 마윈의 인생이 바뀌게 됩니다. 미국 최초의 인터넷 서비스업체 VBN을 운영하던 스튜어트 트러스티는 마윈에게 컴퓨터와 인터넷을 소개했습니다. 

“1995년 즈음 중국에서 인터넷 사업을 하면서 매우 외로웠다. 누구도 날 믿지 않았고, 나도 내가 뭘 말하고 있는지 몰랐다. 심지어 나는 컴퓨터 기술에 대해서도 아무것도 몰랐다.”


컴퓨터 기술과 인터넷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음에도, 인터넷이 엄청난 변화를 가져올 것이라 직감한 마윈은 공무원 생활을 접고, 인터넷 비즈니스 사업에 뛰어들었습니다. 그리고 1999년, 몇 번의 실패 끝에 알리바바를 설립하였습니다. 

2. ‘박사 학위’를 포기하고 ‘직장’을 택하다 - 바이두 창업자 리옌훙

리옌훙은 1968년 산시(山西)성 동부의 양취안(陽泉) 시에서 태어났습니다. 아버지는 보일러공이었고 어머니는 가죽제조공장의 노동자였습니다. 


어릴 적부터 공부를 잘했던 리옌훙은 베이징대에서 정보 관리학을 전공하고, 미국 버펄로 뉴욕주립대에서 컴퓨터공학 석사학위를 받은 유능한 인재로 성장했습니다. 

리옌훙은 국제 학술지에 논문을 발표할 정도로 뛰어났지만, 월스트리트의 스카우트 제의에 원래 목표로 했던 ‘박사 학위’를 과감하게 포기하고, ‘직장’을 택했습니다. 이것이 그의 인생에 터닝포인트가 되었는데요. 


다우존스에서 3년간 근무하면서 검색엔진 페이지 순위를 파악할 수 있는 알고리즘을 개발하고, 인포시크(Infoseek)라는 검색회사에서 2년 반 동안 근무하면서 사진 검색 기능을 개발해 특허를 획득했는데, 그 때 개발한 기술들이 바이두의 검색 엔진을 만드는 데 좋은 밑거름이 되었다고 합니다.

3. 한 권의 책이 인생을 바꾸다 - 샤오미 창업자 레이쥔

출처레이쥔 샤오미 CEO(오른쪽)는 스티브 잡스 전 애플 CEO(왼쪽)

우한(武漢)대에서 전산 공학을 전공하던 평범한 공대생이었던 레이쥔의 인생을 바꾼 것은 『파이어 인 더 밸리(Fire In the Valley)』라는 한 권의 책이었습니다. 1984년 출간된 이 책에는 스티브 잡스 등 실리콘밸리에서 성공신화를 쓴 창업자들의 이야기가 담겨 있었습니다. 레이쥔은 그 책을 읽고 깊은 감명을 받아, IT 벤처 기업을 창업해 세상을 바꿔야겠다고 생각했다고 합니다.


대학교 3학년에 재학 중이던 1991년, 친구 3명과 함께 ‘산써(三色)’라는 벤처 기업을 창업했지만, 창업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다른 기업에 기술을 도용당하고, 자금 부족에 시달리면서 사업을 접어야 했습니다.

그가 창업에 대한 꿈이 이룬 것은 오랜 시간이 지난 후였습니다. 중국의 중견 IT 업체인 킹소프트에 입사하여, 부회장 자리까지 올라 승승장구하던 그는 2007년 돌연 은퇴를 선언하고, 3년 후인 2010년에 샤오미를 창립했습니다.


샤오미가 2011년 처음 발표한 스마트폰 '미1'을 시작으로 무시무시한 성장세를 이어가며, 2014년엔 애플·삼성을 제치고 중국 스마트폰 시장 1위에 올랐습니다. 샤오미가 눈부신 성장을 거듭하면서 레이쥔 회장의 개인 재산도 급격하게 늘어났는데요. 2018년 7월 기준 레이쥔 회장의 재산은 195억 달러로, 중국 부호 순위 6위에 올라 있습니다.

4. 사스 때문에 온라인에서 물건을 판매하다 - 징둥닷컴 창업자 류창둥

류창둥(劉强東)은 1974년 장쑤(江蘇)성 쑤첸(宿遷) 현의 시골 마을에서 태어났습니다. 류창둥의 부모님은 징항(京杭) 대운하에서 조각배로 사람과 화물을 실어 나르는 일을 했는데, 가정 형편이 좋지 않아, 류창둥이 중국 명문대인 인민대의 사회학과에 합격했을 때, 이웃들이 달걀 76개와 500위안을 내주어, 겨우 대학에 진학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1998년 중국의 실리콘밸리로 불리는 베이징 중관춘에 전자제품 판매업체인 ‘징둥멀티미디어’를 세울 때까지만 해도 류창둥은 온라인 사업에 별로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의 인생을 바꾼 건 2002~2003년에 중국에서 발생한 사스(SARS· 중증 급성 호흡기 증후군) 사태였습니다. 사스에 전염될 것을 우려한 사람들이 집 밖으로 나오지 않아, 오프라인 판매업체였던 ‘징둥 멀티미디어’의 매출이 급감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때 한 직원이 “제품을 인터넷으로 판매해보면 어떻겠냐”고 제안했습니다. 온라인으로 제품을 판매하면, 판매자와 구매자가 직접 만나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전염병을 우려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류창둥은 인터넷 사이트를 만들고, 게시판에 공동구매 이벤트를 공지한 뒤 주문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저가’ 전략을 내세운 덕에 재고는 금세 바닥을 드러냈습니다. 온라인 쇼핑몰의 가능성을 확인한 류창둥은 오프라인 사업을 완전히 접고, 온라인 사업에 집중하겠다는 과감한 결정을 내리고, 2004년 징둥닷컴을 설립했습니다.


중국의 관영 신문인 글로벌 타임스는 중국 전자상거래 시장에서 징둥닷컴이 1위인 알리바바(58.2%)에 이어 시장점유율 2위(16.3%)에 올랐다고 전했습니다. 징둥닷컴의 성장과 함께 류창둥도 세계적인 부호가 됐는데요. 포브스에 따르면, 2018년 9월을 기준으로 류창둥의 순 자산은 75억 달러(약 8조3700억원) 규모에 이른다고 합니다.

현대그룹 창립자 故 정주영 명예회장과 알리바바의 창립자 마윈, 바이두의 창립자 리옌훙, 샤오미의 창립자 레이쥔, 징둥닷컴의 창립자 류창둥에게는 ‘흙수저’가 ‘재벌’이 되었다는 공통점 외에 또 다른 세 가지의 공통점이 있습니다.


첫 번째는 인생의 터닝포인트가 있었다는 것이고, 두 번째는 그 터닝 포인트의 시점에서 세상이 돌아가는 시류를 읽었다는 것이고, 세 번째는 실패에 굴하지 않고 자기 생각을 행동에 옮겼다는 것입니다. 


샤오미의 창립자인 레이쥔 회장은 “바람 목에 서 있으면 돼지도 날 수 있다(只要站在風口, 猪也能飛起來)”라고 말합니다. 바람이 온다는 확신이 있다면, 몇 번을 실패하더라도 포기하지 말고, 바람 목에서 기다리세요. 그렇다면, 언젠가 태풍이 찾아와 당신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던 일을 가능하도록 만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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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토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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