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수벌금제'의 장점과 단점

조회수 2021. 4. 27. 11:03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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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노역으로 수억원의 벌금을 때우는 회장님들

25일 이재명 경기도지사는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재산에 비례해 벌금 액수를 차등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자 윤희숙 국민의힘 의원은 이 지사가 재산과 소득을 구분하지 못한다고 지적했습니다.


이 지사는 윤 의원의 비판에 대해 "제1야당 경제혁신위원장으로서 국민을 대표하는 헌법기관인 국회의원이라면 최소한의 양식은 갖추셔야 하고, 특히 경기도민의 공적 대표자를 거짓말쟁이나 무식쟁이로 비난하려면 어느 정도의 엉터리 논거라도 갖춰야 마땅하다”면서 "결국 재산비례 벌금제의 의미와 글 내용을 제대로 파악 못한 것이 분명하니 비난에 앞서 국어독해력부터 갖추시길 권한다”고 답했습니다.


두 정치인의 설전이 언론에 보도되면서 '재산비례 벌금제'라는 말이 화두로 떠올랐습니다. 벌금을 재산과 소득에 따라 다르게 부과한다는 제도인데 일반인들은 잘 모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일수벌금제의 장점: 형벌 효과의 불평등 해소

'재산비례 벌금제'를 학계나 법조계 등에서는 '일수벌금제'라고 부릅니다. 한국과 핀란드의 사례를 통해 비교해보겠습니다.


2017년 정일선 현대BNG스틸 사장은 운전기사들을 주 80시간 넘게 일을 시키고 폭행한 사실이 드러나 근로기준법 위반 혐의로 벌금 300만원을 선고받았습니다.


핀란드의 판리틸라그룹 야리바르 회장은 규정속도를 1Km 초과해 벌금 112,000유로 한화로 약 2억원의 벌금을 냈습니다.


범죄 혐의로 보면 정일선 사장이 더 무거워 보이지만 과속을 한 핀란드 회장에게 훨씬 큰 액수의 벌금이 부과됐습니다. 바로 '일수 벌금제' 때문입니다.


일수벌금제는 범죄자의 재산과 소득에 따라 벌금액을 다르게 부과하는 제도입니다. 만약 야리바르 회장이 평범한 직장인이었다면 2억원의 벌금이 부과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한국은 총액벌금형 제도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벌금의 총액이 정해지면 모든 피고인에게 동일하게 부과하는 방식입니다.


일수벌금제는 범죄에 따른 벌금을 금액이 아닌 일수로 정하고 1일에 해당하는 벌금액은 재산과 소득에 따라 결정됩니다.


만약 똑같은 범죄 혐의에 10일의 벌금형이 나왔다면 실업자는 1일 벌금을 5만원씩 계산해서 50만원을 내야 합니다. 재산이 100억이 넘고 급여 등 소득이 많다면 1일 벌금이 100만원이 되어 총 1000만원의 벌금을 물게 됩니다.


'동일 범죄 동일 형량'에 따라 100만원의 벌금이 부과될 경우 많은 재산과 높은 소득이 있는 사람들에게는 처벌 효과가 미미하지만, 가난한 사람에게는 엄청난 징벌이 됩니다.

일수벌금제는 형벌 효과의 불평등을 해소하기 위해 재산과 소득에 따라 벌금을 다르게 적용하는 방식으로 1921년부터 핀란드를 비롯해 스웨덴(1931년), 덴마크(1939년), 독일(1971년), 오스트리아(1975년), 프랑스(1983년), 스위스(2007년) 등의 국가들이 택하고 있습니다.




일수벌금제의 단점: 재산 은닉과 허위 신고로 발생하는 조사의 어려움

출처: 국세청
▲국세청이 적발한 고액의 부동산 양도대금을 비트코인으로 은닉한 경우

일수벌금제의 가장 큰 단점은 벌금 부과의 전제 조건인 재산과 소득의 정확한 파악이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점입니다.


매년 재산신고를 하는 공직자와 근로소득세를 납부하는 직장인은 급여 소득이 투명해 그나마 파악이 용이합니다. 그러나 소득 자료가 부정확한 자영업자나 재산을 차명으로 돌린 범죄자의 경우 재산과 소득을 정확히 파악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범죄자가 아니더라도 세금을 내기 싫어 위장 이혼을 하거나 재산을 은닉하는 경우가 빈번하게 발생합니다. 특히 외형적으로 재산이 없어도 회사의 자금과 재산을 활용해 호화로운 생활을 하는 재벌들도 많습니다.


국세청의 자료가 정확하고 법원과 데이터 연동이 될 경우 벌금 부과도 빠르게 진행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국세청이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거나 누락된 재산이 있다면 벌금 부과를 위해 별도로 조사하는 과정도 만만치 않습니다.


이외에도 '동일한 범죄 행위에 서로 다른 형벌을 내리는 자체가 차별'이라는 주장이나 '판사가 자의적으로 해석해 개입할 가능성', '범죄가 아닌 자신의 노력을 통해 축적한 부에 대한 희생적 평등을 요구하는 자체가 헌법의 평등주의 원칙에 위배'된다는 반대의견도 있습니다.

일수벌금제를 도입해야 하는 이유

출처: YTN 유튜브 캡처
▲2010년 대주그룹 허재호 전 회장은 벌금 미납을 일당 5억원의 노역형으로 대체했다.

2010년 대주그룹 허재호 전 회장에게 일당 5억 원의 노역형이 집행됐습니다. 과거 삼성 이건희 회장은 1일 1억 1천만원, 시도상선 권혁 회장은 일당 3억원, 손길승 SK 회장은 일당 1억원의 노역형을 치른 바 있습니다.


원래 벌금을 내지 못할 경우 노역으로 대체됩니다. 문제는 일반인은 일당 5만원이지만 재벌이나 권력자들은 일당으로 1억이 넘는 벌금을 대신하는 경우가 허다하다는 점입니다. 부자에게만 과도하게 벌금을 부과하면 안 된다고 하면서 이런 노역 특혜를 베푸는 것은 불합리합니다.


시민사회와 법조계, 일부 정치인들은 경제적으로 강자에게 유리한 현재의 '총액벌금형 제도'의 문제점을 개선하기 위해서라도 '일수벌금형' 제도를 도입하거나 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국회입법 조사처>의 '벌금형제도 개선을 위한 입법과제' 보고서를 보면 재산과 소득정보 조사가 어렵다고 포기하기보다는 보호관찰관들을 통해 파악하거나 현행 조세부과체계처럼 나이나 학력, 직업군, 과세 증명자료 등을 종합해 일수벌금액 산정 기준표 또는 일수벌금액 구간표 등을 마련해 부과하면 부작용을 최소화할 수 있다는 의견을 제시합니다.


지난해 서울신문이 조사한 여론조사를 보면 국민 10명 중 6명은 재산·소득에 비례해 벌금을 차등 부과하는 일수벌금제를 찬성했습니다.


찬성하는 이유로는 ‘부자에게는 더 많은 벌금을 부과해야 실질적 징벌 효과를 가질 수 있다’는 의견이 58.8%로 가장 많았습니다. 뒤를 이어 ‘유전무죄 무전유죄 사회 분위기를 개선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는 답변이 25.8%로 나타났습니다.


지금 국민들은 '공정'을 시대적 과제로 요구하고 있습니다. 사법권력 유착을 해소하고 사법 불신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양형기준이 필요합니다. 일수벌금제는 불합리한 사회 시스템을 개혁하는 작은 시작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by 아이엠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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