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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지 않은 상대와 결혼하게 되는 9가지 이유

조회수 2021. 4. 12. 07:1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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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섯째, 학교에서는 사랑을 가르쳐주지 않습니다.

누구나 잘못된 사람과 결혼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약간 염세주의적으로 반응하는 건 현명한 일입니다. 완벽이란 건 없습니다. 어느 결혼에나 불행은 존재합니다. 그러나 어떤 커플은 근본적으로 잘못된 조합일 경우가 있습니다. 일상에 존재하는 실망 정도가 아니라 그냥 같이 있어서는 안 되는 커플이 있죠. 이런 일은 어떻게 일어나는 걸까요? 잘못된 결혼이 보통 사람이 가장 쉽게 저지르면서 엄청난 비용을 초래하는 실수라는 걸 고려하면, 도로 안전이나 흡연 문제처럼 국가 차원에서 관리하지 않는 게 이상할 정도입니다. 그러나 사실 사람들이 잘못된 선택을 하는 이유를 나열해보면 생각보다 단순합니다. 대부분 몇 가지 카테고리 안에서 결정되죠.




첫째, 우리는 우리 자신을 잘 모릅니다.


사람들은 보통 어떤 배우자를 찾느냐고 물으면 그럴 듯하지만 모호한 묘사를 늘어놓습니다. '자상하고', '같이 있으면 즐겁고', '매력적이고', '모험에 나설 준비가 되어있는 사람' 같은 식이죠. 그런 표현이 잘못됐다는 건 아닙니다. 다만 이런 모호한 표현을 늘어놓는다는 건 우리가 행복해지기 위해-혹은 비참해지지 않기 위해- 어떤 요소가 필요한지 정확히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증거라는 점을 말하고 싶은 겁니다.

우리는 모두 조금씩 미쳐 있습니다. 누구나 신경과민, 어딘가 균형 잡히지 않은 불안한 상태, 아직 철이 덜 든 부분이 어딘가에는 존재합니다. 그러나 자신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는 사람은 드물죠. 배우자의 가장 중요한 과제는 그 미친 부분을 알아내고 이해하는 겁니다. 상대방의 신경과민이 어디서 왔는지 이해하고 언제 어떻게 작동하는지, 어떤 사람이 이를 완화하거나 반대로 더 악화시키는지 파악해야 한다는 겁니다.


일반적으로 좋은 동반 관계는 건강한 두 사람이 만나서 이뤄지는 게 아닙니다. 사실 지구상에 그렇게 건강한 사람은 드물죠. 어딘가 비뚤어진 두 사람이 서로의 미친 부분을 보완하는 상대를 찾는 혜안이 있거나, 아니면 그저 운이 좀 따라야 합니다. 내 자신이 어떻게 어려운 사람인지 동반자에게 경종을 울려야 합니다. 상대방이 동의하지 않으면 화를 참기 어렵다거나 일하지 않으면 불안하다든가 잠자리를 가진 후에 생기는 친밀함이 불편하다거나 걱정에 잠겨있을 때 이를 잘 설명하지 못하는 것 같은 부분에 대해서 말입니다.


이런 특성이 수십 년에 걸쳐 재난을 가져옵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가 이렇다는 걸 미리 알고 감당할 수 있는 사람을 찾아야 하는 겁니다. 모든 저녁 데이트의 첫 번째 질문은 “그래서 당신은 어떻게 미쳐있나요?”가 되어야 합니다.

문제는 나 자신의 신경과민을 깨닫는 일이 그렇게 쉽지 않다는 겁니다. 결혼 전에는 이렇게 반응할 상황에 빠지는 일 자체가 드물고 경험이 없습니다. 가볍게 연애하는 와중에 내 자신의 ‘어려운’ 부분이 작동해도 연애 상대가 잘못했다거나 일진이 안 좋은 날이었다고 넘겨버리기 십상입니다. 친구들은 그렇게 진짜 나를 발굴해줄 필요가 없죠. 그냥 즐거운 저녁을 보내면 되는 겁니다.


결과적으로 우리는 사실 우리 자신의 비뚤어진 면을 잘 알지 못합니다. 화가 났어도 들어주는 사람이 없으면 소리 지를 데가 없죠. 결혼할 때까지 내가 화가 나면 소리를 지르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모르는 겁니다.


종일 일만 해도 저녁 먹으라고 전화하는 사람이 없으면 내가 일에 얼마나 미쳐있는지 충분히 꺠닫지 못하고, 누군가 나를 막으려 하면 어떤 지옥이 펼쳐질지 예측하지 못합니다. 밤에 누군가를 껴안고 포옹하는 건 좋지만, 아주 깊이 가까워지고 서로에게 충실해야 하는 상황에서 내가 차갑고 어색하게 행동할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혼자 살다 보면 쉽게 빠지는 착각이 내가 다른 사람과 살기 쉬운 사람이라 생각하는 거죠. 나 자신을 모른다면, 누구를 찾아야 하는지 모르는 것도 당연한 일입니다.





둘째, 우리는 다른 사람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다른 사람도 우리만큼이나 스스로를 잘 이해하지 못한다는 사실이 문제를 더 키웁니다. 좋은 의도가 있더라도, 상대방에게 자신을 알리기 전에 자신도 자신을 잘 모르는 걸요. 우리는 자연스럽게 다른 사람을 이해하려고 먼저 시도합니다. 가족을 방문하고, 처음 다녔던 학교를 방문하죠. 사진을 보고 친구들도 봅니다. 숙제하는 셈이죠.


그러나 이는 종이비행기를 날려본 사람이 비행기를 몰 수 있다고 믿는 것과 비슷합니다. 현명한 미래 사회에서는 아주 자세한 심리학 설문지를 작성해 결혼하기 전에 심리학 진단을 받아야 할 겁니다. 2100년쯤에는 이 말이 농담처럼 들리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여태까지 인간 사회가 왜 그렇게 하지 않았는지가 더 놀라울 겁니다.

우리는 결혼하려는 사람의 사고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알아야 합니다. 권위, 굴욕, 자기 성찰, 성적 친밀감, 미래 예측, 돈, 아이, 노화, 신뢰 등 수백 가지 주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그 태도를 이해하는 게 중요하죠. 보통 대화로는 알아낼 수 없는 것들도요. 하지만 우리는 그들이 어떻게 보이느냐를 가지고 이런 진단을 내립니다. 눈, 코, 이마, 주근깨, 미소가 어떤가에서 정보를 얻어내는 식이죠.


그런데, 핵발전소 사진을 보고 핵 발전이 어떻게 이뤄지는지 말할 수 있을까요? 불가능합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아주 적은 정보를 가지고 상대를 예측하려 합니다. 인간의 두뇌는 몇 가지 한정적인 정보를 토대로 전체를 판단하죠. 사람을 볼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결혼하기 전에 얻는 정보, 지금 사회에서 결혼을 준비하는 방식은 턱없이 부족합니다.




셋째, 우리는 행복에 익숙치 않습니다.


우리는 사랑에서 행복을 찾는다고 생각하지만 실제 이는 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닙니다. 사실 대부분은 친숙한 걸 찾는 것이고, 이게 반드시 행복으로 이어지지는 않습니다. 우리는 성인이 되어서 어릴 때 느낀 감정을 다시 불러옵니다. 그러나 우리가 어릴 때 느꼈던 사랑이 반드시 즐겁고 유쾌한 경험만은 아니었을지도 모릅니다. 시키는 대로 하고, 굴욕을 느끼고, 버려지고, 제대로 소통하지 못한 채 느낀 고통이었을 수도 있죠.


그런 우리는 어른이 되어 건강한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상대를 그들이 잘못해서가 아니라, 너무 성숙하고 이해심이 깊고 믿을 만 했기에 불편해서 떠나기도 합니다. 대신 우리를 행복하게 하진 않지만 그저 친숙한 감정을 느끼게 하는 사람에게 가버리죠.


정말 ‘올바른’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사람이 나와 다르고 과분하다고 느껴져 그를 버리고 잘못된 사람을 찾아가는 일은 매우 흔합니다. 건강한 사랑의 경험이 없는 사람은 사랑을 행복이나 만족과 연결시키지 못합니다.




넷째, 싱글로 지내는 건 너무 어렵습니다.


싱글 생활을 견딜 수 없다면 합리적인 생각을 유지하며 좋은 사람을 찾기가 쉽지 않습니다. 좋은 사람을 만나려면 수년간 홀로 지내면서도 평화롭고 행복한 삶을 꾸려나갈 수 있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나에게 맞는 좋은 사람을 만나서라기보다 그저 싱글에서 벗어나고 싶어 누구든 만나려 하죠.

우리 사회는 안타깝게도 일정 나이에 다다르면 독신으로 지내는 게 어려워집니다. 친구 등 사회 집단 모임은 조금 시들기 시작하고, 부부들은 싱글 친구로부터 너무 자주 초대받는 걸 부담스러워 하고, 혼자 영화관에 가는 것도 눈치가 보입니다. 성관계도 문제입니다. 여러 기구와 현대 사회의 자유로운 분위기에도 불구하고, 누군가를 만나 성관계를 갖기는 나이가 들면서 점점 어려워집니다. 정기적으로 새로운 사람을 만나 성관계를 하는 생활은 서른 살이 넘어가면서 눈에 띄게 어려워집니다.


이 사회를 다시 개편해 대학이나 키부츠(이스라엘 집단 농장)처럼 만들 수 있다면 그런 의미에서는 더 나은 사회를 만들 수 있을 겁니다. 공동체의 구성원들이 다같이 먹고 자고 파티가 끊이지 않고 새로운 이성을 자연스럽게 만날 수 있는 공간을 만드는 것이죠. 그런 사회에서라면 결혼이 싱글로 사는 게 힘들어서가 아니라 정말로 결혼할 확신을 가진 커플들 사이에서만 일어날 겁니다.


성관계가 결혼한 사람들 사이에만 가능한 사회에서는 사람들이 잘못된 이유로 결혼을 하게 됩니다: 성관계가 사회를 인위적으로 구속하는 셈이죠. 우리가 논의한 사회에서라면 더 나은 결정을 두고도 정기적인 성관계를 가지려고 결혼하는 일은 없을 겁니다.


이러한 구속은 다른 방식으로도 일어납니다. 커플들만 진짜 가까운 친구가 될 수 있다면, 사람들은 외롭지 않기 위해 쌍을 짓게 됩니다. 성자유주의자가 성관계의 해방을 주장하는 것만큼이나, 동료애를 커플이라는 개념에서 해방시키는 것도 중요하다고 저는 믿습니다.




다섯째, 본능이 지나친 선망을 얻다


예전에는 결혼이 집안간의 사업이었습니다. 땅과 재산 가치를 꼼꼼히 따져보는 일이었죠. 당사자들의 행복은 고려하지 않은 냉정하고 무자비한 결정이었습니다. 우리에게는 아직도 이런 트라우마가 남아 있습니다.

오늘날의 결혼은 본능과 낭만의 상징입니다. 상대방에 대해 느끼는 감정만이 결혼을 결정짓는 요소가 되어야 한다고 믿죠. 사랑에 빠지면 그걸로 충분한 겁니다. 더 이상 무슨 질문이 필요할까요? 감정이 우리의 결정을 지배합니다. 사랑이라는 감정이 우리의 순결한 영혼에 도래한다면 그 아름다운 감정에 굴복하고 볼 일입니다. 부모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결국 결정을 내리는 건 결혼 당사자들의 몫입니다. 지난 300년 동안 우리는 선입관과 자만, 부족한 상상력으로 점철된 앞서의 수천 년에 반기를 들었습니다.


낡은 '결혼의 이유'에 맞서 싸우면서 우리는 우리가 왜 결혼을 하고 싶어하는지 너무 많이 생각하면 안 된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지나치게 분석하는 건 로맨틱하지 않기 때문이죠. 결혼하기 전에 장단점 목록을 적어보는 건 이상하고 냉정합니다. 가장 낭만적인 상황은 만난 지 몇 주도 안 되어, 갑작스럽고 빠르게, 열정에 가득 차서, 지나치게 계산만 해온 수천 년 전 사람들과 달리 그저 사랑에 빠져 결혼을 결정하는 겁니다. 이러한 성급함이 결혼 생활을 잘 해낼 거라는 증거라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예전에는 지나치게 신중함을 추구하다 결혼을 망쳐버리곤 했으니까요.




여섯째, 학교에서는 사랑을 가르쳐주지 않습니다.


이제 세 번째 종류의 결혼을 생각해볼 때가 되었습니다. 바로 심리의 결혼입니다. 땅 거래를 위해서 하는 것도 아니고 외로움을 느껴서 하는 것도 아닌, 나와 다른 이의 심리를 잘 이해하고 검토해본 후에 하는 결혼이죠.


우리는 지금 많은 정보 없이 결혼합니다. 우리는 결혼의 의미에 대해 많은 책을 읽거나, 아이들과 많은 시간을 보내거나, 결혼한 커플과 깊이 관계를 파고들거나, 이혼한 커플과 심각한 이야기를 하기 전에 결혼하죠. 왜 결혼이 실패하는지 깊이 연구해보고 통찰을 해본 적이 없습니다.


이런저런 이유 때문에 결혼하던 시대에는 아래 조건들을 검토했습니다.


– 부모가 누군지

– 땅은 얼마나 가지고 있는지

– 문화적으로 얼마나 비슷한지


낭만의 결혼 시대에는 아래 같은 신호들이 결혼이 정당하다는 증거가 됩니다.


– 연인에 대해 생각하는 걸 멈출 수 없거나

– 성적으로 집착하고 있거나

– 상대방이 대단하다고 감탄하거나

– 상대방과 언제나 이야기하고 싶어 결딜 수 없거나


같은 식이죠. 우리는 이제 여기에 새로운 기준을 더해야 합니다.


– 그들이 어떻게 미쳐있는지

– 그들과 아이를 낳아 키울 수 있을지

– 같이 발전해 나갈 수 있는지

– 친구로 남을 수 있을지


같은 것들을 말이죠.




일곱 번째, 우리는 언제나 행복하고만 싶습니다.


우리에게는 좋은 것을 영원토록 지속되는 것으로 만들고 싶은 간절한 욕망이 있습니다. 원하는 차를 내 것으로 만들고 싶고, 여행자로 방문해 좋은 시간을 가진 나라에 살고 싶습니다. 그리고 환상적인 시간을 함께 보낸 상대와 결혼하고 싶습니다.


우리는 결혼이 어떤 사람과 보낸 행복을 보장해주는 장치라고 기대합니다. 청혼할 때 느꼈던 둥둥 떠다니는 듯한 행복을 평생토록 옆에 두기 위해 결혼을 하는 거죠. 베네치아의 아름다운 호수에서 모터보트에 앉아 석양이 내려앉은 바다를 바라보며 작은 해산물 레스토랑에서 아름다운 저녁식사를 하고, 따스한 스웨터를 두르고 행복하던 그 기분을 평생토록 간직할 수 있을 것만 같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결혼과 이 감정에는 상관 관계가 없습니다. 그 행복한 감정은 베네치아와 석양이라는 시간, 휴가, 좋은 저녁 식사, 상대방과 보낸 꿈만 같던 두 달간의 시간이 자아낸 거지 결혼이라는 제도는 이 행복을 증진할 수도 보장할 수도 없습니다.


결혼은 행복한 순간을 보존해주지 않습니다. 이 행복은 다른 요소에서 비롯된 것이니까요. 결혼은 되려 두 사람의 관계를 다른 형태로 바꾸어놓을 뿐입니다. 결혼을 하게 되면 도시 외곽으로 이사가고, 출퇴근이 길어지고, 어린 아이들을 키워야하는 책임감만 늘어가죠. 완전히 다른 상황에서 공통점이라고는 동반자뿐입니다. 이 동반자가 다른 상황으로 넘어갈 때 그리고 굳이 가져가고 싶지 않은 요소였을 수도 있죠.


19세기의 인상파 화가들은 찰나의 아름다움과 변화에 대한 철학을 발전시켰습니다. 존재는 찰나일 뿐이며 행복은 끊임없이 변화한다는 것을 받아들이고 우리가 작은 순간에 감사하고 행복을 누릴 수 있어야한다고 생각했죠. 프랑스 시골을 그린 시슬리의 그림은 아름답게 변화하는 사물을 표현합니다. 석양 무렵 햇살이 풍경으로 간신히 비집고 들어왔습니다. 햇살은 앙상한 가지를 부드럽게 내리쬡니다. 눈과 잿빛 담장은 차분한 조화를 이루죠. 추위도 상관 없고, 신나게까지 느껴집니다. 그러나 몇 분 후면 어두운 밤이 하늘을 덮을 겁니다.


인상주의는 우리가 가장 사랑하는 것들이 끊임없이 변화하고, 찰나에만 존재하며 곧 사라질 것이라는 사실에 관심을 기울였습니다. 몇 년보다 몇 분동안 지속할 행복에 환희했죠. 그들의 그림에서 눈은 너무나 아름답습니다. 그러나 곧 녹아없어질 겁니다. 아름다운 하늘은 곧 어두워질겁니다. 이러한 예술은 예술에서만이 아니라 찰나에 존재하는 행복을 받아들이고 인지하게 도와줍니다.


인생의 절정은 찰나에 불과합니다. 행복은 몇 년이라는 단위로 찾아오지 않죠. 인상주의가 우리에게 가르쳐준 것처럼 우리는 매일에 존재하는 찰나의 천국에 감사하고, 이를 영원으로 만들려는 노력은 그만두어야합니다. 결혼이라는 형태로는 더더욱 아니지요.




여덟 번째, 우리는 우리가 특별하다고 믿습니다.


결혼에 대한 통계는 희망적이지 않습니다. 처참하게 파탄 난 결혼의 사례는 수도 없이 많았죠. 우리는 주변 사람들이 시도했다 실패하는 걸 보았습니다. 일반적으로 결혼이 매우 어렵다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게 나의 문제가 될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죠.

사랑에 빠졌을 때 우리는 이미 엄청난 확률 게임에서 성공했다고 생각하고, 그러므로 결혼에 실패할 확률도 통계처럼 절반이 아니라 나에게는 훨씬 낮다고 기대하죠. 사랑받는 사람은 이미 백만분의 확률을 뚫었다고 느낍니다. 그러니 결혼이라는 도박도 해볼 만하게 느껴지는 거죠.


우리는 우리 자신이 일반적인 다른 사람들과는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그 착각이 잘못은 아니지만, 나도 일반적인 운명에 빠질 거라고 예측하고 준비하면 배울 게 많을 겁니다.




아홉 번째, 우리는 사랑에 대해 생각하기를 멈추지 않습니다.


결혼하기 전에 우리는 이미 사랑의 소용돌이에서 수년을 보냈을 겁니다. 나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도 만나보고, 연애를 시작했다 헤어지기도 하고, 운명의 상대를 만날지도 모른다는 기대로 여러 파티에 나가기도 했습니다.


그러다 어떤 시점이 되면 우린 이만하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결혼을 할 때가 되었다고 느끼는 건 피곤하고 지치는 정신적 소모를 이제는 끝낼 때가 되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지요. 끝없는 통속극과 방향성 없이 그 자리를 맴돌 뿐인 사랑의 열병에도 지쳐버립니다. 인생의 다른 과제들에도 지쳐가지요. 우리는 결혼이 사랑의 피곤함을 끝내줄 것이라 기대합니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의구심, 희망, 두려움, 거절과 배신은 결혼 생활에도 존재합니다. 독신 인생만큼이나 다이나믹한 공간이죠. 결혼은 밖에서나 사건 사고 없이 평화롭고 단순한 일로 보입니다.


사회의 구성원을 제대로 준비시켜 결혼에 다다르도록 도와주는 건 사회가 교육해야할 책무 중에 합니다. 우리는 더이상 왕조시대의 결혼을 믿지 않습니다. 낭만의 결혼이 가져오는 재앙도 보았죠. 이제, 심리의 결혼을 가르치고 고민해 볼 때입니다. (알랭 드 보통 <The book of life>)


번역: 뉴스페퍼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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