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선해졌지만 동시에 전쟁에도 능숙해졌다

조회수 2021. 3. 8. 08:4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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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전쟁을 선호하는 인간의 본성을 이겨낼 수 있을까요?

1991년 알프스를 여행하던 두 등산객은 미라처럼 변한 상태로 얼음에 갇힌 한 시체를 발견합니다. 아이스맨이라 불린 이 시체는 5천 년 이상 된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고고학자들은 처음에는 그가 눈보라를 만나 동사한 것으로 생각했지만, 그의 몸에는 여러 군데 자상과 타박상이 있었고, 어깨에는 화살촉이 박혀 있었습니다. 또 그가 들고 다니던 돌칼에서 혈흔이 발견됐죠. 곧, 그는 전투 중에 사망한 것이었습니다.


캐나다의 역사학자 마가렛 맥밀란은 이 아이스맨 이야기가 인간의 폭력성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생각합니다. 인간은 다툼을 좋아합니다. 전쟁을 벌일 수 있는 것도 인간만이 가진 특별한 능력이라고 할 수 있죠. 책 “전쟁: 싸움은 인간에게 어떤 영향을 주었나(War: How Conflict Shaped Us)”에서 맥밀란은 전쟁이 인간의 역사와 너무나 밀접한 관계가 있기에 우리는 전쟁이 인류에 미친 영향을 오히려 제대로 인지하지 못한다고 말합니다. 국가의 흥망이 전쟁과 관련이 있다는 것은 그나마 명확하지만, 그 외에도 인류는 전쟁의 영향을 많이 받았습니다. 우리는 평화를 소중하게 생각하지만, 전쟁 역시 인류 사회와 정치 체제에 큰 변화를 만들어 왔으며, 심지어 더 나은 체제를 만들기도 했습니다. 전쟁은 과학의 발전을 추동하기도 했습니다.


맥밀란은 전쟁사 분야의 인정받는 전문가입니다. 이 분야에 개인적으로도 관계가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녀의 아버지와 할아버지는 모두 전쟁에 참여했고, 증조부는 세계 제1차대전 당시 영국의 총리였던 데이비드 로이드 조지입니다. 하지만 그녀는 자기 집안의 역사가 그리 특별한 것은 아니라고 말합니다.


“70대인 내 주변에는 가족 중에 1차대전이나 2차대전에 참전한 사람이 있는 이가 많습니다.”


맥밀란은 전쟁터에서 벌어진 이야기에서부터 전쟁 이론에 이르는 다양한 책을 썼고, 신기술이나 신무기가 어떻게 역사를 바꾸었는지를 보여주었습니다. 그녀가 가장 관심을 가지는 질문은 이 책의 서두에 나오는 이 질문입니다.

"전쟁은 인간의 야수성(bestial side)을 깨우는 것일까? 아니면 인간의 최선의 모습(best)을 이끌어내는 것일까?"

Q: 인간은 근본적으로 폭력적인 존재일까요?


A: 나는 우리가 근본적으로 폭력적이지는 않지만, 적어도 진화를 거치면서 어느 정도는 폭력적 경향을 띠게 됐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두려울 때 우리는 공격성을 드러내지만, 그렇다고 이를 두고 인간이 폭력적이라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인간이 이타적으로 행동하거나 서로 협력하는 상황도 자주 있죠. 중요한 것은 사람들이 왜 싸우느냐 하는 것이고, 여기서 싸움이란 어떤 두 사람의 싸움이 아닌 전쟁을 말합니다. 전쟁은 조직을 위해, 이념을 위해, 문화적 가치를 위해 일어납니다. 안타깝게도 인간은 더 잘 조직화할수록 전쟁을 더 잘 치를 수 있게 됐습니다. 전쟁은 매우 조직적인 행동입니다. 술집에서 시비에 붙거나 누군가 두려움을 느껴 당신에게 가하는 폭력과는 많이 다르죠.


Q: 스티븐 핑커는 인간이 문명 덕분에 점점 덜 폭력적으로 되었다고 말합니다. 그의 주장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A: 매우 흥미로운 주장입니다. 그는 방대한 자료를 성실하게 제시했죠. 이제 우리는 검투사들에게 목숨을 걸고 싸우라고 하지 않습니다. 공개처형도 사라졌습니다. 거의 모든 선진국과 다른 많은 나라에서 살인율은 낮아지고 있습니다. 미국은 사실 그 점에서 좀 독특합니다. 한 사회 내부적으로는 사람들이 더 평화로워졌다는 그의 주장이 맞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전쟁은 좀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리처드 랭엄은 “선악 패러독스(the goodness paradox)”라는 아주 흥미로운 반론을 제시했습니다. 그는 우리가 개인적으로는 실제로 더 착해졌고, 폭력성도 줄었다고 말합니다. 더 폭력적인 사람은 짝을 찾지 못하게 되거나, 아니면 가장 폭력적인 사람을 사회가 죽임으로써 마치 늑대가 사람의 무릎에 올라오는 개가 된 것처럼 점점 더 온순해졌다는 것이죠. 이렇게 개개인은 더 착한 사람이 되었지만, 또한 어떤 목적을 가진, 조직적인 폭력을 행하는 데는 더 능숙해졌습니다. 그래서 패러독스라고 하죠. 우리는 더 착한 사람이 되었지만, 그 착한 사람들이 전쟁을 더 잘 일으키게 된 것입니다.


Q: 동물 세계에서는 전쟁이 잘 일어나지 않나요?


A: 우리와 가장 가까운 사촌으로 알려진 침팬지들은 전쟁을 일으키는 것처럼 보입니다. 수컷 침팬지들은 영토를 지키기 위해 무리를 이뤄 경계를 순찰합니다. 다른 무리의 침팬지가 잘못 그 지역에 들어왔다가 순찰대에 발견되면 죽임을 당하게 됩니다. 하지만 또 다른 사촌인 보노보는 평화를 추구하며, 다른 무리의 보노보를 폭력적으로 대하지 않습니다. 어쩌면 지리학적 이유로 침팬지는 타고난 공격성을 가지게 되었고, 보노보는 그렇게 되지 않았을 수 있습니다.


Q: 보노보는 모계사회이고 침팬지는 대장 수컷이 지배하는 사회라는 사실도 있겠지요.


A: 그 사실은 매우 흥미로운 생각으로 이어집니다. 수컷이 더 싸움을 많이 할까요? 수컷은 원래부터 더 호전적이고 암컷은 평화를 선호할까요?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물론 인류의 역사 대부분은 부계 사회였습니다. 하지만 여성이 권력을 잡았을 때도 전쟁의 빈도는 전혀 줄지 않았습니다. 예카테리나 2세나 마리아 테레지아, 마가렛 대처를 생각해 봅시다. 이들은 전쟁을 피하지 않았습니다.


Q: 전쟁을 일으키는 것이 우리의 유전자에 새겨진 본성이라면 그게 인간의 본성에 대해 어떤 사실을 말해주는 것일까요?


A: 전쟁과 관련된 유전자까지 있을지는 모르겠네요. 폭력성은 어느 정도 유전자와 관련이 있을 수 있지만, 전쟁은 조직화한 사회의 문제입니다. 전쟁은 목적이 있으며, 종종 어떤 이익을 위해 일어납니다. 그저 아무 이유 없이 전쟁을 벌이지는 않습니다. 계획과 훈련이 필요하며, 아주 큰 노력이 수반돼야 합니다. 군대는 이 사실을 잘 알고 있지요. 군대는 다른 사람을 죽이고 싶지 않은 사람과 자신의 목숨을 걸고 싶지 않은 사람들이 싸우도록 하기 위해 엄청난 훈련을 합니다. 즉, 전쟁을 일으키는 경향은 우리가 조직화한 사회를 가지게 된 것과 관련이 있습니다. 당신이 유목민이라면 당신을 위협하는 이들을 피해 짐을 챙겨서 다른 빈 땅으로 가면 됩니다. 하지만 한곳에 정착해 농사를 짓게 되면서, 이제 지켜야 할 것이 생겼고 다른 곳으로 가기가 힘들어졌습니다. 게다가 다른 사람들이 빼앗고 싶은 것을 가지게 됐죠. 안타깝게도, 사회가 조직화할수록 전쟁을 피할 수 없게 됐고, 그래서 전쟁을 더 잘 준비하고 피할 수 없다면 전쟁을 치르게 된 것이죠.


Q: 하지만 사회의 목적은 사람들을 보호하기 위한 것 아닌가요?


A: 사람들을 보호하기 위해 전쟁을 일으키는 경우도 있습니다. 전쟁의 중요한 원인 중에는 다른 이들이 가진 것에 대한 탐욕이 있습니다. 이는 남들이 내가 가진 것을 빼앗으려 하고 우리 사회를 파괴하려 할 수 있다는 말이지요. 서로 다른 두 사회 사이에 신뢰를 만드는 것은 매우 힘든 일입니다. 오히려 서로 의심하는 본능이 있죠. 서로 이웃한 이들이 평화롭게 사는 경우도 많지만, 그 평화가 깨질 위험은 언제나 존재합니다.

출처: GIB
목숨을 걸고 싸우는 침팬지들

Q: 결국은 부족주의(tribalism) 때문일까요? 내집단(in-group)과 외잡단(out-group)으로 나뉘고, ‘타인’에 대해서는 본질적으로 불신과 공포를 느끼게 되는 인간의 특성 말입니다.


A: 인간 사회에 그런 특성이 많이 발견되지만, 나는 우리가 이를 극복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사람들이 서로를 더 신뢰하게 만들 수 있는 제도와 가치를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종교는 아주 많은 사람을 하나의 집단으로 묶어주고 서로 형제로 여기게 해줍니다. 유럽연합은 서로 신뢰하지 못하고 전쟁을 벌이던 국가들이 어떻게 서로 협력하게 되었는지를 보여주는 좋은 예입니다. 물론 이는 쉬운 일이 아니고, 또 그 관계가 얼마나 쉽게 틀어질 수 있는지도 알아야 합니다.


Q: 선생님은 앞서 사람들이 정착하고 농경을 시작하면서 전쟁이 더 중요해졌다고 말씀하셨지만, 수렵-채집 문화에서도 사람들이 전쟁을 벌였다는 다양한 증거가 있는 것 같습니다.


A: 예전에는 사람들이 더 착하고 순했다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아주 오래전에는 사람들이 서로 화목하게, 각자 원하는 것만 취하고, 여유를 즐기며, 서로 싸우지 않고 살았다고 말입니다. 하지만 다툼과 폭력의 흔적은 아주 오래전부터 발견됩니다. 아직 남아있는 수렵-채집 사회에 대한 연구를 보면 그때도 조직화된 폭력과 그로 인한 사망률이 매우 높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Q: 루소와 토마스 홉스의 오랜 논쟁과 관련 있는 이야기군요.


A: 루소는 조직화된 사회가 우리에게 서로를 적대하게 했다고 말했지요. 홉스는 고대 원시 사회에서는 중앙 정부가 없기 때문에 사람들의 다툼을 중재할 수 없었고, 그래서 사태가 더 심각했다고 말했고요. 홉스에게는 질서를 유지하고 영토를 지키며 사람들을 보호하는 독재 권력, 즉 리바이어던이라는 커다란 정부가 선한 존재였습니다.


Q: 그럼 홉스가 맞았다고 할 수 있나요?


A: 나는 그의 비관적 관점에 어느 정도 동의합니다. 하지만 국제사회는 무정부 상태이고, 소위 개판이라는 그의 주장은 틀렸습니다. 인류는 전쟁의 필요를 없애거나 최소한 줄여나가는 국제기구와 규칙을 오랫동안 고민해왔습니다. 100년 전만 하더라도 서로 싸우던 영국, 프랑스, 독일이 유럽연합을 만들 거라고 상상할 수 있었을까요? 전쟁 외에도 국가 간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법이 있습니다. 국제재판소, 중재, 제재 등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6.25 전쟁 당시 참호에 몸을 숨긴 병사들

Q: 하지만 전쟁을 일으킨 국가가 번영하는 경우도 있잖아요.


A: 어떤 면에서는 그렇습니다. 하지만 아주 값비싼 희생과 대가를 치르는 전쟁의 늪에 빠질 때도 있어요. 찰스 틸리는 전쟁 덕분에 제국 내의 신민이 더 안정적인 삶을 누릴 수 있게 돼 더 큰 제국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설득력 있게 보였습니다. 로마는 전쟁을 통해 제국을 세웠습니다. 그러나 로마 제국 안에 사는 사람들은 도로와 바닷길이 안전했기에 자유롭게 여행하며 높은 수준의 삶을 누렸습니다. 로마 제국 내에서는 무역이 자유롭게 행해졌습니다. 사람들은 로마 제국을 빠져나가기보다는 로마 제국의 일원이 되어 그 안에서 살고 싶어 했습니다. 로마 제국은 종교에 관용을 보였고, 오직 황제를 존경하고 자신들의 법과 관습을 따르기만을 요구했습니다. 즉, 로마 제국의 성공에 전쟁의 성공이 크게 기여했지만, 그렇다고 무력만으로 로마가 제국이 된 것은 아니었습니다.


Q: 전쟁은 보통 어떻게 시작하나요?


A: 다양한 이유가 있습니다. 어떤 이가 누군가를 모욕해서, 어떤 이가 다른 이와 결혼했기 때문에, 누군가의 실수로 등 매우 다양하죠. 하지만 나는 이를 탐욕이라는, 곧 누군가 다른 이가 가진 무언가를 원하기 때문이라는 하나의 관점에서 바라봅니다. 그게 영토일 수도 있고, 은이나 금과 같은 재화일 수도, 아니면 사람을 노예로 만들기 위해서일 수도 있지요. 누군가가 당신을 공격할 거라는 생각에, 혹은 당신의 국가가 살아남기 위해 전쟁을 시작할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이데올로기나 신념 때문에 전쟁이 벌어지기도 합니다. 종교도 여기에 포함되죠. 지상에 천국을 건설하려 하거나, 아니면 영원한 구원을 받았다고 믿게 되면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게 되고 더 큰 목적의 일부가 되기 때문에 기꺼이 전쟁에 참여하게 됩니다. 민족주의도 이와 비슷합니다. 국가를 위해 싸우고 죽을 때 우리는 나 자신보다 더 큰 무언가를 위해 싸운다고 생각합니다. 또는 누가 이 사회를 지배해야 하는지, 이 사회가 어느 방향으로 가야 하는지를 두고 서로 다른 생각을 하는 사람들끼리 싸우는 내전도 있죠.


Q: 내전이 보통 가장 참혹한 전쟁이 되지 않나요?


A: 그렇게 되는 이유는 보통 내전이 지상에 사회주의 국가를 건설한다든지, 사후에 천국을 가기 위해서처럼 이데올로기를 두고 싸우는 전쟁이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의견에 반대하는 이를 제거하는 것은 더 큰 인류의 선을 가로막는 이를 제거하는 것이며, 따라서 도덕적 의무감마저 느끼게 됩니다. 지상에서 그들을 제거하는 일에 눈곱만큼의 양심의 가책도 느끼지 않다 보니 그렇게 잔인한 전쟁이 되는 겁니다. 내전이 발발하면, 최전선의 군인만 싸우지 않습니다. 다른 생각을 가진 사회 전체가 서로 싸우게 됩니다. 일상이 전쟁터가 되는 거죠. 아이들에게도 상대방을 제거해야 한다고 가르치고, 노인도 마찬가지입니다. 내전은 어떤 이도 그냥 지나치지 않습니다.


Q: 선생님 책에는 전쟁에서 우연의 중요성에 대한 내용도 있습니다. 어떤 특별한 사람이 지도자가 되거나 아니면 하나의 사건이 전쟁을 불러일으키는 일 말이지요.


A: 많은 역사학자가 여기에 동의하지 않을 겁니다. 하지만 나는 우연한 사건이 역사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생각합니다. 프랑스 혁명이 일어났을 때 나폴레옹 보나파르트는 코르시카 섬의 보잘 것 없는 가문 출신의 군인이었습니다. 프랑스 혁명이 아니었다면 힘 있는 장군이 될 희망을 품지 못했겠죠. 혁명은 구시대의 질서를 파괴했고, 그 결과 다른 시대라면 기회를 가지지 못했을 이가 역사상 가장 뛰어난 전쟁 영웅이 되었습니다.


우연한 사건도 마찬가지입니다. 나는 1차 세계대전은 피할 수 있었다는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유럽 국가들이 서로 싸우기 시작한 1914년 이전에도 그런 위기가 있었지만, 그들은 서로 자제했습니다. 1914년에도 전에 그랬던 것처럼 자제하고 전쟁으로 가는 스위치를 누르지 않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늦어버린 걸 깨달았을 땐 이미 일이 너무 커져 버린 뒤였습니다. 사라예보에서 오스트리아 제국의 황위 계승자가 살해됐습니다. 오스트리아는 세르비아를 멸망시키겠다고 결심합니다. 러시아는 세르비아를 지키기로 마음먹습니다. 독일은 오스트리아-헝가리 편에 서기로 합니다. 과거 이와 비슷한 상황에서도 서로 합의로 마무리한 일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이 문제가 국가의 자존심이 걸린 매우 위험한 문제가 돼버린 것입니다.


Q: 그런 종류의 전쟁이 지금도 일어날 수 있을까요?


A: 냉전 당시에는 가능성이 있었습니다. 당시 우리는 소련과 미국 사이에 핵무기에 의한 상호확증 파괴가 어떻게 균형을 이루게 하는지 논했습니다. 냉전 막바지에는 정말로 서로 핵무기를 발사하기 직전까지 간 적도 있습니다. 쿠바 미사일 사태도 우리 생각보다 훨씬 위험한 위기였습니다. 당시 핵무기 발사 권한이 함장에게 있는 소련의 핵잠수함이 있었는데, 핵무기를 발사하지 못하게 누군가 함장을 설득했습니다. 천만다행이었죠. 통신병이 잘못된 신호를 전달하거나 레이더에 잡힌 새떼를 적국의 미사일로 오인해 전쟁이 발발할 가능성도 있었습니다.


Q: 우리는 전쟁의 참혹함을 이야기했지만, 선생님은 전쟁이 과학적 진보를 이끌거나 사회적 평등에 기여하는 면도 이야기하셨습니다.


A: 역사적으로 보면, 너무 많은 비용이 들거나 너무 어려워서, 또는 기존의 시스템을 다 파괴해야 하므로 평상시라면 하지 못했을 일을 심각한 위기 상황에 처한 뒤 많은 사람이 힘을 모아 해낸 경우가 있습니다. 전쟁이 그런 위기 중 하나이지요. 팬데믹도 여기에 해당합니다. 오랫동안 균형 재정을 강조하던 정부가 갑자기 많은 돈을 뿌리고 있습니다. 팬데믹에서 사회가 굴러가려면 꼭 그래야 하기 때문입니다. 전쟁도 비슷합니다. 아시는 것처럼, 전쟁은 의학적 발전에 크게 기여했습니다. 예를 들어 1920년대 전쟁 중에 발견된 페니실린은 생산 비용이 너무 많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2차대전이 일어나면서 병사들을 살리기 위해 가격이 급격히 낮아졌지요.


Q: 오늘날의 컴퓨터 혁명도 미국의 국방성이 연구를 거듭한 결과죠.


A: 2차대전과 냉전 시기에 미국은 수많은 과학 기술을 연구했습니다. 인터넷은 미국 대학에 주어진 연구비의 결과입니다. 실리콘밸리의 성공도 냉전 시기 미국 정부가 지원한 연구비를 바탕으로 하고 있습니다.


Q: 전쟁은 사회적 평등에도 기여했습니다. 남자들이 전장으로 떠나면, 여자들이 세상이 돌아가도록 만들어야 했고 이는 정치적 변화를 가져왔습니다.


A: 1차대전 이전부터 여러 나라의 여성들은 투표권을 요구하고 있었습니다. 이에 대해 남자 만큼 사회에 참여하지 않는다면 투표할 권리도 없다는 논리가 있었죠. 1차대전이 일어나고 남자들이 모두 징집되자 여자들은 이전에는 생각지 못했던 일을 하게 됩니다. 농장에서 트랙터를 몰았고, 공장에서 물건을 조립했습니다. 영국과 몇몇 국가는 여성이 전쟁에 기여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이제 앞의 논리는 성립하지 않게 됐습니다.


Q: 기술의 발달은 오늘날의 전쟁을 매우 위험하게 만들었습니다. 미래에 인공 지능이 활용된다면 어쩌면 킬러 로봇이 사람들을 다 죽이게 될지도 모릅니다. 미래의 전쟁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A: 그럴 가능성이 있습니다. 첨단 무기는 점점 더 발달하고 있습니다. 인간의 제어가 필요하지 않고 스스로 판단을 내리는 자기유도 무기들도 개발되고 있습니다. 누가 그런 무기를 책임져야 할까요? 무기 하나하나의 파괴력도 커지고 있습니다. 핵무기도 무섭지만, 보통의 폭탄도 그 정도 파괴력을 가지게 됐습니다. 다른 나라의 기반 시설을 흔들 수 있는 사이버 공격은 새로운 종류의 전쟁이 가능함을 보여줍니다.


Q: 전쟁을 선호하는 인간의 본성을 우리는 과연 이겨낼 수 있을까요?


A: 나는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나는 독일의 변화를 매우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19세기와 20세기, 독일은 군국주의를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는 나라였습니다. 당시 군인은 가장 명예로운 직업이었고, 군대는 가장 뛰어난 사람들이 가는 곳이었지만, 지금은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독일은 완전히 다른 나라, 다른 사회가 되었지요. 스웨덴도 비슷합니다. 17세기 30년 전쟁 시절 스웨덴 군인은 잔인하기로 악명 높았습니다. 그들이 근처에 있다는 소식을 들으면 사람들은 모두 짐을 싸서 도망갔습니다. 하지만 오늘날 스웨덴은 평화를 추구하는 완전히 다른 나라가 되었지요. 대부분 유럽 국가는 이제 군국주의를 버렸고, 전쟁이 국제사회에서 유용한 전략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유럽의 한 나라가 다른 나라를 침공한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 됐습니다. 나는 예전처럼 전쟁을 하나의 도구로 사용하는 것은 불가능한 세상이 반드시 올 것이라 생각합니다. (Steve Paulson, 노틸러스)


번역: 뉴스페퍼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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