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상 모델 알바 체험기

조회수 2020. 11. 5. 10:25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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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곳은 미술학원이라기보다는 대장간 혹은 유도 도장과 흡사했다.
소요시간: 4시간

난이도: ★★★

한줄 평: 찰나의 주마등을 영원으로 늘린 정신과 시간의 회전의자

1. 비루한 통장과 부푼 상상


꽤나 경이적인 보릿고개였다. 4개에 2700원 하는 요플레와 650원 짜리 라면으로 하루하루를 꾸역꾸역 버티던 나는 살아남기 위해 단기알바를 찾아야만 했다. 그러나 잦은 술과 규칙적인 게으름으로 단련되어 엿가락처럼 나태해진 육신에 느닷없는 아르바이트란 녹록치 않았다. 택배 상하차같은 고강도 알바는 쳐다보지도 못했고, 암암리에 인기가 많다는 생동성 실험은 고질적 빈혈과 알 수 없는 두려움에 쉽사리 지원하기 어려웠다.

'편하고 고액'에서 느껴지는 극도의 불길함...

강한 내적 갈등을 겪던 중 발견한 것이 미술학원의 두상 모델 알바였다. 두상 모델이라... '두상-모델-' 이라는 단어에는 무언가 고상한 듯 하면서도 당도높은 꿀의 유혹 같은, 그런 묘한 울림이 있었다. 홀린듯 공고를 클릭했다. 홍대 xx 미술학원이라는 소개글이 나를 반겼다.


미술학원. 학구적이면서 동시에 예술적인 이 단어는 초등학교 2학년 때 사생대회에서 최고상을 받고 으스대던 어린이가 떠올랐다. 물론 훗날에 밝혀졌지만 나는 예술과 관련해서는 보노보 침팬지와 크게 다를 바 없는 똥손이었고, 그때 느낀 악마적인 미적 소질은 모자란 침흘리개의 인지부조화였다. 장담컨대 그때 받은 최고상은 공무원의 태업 혹은 일종의 전산 오류였으리라.


어찌됐건 미술 하는 학원이니만큼 산뜻하고 깔끔한 분위기와 나부끼는 커튼, 하얀 벽지와 캔버스, 눈을 감고 앉아있는 모델 같은 정갈한 이미지들이 떠올랐다. 그리고 혹시 어쩌면 아름다운 미대생이라든가 뭐 그런 사람이 있어도 되지 않을까. 그게 나쁜 건 아니잖아. 부푼 가슴으로 상상의 나래를 펼쳤다. 마침 신촌에서 약속이 있어 지체없이 지원했다. 사진을 보내지 않는 조건이라 경쟁률이 높아 떨어지지는 않을까 불안불안했다.

미술학원에_대한_아주_잘못된_상상.jpg

그러나 예상외로 문자를 보내자마자 다음 날 오후 6시까지 홍대 모 학원으로 오라는 답신이 왔다. 내심 기쁨과 동시에 지나치게 쉽고 빠른 진행에 마음속 깊은 곳에서 경고음이 울렸다. 지원자가 별로 없나? 왜 이렇게 답장이 빨라? 원양어선이 아닐까? 다만, 내 통장 잔고는 그런 생각을 별로 달갑게 여기지 않았다.




2. 들어올땐 마음대로지만...


그 날은 비가 왔다. 우산도 없는데 길을 몇 차례 잃었다. 홍대 인근 미술학원은 사드 배치 전 제주도 중국인보다 많았다. 가까스로 찾은 학원으로 황급히 뛰어들어갔다. 문 너머로 분주한 소리가 들렸다. 스케치 준비를 하는가 싶었다. 밝게 인사하며 육중한 문을 열었다.


‘끼익’ 소리가 크게 울렸다. 잠깐의 정적 후, 덩치 큰 남학생들이 거대한 찰흙 더미를 옮기며 날 쳐다봤다. 뭔가 이상한데...? 아찔한 느낌과 동시에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미술학원보다는 대장간 혹은 유도 도장과 흡사한 그곳, 수많은 사람들의 머리가 박제처럼 전시된 그곳은 흙으로 사람의 머리를 빚는 조형입시학원이었다.


땀이 비오듯 흘렀다.

'잘못했으니 용서해달라'고 외치고 싶었다.

우람한 상체에 날카로운 눈매를 가진 관장, 아니 원장님이 나를 인도했다. 그는 훌륭한 바리톤 목소리로 정신없이 연락처니 계좌번호니 하는 것들을 쓰게 한 후 내 머리에 '삔'을 두 개 꽂았다. 친절하게도 '이마를 보이기 위함입니다'라고 일러줬다. 땀은 멈추지 않았다. 거울 안에는 젖은 채 머리에 ‘삔’을 꽂은 남자가 상기된 표정으로 쳐다보고 있었다. 학생들은 고맙게도 대놓고 비웃지는 않았다.


원장님은 상담을 위해 원장실로 자취를 감췄다. 그 사이 학생들은 제 나름대로 찰흙덩어리며, 뼈대며, 회전 의자 등을 분주히 준비했다. 그 중 제일 덩치가 크며 호전적인 인상의 사나이가 '모델님'하고 나를 부르더니 중앙의 의자에 앉혔다. 거의 구 척에 가까운 거인이었다. 나는 침을 한 번 삼킨 후 얌전히 앉았다. 그가 작품을 만들다 화가 나 내 두상까지 부수지 않기를 바랄 뿐이었다.


"모델님 이쪽에 앉으시죠, 숨지고 싶지 않으면."

공포와 정신없음 사이에서 방황하던 와중에도 못내 기분이 좋았던 것은 학원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나를 보고 '모델님'하고 불러준다는 사실이었다.


ex) '모델님, 여기 앉으세요', '모델님, 정면을 응시해 주세요', '모델님, 돌아주세요', '모델님, 모델님...?'


사실 들을 때마다 괜스레 입꼬리가 위로 약간 올라갔지만 아무도 눈치를 채지 못한 것 같았다.




3. 인생의 회전의자


어찌 됐건 그 '모델님' 소리에 다시 기분이 고조되어 직업적 프로의식을 굳게 다졌다. 날 들어(?) 앉힌 크고 강해보이는 학생에게 전달받은 내 업무는 매우 간단명료했다.


-정면을 보고 바른 자세로 앉아 있다가,

-5분 경과를 알리는 소리가 나면 90도 오른쪽으로 돈다.

-그렇게 네 번, 한 바퀴를 돌고 나면 처음의 자리를 기준으로 45도 위치에서 시작해 다시 한 바퀴를 돈다.

-두 바퀴(40분) 후 휴식(10분)이 한 사이클이고, 총 다섯 번의 사이클이 끝나야만, 여길 떠날 수 있다.


사실 아련한 표정 연기나 역동적인 포즈를 주문할까봐 몰래 연습을 해뒀는데 무표정이라는 싱거운 지침에 못내 아쉬웠다. 오래 전 무인도에 가까운 외딴 섬에서 템플스테이같은 군생활도 버틴 나였다. 명상이든 공상이든 가만히 앉아있는 것쯤은, 전혀 어렵지 않았다. 곧 준비가 끝나고 일곱 개의 개인 작업대가 주위를 둥그렇게 둘러쌌다. ‘삐’ 소리와 함께 초침이 움직였다. 학생들이 찰흙 덩어리를 뼈대에 붙이기 시작했다.


"...자 이 쪽을 봐주세요."

"조금 더 이쪽으로."

"고개를 조금만 왼쪽으로 돌려주시겠어요?"

"아뇨. 오른쪽 말고 왼쪽이요."


스물 몇 해 동안 다리 꼬고 구부정하게 앉아있던 결과일까.


바른 자세와 무표정은 한 시간이 지나자 세상에서 제일 어려운 자세가 되었다. 모래성처럼 서서히, 그러나 확실하게 무너져가는 균형과 표정에 학생들과 원장님은 예술적 엄격함이 가득 담긴 눈으로 교정을 요구했다. 대답도 못하고 가위눌린 사람인양 사지를 움찔거리던 나는 괜스레 서러워져 항의하고 싶었다. 다만 화를 내면 큰 찰흙을 가볍게 다루는 그들의 근력으로 내 자세를 영원히 교정해줄것만 같아서 이내 그만뒀다.


눈 깜빡여서 죄송합니다.

처음 의자에 앉을 때, 나는 4시간 동안 명상하며 척추처럼 비틀린 인생에 대한 반성과 미래설계에 힘쓸 작정이었다. 하지만 5분 마다 울리는 ‘삑’ 소리와 틈만 나면 정면으로 와서 이맛살을 찡그리며 내 두상이며 이목구비를 면밀히 관찰하는 학생들 덕분에 여간 쉽지가 않았다. 그들은 둘, 셋씩 무리 지어 와서는 흠칫할 정도로 가까이 다가와 골똘히 무언가를 조사했다.


주로 자신의 손을 척도로 내 귀의 길이며 콧구멍의 크기, 턱의 각도와 높낮이 등을 가늠한 후 돌아갔다. 나는 코끝이 간지러웠고 의자에 앉기 직전, 벌컥벌컥 들이킨 녹차 때문에 매우 곤란한 지경에 이르렀지만 프로페셔널한 모델의 면모를 보여주기 위해 전혀 동요하지 않았다. 그냥, 기저귀를 입고 왔으면 참 좋았겠다고, 그런 공허한 생각만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그렇게 나는 높은 의자에 앉아 하염없이 오른쪽으로, 또 오른쪽으로 돌았다. 고장난 백화점 회전문처럼 빙글빙글 돌고 있자니 지난날의 삶과 기억속에 눌러붙은 추억들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과거에 했던 단기 아르바이트들. 갓 스무살이 되어 서점알바를 하며 느꼈던 책이란 것의 질량, ‘새 책 왔다’라는 단어가 주는 아릿한 빡침, 그리고 노동 후 먹는 맥주의 시원함.


고난의 중학교 교재 제본 알바. 기계공정의 부품이 되어 현대사회의 분업화를 몸소 체험하던 나와 친구들은 교무실에서 엠블랙 이름으로 괴성을 지르던 중학생 무리 덕에 정신적 외상을 얻었다. 그들도 어느덧 어엿한 14학번 대학생이 되었겠지. 방향 잃은 상념은 그렇게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4. 노동의 대가, 그리고...


휘몰아치는 잡생각들 가운데서도 바른 자세가 안겨주는 고문은 영원처럼 계속됐다. 첫 번째 사이클은 쉬웠고, 두 번째 사이클은 어깨와 허리가 아팠지만 버틸만 했다. 세 번째에 조금 죽을 것 같았으며, 네 번째엔 죽고 싶었다. 다섯 번째는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알고보면 지옥은 모든 의자가 두상모델 회전의자인 공간을 부르는 말이 아닐까. 용서할 수 없는 범죄자들을 모아 영원히 두상모델을 시킨다면 미술의 발전과 사회악 근절에 이바지하는 좋은 정책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이 이쯤 다다를 무렵, 마지막 사이클의 마지막 바퀴가 시작됐다.


학생들은 이제 도구를 사용해 마무리 작업을 하고 있었다. 일곱 개의 뒤통수가 보였다. 철저한 소품의 입장에서 복제되는 기분은 매우 묘했다. 학생들은 크고 투박한 손으로 구슬땀을 흘리며 내 속눈썹을 완성시키고 있었다. 시간에 쫓기는 학생들은 쉴새없이 움직였다. 리듬감있게 뛰어다니는 학생들과 그들의 부족한 점을 열정적으로 지적하고 채찍질하는 원장선생님, 흡사 영화 <위플래쉬>의 한 장면 같았다.

물론, 내 역할은 드럼이다...

5분이 지나는 ‘삐’ 소리가 들릴 때마다 학생들은 더욱 바쁘게 뛰었다. 그들은 진지하고 날카로운 눈빛으로 내 얼굴을 면밀히 관찰하고 돌아가 손으로 거칠게 찰흙을 떼어내고, 짓이기고, 덧붙였다. 역동적인 움직임과 섬세하면서도 날카로운 손놀림, 진정한 예술의 현장이자 처절한 창작의 시간이었다. 그들의 뜨거운 열정에 감동한 나는 슬쩍 눈을 돌려 한 학생이 만든 나의 두상을 훑어보았다. 웬 아프리카 고릴라의 형상이 다듬어지고 있었다.


저 학생이 똥손인 것일까, 내가 고릴라를 닮은 것일까 심각하게 고민하던 찰나 마지막 바퀴가 끝났다. 원장님은 나를 중심으로 완성된 일곱 개의 가짜 두상을 일렬로 늘어놓았으며, 각각에 대한 전반적인 피드백과 세부적인 코멘트를 달아주었다. 모든 과정이 끝나고 내 분신들은 파괴되어 찰흙으로 돌아갔다. 살짝 불쾌하면서도 왠지 기분이 좋아지는 장면이었다.


질책을 받은 학생들은 약간 시무룩한 표정이었다. 듣기로 그들은 내일 실기시험을 치러 간다고 했다. 나는 마음속으로 작은 응원을 보냈다.

힘 내,

너희는 최고의 조형가가 될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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