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사나이 나훈아가 이 노래를 호남 억양으로 부르는 이유

조회수 2020. 10. 1. 17:17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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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훈아의 '엄니'는 5.18 희생자들에 대한 추모곡이다.
출처: KBS
가수 나훈아

#1.


어제 콘서트로 전국을 들썩이게 한 나훈아의 2020년 신보 ‘아홉 이야기’의 마지막 9번 곡은 ‘엄니’라는 곡이다. 그런데 이 곡에는 특별한 사정이 하나 있다. 이 곡은 나훈아의 5.18 광주 민주화 운동 희생자들에 대한 추모곡이었기 때문이다.


사실 이 곡은 2020년이 아니라 나훈아가 1987년에 작곡한 곡이다. 광주 민주화 운동으로 희생된 청년들을 추모하고 이 청년들의 어머니들에게 곡을 바친다는 의미에서 제목도 ‘엄니’ 라고 지어진 것이다.



#2.


한 가지 더 의미심장한 사실은, 부산 초량 출신으로 걸걸한 영남 방언을 사용하는 부산 사나이 나훈아가 이 곡은 처음부터 끝까지 호남 방언을 사용하여 작사하였다는 것이다. 실제로 음원에서는 억양을 모사한 흔적도 다수 보인다.


실제로 나훈아는 ‘엄니’를 작곡했을 때 호남에 거주하는 지인들에게 가사를 감수까지 받았다고 알려져 있으며, 5.18 희생자의 부모들에게 자비로 음원을 전달하기 위해 광주 MBC 와의 협업하에 약 2천여 개의 테잎을 준비하려 했었다.



#3.


그러나 87년 당시 전국적인 항쟁에도 불구하고 아직 군사 정권의 색채를 채 벗지 못한 정부는 나훈아의 작업을 이모저모로 방해했고, 결국 음원을 유족들에게 전달하려는 나훈아의 뜻은 무산된 채 33년이 흘렀던 것이다.


실제로 이 비하인드 스토리는 지난 2018년 나훈아의 광주 콘서트에서 나훈아 본인이 직접 언급한 바 있으며, 이번에 발매된 ‘아홉 이야기’ 에 첨부된 부클릿에도 적혀 있다.


* 한편 나훈아와 함께 가요계를 이끌던 남진은 전두환 정권의 호남 차별로 인해 반강제적으로 미국에서 1980년대를 보내야 했다. 정권의 탄압은 영호남을 가리지 않았다.

출처: 멜론뮤직 캡처
9집 수록곡 '엄니' 가사

#4.


가수로서 나훈아가 정녕 위대한 점은 바로 이런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평생을 유지해 온 신비주의로는 상당히 유명했지만, 스스로의 메세지를 누구에게 전달할 것인가를 항상 신경쓰고 고민하던 예술가였다는 점은 사실상 잘 부각되지 않았다.


때문에 나훈아는 그 신비주의에도 불구하고 진정한 대중예술가로 평가받아야 한다. 특히 모 재벌가의 개인적인 공연 요청을 거부하며 “내 노래를 듣고 싶으면, 공연 티켓을 끊어라.” 라고 남겼다는 일화는 그의 예술관을 함축적으로 보여 주는 거울과도 같다.



#5.


그러나 불행히도 미디어는 나훈아의 이러한 점을 제대로 평론하고 주목하기는커녕 개인적인 스캔들만을 추적하고 때로는 그의 신변에 관한 헛소문이 부풀려지도록 방치하곤 했다. 때문에 나훈아의 대중적 이미지는 그리 좋지 못했다.


지난 2008년 그 유명했던 ‘5분간’ 기자회견에서 나훈아는 일부 언론에서 자신과 관련된 헛소문에 아무렇게나 여성 배우들의(실제로 아무 관련이 없었던) 실명을 넌지시 흘리며 스캔들을 키우는 보도 행태에 대해 강하게 비판한 바 있다.



#6.


우리는 나훈아를 대단한 트로트 가수 또는 대한민국을 떠들썩하게 했던 주인공으로는 대개 기억하지만, 그가 자비로 음악을 작사/작곡하여 우리 현대사 질곡 한복판의 희생자들을 위로하려 했던 사실들은 잘 알지 못한다.


이러한 그의 일련의 행위들은 단지 부산 사람 나훈아가 지역을 뛰어넘어 사람의 마음을 어루만지고자 한 것뿐만 아니라, 결국 그의 예술관과 예술 철학 자체가 철저히 대중을 기반으로 하고 있음이 명백하게 재정의되어야 하는 이유 중 하나일 것이다.

#7.


결국 어제 콘서트의 선풍적인 인기는 비단 나훈아라는 사람의 음악뿐만아니라, 나훈아의 삶 속에 녹아 있는 우리 사회와 사람들에 대한 그만의 따스한 시각이 사람들의 심금을 울렸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보아하니 일각에서는 어제 나훈아의 콘서트장에서의 발언을 두고 또 정치적 해석이 오가는데, 이쪽 해석이든 저쪽 해석이든 참 피곤하다는 생각뿐이다. 공연 티켓이 없으면 재벌가의 총수에게조차 노래를 들려주지 않던 그가 티켓도 없이 전국민 앞에서 두 시간 반을 열창했는데 더 말이 필요가 있을까?



#8.


어제 콘서트에서는 비단 나이 든 세대 뿐만 아니라 청년층인 2030 까지도 열광했다고 한다. 어쩌면 우리는 나훈아의 노래가 아니라, 나훈아 같은 ‘어른’이 필요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by 힝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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