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성도 높은 직원이 회사를 망칠 수 있다

조회수 2020. 9. 21. 10:42 수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번역중 Now in translation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다양한 분야의 재밌고 유익한 콘텐츠를 카카오 플랫폼 곳곳에서 발견하고, 공감하고, 공유해보세요.

한 직원의 충성심이 회사를 망친 사연

의뢰인 이야기 – 충성심 많으면 좋은 거 아닌가요?


스타트업을 경영하다 보니 직원 한 사람 한 사람이 다 소중하게 느껴집니다. 저는 사람을 볼 때 충성심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능력이 뛰어나다고 해봐야 CEO인 제가 보기에는 거기서 거기에요. 직원 개개인의 능력보다 회사를 위하는 마음, 헌신하는 자세가 있느냐 없느냐가 더 중요하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저희 회사에도 충성심이랄까, 회사에 대한 몰입도랄까, 그런 마음이 아주 높은 직원이 있어요. 네 일 내 일 가리지 않고 눈에 띄면 처리하는 성실성, 주인의식 등등. CEO인 저로서는 고마울 따름이죠. 다만 아무래도 의욕이 앞서다 보니 다른 직원들과 사이에 조금 트러블이 있긴 합니다. 뭐랄까 다른 직원들 입장에서는 ‘너 왜 그렇게 오버하니?’라는 눈치를 주는 것 같기도 하구요.


하지만 전 그 직원에게 힘을 실어주고 싶습니다. 그 직원의 마음은 제가 잘 알거든요. 그래서 모임 자리에서 은근히 그 직원을 추켜세우곤 합니다. 회사에는 이런 직원이 한 명이라도 더 많아야 발전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한 직원의 충성심이 회사를 망쳤다고?


관리자 입장에서는 같은 연봉을 받더라도 주인의식을 갖고 일하는 직원들이 고마울 수밖에 없다. 어떤 경우에도 의욕이 없어서 복지부동하는 것보다는 훨씬 낫기 때문이다. “저... 죄송하지만 이 업무는 제가 할 일이 아닌 것 같은데요.” 직원들로부터 제일 듣기 짜증나는 말이 이 멘트라던 어느 CEO가 떠오른다.


특히 작은 회사일수록 비정형적인 업무를 처리해야 할 때가 많다. 네 일 내 일의 구분이 힘들다. 하지만 과연 이런 게릴라식 업무처리가 갖는 문제는 없을까? 의욕과 충성심이 높은 직원이라고 해서 남의 일을 대신 처리하고 간섭하는 것을 칭찬해 줘야만 할까? 효율성만으로는 평가할 수 없는 조직 간에 미묘한 역학관계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S사 법무담당자가 의뢰한 건은 좀 황당했다. 임원급 직원 간의 폭행사건이었다. 관련자 두 명이 각 전치 2주, 3주 진단이 나왔다. 서로 시끄러워지는 것을 피하고 싶으니 원만하게 합의하려고 한단다. 하지만 혹시라도 상대방 마음이 바뀔 수 있으니 앞으로 이 문제에 대해서 절대 이의를 제기하지 못하도록 합의서를 작성해 달라는 것이 의뢰의 요지였다. 상황을 보니 ‘부제소 합의서’를 작성하면 될 것 같았다. 그 과정에서 법무담당자로부터 듣게 된 사건의 전말은 이렇다.


김 사장은 젊은 나이에 S사를 창업해서 직원 100여 명 규모의 회사로 키웠다. 그는 자신의 대기업 생활을 반면교사 삼아 순발력과 효율성으로 무장한 ‘젊은 회사’로 키우고 싶었기에 독특한 직제를 만들었다. 다른 회사처럼 이사 직급을 두지 않고 5개 팀에 각 팀장을 두어 그 팀장들이 서로 대등한 위치에서 사장을 보좌하는 방식이었다.


이 방식은 사장에게 권한이 집중되는 한편, 팀 간 수평적인 커뮤니케티에션을 통해 효율적인 의사결정 및 집행을 가능하게 했다. 경영기획팀장인 권 팀장은 김 사장의 대학 직속 후배였다. 권 팀장은 김 사장이 운동권 활동을 했을 때부터 잘 알던 사이. 권 팀장 스스로 그렇게 말하지만 주위에서도 ‘김 사장의 속마음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은 권 팀장’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그런 상황이다 보니 아무래도 같은 팀장이지만 회사 내에서의 영향력은 권 팀장이 가장 센 편이었다.


권 팀장의 주 담당업무는 총무업무와 기획업무였다. 그런데 문제는 사장이 주재하는 팀장 회의에서 권 팀장이 다른 팀이 진행하는 업무에 대해 평가를 하거나 지시의 뉘앙스가 풍기는 발언을 자주 한다는 점이었다. 마케팅 팀의 온라인 마케팅 방향이 현실성이 없다거나, 개발팀 인원들의 실력이 업계 평균에 미치지 못해 사이트 성능이 점점 떨어진다는 발언 등이 그 예다.


물론 회사의 살림(총무 업무)을 맡고 있으므로, 다른 팀 운영에 대해 어느 정도 의견을 제시하는 것을 탓할 수만은 없다. 하지만 구체적인 발언 내용과 수위는 다분히 월권적 성격이 강했다. 권 팀장은 그런 말을 하면서 항상 김 사장의 생각도 그러하다는 점을 간접인용했다. ‘사장님께서 여러분께 명시적으로 말씀은 안 하시지만 저와 비슷한 생각을 갖고 계십니다.’라는 식으로 말이다.


권 팀장이 이렇게 사장을 들먹이면서 발언하니 다른 팀장들은 쉽게 반박하지 못한다는 것. 자연스럽게 다른 팀장들의 불만은 점점 커져갔다.


“솔직히 사장님이 권 팀장을 아끼는 것은 사실입니다. 사장님에 대한 권 팀장의 충성심도 의심할 여지가 없습니다. 하지만 제가 볼 때 사장님이나 권 팀장 모두 공과 사를 구분하지 못하는 측면이 있었던 것 같아요. 사장님도 사석에서 제게는 ‘권 팀장에 대해 주의를 좀 줘야 하는데... 회사를 위해 저러는 것이니 뭐라 탓하기도 어렵고’라는 말씀을 여러 번 하셨습니다. 사장님이 권 팀장에게 따끔하게 주의를 줄 타이밍을 놓쳤던 거죠.”


법무담당자는 저간의 사정을 담담하게 말해 주었다.


“개발팀장이 꽤 실력 있는 사람인데, 결국 권 팀장 등쌀을 못 이기고 그만뒀습니다. 이번에 권 팀장과 폭행사건을 일으킨 사람은 마케팅 팀장입니다. 그렇지 않아도 실적이 저조해서 스트레스 받고 있는데, 권 팀장이 깐죽거리니 참지 못하고 들이받은 겁니다.”


설명을 종합해 보니 김 사장은 권 팀장의 충정을 알기에 권 팀장에게 주의를 주지 못하고 있었고, 다른 팀장들은 권 팀장과 갈등관계를 구축하면서도 어차피 권 팀장을 뛰어넘지 못한다는 패배감에 사로 잡혀 있는 것 같았다. 이런 분위기라면 당초 김 사장이 의도하던 건강하고 젊은 조직으로서의 장점을 살리기가 어려워 보였다.



한비자 - 월권행위는 엄하게 다스려라


한비자 이병편에는 자신의 권한을 벗어나서 충성하는 신하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옛날 한나라 왕인 소후가 술에 취해 잠이 들었다. 이때 전관(군주의 관을 관리하는 벼슬아치)이 군주가 추워하는 것을 보고 군주의 몸에 옷을 덮어 주었다. 왕은 잠에서 깨어난 뒤, 흡족해하며 주위의 신하들에게 물었다.


"누가 옷을 덮어 주었는가?"


"관을 담당하는 전관이 그리 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군주는 이 일로 전의(군주의 옷을 관리하는 벼슬아치)와 전관 모두를 문책했다. 전의에게 죄를 준 것은 자신의 임무를 다하지 못했기 때문이고, 전관에게 죄를 준 것은 자신의 직분을 넘어섰기 때문이다. 추위에 떠는 것을 싫어하지 않을 사람은 없지만, 다른 사람의 직분을 침해한 폐해가 추위에 떠는 것보다 크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한비자의 이 이야기에 공감이 가는가. 효율성이 미덕인 현대 경쟁사회에서, 고리타분하게 내 일, 네 일을 따지는 것은 시대착오적이라는 생각이 들진 않는가? 조직 내에서 자신의 권한과 책임의 영역이 정해져 있는데, ‘효율성’ 때문이든, 아니면 위 사례처럼 CEO와의 친분관계 때문이든 다른 이의 업무 영역에까지 간섭한다면 어떤 나쁜 파급효과가 발생할 수 있을지 진지하게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A가 B의 고유업무 영역에 수시로 깊게 관여하는 상황을 생각해 보자. 첫째, A의 관여로 그 일의 결과가 좋게 되었을 때. A가 관여되었기에 A도 그 성과에 대한 칭찬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CEO가 A를 칭찬할 경우 A와 B는 어떤 마음이 들까?


우선 A는 ‘거 봐, 내 말이 맞잖아. B 업무분야이긴 하지만 내 판단이 더 옳았다구. 내가 아니었으면 이런 결과는 나오기 힘들었을 거야.’라는 오만함에 빠질 가능성이 있다. 한편 B의 마음은 이럴 것이다. ‘A의 도움 없이도 잘되었을 텐데. 다 된 밥상에 숟가락만 하나 얹어 놓고 온갖 유세를 떠는 꼴이라니. 그리고 사장님의 저 태도는 뭐지? A가 해야 할 일이나 잘하라고 하면 되지 저렇게 칭찬을 해 주시니 앞으로 A 저 친구는 더 날뛰겠구먼. 이거 원 더러워서 일할 맛이 나나?’


둘째, A의 관여로 그 일의 결과가 안 좋았을 때. A는 ‘내가 그렇게 도와줬는데 결국 B가 제대로 처리하지 못해 일이 틀어지고 말았어. 문제야 문제.’라면서 B 탓을 할 가능성이 크다. B는 어떻겠는가? ‘내가 잘하고 있는데 쓸데없이 A가 개입해서 감 놔라 대추 놔라 하는 바람에 일이 이렇게 되고 말았어.’라고 생각하지 않겠는가?


일의 결과가 좋지 않게 되면 관리자는 책임을 물을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이 상황은 좀 애매해 질 수 있다. 만약 A에게 책임을 물으려 한다면 A는 ‘이건 원래 B의 업무영역입니다. 저는 그냥 도와주려 했을 뿐입니다.’라고 반박할 것이고, B에게 책임을 물으려 한다면 ‘제 의견대로 했으면 잘되었을 겁니다. A가 간섭하는 바람에 일이 이렇게 되고 만 겁니다. 저는 억울합니다.’라고 반박할 것이다. 관리자로서는 잘못된 일에 대한 책임을 묻기도 아주 어려워진다.


이처럼 월권행위의 결과 일이 잘되든 잘못되든 조직 내부에서는 좋지 않은 기운이 확산될 가능성이 크다.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잘된 일은 내 탓, 잘못된 일은 남 탓’을 하는 독특한 계산법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충성심이 과하면 조직이 망가진다


한비자는 바로 이와 같은 인간의 불완전하면서도 자기중심적인 속성을 꿰뚫고 있었기에 군주는 모름지기 월권하는 신하에 대해 단호히 대처하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조직 내 간부들 사이에 암암리에 발생하는 ‘파워 게임’을 생각해 보자.



자신의 맡은 업무 이외 분야에 실질적으로 관여하고 그로 인해 군주로부터 인정받으려 하면서 상대적으로 다른 신하들과 차별성을 강조하는 권신(간부)들의 행태는 조직 내의 편 가르기를 조장할 수 있으며, 결국 조직 내부에서는 과정은 무시한 채 실적위주의 권력투쟁 양상이 발생할 수도 있다.


물론 최근에는 엄격하게 종적으로 그 권한의 범위를 확정하기보다는 모든 담당자가 협력하면서 상황에 따라 그 업무처리의 범위가 수시로 변화할 수도 있는 게릴라식 조직의 장점이 부각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이처럼 조직이 변칙적, 유기적으로 운용되기 위해서는 자기 직책에 대한 명확한 한계와 설정이 전제되어야만 한다. 원칙이 있어야 변칙이 제대로 운용될 수 있는 것이지, 조직 내부에서 마치 변칙이 원칙인 것처럼 받아들여진다면 득보다 실이 훨씬 클 것이다.


자신의 권한 외 부분에 대해 지속적으로 관여하는 임직원이 있을 경우, 관리자 혹은 CEO는 일정한 시점에 정확히 선을 긋고 필요하다면 엄중히 경고해야 한다. 지나친 충성심이 조직을 갉아 먹을 수 있음을 항상 유의해야 한다.


또한, 위와 같은 월권행위가 팽배해질 경우 간섭받는 자는 자신의 일에 대한 책임감이 떨어질 뿐만 아니라 자신의 존재가치를 느끼지 못하게 될 것이며, 간섭을 하는 자는 관리자 혹은 CEO가 묵인해 준다는 전제 하에 자신의 행위가 ‘충성’이라는 착각에 빠질 위험이 있다.


리더의 단호함이 늦게 표출될 경우, 나중에 이를 바로잡기란 힘들어 질 수 있음을 마땅히 경계해야 한다.


by 조우성 변호사

이 콘텐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