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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류일절? 안주일체? 이거 무슨 말이지?

아. 이게 그런 뜻이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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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직도 '일체' 대신에 '일절'을 쓰는 경우가 적지 않다. 출근길에서 만난 '일절' 표기

산길로 접어드는 출근길 어귀에 음식점에 식자재를 공급하는 가게가 하나 있다. 가게 바깥벽에 여기서 취급하는 품목을 선명하게 써 붙여 놓았는데, 거기 요즘에는 보기 드문 낱말 하나가 눈에 들어온다. ‘부산물 일절’과 ‘다대기 일절’.(‘다대기’는 일본어 ‘tata[叩]ki’에서 온 말이다.)


아직도 저 낱말이 쓰이는가, 고개를 갸웃하고 말았다. 그러나 그것은 저 습기 찬 6·70년대의 풍경과 정서를 고스란히 떠올려 주는 듯했다. 선술집이나 간이식당의 유리달린 미닫이문마다 빨간 페인트(‘뺑끼’라고 불러야 더 어울리는!)로 써 놓은 메뉴는 십중팔구가 ‘주류일절’, ‘안주일절’이었다.

아직도 '일절(一切)'이 쓰인다


그것은 과자 부스러기나 석유를 팔던 동네 가게에도 붙어 있었다. 시멘트벽에 세로쓰기로 휘갈겨 쓴 메뉴는 ‘안주’ 대신 ‘음료’만이 술집과 달랐을 뿐이었다. 아무도 그게 잘못인 줄 몰랐다. 낱말 뜻을 새기지는 못했어도 모두가 그게 ‘일체’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는 걸 미루어 짐작하고 있었던 시절이었다.

‘일체’ 대신 ‘일절’이 아무 의심 없이 쓰이던 시절에는 유난히 ‘휴계실’도 많았다. 고교 시절에 경주에 들를 때마다 우리는 심심찮게 나타나는 ‘휴계실’을 보면서 ‘휴게실’을 그렇게밖에 쓰지 못하는 고도 경주의 교양과 우리 시대의 무지를 성토하곤 했었다. 최소한 관광도시 경주는 좀 달라야 할 거 아니냐면서 말이다.


휴게실(소)이 ‘휴게실’로, ‘일절’이 ‘일체’로 바뀌는 변화는 어디서 왔을까. 이른바 근대화에 따른 국민소득의 증대와 대중교육의 확대, 여가 시간의 확대가 시민 일반의 언어 능력을 제고한 것일까. 그것은 한편으로는 한글 전용 시대의 성과이기도 했을 것이다.



'절(切)'은 '모두 체'로도 읽힌다


‘일절’과 ‘일체’가 헛갈리는 이유는 그게 모두 표준말이지만 쓰임새가 전혀 다르다는 데 있다. 한자 ‘절(切)’은 ‘모두 체’와 ‘끊을 절’ 두 가지로 읽힌다. 그러나 이 글자는 절개(切開), 절단(切斷), 절박(切迫), 절실(切實), 절친(切親), 적절(適切), 친절(親切), 품절(品切), 절차탁마(切磋琢磨), 절치부심(切齒腐心) 등과 같이 대부분 ‘절’로 읽힌다. ‘체’로 읽는 경우는 ‘일체(一切)’가 고작이다.


<표준국어대사전>에 보듯 ‘일체’는 ‘모든 것’(명사), ‘모든 것을 다’(부사)의 뜻으로 쓰인다. 반면에 ‘일절’은 ‘아주, 전혀, 절대로’의 뜻으로 사물을 부인하거나 금지할 때 쓰는 부사다. 당연히 ‘일절’ 뒤에는 부정어(아니하다, 말다 등)가 와서 호응관계를 이룬다.


☞ 그 사건의 일체를 책임지겠소.

☞ 음료 종류의 일체를 갖추다.

☞ 그는 담배를 일절 피우지 않습니다.

☞ 운전 중인 운전사와는 일절 대화를 나누지 말아야 합니다.

☞ 그 얘기는 일절 입 밖에 내지 마시오.


‘일체’와 ‘일절’은 명백히 다른 뜻이지만 다음 예처럼 두 낱말이 비슷한 뜻을 나타내는 문장에서 쓰이는 경우도 있다. 앞 문장의 일체는 ‘예외’를 꾸미는 관형어로 쓰였고, 뒷문장의 ‘일절’은 서술어를 꾸미는 부사어로 쓰여 같은 의미를 드러내는 것이다.


☞ 일체의 예외를 허용하지 않습니다.

☞ 예외를 일절 허용하지 않습니다.

출처▲ '주류일절'이 아직도 관행적으로 쓰이는 곳은 역시 여행업과 음식업 쪽인 듯하다.

▲ 인터넷 쇼핑몰에는 맞춤법에 어긋난 표기가 적지 않게 발견된다.

혹시 싶어서 인터넷에서 검색해 보았더니 아직도 ‘일체’가 쓰여야 할 자리에 ‘일절’이 쓰이는 경우가 더러 눈에 띈다. 여행사와 식당 안내문 따위인데, 하나같이 ‘주류일절’이라고 쓰고 있다. 진작 바꾸어야 하는 문안인데도 관성에 따라 쓰고 있는 것일 터이다.


바른 말글 쓰기의 가장 핵심적 전제는 바른 말글에 대한 모국어 사용자로서의 언어 정체성이다. 바르게 써야겠다는 생각과 바르게 쓰기 위해서 요구되는 수고로움을 기꺼이 감내하겠다는 의식 말이다. 그러나 아직도 ‘뜻만 통하면 되지, 뭘 그러느냐’고 반문하거나, ‘우리말은 너무 어렵다.’고 불평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얼마 전에 벌초를 앞두고 인터넷에서 벌초기 부품 하나를 둘러보다가 실소한 적이 있다. 비교적 값이 싼 상품이어서 신경을 덜 썼는가, 맞춤법에 어긋난 표기와 구절들이 적지 않아서다. 그런 실수가 걸러지지 않는 것은 역시 ‘뜻만 통하면 된다’는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이다.


며칠 전에는 아파트 관리사무소에 전화를 넣었다. 관리소장에게 한가위에 펼침막을 걸 때, 쓰는 문안에 ‘한가위 되세요.’와 같은 엉터리 인사말을 쓰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했더니 고맙다, 참고하겠다고 했다. 퇴근길에 관련 자료를 인쇄해서 가져다주었는데 글쎄, 조만간 걸릴 펼침막에 과연 제대로 된 인사말이 걸릴는지는 두고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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