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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애니메이션, 낯 뜨거운 표절의 역사

수많은 표절을 거슬러 올라가 보면 결국 태권V가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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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 국교정상화 반대 시위

지금도 크게 다르지 않지만, 1970년대 중반은 일본을 함부로 좋아할 수 없던 때였다. 일본은 북한 다음으로 나쁜 나라였고, 여론을 무시한 채 결정된 국교 정상화에 대한 앙금도 완전히 가라앉지 않고 있었다. 일본이 하는 일은 항상 비난의 대상이었고 그 누구도 일본이 좋다는 말을 대놓고 할 수 없었다.


하지만 이 시기에도 상대적으로 관대했던 '일제'가 있었다. 바로 TV 애니메이션이었다. 당시의 한국은 아동용 콘텐츠를 직접 만들 수 있는 능력이 없었기 때문에 수입 작품에 의존할 수 밖에 없었다. 서양의 콘텐츠보다는 같은 아시아권인 일본의 콘텐츠가 우리 정서에는 더 잘 들어맞았기 때문에, 자연스레 일본 만화가 더 많은 인기를 얻게 되었다.

마징가Z

그 중 아이들을 가장 매료시킨 것은 마징가 Z와 쇠돌이였다. 거대한 로봇의 머리에 탑승한 쇠돌이와 그가 조종하는 <마징가 Z>는 모든 어린이들의 마음을 사로잡았고 토요일 오후는 아이들이 가장 기다리는 시간이 되었다. 우리가 아직까지 알파벳 Z를 “제트”라고 읽는 것도 마징가 때문이다.


하지만 마징가는 일본의 로봇이었다. 주인공의 이름을 우리나라식으로 바꾸는 것만으로는 마징가가 일본 로봇이라는 걸 숨길 수 없었다. 아이들도 마징가가 일본 만화라는 사실을 곧 알아차렸다. 일본 것은 함부로 좋아할 수 없는 시대였기에 때문에 마징가가 좋으면서도 마음껏 좋아할 수 없는 가슴앓이가 시작되었다. 이 때 등장한 것이 <로보트 태권V>였다.

로보트 태권V

우리나라 과학자인 김박사가 만들었고 태권도를 할 줄 아는 로보트 태권V는 아이들에게 일종의 문화적 해방구였다. 우리나라 로봇이므로 마징가와 달리 얼마든지 좋아해도 상관없었다. 태권V는 등장과 동시에 마징가를 대체했으며 태권V의 주제가는 애국가 다음으로 유명한 노래가 되었다. 그런데 태권V에는 한 가지 문제가 있었다. 마징가Z와 지나치게 닮았다는 점이다.

지금까지도 이 디자인이 표절인지 아닌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많다. 하지만 당시에는 마징가Z 이외에 우리가 참고할 수 있는 로봇이랄 것이 거의 없었다. 또 영화의 상업적인 성공을 위해서라도 태권V는 마징가와 유사해야만 했을 것이다. 그러므로 여기까지는 개인적으로 표절이라기보다 모방이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싶다. 하지만 문제는 그 다음부터였다.


태권V가 큰 성공을 거두자 일본의 애니메이션들을 비슷하게 따라한 로봇 애니메이션과 캐릭터가 속속 등장하기 시작한 것이다. 대표적인 것이 <철인 007>과 <황금날개 123>이다. 이 때부터 우리나라 극장판 애니메이션의 일본 표절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철인 007>의 디자인은 일본 만화 <대공마룡 가이킹>과 <그랜다이져>를 합친 듯한 모습이다. 더 가관인 것은 이 로봇의 조종사가 일본 만화의 주인공인 독수리 5형제라는 점이다. <황금날개 123>은 일본 만화 <신조인간 캐산>과 <마그넷로보 가킹>의 표절이다.

이렇듯 우리나라 애니메이션들은 창작보다 표절에 더 많은 공을 들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큰 성공을 거두었다. 그러자 표절은 점점 더 심각해졌다.

<우주대장 애꾸눈>은 캡틴 퓨처와 하록 선장을 합친 캐릭터였고, <우주 흑기사>는 <기동전사 건담> 속의 악당 샤아와 같은 마스크를 쓴 주인공의 맨얼굴이 건담의 조종사 아무로라는 황당한 설정을 취하고 있었다.


1980년대부터는 일본에서 성공한 로봇들을 대놓고 베끼기 시작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스페이스 간담 V>다. 이 만화는 <초시공요새 마크로스>의 발키리 전투기와 똑같은 비행기를 그려 놓고 그것을 외계에서 온 로봇 캐릭터로 썼다. 외계에서 온 로봇이 지구의 전투기와 똑같이 생긴 것도 우습거니와 로보트 이름조차 간담이었던 것은 정말 부끄럽다. 하지만 아무도 이에 대한 책임을 묻지 않았다. 아이들이 볼 것은 그래도 된다는 인식이 팽배했다.

일본의 로봇을 최소한의 변형조차 하지 않은 한국 애니메이션의 흑역사

결국 곪을대로 곪은 상처가 터졌다. 1985년 겨울 <비디오레인저 007>이라는 제목의 극장판 애니메이션이 개봉되었다. 버젓이 국산 만화로 홍보된 이 작품은 사실 일본 애니메이션에 말 그대로 한국어 더빙만 입힌 것이었다. 관객들은 여지껏 한번도 목격한 적이 없는 없는 완성도에 열광했지만 감독은 곧 구속되었다.

그 이후 우리는 변변한 국산 로봇 애니메이션을 보지 못했다. 비디오 대여점이 늘어나면서 일본의 TV 애니메이션을 바로 볼 수 있게 되자 국산 애니메이션 시장은 쇠퇴했다. 어린이들은 자신들이 좋아했던 그 로봇이 어른들의 더러운 장사 속 때문에 만들어진 표절이라는 것을 다 알아버렸다.


일본의 로봇 애니메이션들은 마징가에서 건담으로, 건담에서 에반게리온으로 진화하면서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전 인류적으로 사랑받고 있는데 우리는 왜 아직도 태권V 타령만 되풀이하고 있는지 이제는 좀 진지하게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의도한 일이든 아니든 간에 우리에게 어마어마한 기쁨을 주었던 그 로봇은 표절된 것이었다. 잘못 끼워진 첫 단추인 셈이다. 모든 로봇 애니메이션의 표절을 추적하면 그 원점에는 항상 태권V가 있다. 태권V 이후 수많은 표절을 거듭하며 진화했기에 우리만의 오리지널이 없었다.

* 외부 필진 북클라우드 님의 기고 글입니다.


** 2015년 11월 13일 직썰에 게재된 글을 재발행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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