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재현장의 기억, 생명부지 소방관들이 끌어안고 통곡한 이유

조회수 2020. 5. 24. 11:0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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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조대복 입고 있는 게 이렇게 부끄러울 수가 없어.."

PD들에게 감정을 드러내는 것은 일종의 금기다. 객관적인 시선을 항상 유지하고 취재 대상의 감정에 휩쓸리지 않아야 하며, “PD는 사람들을 감동시켜야 하는 법이지, 자신이 감동해서는 안되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2001년 3월 4일 일어났던 한 사건을 취재하면서 나의 자제력에는 커다란 구멍이 났고 무차별로 그 감정을 드러내고 쏟아붓고 말았다.

SBS 심장이 뛴다 캡처

발단은 서울 홍제동의 화재 현장이었다. 오래된 목조 건물에서 난 불은 순식간에 집 전체를 집어삼켰다. 다행히 집 주인은 밖으로 피해 있었지만 그는 발을 동동 구르며 자식이 집 안에 있다고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화재 현장에 사람이 남아 있다는 말에 소방관 여섯 명은 일제히 화마가 펄펄 뛰고 있는 집안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 순간 가옥은 기괴한 소리를 내며 무너져 내렸다. 6명이나 되는 소방관들이 불구덩이에 묻혀 버렸던 끔찍한 사고가 일어난 것이다.


그분들의 영구조차 한 군데 모을 마땅한 장소가 없어서 빈소는 두 분씩 두 분씩 따로 따로 모셔지고 있었다. 내가 찾은 곳은 고 박동규 소방장과 다른 한 분의 빈소였다. 고 박동규 소방장님의 영정 앞에는 아직도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모르겠다는 듯 멍하게 앉아 있는 아들과 딸, 그리고 눈이 퉁퉁 부어버린 아내, 그리고 또 한 명의 남자가 있었다. 그는 고인의 동생으로 역시 다른 소방서의 소방관이었다.

출처: SBS 심장이 뛴다 캡처

이어지는 문상, 아주머니들의 통곡, 마치 소처럼 울어대던 중년의 사내들의 행렬 앞에서도 나는 용케 인내심을 버리지 않았다. 그렇게 한참을 보낸 후 먹먹해진 마음도 달랠 겸 바람이라도 쐬자고 영안실을 나왔을 때 고인의 동생과 주황색 옷의 구조대원 한 명이 끌어안고 통곡하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구조대복 입고 있는 게 이렇게 부끄러울 수가 없어. 내 식구 하나 못 구하는 게 무슨 구조대라고....... "

식구라는 말을 쓰기에 또 소방관 친척이 있나 했는데 그건 아니었다. 그저 같은 구조대로서, 함께 불길 헤치고 남의 목숨에 자신의 목숨 거는 일에 익숙한 동료로서, 까닭 없는 죄책감과 슬픔에 사로잡힌 생면부지의 구조대원이었다. 그는 눈물 콧물 모든 것을 다 흘리면서 이미 흘릴 것이 남아 있지 않은 고인의 동생을 붙잡고서 그는 울부짖었다.

"그렇다고 혼자 살겠다고 도망갈 수는 없는 거 아냐. (고인들도) 어쩔 수 없었을 거야. 그게 우리 아니야. 그래야 되는 게 우리 아니야."

그때 그이가 토해냈던 단어의 합은 고인의 가족에 대한 위로였을까 스스로의 처지에 대한 푸념이었을까 아니면 그들은 옳은 일을 했고 나 또한 그러리라는 다짐이었을까. 그는 그 말을 반복하면서 울었다.

“어쩔 수 없었을 거야. 그게 우리잖아.”

절대 냉정을 주문처럼 되뇌던 나도 이즈음에서는 현격하게 허물어질 조짐을 보였다. 아직 끌어안은 팔을 풀지 않던 두 소방관을 놔두고서 총총히 영안실로 들어왔을 때 한 젊은 소방관이 눈이 벌겋게 된 채 영정 앞에 서 있는 것이 보였습니다. 분향을 끝내고 인사를 마치고도 그는 움직이지 않고 영정을 바라보고만 있었다. 이윽고 그의 입에서 갑자기 격한 말이 튀어나왔다.

"멍청이......."

무슨 말이냐고 묻는 내 자신이 밉살스럽기도 했지만 직업은 직업, 나는 그를 붙잡고 무슨 뜻이냐고 물었다. 그는 물기 가득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자기 목숨 구하고 남을 구해야지...... 자기 목숨 내놓고 남 살리면 뭐예요. 바보예요. 바보. 의미가 없어요. 무슨 의미가 있어."

한참을 그러고 섰던 소방관이 눈물범벅이 된 얼굴을 수습조차 하지 않은채 영안실을 나서는 것이 눈에 띄었다. 인사치레로 집에 가십니까? 라고 물으니 그는 신발끈을 묶으며 대답해 왔다. (그때 시간이 저녁 7시가 넘어 있었다)

"서(署)에 갑니다."

"오늘 비번 아니세요?"

"비번인데..... 난 자리가..... 많잖아요. 그래서 오늘 근무해야 돼요."

난 자리. 불길이 일렁이고 언제 무너져 내릴지 모르는 낡은 살림집 안에 사람이 남아 있다는 (그러나 불을 낸 당사자이자 소방관 6명을 안으로 들어가게 만들었던 이는 벌써 빠져나와 있었죠) 말에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스스로를 들이밀었던 사람들의 자리였다. 그리고 그 '바보'들을 탓하던 젊은 소방관은 또 다시 그 바보들의 난 자리를 채우러 가고 있었다. 자꾸만 뒤돌아보면서 발걸음을 옮기던 또 하나의 '바보'의 뒷모습을 응시하다가 그만 나는 그토록 막으려고 애썼던 눈물의 봇물을 터뜨리고 말았다.

연기를 마시고 고통스러워하는 소방관

소방차 출동을 가로막는 골목길 주차 차량을 불러 내면 곤한 잠 깨웠다고 멱살을 잡는 일도 흔하다는 세상, 목숨 걸고 일하는 직업이기 때문에 만인의 친구이자 서포터, 아니 또 하나의 가족이라고까지 주장했던 생명보험사로부터도 외면당했던 사람들의 떠남과 그 자리를 메우는 사람들.. 그 바보들의 행진 앞에서 나는 촬영 현장에서 눈물이나 질질 짜대는 한심한 PD로 전락했다. 


홍제동의 불구덩이에 뛰어들었던 바보들을 추념하면서, 그리고 그들을 바보라고 욕하면서도 그들의 난 자리를 메우기 위해 구조대복을 입었던 젊은 소방관을 기억하면서, 그래도 다 도망갈 수는 없는 거 아니냐며 절규하던 중년의 주황색 사나이를 생생히 되씹게 된다. 그들은 바보들이었다. 정말이지 한심하지만 그만큼 고마웠던 바보들이었다. 


그분들 다치면 공상처리 돼서 전액 국가 치료비를 부담할 것 같지만 의료보험 적용되는 것만 무료일 뿐, 특진비나 기타 비용은 몽땅 환자 부담이다. 국가 부담은 절반도 안될 때가 많다고 한다. 화재 진압용 장갑을 개인이 아마존에서 사고 있다니 더 이상 할 말도 없지만. 


서부소방서에 가면 아래 사진에 나오는 부조가걸려 있다고 한다. 6명의 영웅들을 새긴 이 동판. 나라가 만든 거 아니다. 유가족들이 자기들 돈 내서 만든 거다..... 그런 판에 '소방방재청 해체'와 격하 얘기가 나온다. 저 부조 앞에 참 부끄럽다.

* 외부 필진 김형민 님의 기고 글입니다.


** 2014년 5월 30일 직썰에 게재된 글을 재발행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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