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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에서 차별받던 '워킹맘', 그에게 닥친 최악의 비극

조회수 2020. 5. 6. 11:56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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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나 혼자 하는 거 같지..?"
“왜 나 혼자 하는 거 같지? 배란일도 내가 챙겨, 내 배에 주사도 내가 놓아. 시술할 때마다 휴가 내느라 회사 눈치도 내가 봐. 그러다 겨우 임신해서 20시간 진통해서 낳았잖아. 그런데 지금도 나만 종종거리는 거 같지?”

한정은(한혜진)은 결혼 10년 만에 어렵게 딸을 낳은 결혼 14년 차 워킹맘이다. 남편 우철(김태훈)은 클래식 라디오 PD이다. 다시 말해서 정은과 우철은 맞벌이 부부다. 함께 경제 전선에 뛰어든 부부가 육아까지 감당하는 건 현실적으로 정말 어려운 일이다. 결국 정은은 딸 유나(정서연)를 친정엄마에게 부탁해야 했다. 딸을 위해 시골에서 올라온 최순옥(김미경)은 손녀를 돌봐주며 시간을 보냈다.


장모님이 상경하자마자 홀가분하게 오후 9시 코너를 맡아버린 우철과 달리 정은은 매일 눈칫밥 신세다. 회사는 임신과 출산, 육아해야 하는 여성에게 비협조적이다. 대놓고 모욕을 주기도 한다. 직장 상사는 회식 때마다 일찍 자리를 뜨는 정은에게 면박을 주면서 “’경단녀’(경력단절 여성)든 뭐든 직장 생활은 다 자기 의지로 하는 거야”라고 비아냥댔다. 그런데도 정은은 “죄송합니다”라고 고개를 숙여야 했다. 


하필 그날 끔찍한 일이 벌어졌다. 회식 자리에서 빠져나온 정은은 택시를 잡아타고 급히 집으로 향했다. 엄마에게 죄송한 마음이 가득했다. 그런데 전화 저편에서 들려온 엄마의 기침 소리가 걸려 감기약을 사서 들어가던 중 앰뷸런스가 아파트 단지로 들어오는 게 아닌가. 정은은 엄습해 오는 불길한 기운을 애써 떨치려 했다. 자신과는 관련 없는 일일 거라 여겼다. 그러나 그 불행은 정은의 것이었다. 


경찰은 아이가 아파트 창에서 떨어져 죽었다고 설명했다. 엄마는 어디에 있었던 걸까. 감기약을 먹고 깜빡 잠에 빠진 사이에 벌어진 일이라고 했다. (2회 예고에는 엄마가 잠이 든 게 아니라 잠시 외출을 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가족은 산산조각이 났다. 정은은 무엇으로도 설명할 수 없는 상실감에 빠졌다. 우철도 괴로운 나날을 보냈다. 엄마 순옥은 극도의 죄책감에 시달렸다.

tvN 2부작 드라마 <외출>은 아이를 잃은 가족들의 고통을 정면으로 다루고 있다. 또, 그날의 숨겨진 진실에 관해서도 이야기하고 있다. 한편, <외출>은 현실적인 문제를 지적하고 있다. 바로 노동시장에서 여성들이 겪고 있는 성차별이다. 정은이 겪어야 했던 비극은 친정엄마의 부주의(혹은 잘못)로 일어난 일이지만, 넓게 보면 우리 사회에서 워킹맘이 겪는 곤란, 육아에 대한 사회적 시스템의 부재와 밀접히 관련돼 있다.


정은은 꿈에 그리던 아이가 생겼음에도 마냥 기뻐할 수 없었다. 육아라는 현실적인 문제에 부닥쳤기 때문이다. 여전히 육아는 여성의 몫이라는 차별적 시선이 강하게 자리 잡고 있고, 그 때문에 여성들은 어쩔 수 없이 회사를 그만두거나 일과 육아를 모두 완벽히 해내는 ‘슈퍼우먼’이 돼야 했다. 한편, 회사를 그만두면 경단녀가 돼 재취업을 하늘에 별 따기처럼 어려워진다. 그래서 정은은 친정엄마에게 도움을 요청할 수밖에 없었다.

“사실 이 프로그램(경력단절여성 재취업 프로그램)이 저희 입장에선 좀 그렇거든요. 정부에서 시키니까 하는 거지, 뭐. 솔직히 애 핑계로 한번 직장 그만뒀던 사람이 언제 또 애 핑계로 그만둘지 압니까. 물론 제가 육아의 숭고함을 폄하하자는 건 아니지만, 저희 입장에선 리스크가 좀 있다고 보는 거죠.”

과연 드라마만의 이야기일까. 서울시에 따르면 지난 5년간 각종 전문기관에 접수된 출산 육아 관련 성차별 상담 건수가 8,000건을 넘어섰다고 한다. 엠브레인이 실시한 ‘2017 직장인 여성 자녀 출산 및 육아 관련 인식 조사’를 살펴보면 ‘현재 회사에 출산 및 양육 배려하는 분위기’가 ‘조성돼 있지 않은 편’이라고 응답이 37.6%로 나타났다. (조성돼 있다는 응답은 27.6%)

이런 분위기 속에서 직장인 여성이 육아 휴직 등의 제도를 사용한다면 어떻게 될까? 육아휴직은 남녀고용평등법에 근거한 기본적 권리이지만, 현실에서는 불이익의 사유가 된다. 응답자들은 ‘기존 부서에서 다른 부서로의 재배치’(20.5%), ‘승진에 불리’(18.8%), ‘기존 업무에서 다른 업무로의 재배치’(17.9%), ‘중요 업무에서의 배제’(16.2%) 등의 차별을 겪었다고 응답했다.


사정이 이러하니 울며 겨자 먹기로 아예 퇴직을 선택하는 경우도 많았다. 회사 내에서 차별적 시선을 견디는 게 쉬운 일은 아니기 때문이다. KB금융지주 경영연구소의 ‘2018 한국의 워킹맘 보고서’에 따르면, 현재 전업주부인 30~40대 여성의 경우 마지막 직장에서 퇴사한 이유로 ‘자녀 임신 및 출산’(35.7%)이 1위를 차지했고, ‘결혼’(20%), ‘육아’(15.1%)가 뒤를 이었다.  


<외출>은 비극적인 사고를 겪은 가족들이 겪는 고통과 치유의 과정을 보여주는 한편, 회사 내에서 여성들이 겪고 있는 차별에 대해서도 집중적으로 조명하고 있다. 정은을 비롯해 경력단절 프로젝트로 재입사한 계약직 사원 신소회(윤소희), 아이를 회사 어린이집에 보내고 있는 워킹맘 오미주(김정화) 등의 이야기도 울림을 주고 있다. 한혜진의 성숙함 감정 연기와 절절한 눈물 연기가 돋보이는 <외출>의 날카로운 문제제기가 시의적절하고 예리하다.

* 외부 필진 버락킴너의길을가라 님의 기고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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