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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썰

김생민의 힘찬 날갯짓? 누가 가해자에게 감정이입을 요구하나

데일리안 ‘방송인 김생민이 다시 힘찬 날갯짓을 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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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KBS2

‘방송인 김생민(46)이 다시 힘찬 날갯짓을 할 수 있을까?’

4월 29일 오전 포털사이트 다음(DAUM) 연예면의 가장 뜨거웠던 기사는 김생민에 대한 것이었다. 기자는 질문의 형식을 취했지만, 실상 그건 기자의 바람처럼 읽혔다. 기자는 “김생민, 용서받지 못한 자로 남을까”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김생민의 힘찬 날갯짓을 염원했다. 물론, 누군가 개인적으로 그를 응원하는 것까지 말릴 수는 없다. 그러나 기자가 공적인 기사를 통해 잘못을 저지른 가해자의 처지를 두둔하는 건 다른 문제이다. 성추행 의혹이 불거질 당시 김생민은 이를 인정하고 모든 활동을 중단했다.


오해일까? 기사의 내용을 조금 더 들여다보기로 하자. 기자는 “김생민이 ‘미투’ 가해자로 몰려 방송계를 떠”났다고 쓰고 있다. 그런데 ‘가해자’와 ‘몰리다’는 말은 어울리지 않는다. 마치 피해자가 의도성을 갖고 가해자를 압박했다는 의미처럼 읽히기 때문이다. ‘지목돼’ 정도면 충분할 텐데, ‘몰려’라고 쓴 걸 보면 기자가 김생민에게 감정이입을 하고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또, 기사는 “그(김생민)는 여전히 자신이 있어야 할 곳, 자신의 존재 가치를 증명할 수 있는 방송계로 돌아오지 못하고 있다”고 쓰고 있다. 기자는 김생민이 있어야 할 곳을 이미 정해두고 있다. 그리고 ‘존재 가치를 증명’하려면 방송계로 돌아와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그러면서 “긴 자숙 시간을 보냈지만, 대중들은 좀처럼 그를 용서하지 않고 있다”며 아쉬움을 드러내기도 한다.


솔직히 놀랍지 않았다. 생각보다 이런 류의 기사를 자주 보고 있기 때문이다. ‘억울한(?) 가해자의 입장’에서 쓰이거나 ‘가해자의 안타까운(?) 처지’를 걱정하거나, ‘가해자에게 드라마틱한(?) 서사를 부여’하는 기사 말이다.

출처ⓒ연합뉴스

최근에 ‘가해자’를 주인공으로 만들어 버렸던 대표적인 사건은 ‘텔레그램 n번방 성착취 사건’일 것이다. 여성 성착취물을 제작·배포한 ‘박사방’ 운영자 조주빈(24)은 검찰로 송치되는 과정에서 스스로를 ‘악마’를 지칭했다. ‘악마의 삶을 멈추게 해줘 고맙다’는 그의 말은 씁쓸하게도 하나의 서사가 돼 세상을 떠돌았다. 도대체 누가 왜 조주빈의 손에 마이크를 쥐여줬던 말인가.

“범죄자에게 서사를 부여하지 마십시오. 범죄자에게 마이크를 쥐여주지 마십시오.”

언론은 늘상 그러했던 것처럼, 가해자의 과거 행적을 샅샅이 파헤쳤다. 그리고 ‘선량한 청년’, ‘모범생’ 따위의 표현을 가져와 대중을 기만하고 현혹했다. 전혀 궁금하지 않은 가해자의 과거였다. 이에 가수 김윤아는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가해자에게 서사를 부여하는 짓을 멈추라고 일갈했다. 물론 언론은 그 뒤에도 (의도적인) 헛발질을 계속하며 트래픽 장사에 열을 올렸다.


가해자의 서사가 강조되면 피해자는 사라지게 된다. 조주빈이 ‘악마’가 되면 그의 행위는 악마로서 저지른 일이 된다. 사람들은 그가 무엇 때문에 악마가 됐는지에 관심을 쏟는다. 피해자는 그 과정에서 지워진다. 피해자의 상처와 고통, 산산이 무너진 삶조차 그저 가해자가 저지른 범행 속의 ‘장치’처럼 소비되는 것이다.

출처ⓒKBS2

김생민의 힘찬 날갯짓을 염원하는 기사도 마찬가지다. 그가 ‘미투’ 이전에 얼마나 대단한 전성기를 누렸는지, ‘미투’ 이후에 팟캐스트 방송을 하며 어떤 시간을 보냈는지 대중이 왜 알아야 한단 말인가. 김생민의 자숙(?)에 대해 언론이 나서서 알려야 할 이유가 있을까? 가해자에게 서사를 부여하고, 가해자에게 감정이입을 하는 이들의 ‘감수성’이 놀랍기만 하다.


묻고 싶다. 당신은 가해자의 고통과 처지를 이해하려고 노력한 만큼 피해자에게도 그리했는가. 피해자에게 얼마나 많은 감정을 쏟았는가. 공감하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가. 혹 가해자로부터 상처를 받아 오랜 세월 고통받았을 그들을 위해 한 글자라도 진심으로 쓴 적이 있는가? 


김생민이 얼마나 성실했는지, 김생민이 얼마나 착한 사람이었는지, 그가 얼마나 긴 무명 생활 끝에 정상에 올랐는지 말하지 말라. 김생민으로부터 성추행을 당한 피해자는 그토록 하고 싶었던 방송일을 그만둬야 했다. 또, 사과를 받기까지 10년이라는 긴 세월이 필요했다. 그것도 미투가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일이었다.

* 외부 필진 버락킴너의길을가라 님의 기고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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