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술한 사기에도 고학력자들이 넘어가는 이유

조회수 2020. 4. 25. 13:3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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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기의 기술: 누가 어떻게 사기에 걸려드는가?

사기는 누가 어떻게 당하는 것일까? 사기에 관한 두 가지 편견은 첫째, 똑똑하지 못한 사람들이 속아 넘어간다는 것과 둘째, 사기는 사람들을 속이고 꼬여서 생각을 바꾸게 만든다는 것이다. 일단 두 가지 다 틀렸다.

출처: ⓒcreative commons images

사기에선 지능의 높고 낮음이 예외가 되지 못한다. 사기 중에선 이중, 삼중의 함정을 정교하게 파서 속아 넘어갈 수밖에 없게 만드는 것도 있다. 이성과 냉철함, 의구심의 영역은 심리학자 대니얼 카너만이 분류한 시스템 2에 해당한다. 시스템 2는 막대한 정신적 에너지를 소모하기에 대부분의 시간은 자발적 통제 없이 빠르게 반응하는 시스템 1의 상태로 활동한다. 그렇기에 작정하고 파놓은 함정은 대부분 벗어나기 힘들다.


그런데 그 방법이 허술한 사기임에도 넘어가는 사람들은 많다. 오히려 특정인을 대상으로 한 정교한 사기는 그 준비에 비해 수익성이 낮아서 대부분 피해들은 이 허술한 사기에서 발생한다. 그 방법을 알고 보면 너무나도 허술하기에 대부분 여기에 속아 넘어가는 것을 지능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출처: ⓒ뉴욕매거진
2009년 3월 2일자 뉴욕매거진 표지에 등장한 '악당' 메이도프.

그러나 이러한 피해에서 고학력, 고지능자들도 예외가 될 수 없다. 미국 역사상 최악의 사기꾼으로 꼽히는 버나드 메이도프*의 희생자들이 고학력 엘리트임을 생각해보라. 더군다나 메이도프의 사기 기법은 가장 흔해 빠진 폰지 사기*(폰지 사기란 용어가 대중화되기 전엔 피라미드 사기란 방식으로 알려져 있었다)였다.

*나스닥증권거래소 위원장을 지낸 인물로 역대 최대 규모의 폰지 사기 주동자다. 수천 명의 투자자들에게 650억 달러에 이르는 돈을 폰지 사기했다는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았다. 피해자 중에는 영화감독 스티븐 스필버그와 노벨평화상 수상자인 엘리 위젤의 ‘인류를 위한 재단’ 프로야구팀 뉴욕매츠 전 구단주, 상하원 주요 정치인, 영국 HSBC 등 세계적 금융회사들이 망라돼 있었다.

*'찰스 폰지(Ponzi)가 1920년대 미국 플로리다에서 일으킨 사기극에서 유래한 다단계 금융 사기로 전문용어로는 '폰지 게임'이라 한다. 뒤에 투자한 사람의 투자금으로 앞에 투자한 사람에게 이익금을 주고, 자신이 일부를 착복하는 금융 사기 수법을 뜻한다.

그렇다면 사기는 사람들을 속여서 생각을 바꾸게 만드는 것일까? 물론 그런 경우가 없진 않지만 일반적이지는 않다. 이는 사람들을 설득하려 해본 사람이라면 잘 알 것이다. 타인의 생각을 바꾸게 만든다는 것은 매우 매우 매우 힘든 일이다. 어쩌면 이 때문에 사기가 매우 대단한 기술이라 생각하는 것일 수도 있겠다.


사람들의 생각과 고정관념이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매우 굳건하고 무너지지 않는 것이라서 이것을 무너뜨리기 위해서는 많은 노력이 필요하고 이는 사기의 수익성을 떨어뜨린다. 따라서 이보다 좀 더 쉬우면서도 수익성이 높은 방법이 더 선호될 수밖에 없다. 그렇기에 적어도 내가 본 바로 사기의 가장 일반적인 방법은 바로 사람들에게 보고 싶은 것을 보여주면서 욕망을 드러내게 만드는 것이다. 


사람의 생각과 마음을 바꾸는 것은 매우 힘들어도 사람들이 보고 싶은 것을 보여주고 믿고 싶은 것을 더 강하게 믿게 만들기는 쉽다. 사람들이 판별하는 옳고 그름은 실제의 옳고 그름과는 상관없이 자신의 생각과 얼마나 부합하느냐로 옳고 그름을 판별한다. 그래서 자신의 생각이나 마음과 다른 경우라면 촉각을 곤두세우며 흠결을 찾거나 일단 먼저 부정하려 들지만 같은 경우나 비슷하다면 일단 받아들이고 좋은 의견이라 생각하는 것이다. 내가 이를 또 한 번 절실하게 느낀 것이 2개월 전에 올라온 아래 링크 글을 읽어보고 나서다. 

- 스팀잇 : 대한민국 최악의 해 - 자산시장 붕괴를 예측한다

이에 대해서는 2개월 전에 페북을 통해 코멘트를 한 적이 있다(링크). 해당 링크 글은 공포팔이를 혐오한다면서 정작 본인이 공포팔이를 하고 있으며, 전망이라고 내놓은 것은 형편이 없다. 전망은 언제나 틀릴 수 있는 만큼 그 로직이 얼마나 치밀하느냐로 그 전망 자체를 평가하는데 이 글은 그 점에서 지적해야 할 부분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근거라고 링크를 걸어놓은 글은 그냥 아무 의미 없는 링크에 불과하다. 전형적인 옛날 아고라식 글이다.


긴 글이지만 요약하자면 이러하다.

1) 분위기가 심상치 않습니다.

2) 금융위기 때 돈 풀었던 건 헛짓거리입니다. 대공황 때도 전쟁으로 위기를 해소했지 않습니까?

3) 그러므로 10년 전보다 더 큰 위기가 올 것입니다.

위의 글에 대한 반박은 페친 힝고마스터님의 글로 대체하고자 한다.

- 스팀잇 : 공포마케팅에 속지 않는 법 : 시장의 위기가 곧 시스템의 위기는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사람이 댓글에서 찬양을 해대며 대단한 통찰력이라는 말을 늘어놓고 있다. 저 내용에 옳다고 할 만한 것이 하나도 없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찬양하는 것은 스팀잇 유저들이 다들 그런 쪽으로 믿고 싶어한 사람들이 매우 몰려 있던 곳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실제로 옳고 그름과 관계없이 자기 생각과 부합하므로, 자신이 생각만 했던 것을 제대로 설명해줬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신뢰를 부여한다. 그리고 이러한 성향은 단순히 스팀잇 유저 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 그런 속성을 가지고 있다.


사기는 바로 이 틈을 비집고 들어간다. 물론 저 글 자체는 사기가 아니지만 사기의 메커니즘과 완벽히 같다. 사람들이 원하는 바와 보고 싶은 바를 보여주고 거기서 이득을 취한다는 점에서 말이다. 


또한 사기는 언제나 피해자에게 욕망을 투영하게 만든다. 바로 이 점이 아무리 똑똑한 사람이라 하더라도 사기의 피해자에서 예외가 될 수 없는 이유다. 우리는 인간으로 태어난 이상 아무리 귀하든 천하든, 부유하든 가난하든, 많이 배우든 못 배우든 모두 욕망의 노예이기 때문이다. 욕망을 자극하고 믿고 싶은 대로 믿게 내버려 두는 것이 사기의 속성이기에 누구나 먹잇감이 될 수밖에 없다.

출처: ⓒ채널A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청담동 주식부자' 이희진 유사투자자문 사기사건.

예전에 한참 문제가 많았던 유사투자자문사 사기 건이나 다른 모든 사기를 생각해보라. 그리고 근래에 새로운 문제로 떠오른 가짜 뉴스를 생각해보라. 사람의 욕망과 공포를 자극하고 사람들이 믿고 싶은 대로 더 강하게 믿게 만들며 그 와중에 이익을 편취한다. 사기란 사람을 속이는 것일까? 그런 점에서 볼 때 사람을 속이는 것은 아니라고 볼 수 있다. 그저 속고 싶은 사람을 속게 만들도록 하며 그것을 이용하는 것뿐이다.


그런 점에서 누구나 사기 피해자가 될 수 있다. 이것을 막기 위해선 언제든 자신이 믿는 바를 무너뜨릴 수 있어야 하며 그로 인해 자신의 세계관이 완전히 무너지는 것도 감내할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은 정말로 초월적인 신적 존재가 아닌 이상에야 무리라고 할 수 있다. 우리는 각자가 구축한 각자의 세계관 내에서 내적 평화를 누리며 사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분명히 말하지만 나는 사기가 나쁘지 않다고 이야기하는 게 아니다. 사기는 분명히 나쁘다. 그러나 이것은 단지 나쁜 사기꾼과 순진한 피해자의 구도로 벌어지는 일만은 아니란 것이다. 우리는 때로는 완벽히 틀린 것이라도 단지 내가 그렇게 믿고 싶다는 이유로 그것을 옳은 것이라 믿고 살기도 한다. 내 생각이 무조건 옳은 것이라고 보긴 어렵다. 때로는 자기 자신의 앎조차 의심해볼 필요가 있다. 그것이 비록 쉽지 않은 일이라 하더라도 말이다.

* 외부 필진 김바비 님의 기고 글입니다.

** 2018년 4월 25일 직썰 글을 재발행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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