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 일병 사건' 6년 후.. '군대는 답 없다' 말 나오는 이유

조회수 2020. 4. 26. 13:3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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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방도, 관리도, 사후 대처에도 실패한 육군

2014년 4월 7일, 영내 부조리와 가혹 행위로 인한 일명 ‘윤 일병 사건’이 발생했다. 그로부터 6년이 지난 2020년 4월 7일 청와대 국민청원에 올라온 한 청원은 아직도 군의 갈 길이 멀다는 가슴 아픈 진실을 외치고 있다. 2019년 1월 28일 현역 입대 후 국군지휘통제사령부 제5 정보통신단 본부 소속 정보통신운용병 보직을 맡았던 조 일병은 같은 해 7월 7일, 휴가 중 극단적 선택을 했다. 군의 부실 수사를 비판하며 제대로 된 재조사를 받기 위해 9개월 만에 청원 글을 올린 조 일병의 어머니는 “너무 마음이 아파서 사건자료를 들여보지도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4월 22일 현재, 16,000여 명이 조 일병 어머니의 청와대 국민청원에 동의했다.


육군 본부에서 발송한 ‘19-24회 육군 보통전공사상(사망) 심사 결과 안내’ 문서에 따르면 조 일병은 “군 생활에 대한 단조로움과 대인관계 단절 등에 대한 스트레스 및 개인적 취약성이 악화되어” 사망에 이르렀다. “직무수행 또는 교육훈련 등 공무와 상당한 인과관계가 있는 사유”로 인한 순직이 아닌 일반사망으로 인정된 결과 조 일병은 국립묘지에 안치되지도 못했다. 그러나 조 일병의 법정 대리를 맡은 김정민 변호사와 지인들의 증언을 종합했을 때 이 결론은 군의 책임을 감추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군은 조 일병에게 근무와 휴식 여건을 보장하지 못했고, 부적응 및 부조리를 관리하지도 못했으며, 사건을 명확히 규명하고 해결하려는 의지도 보여주지 않았다.

출처: ⓒ청와대 국민청원

예방도, 관리도, 사후 대처에도 실패한 육군

우선 군은 사건을 예방할 수 있는 시스템을 제대로 운용하지 않았다. 현재 군은 정기적으로 병사들의 스트레스 정도와 대인관계를 확인하기 위한 심리검사를 실시하고, 위험이 감지된 인원에 대해서는 면담을 시행한 후 필요한 조치를 하는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김 변호사에 따르면 조 일병의 2019. 3. 25. ‘과학적 식별 도구진단’에서는 잠재적 스트레스가 식별되었고, 2019. 6. 12. ‘관계유형 검사’에서는 대인관계 어려움이 식별되었다. 그러나 소속부대는 신병의 경우 대대장급 지휘관이 직접 확인하는 것이 원칙임에도 불구하고, 첫 번째 검사 결과에 대해 신병이니 당연하다며 면담 등의 조치를 하지 않았다. 또한, 조 일병의 대학교 친구인 정환철 씨에 따르면 조 일병은 지인들에게 부대 사람들과 대화가 잘 통하지 않는다며 어려움을 토로한 바 있는데, 소속 부대는 두 번째 검사 결과에 대해서도 추가적인 조치를 하지 않았다.


병력 관리 측면에서도 문제가 심각했다. 부대원이 9명인데도 ‘어찌 된 일인지’ 당직 근무에 투입 가능한 인원은 7명밖에 없었고, 조 일병은 일주일에 당직을 3회나 들어가기도 했다. 특히 5월 27일부터 6월 6일까지 11일간 다섯 차례나 당직 근무에 투입된 정황도 있다. 그러나 군은 당직 근무 기록을 조사 중 확인하지 않았다. 4월 초 9사단에서 복무하다 전역한 이성주 씨는 조 일병의 근무 투입 빈도가 이해할 수 없는 수준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당직 근무에 들어가면 오후 다섯 시부터 다음날 오전 8시까지 상황실에서 밤을 새우며 부대 내 야간 상황을 관리하기 때문에 스트레스가 극심하다. 그래서 병사 한 명당 많아야 1달에 5번 정도, 평균적으로 1달에 3차례 정도만 당직근무에 투입된다”면서 조 일병의 과도한 당직 근무 투입 횟수에 의문을 표했다. 


마지막으로 군은 사건에 대응하려는 의지조차 보이지 않았다. 조 일병이 휴가 중 사망한 관계로 조사는 수도방위사령부(이하 수방사) 헌병대에서 담당했는데, 김 변호사는 수방사 헌병대와 소속대인 제5정보통신단 간의 협조가 원활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특히 조사자료에 포함되었던 조 일병의 일기장에 근무시간이 지난 후에 부여된 갑작스러운 작업 및 부사관에 의한 내리갈굼의 정황과 부조리 가해자로 추정되는 특정 선임병의 이름이 등장했음에도 수방사는 관련 내용을 조사하지 않았다. 군의 ‘변사 사건 기록’이 부족하다고 느낀 유족들이 재심의를 요청했고, 국방부 산하 중앙전공사망 심사위원회는 군의 최초 조사가 미흡하다고 판단했다.

출처: ⓒ국방부

작동하지 않는 시스템의 결과: 예견된 비극

현역으로 복무했던 다른 병사들은 조 일병이 겪은 일들이 결코 특수하거나 우연적인 경우가 아니며, 군에 입대한 사람이라면 누구든 피해자가 될 수 있는 뿌리 깊은 폐단의 결과라고 입을 모았다. 특히 다음 달 전역을 앞둔 32사단 소속 김 모 병장의 증언은 군의 시스템이 전반적으로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문제의 핵심을 보여준다.

“분대장 때 분대원 하나가 자살 위험 징후가 나온 적이 있었어요. 원래 소대장이 면담하고 상관에게 보고가 이루어져야 하는데, 면담 결과가 중대장이나 행정 보급관에게 보고되지 않아서 조치가 취해지지 않았죠. 해당 병사가 사단장 마음의 편지에 직접 글을 쓰니까 그제야 제대로 된 조치가 이루어졌어요.”

“경계 작전 명령서(당직, 위병소, 불침번 등의 근무 투입 인원과 시간을 알려주는 표)는 간부가 아니라 분대장들이 작성해요. 간부들은 그냥 서명란에 서명만 하는 수준이죠. 그래서 선임들이 미루거나 쉬기 좋은, 주말 혹은 휴일을 앞둔 날에 후임들이 대신 들어갈 때가 많아요.“

국방부는 윤 일병 사건 이후 병사들의 처우를 개선하기 위해 인권 교육을 강화하고, ‘국방 헬프콜’을 확충하며, 병력 관리 시스템을 개선하는 등의 선진병영 정책을 시도했다. 그러나 “아 정말 어떻게 버텨야 하나. 애초에 버텨야 하는 건 맞나? 어떤 부귀와 영화가 날 기다리고 있을 거라고 내가 이걸 버텨야 하지?”라며 탄식하던 조 일병의 사망은 제도를 지키지 않는 간부들의 무책임한 태도, 그리고 사건을 은폐 및 축소하려는 군의 행태가 이어진다면 이 비극이 끝나지 않을 것을 암시한다.


현재 조 일병 유족은 재조사를 신청했다. 그러나 군은 재조사까지 1년이 넘도록 순번을 기다려야 하며, 재조사도 군에서 맡을 것이라고 밝혔다. 심지어 조 일병의 소속부대는 몇 가지 사실관계 확인을 위한 유가족의 면담 요청마저 “유가족이 부대를 방문하는 건 부대원을 두 번 죽이는 일”이라며 불허했다. 이는 군이 과연 사건의 진상을 밝혀낼 의지가 있는지조차 의심스러운 대목이다. 조 일병의 군 복무 당시 함께 생활했던 인원 중 아직 남은 사람은 세 명밖에 없으며, 이들도 곧 전역을 앞두고 있기 때문이다. 군의 시스템 부재와 의지박약은 유족과 친구들을 더욱 고통스럽게 만들고 있다. 정 씨는 “눈물이 나지 않는다는 것이 죄스럽게 느껴졌습니다. 형(조 일병)과 관련된 생각을 많이 한 날이면 이제 꿈에서 울곤 합니다.”며 괴로움을 토로했다. 김 변호사는 조 일병의 사망을 다음처럼 정의했다. 

“일상의 행복을 철저히 박탈당하고 어처구니없는 간섭과 쓸데없는 일에 내몰린 조 일병이 인생의 의미를 잃어버리고 극단적인 선택을 한 안타까운 사건입니다.”

* 외부 필진 고함20 님의 기고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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