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번방' 피해자를 향해 '그럴만해서 당했다'는 사람들에게

조회수 2020. 4. 6. 18:0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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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가해자에 감정이입을 하는가?
출처: ⓒ연합뉴스
N번방 성착취 강력처벌 촉구시위 중 한 장면

대한민국이 매일 분노로 들끓고 있다. 온라인 메신저 텔레그램(Telegram)에서 자행된 미성년자와 여성을 대상으로 한 디지털 집단 성착취 사건, 즉 ‘N번방 사건’ 때문이다. 작년 11월 한겨레의 기획 보도로 그 실체가 드러난 이후, 관련 청원이 잇따르면서 국회 국민동의청원 1호 법안으로 상임위원회에 회부되기도 했다. 곧 가해자 전원 신상공개와 엄중처벌을 촉구하는 국민적 격분이 나날이 거세지는 한편, 피해자보다 자신의 안위를 신경 쓰며 2차 가해까지 일삼는 사람들도 있다. 이들은 대체 어디에 분노하고 있는가.

26만명, 1만명, 3만명

‘26만명’. 사건이 잔인한 만큼 압도적인 가해자 수는 큰 파문을 불러왔다. 여성단체 연대체 ‘텔레그램 성착취 공동대책 위원회’가 발견한 텔레그램 내 성착취물 공유방의 참여자를 단순 취합한 숫자다. 이에 26만 명은 중복 가능성이 있기에 사실이 아니라며 극구 부인하는 사람들이 생겨났다. 그들은 덧붙여 가해자가 1만명이나 3만명 밖에 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글쎄, 이 또한 진실이 아니다. 최근 덜미를 잡힌 ‘박사’ 조주빈의 맛보기방 참여자‘만’ 해도 1만명인 것이다. 3만명은 그가 3단계로 나눈 유료 대화방 회원을 경찰이 추산한 결과로 보인다. 이런 방이 텔레그램에 또 얼마나 많을지 아무도 모른다. 분명한 것은, 26만명일 때와 1만명일 때 그 분노의 정도가 서로 다를 수 없듯, 정량적인 수치가 달라진다고 해서 이 사건의 심각성이 변하지는 않는다는 사실이다.

잠재적 피해자와 잠재적 가해자

출처: ⓒ연합뉴스

주변을 바라보는 여성들의 미심쩍은 눈초리는 그래서 생존본능이다. 소라넷, 웹하드, 다크웹, 그리고 텔레그램까지, 무수한 여성혐오의 페미사이드의 역사에서 ‘내가 피해자가 될 수도 있었다’는 생각은 너무도 자연스럽다. 이에 몇몇 결백하다는 남성들이 ‘나는 가해자가 아니다’라는 울분을 터뜨리기 시작했다. 왜 잠재적 가해자 취급을 받아야 하냐는 것이다. 일련의 사건들이 왜 일어나는지, 그래서 이 두 입장에 얼마나 큰 간극이 있는지는 관심도 없다. 본인들이 느끼는 억울함이 먼저다. 그러니 이들의 주장은 피해자가 완전한 일상으로 복귀하는 데 하등 필요 없는 궤변에 가깝다. 그렇게 결백하다면 발 벗고 나서서 범죄자를 힐난해야지, 실재하는 공포에 두려움을 느끼는 사람에게 와서 ‘예민하다고’ 화풀이할 일이 아니다.

그럴 만했던 성범죄는 없다

N번방이 이슈가 되자 처음부터 가해자에게 감정을 이입하는 동조자들도 적지 않았다. 일부 피해자들이 SNS에서 ‘일탈계’를 운영했거나 고액 아르바이트 제안에 혹했다는 것이 이유였다. 그럴 만해서 당한 거라는, 특정한 성범죄가 수면 위로 떠 오를 때마다 벌어지는 전형적인 2차 가해다. 그 어떤 과거도 성범죄를 정당화할 수 없다. 피해자가 어떤 사람이었는지는 중요치 않다. 집요한 관심을 받고 수치심에 몸부림쳐야 하는 대상은 절대적으로 가해자다. N번방의 진짜 운영자인 ‘갓갓’부터 그의 후임 ‘켈리’, 완장방의 ‘체스터’, 박사방을 비롯해 이 모든 방으로 통하는 중간 다리 역할을 했던 고담방의 ‘와치맨’은 물론, 공범 26만 명이 우리가 괴롭혀야 할 이름이다.


숫자에 집착하고, 나의 깨끗함이 우선이며, 피해자를 탓하는 사람의 분노는 결국 N번방을 넘어 디지털 성범죄 근절을 위한 동력을 소모하는 데 그칠 뿐이다. 진정으로 피해자를 생각한다면, 우리의 분노는 엄격한 법 집행이 부재한 상황에 적극적으로 항의하고 그를 위해 끝까지 연대하는 사회 분위기로 향해야 옳다. 그래야만 화(火)가 연료가 되어 사회를 바꿀 수 있다.

* 외부 필진 고함20 님의 기고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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