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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4.3 당시 여성들이 겪어야 했던 일들

지금껏 숨겨졌던 이야기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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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

사회가 전쟁을 기록할 때, 여성 생존자들의 목소리는 철저히 배제된다는 점을 지적하는 문장이다. 노벨 문학상 수상 작가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가 펴낸 유명 저서의 제목이기도 하다. 들리지 않던 생존 여성의 목소리를 엮어 만든 책이 바로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다.

출처ⓒ문학동네

이것이 전쟁의 경험에만 국한된 얘기는 아니다. 사실 역사적으로 무력이 동원된 거의 모든 참사 속에는 쉽게 알려지지 못한 여성들만의 기억이 존재한다. 올해 70주년을 맞은 제주 4.3의 비극에서도 마찬가지다.


제주 도처에서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학살을 자행한 토벌군들은 그 과정에서 여성들에게도 수많은 폭력과 성폭력 등을 저질렀고, 살아남은 여성들은 폐허 속에서 생계노동과 재건활동을 경험했다. 그러나 그 사실들은 지금껏 온전히 알려지지 못했다. 생존 여성들은 증언을 두려워했고, 많은 연구자들은 여성의 기억에 미처 관심을 가지지 못했기 때문이다. 


지난 3월 허영선 제주 4.3 연구소 소장은 <한겨레21>의 지면에서 4.3 생존자 여성들의 목소리를 전했다. 자신이 당한 성폭력 피해에 대해 “무덤까지 가져가야 할 일” “자식들도 몰라야 할 일”이라고 증언한 생존자 여성들의 말은 “가부장제 이데올로기가 지배하는 사회에서” 성폭력을 증언할 수 없는 치욕으로 여기며 침묵해야 했던 여성들의 입장을 생생히 반영했다.


성폭행, 여성 고문, 대살(남편이 도피한 상황에서 아내를 대신 죽이는 행위), 강제 결혼 등은 4.3 당시 제주 여성들에게 행해진 특수한 폭력들이었다. 미국 시카고대 석좌교수인 브루스 커밍스는 저서 <브루스 커밍스의 한국전쟁(2017)>에서 “(서북청년단 단원들이 여성들을) 흔히 마을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윤간한 뒤 질 안에 수류탄을 집어 넣어 폭발시켰다”라고 충격적으로 기술하기도 했다.

출처ⓒ설문대 여성문화 센터

허영선 소장이 기록한 일화엔 학살현장에서 여성들에게 “달빛을 보라”고 지시하고, 달빛에 비친 여성들 중 여럿을 골라 데려간 토벌군의 이야기가 담겨있다. 그들이 무슨 일을 당했는지는 정확하게 밝혀지지 않았다. 살아 돌아온 여성이 아무 말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토벌군이 남편의 행방을 알아내겠다는 이유로 여성을 고문한 사례도 많았다. 한 여성은 형무소에 끌려가 “빨갱이년, 폭도년” 소리를 들으며 폭행으로 손가락이 꺾이고, 천장에 매달려 코에 끓인 물을 들이붓는 고문을 당했다.


고문 피해자 중엔 만삭의 임산부도 있었다. 출산이 임박해 집에서 기거하던 한 여성은 남편이 산파를 부르러 간 사이 들이닥친 토벌군에게 머리가 함몰되고 온몸에 피멍이 들도록 구타를 당했다. 고문에 그치지 않고 대살당한 여성들도 부지기수다.

4.3 당시 처형 대기 중이었던 양민들

출처ⓒ퍼블릭 도메인

토벌군은 가족, 약혼자, 배우자 남성들의 목숨을 빌미로 여성들과 강제 결혼을 하기도 했다. 98년 발표된 <4.3을 통해 바라본 여성인권 피해 사례>엔 한 여성의 약혼자를 고문하던 서북청년단 단원이 여성과의 강제 결혼을 대가로 남성을 풀어주는 일화가 수록돼 있다. 그런 식으로 결혼 요구를 받고 실제 결혼을 해야 했던 여성들이 수도 없었다.


이러한 피해 경험을 생존 여성들은 오랫동안 스스로 추잡하다고 표현하며 숨겨야 했는데, 수치심이 생존자들에게 침묵을 강요하는 동안 사실 정보가 왜곡됐다. 제주여민회가 개최한 <제주여성 4.3의 기억> 발표에 따르면 국방부에서 발간한 <한국전쟁사1>은 토벌군과 제주 여성 간의 강제 결혼을 이렇게 묘사한다.

“한국전쟁 전후로 제주도에 파견된 남성의 결혼이 증가했다. 이는 제주민들의 지지가 높다는 증거다.”

-<제주여성 4.3의 기억>이 재인용한 <한국전쟁사1>의 내용

<제주여성 4.3의 기억> 포럼 포스터

출처ⓒ제주여민회

제주 여성단체 제주여민회는 지난해 <제주여성 4.3의 기억> 포럼을 개최해 4.3 당시 성폭력, 토벌군과 제주 여성 간의 강제 결혼 등의 문제와 침묵을 강요당한 생존자들의 현실에 대한 발제를 진행했다. 여성들의 기억이 은폐되고, 왜곡되고 있으며 때문에 침묵하던 여성들의 이야기를 발굴하고, 올바르게 바라봐야 한다는 취지였다.


이러한 시도는 여성계를 비롯해 일부 연구자들로부터 이전부터 이어져 오고 있다. 권귀숙 박사의 논문 <제주 4.3의 진상규명과 젠더연구(2013년)>은 성별에 따라 다른 방식으로 진행된 희생과 저항을 온전히 기억하기 위해 4.3 내 젠더 연구의 필요성을 제기했다. 


논문에 따르면 4.3 당시 자행된 여성의 인권유린은 국가가 4.3에 대해 규정한 희생의 범위에도 들지 못했다. (제주4·3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에선 4.3 희생자를 ‘제주4·3사건으로 인해 사망하거나 행방불명된 사람, 후유장애가 남은 사람 또는 수형자’로 규정한다)

제주 4.3 평화공원 모녀상

출처ⓒ가톨릭 뉴스 지금여기

희생자의 개념을 확장하고, 여성의 인권유린에 대해서도 추가적인 진상조사와 그에 따른 사과, 보상을 하기 위해선 이제라도 숨겨진 여성 생존자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지난 1일 <4.3 70주년 문화예술축전> 행사장에서 김은정 더불어민주당 제주도의원 예비 후보는 제주 지역 언론 <제주의 소리>를 통해 “4.3 연구에서 소외된 여성의 투쟁과 희생을 기억하는 일”이 중요하다며 “국가 폭력의 상황에서 희생된 여성을 기억하고, 아직 해결되지 않은 4.3의 가슴 아픈 현실을 계속해서 상기”해야 한다고 전했다.

* 2018년 4월 3일 글을 재발행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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