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 검색어 입력폼

돈 번다고 유세 부리는 남편에게 내가 작심하고 한 말

조회수 2020. 3. 28. 15:00 수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번역중 Now in translation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다양한 분야의 재밌고 유익한 콘텐츠를 카카오 플랫폼 곳곳에서 발견하고, 공감하고, 공유해보세요.

전업주부도 노동자다.

* 2019년 4월 5일 글을 재발행합니다.

출처: JTBC ‘SKY 캐슬’ 캡처

돈을 버는 남편과 아이를 돌보는 나의 위상은 전혀 동등하지 않았다. 돈 버는 남편은 권위를 갖는다. 남편은 내가 갖지 못한 것을 가졌다. 나의 노동을 평가할 수 있는 권한, 나를 통제하고 부릴 수 있는 힘. 돈 버는 남편은 권위뿐만 아니라 권력도 갖게 됐다.

“흰 빨래는 삶아야지.”

“냉장고 음식물 좀 빨리빨리 처리해.”

남편의 말들은 가벼운 타박처럼 들렸지만 신경을 안 쓰자니 거슬렸다. 몇 번은 그냥 넘어가기도 했지만 그렇게 넘어가면 왠지 찝찝했다. 내 부족함과 직면하는 것은 죄책감이 들고 주눅 드는 일이다. 청소를, 요리를, 냉장고의 음식물 관리를 못 한다며 지적받거나 돈 관리, 시간 관리를 못 한다고 타박 당하는 일이 반복적으로 일어났다.


남편은 이런 말을 하기도 했다.

“내가 아침을 차려달라고 한 적이 있길 해, 주말에 등산이나 낚시를 다니면서 혼자 쉬길 해?”

나는 본래 아침을 차려야 하는 사람인데 성은이 망극하게도 너그러운 남편을 만나서 그렇지 않은 삶을 살고 있다는 말인가? 주말에는 돈 버느라 고생한 사람이 쉬는 게 당연한데 함께 아이를 돌보고 있다는 사실에 감사하라는 말인가? 의문이 생기기 시작했다.

‘왜 남편은 날 쉽게 평가하지? 반대로 왜 나는 남편에게 그렇게 얘기하지 못하지?’

우리 사회에서 힘을 가진 ‘갑’은 하고 싶은 말을 마음껏 하고 ‘을’은 참고 듣기만 한다. 남편과 내가 ‘갑을관계’ 같았다. 남편과 내가 서로의 역할을 바라보는 자세는 근본적으로 달랐다.


나는 통장 잔액 부족으로 스트레스에 시달리면서도 남편 기분과 자존심이 상할까 염려하며 하고 싶은 말을 꾹꾹 참았지만, 남편은 내 감정이 상하거나 말거나 본인이 하고 싶은 말을 서슴없이 뱉었다. 돈을 버는 남편에게는 말할 수 있는 힘이 있었고, 날 침묵하게 하는 힘이 있었다.


남편이 사회적으로 경제적으로 경력이 쌓이고 유능해지는 동안 나는 무능한 존재가 됐다. 집 안에서 집 밖에서 나는 초라했다. 임금노동을 하는 남편은 돌봄노동을 하는 내 위에 있었다. 우린 똑같이 두 아이의 부모로 열심히 살았는데, 아이를 키우는 동안 우리 둘의 모습은 왜 이리 달라졌을까. 아이를 선택하며 회사를 그만둘 때 이런 미래를 기대하지는 않았는데. 생각할수록 분하고 눈물이 났다.

전업주부도 노동자다

출처: 일본 TBS ‘도망치는 건 부끄럽지만 도움이 된다’ 캡처

나는 가족을 위해 독립적이고 주체적이던 내 삶을 내려놓았다. 경제력을 잃고, 수많은 기회도 잃었다. 그저 옳은 일이라는 신념 하나로 아이들의 성장을 도우며 살았다.


하루하루 나의 자아를 누르고 엄마라는 무게를 견디며 사는 것도 버거운데 불평등한 관계까지 용납하고 싶지 않았다. 돌봄을 선택했던 내 판단을 이렇게 후회로 남길 순 없는 일. 상호 존중하는 동등한 부부로 살아가기 위해 전략이 필요했다. 돈 버는 유세에 맞서 ‘돌보는 유세’를 시작했다.


어느 날 집으로 우편물 하나가 날아왔다. 남편의 ‘국민연금 적립금’ 안내서다. 제법 목돈이었다. ‘남편은 계속 노동하고 있다는 게 이렇게 증명되는구나.’ 남편의 노동은 미래의 돈으로 쌓였다.


나도 회사에 다닐 때는 4대 보험에 가입돼 있었지만 전업주부가 되면서 납부를 멈췄기에, 나와 남편의 적립금은 상당히 큰 차이가 났다. 마치 내가 국민연금 납부를 멈춘 시점부터 노동을 하지 않은 사람인 것처럼 느껴졌다.


전업주부로 애 둘을 키우는 노동의 강도는 회사 일보다 훨씬 더 힘들고 다양하고 복잡했지만, 그 어디서도 나는 노동자로 인정받지 못했다. 대부분의 사람은 ‘전업주부=팔자 좋은 사람=노는 사람’으로 생각한다. 몇몇 지인은 내게 “언제까지 놀 거야?”라고 질문하곤 했다. 심지어 엄마들끼리도 그런 표현에 익숙하다.


나는 팔자가 좋지도 않고 놀지도 않으며 정말 열심히 일하며 사는데 왜 노동자로 인정받지 못할까? 사회에서 인정하거나 말거나 스스로 노동자가 되리라는 오기가 생겼다. 국민연금 지역가입자로 등록해서 매달 일정 금액을 납부하는 일부터 시작했다.


매달 차곡차곡 쌓이는 국민연금을 보는 것만으로도 노동자가 된 기분이 들었다. 매달 생활비가 부족한 형편이었지만, 무리해서라도 국민연금을 넣었다. 남편의 국민연금이 생활비와 상관없이 고정적으로 나가듯 내 것도 그래야 한다고 생각한다. 돈이 부족해서 못하는 것이 생겨야 한다면 외식이나 여행처럼 가족 모두가 누리는 다른 지출이어야 한다.


이외에도 나는 연중무휴 노동자가 되지 않기 위해 남편과 많은 대화를 나누고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다. 우선 ‘주5일 근무’를 지키려고 노력한다.


평일에는 장 보고 밥하고 빨래하고 청소하고 육아하는 집안의 전반적인 일을 내가 맡지만 주말에는 남편과 함께하고 함께 쉰다. 나만의 ‘주부 월차제’를 만들기도 했다.


한 달에 이틀은 온전한 나만의 시간을 갖기 위해 내 일터인 집을 떠난다. 올해는 첫 번째, 세 번째 토요일을 나의 휴가로 정했다. 남편의 눈치를 보면서 허락을 받고 나가는 것과 당연히 쉬는 날인 것은 다르다. 한 달에 단 이틀이라도 집안일과 육아에서 벗어나 온전히 나에게만 집중할 수 있는 날이 있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숨통이 트인다.


내가 남편의 임금노동에 빚이 있다면 남편은 내 돌봄노동에 빚이 있다. 남편은 내 돌봄노동을 바탕으로 애가 아프거나 말거나 방학을 하거나 말거나 걱정 없이 일에 집중하면서 경력을 쌓았다.


나에게 남편의 임금노동이 필요하듯 남편에겐 내 돌봄노동이 필요하다. 서로의 노동이 절실하다. 남편이 없으면 나와 아이들의 삶이 위태롭듯 내가 없으면 남편과 아이들의 삶이 위태로워진다. 내가 하는 역할은 남편의 역할만큼 중요하다.


남편이 벌어오는 임금에는 내 돌봄노동이 숨어 있다. 남편 혼자 돈 버는 노고를 인정받는 건 부당하다. 남편의 성취는 나의 희생을 기반에 두고 있다. 남편이 버는 돈으로 내가 편하게 산다고 하지만 사실은 내가 하는 돌봄노동 덕분에 남편이 안정적으로 일하며 자신의 가치를 올린 것이다. 남편이 버는 돈의 절반은 정당한 내 몫이다.

“내가 하는 노동의 가치는 내가 정해. 백지수표야. 유급노동과 무급노동으로 보지 말고 임금노동과 돌봄노동이라고 생각해. 우린 지금 외벌이가 아니라 ‘맞노동’을 하고 있다고!”

“우리 집 기둥은 엄마야” 6년 투쟁의 결과

출처: JTBC ‘SKY 캐슬’ 캡처

6년이라는 오랜 투쟁 끝에 변화가 찾아왔다. 남편이 나와 내 일상을 바라보는 시각이 달라졌고, 그의 사소한 말과 행동 또한 새로워졌다.


내가 느끼는 부당함에 공감하지 못하고 “당신이 페미니스트야, 뭐야?”라고 말하던 남편은 더 이상 그때 그 사람이 아니다. 자신을 방어하고 나를 공격하던 남편은 스스로 페미니즘 책을 펼쳐 들고 여성 문제에 관심을 두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부부관계가 많이 좋아졌다.


밖에서 일하고 들어온 남편을 향해 “우리 집 기둥, 돈 버느라 힘들었지?”라며 힘든 하루를 위로하면 “우리 집 기둥은 당신이지, 내가 없으면 대출이라도 받으면 되지만 당신이 없으면 저 애들은 어쩌냐”며 내 노동에 적극적인 지지를 보낸다.

“한국 남자는 다 똑같아. 비혼, 비출산이 답이야.”

나는 이 말에 동의하지 않는다. 남자라고 다 똑같지 않다. 차려주는 밥만 먹는 남자와 요리하는 남자는 다르고 돈 버는 유세를 부리는 남자와 돌봄의 가치를 인정하는 남자는 매우 다르다. 또 같은 남자라고 해도 시종일관 똑같지도 않다.


돌봄 위에 돈이 있지 않고, 돈은 관계의 권력이 될 수 없다. 동등한 부부로 산다는 것은 남자와 여자가 임금노동과 돌봄노동을 똑같이 반반으로 나눠서 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서로의 역할을 진심으로 존중하며 산다는 뜻이다.


나의 투쟁은 나의 승리에 있지 않다. 남편 위에 서고 싶어서 싸운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사랑해서 결혼했는데 한쪽이 더 많은 힘을 갖고 반대쪽이 더 위축된 심정으로 살아야 한다면 슬픈 일이다. 나란히 서고 싶었을 뿐이다.


나와 남편은 서로에게 가장 절실한 조력자다. 나는 남편을 포기하지 않았다. 이제 남편은 내 삶의 동반자로, 공동 양육자로 제법 팀워크가 좋은 파트너다. 우리는 이제야 진정한 부부가 된 기분이다.

* 외부 필진 부너미 님의 기고 글입니다.

<직썰 추천기사>

며느리도 시어머니 전화를 거부할 권리가 있다

“장사 그만두세요!” 말 나온 한 ‘골목식당’의 역대급 위생상태

직썰을 앱으로 만나세요.
(안드로이드 버전)
이 콘텐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