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대학교의 운영이 민주적으로 이뤄지지 않는 이유

조회수 2020. 3. 28. 13:3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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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학생들의 목소리는 잘 반영되지 않을까?

길을 지나다니는 사람들의 옷차림이 얇아지기 시작했다. 봄이 왔다는 신호다. 집 앞 공원에 벚꽃이 만발할 날도 얼마 남지 않은 듯해 설레는 마음이다. 하지만 여기저기서 봄소식을 알리는 와중에도 대학에 봄이 오기까지는 갈 길이 멀어 보인다. 코로나19 때문이 아니다. 진리의 상아탑이라 불리는 대학이 비민주적이라니 이보다 의아한 일도 없겠지만 동시에 고개를 살짝만 돌려도 볼 수 있는 흔한 일이다. 대표적인 사례 두 가지를 짚어보았다.

기울어진 운동장, 등록금심의위원회

고등교육법 제11조 2항은 ‘학교가 등록금을 책정하기 위해서는 교직원(사립대학의 경우에는 학교법인이 추천하는 재단 인사 포함), 학생, 관련 전문가 등으로 구성되는 등록금심의위원회를 설치 및 운영하여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여기에 학생 위원이 전체 정원의 1/3 이상이어야 한다는 조건이 걸려있어 얼핏 보면 등록금은 굉장히 공정한 절차로 책정되고 있다. 그러나 이 조항에는 맹점이 존재한다. 회의체에서 안건이 가결되기 위해서는 출석 정족수의 과반이 찬성해야 한다. 즉, 1/3에 달하는 학생 위원들이 모두 퇴장해도 학교 입장에서는 문제없이 안건을 처리할 수 있다.


실제로 이러한 일은 빈번하다. 고려대의 경우 학생위원 6인, 학교위원 6인 그리고 외부 전문가 1인으로 등록금심의위원회가 구성된다. 여기서 총장이 추천한 외부 전문가는 학교 측 위원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그렇기에 학교와 학생의 입장이 갈리는 안건의 경우 어김없이 6:7의 표결을 기록한다. 이화여대를 비롯한 다수의 대학 역시 같은 상황이다. 협상 테이블에서 어떤 논의가 이뤄졌는지와 관계없이 수적 우세한 학교의 의견에 따라 등록금이 책정될 수 있는 것이다. 대학은 이를 이용해 외국인 유학생 등록금 인상과 같은 안건을 통과시키고 있다. (관련 기사: 일제히 수십만 원씩… 외국인 등록금 ‘묻지마 인상’)

출처: 전국대학학생회네트워크 페이스북 페이지

불평등한 구조에 반발한 학생들의 요구로 일부 학교에서는 총장이 복수 추천한 외부 전문가 중 학생 측이 1인을 선임하는 등의 운영 규정 개정을 하는 등의 성과도 있었으나 역시 완전한 해결책은 아니다. 전국대학학생회네트워크(전대넷)는 올해 초 기자회견에서 위원이 아닌 학생들은 회의에 참여할 수 없고, 관련 자료 반출 역시 어렵다며 이 역시 등록금심의위원회의 민주성을 떨어뜨리고 있다고 지적했다. 학생이 학교와 대등한 입장에 설 수 없는 상황에서 회의는 요식행위에 지나지 않는다. 등록금의 합리적인 책정을 위해 만들어진 등록금심의위원회가 결국 학내 비민주성을 대표하고 있는 현실이란 아이러니하다.

반쪽짜리 민주주의, 총장직선제

전반적인 학내 운영을 책임지며 정책을 결정하는 자리인 대학 총장은 대부분 민주적으로 선출되지 않는다. 지난해 여영국 정의당 의원이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2018년 기준 154개 사립대 중 직선제를 실시하는 대학은 4.5%에 지나지 않았다. 법인이 단독으로 총장을 임명하거나, 총장추천위원회 등에서 추천한 후보를 이사회에서 선택하는 방식의 간선제로 총장을 뽑는 대학이 대부분이다.

출처: 숙명여자대학교 총학생회 페이스북 페이지

올해 상반기 차기 총장 선출을 앞둔 숙명여대는 작년 10월 총학생회장이 노숙 농성에 돌입해 44일 만에 총장선출 제도 개선을 위한 회의체 구성을 약속받았다. 숙명여대 총학생회는 페이스북을 통해 3월까지 총장선출 개선안을 마련하고 4월 중으로 공식화된 총장선출제도를 시행할 것임을 밝혔다. 국민대, 한국외대 등 여러 대학에서도 학생 참여 총장직선제를 외치는 학생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하지만 직선제라고 해도 모든 학내 구성원의 의견이 반영되는 건 아니다. 교직원으로만 선거인단을 구성해 투표하는 대학이 다수이고, 학생이 투표에 참여하는 학교는 한 자릿수에 불과하다. 또한 학생 참여가 보장된다 해도 그 비율은 현저히 낮다. 2018년 학생참여 총장직선제로 전환한 성신여대는 교수(76%) 직원(10%) 학생(9%) 동문(5%)으로 교수의 투표 반영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다. 상지대의 경우, 학생의 투표 반영 비율이 22%로 높은 편에 속하지만, 교수의 투표 반영 비율이 70%에 달한다. 반쪽짜리 직선제, 말만 민주적인 직선제가 되기에 십상인 것이다.


대학은 교육 기관이자 다양한 구성원들이 어울려 생활하는 공간이다. 그만큼 모두의 의견이 존중받고 적용될 수 있는 민주적인 공간이 되어야 함은 분명하다. 지금의 껍데기뿐인 민주주의에서 벗어나 모두를 감싸줄 수 있는 진정한 봄바람이 캠퍼스에 불어오길 바란다.

* 외부 필진 고함20 님의 기고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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