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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마 엄마를 용서하지 못할 것 같다

자신이 좋은 부모라고 믿는 엄마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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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7년 11월 24일 글을 재발행합니다.

따뜻한, 부드러운, 안심되는. 그래야만 할 것 같은 가족이라는 이름 안에서 우리는 낯선 폭력의 모습을 본다. 폭력은 때때로 혹은 자주 일어난다. 어떤 집에서는 날 선 말들로 또 어떤 집에서는 퍼런 멍 자국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너무나 다양하고 사적이어서 폭력이라고 불리지 못했던 우리의 경험들을 돌아본다.

(자료 화면)

출처MBC

요즘 가족 식사를 할 때 엄마는 “이 정도면 좋은 가족이지”라는 말을 자주 한다. 좋은 가족이라는 말은 가족의 필수조건인 행복을 충족했다는 뜻이다. 그 말에는 자신이 좋은 부모의 역할을 했기 때문에 좋은 가족이 될 수 있었다는 자부심도 포함되어 있다.


“형편이 어려워서 다 해주진 못했어도 너희를 못 키우지는 않았다”라는 말은 자매품이다. 그렇게 이상적인 가족임을 자부하는 엄마의 말에 사실 나와 동생은 늘 멈칫한다. 가족 안에서 우리가 행복했었나? 그러면 지금도 나를 갉아먹는 상처들은 어디에서 왔을까? 여전히 이 질문들에 답을 내리지 못한다.

괜찮지 못한 딸

나는 늘 어릴 때를 잊어버리려 애썼다. 그런데도 여전히 생생하게 떠오르는 장면 하나가 있다. 중학생 때, 성적표가 나온 날이었다.


평소보다 등수가 떨어졌었다. 전교 18등 정도였던 것 같다. 엄마에게 성적표를 보여줬을 때 엄마는 그걸 내 얼굴에 집어 던지며 이렇게 말했다. “너 때문에 쪽팔려서 동네에 나가지를 못하겠다.” 생각해보면 엄마는 한 번도 괜찮다는 말을 해준 적이 없었다. 나는 늘 엄마에게 괜찮지 못한 딸이었다. 


엄마의 날카로운 말들은 사소한 일상에서도 나를 찔러댔다. 주말에 낮잠을 좀 잤다가 “인생 그렇게 살지 마라”는 말을 들었다. 밥 먹다가 물을 쏟자 “그런 것도 똑바로 못하느냐”고 소리를 질렀다.

(자료 화면)

출처JTBC

주변 친구들과의 비교도 익숙해질 만큼 많이 들었다. 나보다 무언가를 잘하는 친구들을 두고 엄마는 내게 “너는 왜 그렇게 못하냐”며 신경질을 냈다. 그런 말을 듣고 자라다 보니 나보다 잘하는 사람을 보면 “나는 왜 저렇게 못하지” 하는 생각에 괴로웠다.


엄마의 인정을 받고 싶었다. 내가 잘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게 힘들었다. 그런 생각들은 고스란히 압박감이 되었다. 나를 짓누른 감정들이 나로 하여금 무언가를 제대로 해낼 수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게 했다. 이제 엄마로부터도 어린 시절로부터도 멀리 떨어져 있지만, 스스로를 괜찮다고 생각하는 건 여전히 어렵다.

사랑보다는 학대였던 기억

(자료 화면)

출처KBS2

괜찮지 못한 딸이 엄마를 위해 유일하게 할 수 있었던 건 스트레스 풀이 대상이 되는 것이었다. 어려운 형편과 장애가 있는 동생, 가부장적인 아빠와 할머니, 아들인 외삼촌만 지원해줬던 외할머니. 지금 생각해보면 엄마가 기댈 수 있는 곳은 어디에도 없었다.


엄마는 쌓이고 쌓인 스트레스들을 내게 신경질 내며 해소했던 것 같다. 엄마는 내가 잘못한 것보다 과도하게 화를 냈고 분이 풀릴 때까지 나를 못살게 굴었다. 화를 너무 많이 내서, 심지어 엄마가 왜 화를 내는지 이해할 수도 없었다. 


어느 날은 무조건 잘못했다고, 죄송하다고 빌어도 “뭘 잘못했는지도 모르면서 잘못했다고 하지 말라”며 몇 시간 동안 같은 자리에 나를 세워두었다. 또 어느 날은 거짓말을 했다고 잠옷 차림으로 집에서 쫓겨났다. 정말 억울한 일로 혼이 나서 억울하다고 했는데, 대들지 말라며 회초리로 맞기도 했다. 


내가 아픈 날엔 아픈 나의 눈치를 봐야 한다며 짜증을 내기도 했다. 나는 지금도 아플 때 엄마에게 아프다고 말하지 못한다. 


외모에 민감했던 엄마는 내 외모를 평가하며 여자는 뚱뚱하면 안 된다, 얼굴이 작아야 한다는 등의 말도 끊임없이 했다. 본인에게 하는 말인지 나에게 하는 말인지 모를 정도였다. 정작 엄마는 이웃이 무신경하게 던진 살쪘다는 말 한마디에 짜증을 감추지 못했다. 


어디에도 풀지 못하는 엄마의 스트레스가 온통 나를 향하는 것 같았다. 나는 그저 울었고, 잘못했다는 말만 반복하곤 했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여전히 엄마를 용서할 수 없는 나

(자료 화면)

출처JTBC

지방에 있는 본가를 떠나 서울에 있는 대학교에 입학한 날부터 나의 목표는 한가지였다. 독립하기. 정확히 하자면 부모님과 관계 단절하기.


시작은 경제적 독립부터였다. 경제적으로 의존하지 않게 되면 그들과의 관계도 끊어낼 수 있을 거라 믿었다. 사실 어려운 형편에 부모님이 내게 줄 수 있는 돈이 없어서라는 걸 알기 때문이기도 했다. 아르바이트를 2개 이상 하지 않은 학기가 없었다. 이제는 집에서 아무런 지원을 받지 않게 되었다. 


그런데 나는, 여전히 엄마에게서 받은 상처를 털어내지 못한다. 


엄마가 내게 사랑이라며 준 상처들을 애써 삼켜가고 있을 때였다. 엄마에게 예전의 일을 이야기하며 그때 그런 말을 했던 것을 기억하냐고 물었다. 나는 내심 사과를 받고 싶었던 것 같다. 사과를 받으면 엄마를 금방 용서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돌아온 대답은 “내가 언제 그랬니?”였다. 왠지 억울해진 나는 엄마가 언제 어떻게 이런 말을 했다며 구구절절 설명했다. 엄마는 내게 ”그렇게 사소한 것까지 마음에 담아두면 엄마가 너한테 무슨 말을 할 수 있겠니?”라며 신경질을 냈다. 아마 미안하다는 말 대신이었을 것이라고 나는 믿고 싶다.


나이가 들면서 엄마에게도 나름의 사정이 있었다는 걸, 그리고 어찌 됐든 나를 키우기 위해 엄마는 삶의 일부분을 희생했다는 걸 이해하게 됐다. 좋은 부모라는 건 사실 없고 모든 부모는 처음 부모가 된다는 것, 그래서 서툴 수밖에 없었다는 것 역시 이제는 안다. 


그러나 나는 아마 엄마를 용서하지 못할 것 같다. 그리고 스스로에게 엄마를 용서하지 못하더라도 충분히 괜찮다고 말해주고 싶다. 엄마를 향하던 분노와 원망이 실은 내 마음을 갉아먹는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엄마는 자신의 사랑 덕분에 지금의 내가 있다고 믿는다. 언젠가, 엄마가 내게 했던 것들이 언어폭력이며 정서적 학대였음을 말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때서야 나는 그 상처들 때문에 그렇게 아픈 내가 되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지금은 상처를 가만히 안고 있는 이대로도 괜찮다고 혼자 다독여 본다.

* 외부 필진 고함20 님의 기고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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