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에선 왜 더 많은 사람이 '코로나'로 죽어가고 있나

조회수 2020. 3. 13. 15:22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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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의료 체계의 허점에 그 답이 있다.
출처: ⓒ연합뉴스
인적 끊긴 ‘로마의 상징’ 콜로세움

이탈리아가 심상치 않다. 폭증하는 코로나19 환자 수 때문만은 아니다. 치사율이 지나치게 높기 때문이다. 현재 이탈리아의 코로나19 치사율은 무려 6.6%로, 우리나라의 0.78% 치사율과는 하늘과 땅 차이이며 이란의 3.6%, 중국의 3.9%보다도 높다. 이는 당연히 이탈리아에 파악되지 않은 환자가 아직 많다는 뜻도 되지만, 이탈리아의 보건의료 체계의 근본적인 문제점에서 비롯된 것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이탈리아의 의료체계에는 어떤 문제가 있을까? 이탈리아는 기본적으로 무상 공공의료와 사설의료체계라는 두 가지 축으로 보건의료 체계를 운영한다. 그런데 여기서 이탈리아만의 특이점이 발견된다. 공공의료 체계를 유지하지만 의사들이 사인 신분인 한국과 달리 이탈리아는 공공의료 체계 내 의사들은 일종의 ‘공무원’과도 같이 간주한다는 것이다. 이는 다양한 문제를 야기한다.

출처: ⓒ연합뉴스

첫째로는 공공의료체계 내 의사들이 공무원으로 간주되다 보니 의사의 수 자체가 국가 보건예산, 즉 전체적인 건강 관리 소비(Health Care Spending)의 크기에 의해 결정된다. (급여 등도 모두 마찬가지이다.) 때문에 보건예산이 제때 증액되지 않으면 의사, 간호사, 병상 등의 공급이 모두 차질을 빚게 된다. 지난 2018년 이탈리아 의과대학 총학생회 연합은 정부에 일반 및 전문의 TO 확대를 위한 개선안을 요구하기도 했다.


문제는 이러한 환경에서, 이탈리아의 보건예산은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내리막길을 걷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탈리아의 1인당 보건예산은 지난 2008년 1인당 3,490달러(한화 약 427만 원)를 기록한 이후 계속 하락해 2016년에는 1인당 2,739달러(한화 약 334만 원)로 내려왔다. 이 때문에 이탈리아에는 환자 1,000명당 병상이 고작 3.18개로 8개의 독일, 6개의 프랑스에 비해 턱없이 부족하다. 이러한 병상 부족 사태가 사실상 치사율 폭증의 직접적 원인이기도 하다. 


또한, 이러한 이탈리아식 공공의료는 고급 의료인력의 해외 유출을 불러일으킨다는 점에서 이탈리아의 미래 보건의료 역량까지 손상시킨다는 문제도 있다. 내과의사 기준 이탈리아 의사 연봉은 평균 10만 8천 달러(한화 약 1억 3,175만 원)인데, 이는 영국의 13만 8천 달러(한화 약 1억 6,830만 원) 및 독일의 16만 3천 달러(한화 약 1억 9,879만 원)에 한참 미치지 못한다. 게다가 이탈리아 의사 평균연봉은 사설의료체계의 의사 연봉까지 합산된 것으로 추정되므로 의사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공공의료인력의 소득은 더욱 낮을 것이다. 

출처: ⓒ연합뉴스
코로나19 사태 이후 한산해진 로마 기차역

그 결과로 이탈리아는 EU가 성립되고 난 2000년대 초반 이후 꾸준히 의사/간호사 등 의료인력의 계속된 유출에 시달려 왔다. 실제로 폴리티코(Politico)의 2017년 조사에 의하면 이탈리아는 루마니아와 그리스에 이어 의료인력 순유출이 유럽 내에서 세 번째로 많은 국가이다. 물론, 이탈리아로 유입되는 의료 인력들도 있다. 바로 이탈리아 각 의대에서 운영하는 영어 프로그램을 졸업한 동유럽 출신의 의사들인데, 이탈리아 의사들이 영국과 독일로 떠나면서 이들의 점유율이 조금씩 늘어나고 있다.


간호사의 경우 동일한 조사에서 이탈리아에서 영국으로 떠난 만큼의 간호사 숫자가 루마니아에서 유입되고 있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즉, 국가 예산에 모든 의료 환경이 달린 경직된 공공의료 제도와 지속적인 의료 예산의 감축 및 이로 인한 의료 인력의 유출이 이탈리아의 종합적인 의료 환경을 악화시키고 있다는 뜻이다. 물론, 동유럽 출신의 의료 인력들이 역량이 부족하다고 단정 지을 수는 없으나 지금과 같은 대규모 판데믹 상황에서는 취약점이 드러날 수밖에 없다.

출처: ⓒ폴리티코
유럽 내 의사들의 이동을 나타내는 표

그렇다면 이러한 사람들은 모두 어디로 이동하는가? 대개의 목적지는 영국, 독일, 스웨덴이다. EU 역내에서 국가를 이동하는 의료 인력의 약 45%가량이 이 3개 국가로 향하고 있으며 그중에서도 절반 정도가 영국에 쏠리고 있다. 그 이유는 당연하겠지만 영국은 같은 무상의료 시스템을 보유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의사들의 소득이 높고, 또한 세계 공용어인 영어를 사용하기 때문에 언어의 장벽 또한 낮기 때문이다.


영국이 이탈리아와 같은 무상의료 체계를 운용하면서도 유럽 각지의 의사들이 영국으로 몰려드는 이유는 간단하다. 영국은 1인당 보건복지 예산 규모 자체가 3,084유로(한화 약 422만 원)로 이탈리아보다 28%가량 높으며, 상대적으로 빡빡한 세금 제도, 예컨대 최저소득세율 20% 등의 조세제도를 통해 의료보험 제도를 유지하고 있다. 때문에 이러한 기반이 의사들의 소득 증가에도 기여하는 것이고, 많은 고급 인력이 영국을 찾게 만드는 것이다. 

출처: ⓒ폴리티코
유럽 내 간호사들의 이동을 나타내는 표

이탈리아가 직면한 문제는 우리나라에도 많은 시사점을 남긴다. 우리나라는 국민건강보험이 태동한 이래 그 공공성과 복지성을 늘리려 애쓰고 있다. 그러나 의료보험의 보편성을 위해서는 결국 의료수가의 상향 조정이 불가피하며, 이를 위해서는 결국 증세가 불가피하다는 정치적으로 아주 어려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물론 우리나라 공공의료 체계가 의료인을 정부에 신분적으로 예속시킬 정도의 경직성은 없으나 ‘공공성’만을 강조하는 의료체계는 결국 약점을 노출하기 때문이다.


한편 현재 가장 크게 걱정이 되는 것은 이 신종코로나바이러스가 의료인력 유출이 심각한 동유럽으로 퍼졌을 경우다. 루마니아는 2008년 금융위기 이후 2015년까지 7년 동안 의사의 수가 50% 감소했으며, 슬로바키아 역시 나라 전체의 내과의사 중 27% 가량인 3,800명이 다른 나라를 찾아 이동했다. 2000년대 중반 EU의 대대적인 동진은 어쩌면 서구의 세력 확대보다는 잠재적인 위기를 더욱 키우는 선택이 아니었을지 우려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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