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도 코로나19에 걸렸을 수 있다

조회수 2020. 3. 4. 13:48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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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설적으로, 치사율이 낮기에 주의해야 한다.

* 2020년 2월 24일 <애틀랜틱>의 기사를 번역한 글입니다.

출처: ⓒ연합뉴스

1997년 5월, 세 살 난 아이가 흔한 감기 증상을 드러냈다. 목의 염증과 열, 그리고 기침이 6일 동안 계속됐고, 아이는 홍콩의 퀸엘리자베스 병원으로 보내졌다. 기침이 심해졌고 숨을 헐떡이기 시작했으며 집중적인 치료를 받았지만 아이는 죽고 말았다.


병의 진행 속도나 너무나 빨랐기에 의사들은 아이의 가래 표본을 중국 보건원에 보냈다. 하지만 표준검사로는 병의 원인을 알 수 없었다. 바이러스 책임자는 표본을 다른 나라 동료들에게 보내기로 했다. 


미국 애틀랜타에 있는 질병통제예방센터(CDC)는 그 표본은 한 달 동안, 시간이 오래 걸리는 항체 분석을 준비했다. 이 바이러스는 지금까지 인류를 가장 많이 사망하게 만든 독감 바이러스의 변종이라는 결과가 나왔다. 하지만 이 변종이 인간에게서 발견된 적은 없었다. 바로 이 바이러스가 H5N1 또는 ‘조류독감’이라 불리는 것으로, 20년 전 발견된 바이러스였지만 당시까지만 해도 조류만 걸리는 것으로 알려졌던 바이러스다. 


그때는 8월이었고, 과학자들은 전 세계에 이 위험한 소식을 알렸다. 중국 정부는 양계농가의 항의에도 불구하고 재빨리 150만 마리의 닭을 살처분했다. 더 많은 사례가 계속 발견됐고, 격리가 시작됐다. 그해 말까지 18명의 환자가 나왔고 이 가운데 6명이 사망했다. 

출처: ⓒ연합뉴스

이로써 조류독감은 종식된 것처럼 보였다. 몇 년 동안 그 바이러스는 재발하지 않았다. 사실 조류독감이 널리 퍼지지 않은 이유는 증세가 너무 심했기 때문이다. 병에 걸린 이는 심하게 앓았으며 명백하게 증상을 드러냈다. H5N1의 치사율은 60%에 달했다. 이 말은 병에 걸리면 죽을 확률이 상당히 높다는 뜻이다. 2003년까지 이 바이러스로 숨진 이는 모두 455명. 보기에 따라 클 수도, 작을 수도 있는 숫자지만, 이보다 훨씬 약해 ‘치사율이 0.1%밖에 되지 않는 독감’으로 숨지는 사람은 전 세계에 매년 수십만 명에 이른다.


H5N1과 같은 바이러스에 감염되면 심한 병을 앓게 된다는 말은, 이 바이러스에 감염된 이를 구별하기도, 격리하기도 쉽다는 뜻이다. 또 이 병에 걸린 이가 빨리 사망할 수도 있다는 뜻이다. 일단 바이러스에 감염된 이들은 그저 약간 컨디션이 나쁜 채로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바이러스를 널리 퍼뜨리지 않는다. 반면, 이번 신종 코로나바이러스(학술명은 SARS-CoV-2)는 호흡기 질환을 일으키며 환자에 따라 그 증상이 심해질 수 있다. 이 질환은 COVID-19(코로나19)로 불리며 치사율은 2% 이하다. 다른 전염병보다 치사율이 매우 낮다. 이 바이러스는 치사율이 낮음에도 불구하고 주의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이 치사율이 낮기 때문에 특히 주의해야 한다. 


코로나바이러스는 한 가닥의 RNA로 이뤄진다는 점에서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와 유사하다. 코로나바이러스에는 4종류가 있는데, 사람에게 감염되면 보통 감기를 유발한다. 이들은 전염력이 최대가 되도록 진화하는 것으로 생각된다. 이 말은 사람을 아프게 할 뿐 죽이지는 않는다는 말과 같다. 그러나 앞서 있던 두 종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곧 사스(중증 급성 호흡기 증후군)와 메르스(중동 호흡기 증후군)는 H5N1처럼 동물을 통해 전염된 것이다. 이들은 인간에게 매우 치명적이었다. 이 병에 걸리고도 증상이 나타나지 않았거나 가벼운 감기 정도를 앓고 지나간 이들의 수는 매우 적었을 것이다. 만약 그런 이들이 많았다면, 훨씬 더 많은 이들이 사스와 메르스에 걸렸을 것이다. 그래서 사스와 메르스로 전 세계에서 숨진 사람은 1천 명이 넘지 않았다.

출처: ⓒ연합뉴스
코로나19 환자가 집단 발생한 일본 크루즈선 다이아몬드 프린세스 호

코로나19로 인한 사망자는 이미 사스와 메르스 사망자의 두 배(2월 24일 기준)가 넘었다. 이 바이러스는 몇 가지 특성이 섞여 있기에 다른 바이러스들과 다르다. 곧, 치명적이지만 아주 치명적이지는 않다. 사람을 아프게는 하지만, 진단 혹은 구별이 가능할 만큼 아프게 만들지는 않는다. 일본에 정박한 크루즈선의 미국인 가운데 14명이 확진 판정을 받았지만, 이들에게서는 별 증상이 나타나지 않았다. 이번 바이러스의 가장 무서운 점은 바로 이렇게 아무런 증상을 만들지 않는다는 점이다.


세계는 유례없는 속도로 이 바이러스에 대비하고 있다. 놀라운 속도로 바이러스의 정체를 밝혀냈으며 중국의 과학자들은 몇 주 만에 유전자를 분석해 그 결과를 다른 과학자들에게 알렸다. 학계가 유전자 데이터와 임상 데이터를 공유하는 속도도 전례가 없을 정도로 빠르다. 백신 연구도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다. 중국 정부는 극적인 봉쇄 조치를 했고 세계보건기구(WHO)는 비상사태를 선포했다. 이 모든 일이 1997년 H5N1 사태 당시 원인을 파악하는 데 걸린 시간보다 짧은 시간 안에 이뤄졌다. 하지만 바이러스는 동시에 계속 퍼지고 있으며 감염자도 계속 늘어나고 있다.


출처: ⓒ유튜브 캡처
마크 립시치 하버드대 전염병학 교수

하버드의 역학자 마크 립시치는 역학자라는 사실을 고려해도 스스로 발언을 매우 신중하게 하는 사람이다. 우리와 대화 중에도 그는 두 번이나, 하던 말을 멈추고 이렇게 말했다.

“음, 방금 했던 말 다시 말할게요.”

그런 그가 다음과 같은 말을 강조했다는 것은 대단히 충격적이었다.

“나는 결국은 이 병을 억제할 수 없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격리는 전염병에 대응하는 첫 단계다. COVID-19는 (거의 불가능한 일임에도) 처음 얼마 동안 전염을 막는 것이 가능해 보였다. 1월 중 중국은 우한시를 중심으로 점점 더 넓은 지역을 차단하기 시작했고 결국 1억 명을 봉쇄했다. 사람들은 집을 나가는 것이 금지됐고 드론이 이를 감시했다. 그런데도 이 바이러스는 지금까지 24개국에서 발견됐으며 계속 퍼지고 있다.


이러한 조치가 가진 비효율성 – 적어도 그들이 겪게 될 사회경제적 비용만 따져도 – 에도 불구하고 격리를 시도하는 국가들이 증가하고 있다. 바이러스를 “멈추어야 한다”는 정치적 압박 때문에 중국 정부는 후베이성의 공무원들이 집마다 방문해 사람들의 체온을 재고 감염의 징후를 찾아 모든 잠재적 환자를 격리 병동으로 보냈다. 하지만 이런 극단적인 격리 조치도 바이러스의 전파를 막지 못할 것이다. 집에서 쉴 필요도 없을 정도로 증상이 없는 사람도 바이러스를 전파할 수 있다면 이미 증상이 심한 환자들을 가려내는 것은 별로 효율적인 전략이 아니기 때문이다. 


립시치는 전 세계 인구의 40~70%가 올해 안에 코로나19에 감염될 것으로 예측한다. 하지만 그는 이 말이 감염된 모든 이가 크게 아플 것이라는 뜻은 아니라고 단호하게 말했다.

“대부분은 가볍게 넘어가거나 심지어 아무런 증상도 느끼지 못할 가능성이 큽니다.”

독감 바이러스가 만성 질환을 가진 이나 노년층의 생명을 주로 위협하는 것처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역시 대부분은 의학적 치료를 받지 않아도 이겨낼 것이라는 뜻이다. (실제로 독감에 걸린 이의 14%는 아무런 증상을 보이지 않는다.)

출처: ⓒ차이나데일리 캡처

이 바이러스가 점점 더 많이 퍼질 것으로 생각하는 이는 립시치뿐 만이 아니다. 역학자들 중 점점 많은 사람이 이번 바이러스가 새로운 계절성 질병 – 다섯 번째 ‘고유한’ 코로나바이러스 – 이 될 가능성이 크다는 의견에 동의하고 있다. 다른 네 가지 바이러스에 대해 인간은 지속성 있는 면역을 만들어내지 못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만약 이번 바이러스에도 이 사실이 성립할 경우, 그리고 이번 질환이 지금처럼 계속 기승을 부릴 경우 앞으로 겨울은 ‘감기와 독감의 계절’이 아니라 ‘감기와 독감, COVID-19 의 계절’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지금 이 순간, 우리는 얼마나 많은 이들이 감염되었는지 알지 못한다. 2월 23일, 세계보건기구(WHO)에 의하면 미국의 확진자 수는 35명이었다. 하지만 일주일 전 우리의 대화에서 립시치는 “매우, 매우 대략적인” 예측(그는 “가정에 가정을 더했을 때”라 말했다)으로, 그 숫자는 100~200명 정도일 것이라 말했다. 이는 이 바이러스가 널리 퍼지기에 충분한 숫자이다. 전파의 속도는 증상이 약한 이들의 전염성이 얼마나 강한가에 달려있다. 2월 21일, 중국의 과학자들은 JAMA에 폐의 CT 사진이 정상인, 자각 증상이 없는 사람이 바이러스를 전파한다는 결과를 보고했다. 그들은 이 환자가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COVID-19 감염을 막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라는 결론을 담담하게 내렸다. 


설사 립시치의 추정치가 수십 배 차이로 틀린다고 해도 전체적인 경향은 바뀌지 않을 것이다.

“독감이 유행하는 계절에 독감과 비슷한 질병에 걸린 200명이 있다면, 이 질병을 따로 검사하지 않는 한 이를 파악하기는 매우 어렵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예측이 맞는지, 혹은 우리가 무언가를 잘못 알고 있는지를 가능한 한 빨리 알게 된다면 매우 좋겠지요. 이를 알려면 일일이 직접 검사를 해보는 수밖에 없습니다.”
출처: ⓒ연합뉴스

지금까지 미국의 의사들은 중국을 방문했거나 확진자와 직접 접촉하지 않은 이들에 대해서는 검사를 받지 말라고 권고하고 있었다. 지난 2주 사이 CDC는 실제로 얼마나 많은 감염자가 있는지 알기 위해 미국의 다섯 개 도시에서 검사를 시작하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아직 누구나 이 검사를 받을 수 있는 건 아니다. 2월 21일, 공중보건연구소협회(Association of Public Health Laboratories)는 캘리포니아, 네브래스카, 일리노이의 세 개 주에서만 검사를 시작할 준비를 마쳤다고 말했다.


아직 자료가 너무 부족한 관계로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지 예측하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이 바이러스가 격리 단계를 넘어섰으며, 따라서 앞으로 인류는 이 바이러스와 함께 살아가야 한다는 우려와 함께 앞으로 수많은 사람을 살릴 수 있는 가장 확실한 전략인 백신의 개발에 전 세계가 온 힘을 다해 나서리라는 점만은 분명하다. 


지난 한 달 사이 이노비오(Inovio)라는 작은 제약회사의 주가는 두 배 이상 올랐다. 1월 중순, 이들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백신을 개발했다고 말했다. 이는 기술적으로 정확하지 않은 주장이었지만, 여러 매체가 이 사실을 보도했다. 다른 약들과 마찬가지로 백신의 효과와 안전성을 확인하는 데는 긴 시간이 걸린다. 정확히 이 회사와 다른 비슷한 회사들이 한 일은 언젠가 백신이 될 수도 있는 이번 바이러스의 RNA 일부를 복제하는 데 성공한 것이다. 이는 충분히 희망찬 시작이지만, 이를 가지고 백신을 발견했다고 말하는 것은 수술칼을 간 다음 새로운 수술법을 발명했다고 말하는 것과 같다. 


지금 코로나19에 대한 유전자 분석은 놀라운 속도로 진행되고 있지만, 백신을 만드는 것은 과학보다도 일종의 예술 영역에 있는 일이다. 이를 위해서는 면역 시스템이 해당 바이러스를 기억하기에는 충분하지만, 실제 병을 유발하는 급성 염증 반응까지는 일으키지 않는, 그런 유전자 시퀀스를 찾아야 한다. (예를 들어 독감 백신은 실제로 감기에 걸리게 하지는 않지만, CDC는 백신이 “감기와 비슷한 증상”을 유발할 수 있다고 경고한다.) 정확한 답을 찾기 위해서는 실험실과 동물, 그리고 사람에 대한 많은 실험이 필요하다. 백신이 발견되자마자 그 실험실에서 수십억 개의 바이러스 유전자 파편을 전 세계의 사람들에게 곧바로 주입할 수 있게 되는 기적 같은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출처: ⓒ동아사이언스

백신 개발에 도전하는 바이오 회사가 이노비오만 있는 것이 아니다. 모데르나(Moderna), 큐어백(CureVac), 노바박스(Novavax) 등의 회사들이 있다. 영국의 임페리컬칼리지 런던을 비롯한 많은 학계의 연구자들과 미국 NIH 등 여러 국책연구소도 같은 목표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NIH의 국립 알레르기 및 감염병 연구소의 앤서니 포시 소장은 지난 1월 JAMA에 이번 바이러스의 백신을 찾기 위해 기록적인 속도를 내고 있다고 썼다. 2003년 사스(SARS) 사태 때 과학자들이 바이러스의 유전자 분석 결과를 얻어 백신의 첫 번째 임상 시험을 시작하는 데 20개월이 걸렸다. 포시는 다른 바이러스에 대해 이 기간을 3개월 남짓으로 단축했으며 이번 코로나19에 대해서는 “더 빠를 수 있다”고 말했다.


최근에는 백신 개발 속도를 높이는 새로운 방법들도 제시됐다. 그중 하나는 새로운 백신의 개발을 이끌고 자금을 대는 2017년 노르웨이에서 출범한 전염병대비혁신연합(CEPI)이다. 여기에는 노르웨이와 인도 정부, 웰컴 재단, 그리고 빌&멜린다 게이츠 재단이 포함돼 있다. 이들은 지금 이노비오와 다른 소규모 바이오테크 스타트업이 백신 개발이라는 실패 가능성이 큰 일에 매진할 수 있도록 자금을 지원하고 있다. CEPI의 CEO 리차드 해쳇은 포시 소장이 제시한 타임라인과 비슷하게, COVID-19의 백신이 4월이면 안전성 검사에 돌입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만약 모든 일이 순조롭게 풀린다면, 여름이 끝날 때쯤 그 백신이 실제로 질병을 예방하는지 확인할 수 있을 것으로 그는 생각한다. 


그리고 나머지 과정이 차질 없이 잘 진행되면 안전하고 효과적인 제품이 출시되는 데 12~18개월이 걸릴 것으로 그는 내다봤다. 이러한 속도는 “과거의 백신 개발 역사에 비하면 놀라운 속도”라고 그는 말했다. 하지만 이 계획은 또한 전례 없이 대담한 계획이기도 하다. “사실 이 시점에서 이 정도 기한을 이야기하는 것은 이를 제안하는 것조차 상당한 희망을 포함한 것으로 여겨야 합니다” 그는 덧붙였다. 


이러한 이상적인 계획이 실제로 실현되더라도 제조와 유통의 문제가 남는다. “실험실의 방법으로 수백만, 혹은 수십억 명에게 주사할 수 있는 양의 백신을 만들 수 있느냐 하는 것은 다른 문제입니다.” 특히 지금처럼 위기가 계속될 경우 만약 국경이 폐쇄되고 공급망이 끊어진다면 단순히 물류의 입장에서도 생산과 유통은 간단한 문제가 아닐 수 있다. 

출처: ⓒ연합뉴스TV 캡처

포시 또한, 처음 보였던 낙관적 예측을 바꾸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지난주 그는 백신 개발이 “매우 어렵고 힘든 일”로 드러났다고 말했다. 모든 기초과학의 발전에도 불구하고 실제 백신을 개발하기까지는 상당히 많은 임상 시험을 거쳐야 한다. 이는 곧 임상시험을 위해서 만들어야 하는 백신의 양도 상당히 많으며, 또 사람들에게 어떤 결과가 나타나는지를 시험마다 꼼꼼하게 관찰해야 한다는 뜻이다. 이 과정에 드는 비용은 NIH, 스타트업, 대학 등은 부담하기 힘든 수억 달러에 이를 수 있다. 또한 이들에겐 백신을 대량으로 제조해 유통하는 시설과 기술도 없다.


백신의 제조는 지금까지 거대 제약회사들의 일이었다. 지난주 아스펜 연구소에서 포시는 이들 거대 제약회사 중 어떤 곳도 코로나19의 백신을 만들겠다고 나서지 않았다는 점을 아쉬워했다. “이 기술을 가진 회사들이 백신이 필요할 때를 기다리며 모든 준비를 해놓지는 않을 것입니다.” 설사 그들이 백신 개발에 참여한다고 하더라도 이런 종류의 새로운 제품을 개발하는 데는 사람들의 수요가 사라지거나 사람들이 여러 가지 복잡한 이유로 그 제품을 쓰지 않게 되는 등의 큰 위험이 따른다. 


백신의 개발은 매우 어렵고 큰 비용이 들며 위험 또한 높았기 때문에 1980년대 제약회사들이 백신의 유해성 주장과 함께 법적 소송을 치르게 되자 많은 회사가 백신 개발을 포기했다. 당시 미국 정부는 제약회사들의 백신 개발을 장려하기 위해 백신에 의한 피해를 주장하는 사람들에게는 미국 정부가 직접 보상해주기로 약속했고 이 약속은 오늘날까지도 지켜지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제약회사들은 만성 질환을 위해 일상적으로 사용되는 약의 개발을 선호한다. 특히 코로나19의 백신 개발에는 마치 독감처럼 매년 백신을 개발해야 할 수도 있다는 위험이 따른다. 코로나19가 독감 바이러스와 마찬가지로 한 가닥의 RNA로 이뤄져 있어 쉽게 변이를 일으키기 때문이다. 


백신 정책을 연구하는 예일대학교 보건대학원의 제이슨 슈와르츠는 내게 이렇게 말했다.

“백신만 기다리다가는 곤란한 상황에 빠질 수 있습니다.”

슈와르츠는 백신이 지금의 발병에 변화를 주기에는 너무 늦더라도 적어도 개발되기만 한다면 그 정도만 해도 최상의 시나리오가 될 수 있다고 본다. 그는 사스(SARS) 이후 지난 10년 동안 이런 전염병에 대한 대비가 돼 있지 못한 것이 더 큰 문제라고 말한다.

“우리가 사스에 대한 백신 연구 프로그램을 폐지하지만 않았더라도 그와 비슷한 이번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에 대응할 수 있는 많은 기초 연구 결과가 나왔을 겁니다.”
출처: ⓒ연합뉴스TV 캡처

하지만 에볼라 때와 마찬가지로, 정부의 자금과 제약회사의 개발 프로젝트는 위기가 해결되자마자 사라졌다.

“당시에도 백신이 본격적으로 개발될 필요가 생기기 전에 위기가 해결됐고, 초기 연구 결과들은 그대로 묻혀버렸습니다.”

2월 22일, 폴리티코는 코로나바이러스에 대응하기 위해 백악관이 의회에 10억 달러를 요청했다고 보도했다. 이 요청이 받아들여진다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전염병 예방에 필수적인 CDC와 NIH, 그리고 해외 원조 자금을 크게 줄인 새로운 예산안과 같은 달에 그 자금은 시행될 것이다.


정부의 이러한 장기적 투자가 중요한 이유는 백신, 항바이러스제, 그리고 다른 중요한 도구들의 개발에 설사 그 수요가 크지 않더라도 수십 년 동안 꾸준한 투자가 이뤄져야 하기 때문이다. 당장의 수요가 없는 제품을 개발하고 유통하는 것은 시장경제의 원리를 거스르는 일이다. CEPI는 위기가 시작되기 전에 백신을 개발할 수 있는 모델을 만든 것으로 알려졌지만, 이들 또한 비판을 받는다. 지난해 국경없는의사회는 이들이 공정한 분배와 가격 합리성을 보장하지 못한다는 날카로운 비판을 담은 공개서한을 보냈다. CEPI는 그 비판을 받아들여 정책을 수정했고, 국경없는의사회의 의료혁신 및 접근성 고문인 매뉴얼 마틴은 지난주 내게 자신들이 CEPI를 지지한다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CEPI는 분명 바람직한 모델이며, 우리는 이들이 새로운 백신을 성공적으로 개발할 수 있기를 진정으로 희망합니다.”

하지만 그와 그의 동료들은 또한 “CEPI의 약속이 실제로 어떻게 이루어질지를 지켜보겠다”고 말했다.


이런 요구는 그저 인도주의적 이상 때문만은 아니며, 더욱 효율적인 실행을 위해서도 필수적이다. 백신과 다른 자원을 가장 필요한 곳에 전달하는 것은 그 질병이 널리 퍼지는 사태를 막기 위해 필요한 일이다. 예를 들어 2009년 H1N1이 유행할 당시, 멕시코는 가장 큰 피해를 보았지만, 호주에서는 그리 큰 피해가 없었음에도 자국의 제약회사가 호주 정부의 주문량을 다 채우기 전까지는 백신을 수출하지 못하게 막았다. 세계 각국이 봉쇄와 자국 중심의 정책을 택할수록, 백신과 마스크, 음식과 손비누 등의 제품을 효율적으로 배포하고 위험을 냉정하게 평가하는 일은 더 어려워진다. 


지금 이탈리아, 이란, 한국은 코로나19가 가장 빠르게 퍼지는 나라다. 중국의 역사적으로 유례없는 봉쇄 정책의 의심스러운 효과와 본질적인 폐해에도 불구하고 많은 나라는 입국 금지와 같은 방식으로 대응한다. 적당한 격리 조치는 필요하지만, 여행을 금지하고 도시를 봉쇄하며 생필품을 사재기하는 것은 장기간 지속할 전염병에 대비하는 현실적인 대응책이 아니다. 이 모든 시도는 그 자체로 적잖은 비용을 유발한다. 유행병에 제대로 대응하기 위해서는 결국 국경을 닫을 것이 아니라 열어야 할 것이다. 가까운 시일 내에 어딘가는 코로나19로부터 청정한 지역이 되리라는 기대는 접어야 한다. 이번 바이러스는 전 인류의 문제이다.

원문: 아틀란틱, James Hamblin

* 외부 필진 뉴스페퍼민트 님의 번역 글입니다. ( 1 / 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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