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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몸으로 체르노빌 사고 현장에 뛰어든 소방관에게 생긴 일

조회수 2020. 3. 1. 13:0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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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6년 4월 26일, 인류 최악의 참사가 일어났다.

* 2016년 2우러 19일에 작성된 글입니다.

1986년 4월 26일 당시에는 ‘소련’이라 불리던 광대한 국토의 나라 한 켠에서 엄청난 일이 벌어졌어. 오늘날의 독립국 우크라이나의 수도 키에프에서 불과 100킬로미터 정도밖에 떨어지지 않은 체르노빌의 원자로에서 증기 폭발이 일어나 20세기 최악의 원자력 발전소 참사로 번진 거지. 그런데 이 참사는 사고 직후에는 세상에 알려지지도 않았어. 비밀 많고 숨기는 것 많던 소련 공산주의자들이 참사 소식을 전하지 않았기 때문이야. 스웨덴 등에서 방사능 낙진이 떨어진다고 아우성이 터지면서 어쩔 수 없이 사고 사실을 공개하게 되지. 

첫 폭발에서는 피해가 크지 않았어. 화재가 발생했고 득달같이 달려온 소방대원들은 필사적으로 물을 뿌리며 불길을 잡았지. 물론 그들에게 방사능을 막아 주는 장비는 전혀 없이 소방복 차림으로 방사능 넘실대는 현장을 누벼야 했어. 열 네 명의 체르노빌 소방대는 불굴의 노력으로 불길을 잡는 데 성공했지만 그들이 뿌린 물이 심각한 문제를 일으키지.

이 물은 4호로와 접촉하면서 증기로 변했고 이게 원자로 내부 물질과 반응하여 가연성 물질로 화했고 이게 대규모 폭발로 이어진 거지. 50미터가 넘는 불기둥이 펑 하고 치솟고 1,200경 (이런 단위 본 적 있니?) 베크렐의 방사능이 누출됐는데 이건 히로시마 원자폭탄의 400배는 족히 되는 양이라고 하네.

앞서 말했지만 소련 당국은 이 사고를 감췄어. 외국에 대해서만이 아니라 자기네 국민들에게도 요즘 말로 쌩을 깠지. 덕분에 5만 명의 체르노빌 시민들은 고스란히 방사능을 뒤집어 써야 했어. 심지어 발전소 화재를 구경하다가 피폭당하기도 했지. 무능하고 대책 없는 소련 정부는 이 사실을 더 이상 숨길 수가 없게 됐고 체르노빌과 인근 프리피야트 시민들에게 소개령을 내린다. 소련 정부는 사실상 대책이 없었어. 그나마 수습책이라고 나온 것은 ‘일단 콘크리트를 들이부어 덮어 버린다. 그 뒤는 나도 몰라~’였어.

방사능이 얼마나 강했는지 사람 대신 투입된 로봇들이 고장나서 픽픽 자빠지는 판이었어. 사람에게야 말할 것도 없겠지. 그런데 소련의 비극은 여러 면에서 빛을 발해. 전국에서 60만 명이 넘는 대규모 복구대원을 끌어 모은 건 좋았는데 지급해야 할 방사능 방호복은 한 벌도 없었던 거야. 그래서 심한 경우 어떤 이들은 비옷을 입고 방사능 천지를 뛰어다녀야 했지. 소련 당국이 내민 것은 보드카였어. 방사능 물질 하나인 아이오딘131을 막는 요드를 함유한 보드카. 하지만 이 보드카는 다른 방사능 물질에는 속수무책이었어.

그야말로 맨몸의 인간과 방사능의 사투가 벌어졌어. 녹아내리는 원자로 노심이 지하수와 섞여 대폭발이 일어날 가능성이 제기되자 세 명의 기술자들이 방사능이 바닷물의 소금처럼 녹아 있는 물 속으로 뛰어들었고 콘크리트를 정확히 붓기 위해 헬기 승무원들은 문을 열어젖히고 방사능 내뿜는 발전소 위를 배회했지.

몇십 초로 제한된 작업 시간을 수십만 명이 번갈아 수행하면서 원자로를 콘크리트로 덮어 버리기 위해 안간힘을 쓴 끝에 체르노빌은 끝내 거대한 석관으로 덮이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미봉책에 불과해. 지금도 체르노빌 발전소 근방 30킬로미터는 접근 금지 구역이고 동화 속에서나 보던 기형 동물들 - 머리가 셋 달린 개구리 같은 - 이 출몰한다지.


이 체르노빌 사태의 시작을 지켜봤던 소방관들, 방사능 방호복 없이 발전소 불을 끄느라 동분서주했던 그들은 전부 피폭됐고 처참하게 죽어간다. 그 가운데 바실리 이그나텐코라는 젊은 소방관이 있었어. 그는 갓 결혼한 신혼이었지.

“발전소에 화재가 났어 창문 닫고 자.”

이 말을 남기고 바실리는 체르노빌의 지옥으로 뛰어들었고 꺼지지 않는 불을 끄려다가 쓰러지고 말았어. 소련 당국은 이 ‘비밀’을 유지하기 위해 피폭된 소방관들 가족에게도 알리지 않고 모스크바의 병원으로 비밀 입원시키지. 아내 루드밀라는 그야말로 물어 물어 남편의 행방을 찾아 오게 된다.

남편의 몸은 그야말로 외계 괴물같았어. 피부 색깔은 파랑, 빨강, 회색, 갈색 등 총천연색으로 시시각각 변했고 온몸이 물집으로 뒤덮여 있었어. 머리를 움직이면 베개에 머리카락이 뭉텅이로 빠지고 있었어. 남편을 찾은 아내가 접근하려 하자 의사가 기겁을 하고 막는다.

“잊지 마세요. 당신 앞에 있는 사람은 남편이 아니라 방사성 물질이에요. 사람이 아니라 작은 원자로예요. 키스는커녕 포옹도 안됩니다.”

하지만 루드밀라는 영화 속의 괴물처럼 변해 가며 고통에 몸부림치는 남편을 끌어안고 키스했지.

“괜찮아요 바실리. 내가 옆에 있어요.”

그녀는 ‘원자로 덩어리’를 수시로 끌어안으며 그 ‘방사성 물질’의 입을 맞췄고 이미 망가질 대로 망가진 남편의 몸을 돌보기 시작했어. 

“나는 천조각을 매일 갈았지만, 저녁 때면 피로 흠뻑 젖었습니다. … 폐와 간의 조각이 목구멍으로 타고 올라와 숨을 못 쉬었어요. 손에 붕대를 감아 입 속에 있는 것을 다 긁어냈습니다. 말로 할 수가 없어요!”

아내의 지극한 사랑에도 불구하고 바실리는 세상을 떠나. 너무 발이 부어 신발을 신길 수도 없었다고 해. 이때 루드밀라는 임신 중이었고 남편이 죽은 뒤 유복자를 낳아. 딸이었지. 그러나 의사는 고개를 젓는다. 아내는 남편을 너무나 사랑했지만 그 사랑은 딸에게 치명적인 영향을 미치고 말아. 간은 돌처럼 딱딱했고 심장에도 이상이 있었어. 엄마 뱃속에서 방사능과 조우했던 아이는 그렇게 세상에 나온 지 4시간 만에 아빠의 곁을 따른다. 그리고 2년 뒤 루드밀라 역시 뇌출혈로 쓰러지고 말아.

방사능이 가장 강력하게 내뿜어지던 순간 화재 현장에 있었던 바실리의 끝은 참혹하기 그지없었어. 차마 사진은 가져오지 못하겠다만 끔찍한 몰골 앞에서도 루드밀라는 거리낌이 없이, 그리고 의사의 강력한 제지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남편을 끌어안고 키스하고 함께 하리라 속삭였지. 고통에 몸부림치던 인간 원자로의 마지막 희망으로 동앗줄로 언덕으로 디딤돌로.

폐허로 변한 체르노빌

인류 최악의 참사, 그 참사를 숨겨 보려고 발버둥치는 졸렬한 정부 밑에서, 용감하고 정직한 사람들은 자기 목숨을 돌보지 않고 방사능과 싸우다가 눈 뜨고 볼 수 없을 만큼 끔찍한 최후를 맞이하지. (도대체 왜 이렇게 한국과 소련 비슷한 게 많지?) 그리고 그들을 사랑한 사람들은 그 참화 속에서도 포기할 수 없는 사랑의 온기를 지키려고 애쓰다가 ‘전염성 높은 원자로’의 피해를 입으며 시들어 갔다.

체르노빌은 복구되거나 정리된 게 아니야. 그냥 콘크리트 더미 아래 덮여 있을 따름이지. 마치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뱀 히드라의 죽지 않는 머리가 헤라클레스가 던진 바위 아래 깔려 영원히 쉭쉭거리듯 말이지.

* 외부 필진 김형민 님의 기고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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