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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썰

‘법륜스님의 즉문즉설’, 보는 내내 당황스러웠던 이유

되려 그의 낡은 인식만 확인시켜줬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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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 친아버지에게 성폭행을 당했다는 여성에게 한 사람이 건넨 조언이었다. 충격적인 말은 계속됐다. “’아버지가 나를 성추행했다’는 생각도 사실은 하나의 상이라고 할 수 있다. 그가 내 손을 잡았던 그 순간에 그는 내 아버지가 아니라 그냥 한 남자였을 뿐이다.” 명백한 2차 가해였다. 발언의 주인공은 ‘즉문즉답’의 법륜스님이었다. 단순한 말실수였을까. 안타깝게도 그의 헛발질은 거기에서 멈추지 않았다.


그로부터 6개월 후, 법륜스님은 남편이 말끝마다 ‘인마’라고 부르고 화가 나면 ‘이 새끼’라며 손찌검을 하는데 어떡하면 좋겠냐는 여성에게 “’인마’나 ‘새끼’라 부르는 걸 하나의 문화라고 생각하고 웃어넘기라”는 문화 충격을 안겼다. “다른 사람이 ‘당신 남편 왜 그리 욕을 많이 해요?’라고 물으면 ‘아이고, 우리 남편 18번이야, 우리 남편 매력이야’라고 받아넘기라”는 디테일한 대응법도 안내했다. 어이없는 해결책이었다.  


손찌검 등 남편의 폭력에 대한 대답은 더욱더가관이었다. “손찌검을 하는 건 잘못”이라고 전제했지만, “남편이 말로 안 되니까 힘으로라도 이기려고 손찌검을 하게 되는 것”이라며 “남편에게 져주라”고 조언했다. 그뿐만이 아니다. “힘들 때는 ‘엄마’처럼 따뜻하게 위로해주길, 밤에는 ‘요부’처럼 섹시하길, 좋은 ‘유모’가 되어 아이를 잘 돌봐주길, ‘파출부’가 되어 집안을 잘 관리해주길 바랍니다. (2017. 5. 10.)라며 전근대적 발상을 드러내기도 했다.  


수많은 강연 무대에 서며 많은 사람으로부터 사랑을 받았고, 이 시대의 힐링 멘토로 이름 높은 법륜스님이지만, 이처럼 성차별적이고 시대착오적인 발언도 제법 많았다. 존경받는 멘토였으나 한편에선 그의 조언들이 현실적이지 않다고 비판했다. 또, 지나치게 개인의 몫을 강조한다는 의문도 제기됐다. 설 연휴를 맞아 tvN은 <법륜스님의 즉문즉답>을 이틀에 걸쳐 1, 2부로 나눠 방영했다. 과연 그의 강연은 얼마나 달라졌을까?

“즉문즉답은 하다가 막힐 수가 있는데, 즉문즉설은 막힐 수가 없습니다. 왜? 답을 찾는 게 아니니까. 무슨 얘기를 해도 대화는 할 수 있지 않습니까. 그리고 답을 구한다면 모르는 건 모른다고 하면 되잖아요. 뭐가 어렵습니까? 모르는 사람이 아는 척하려면 좀 고민이 되는 거예요. 모르면 그냥 솔직하게 ‘그건 잘 모르겠는데?’ 이렇게 대답하면 돼요.”

스님은 막힘이 없었다. 사방에서 날아 질문은 순식간에 파훼됐고, 꾸역꾸역 몰려드는 번뇌는 어느새 자취를 감췄다. ‘26권의 베스트셀러 작가이자 유튜브 누적 조회 수 7억 뷰를 달성한 대한민국이 가장 사랑하고 존경하는 힐링 멘토’로 소개받고 무대로 선 법륜스님, 그는 다양한 연령대의 방청객이 끌어안고 살아왔던 고민에 머뭇거림 없이 답을 제시했다. <법륜스님의 즉문즉설>은 참으로 명쾌했다. 


이 세상에 귀신이 있는지 없는지 궁금하다는 6살 아이의 질문. 법륜스님은 “귀신은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없는 것 같기도 해요”라고 대답했다. 무슨 이야기일까. 좀 더 들어보자. “마음을 편안하게 가지고 항상 마음을 밝게 가지면 귀신이 있든지 없든지 상관없어요. 내가 안 만나기 때문에.” 법륜스님은 질문의 관점을 ‘귀신의 존재 유무’에서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없는 것 같기도 한 귀신을) 내가 만날 것인가 안 만날 것인가’로 틀어버렸다. 


그 말인즉슨 문제의 본질은 ‘나’에게 있다는 뜻이었다. 관점을 바꾸자 답은 쉬워졌다. ‘유레카!’를 외쳐야 할까. 본격적인 질문에 앞서 일종의 맛보기로 진행된 6살 아이와의 문답은 법륜스님의 문제해결 방식을 뚜렷하게 보여줬다. 나를 바꾸면 세상도 바뀐다는 다소 고전적인 방식의 접근, ‘현상’보다 ‘수용자의 태도’에 집중된 솔루션. 왠지 벌써 tvN <법륜스님의 즉문즉설>을 다 본 것 같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미국에서 직장 생활을 하다 보니 성과주의에 치여 우울증을 앓았고, 현재 각성제와 수면제로 버티며 살아가고 있다는 질문자. 그는 ‘소명이란 존재하는가?’라는 묵직한 질문을 던졌다. 이에 대한 법륜스님의 대답은 ‘소명이란 없다’는 것이었다. “인생에서 어떻게 살아야 된다는 정해진 길은 없고 (...) 자기가 의미를 부여하고 그 의미에 따라 살아가는 것뿐”이므로 원래 없는 것 때문에 괴로워하지 말고 힘들면 그만두면 된다고 조언했다.  


더불어 “어떤 일을 했기 때문에 지친 게 아니라 지나치게 욕심을 내고 집착을 하기 때문에 자기가 피곤한 거지 외국인들과의 경쟁이나 미국이란 사회하고도 관계가 없다”는 진단까지 내렸다.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문제의 본질은 ‘나’에게 있다는 답변의 반복이라고 할 수 있었다. 눈앞의 상에 집착하지 말고 나 자신(의 마음)을 다스리라는 불교적 가르침과 맥이 닿아 있었다. 방청객의 질문은 계속 이어졌다. 

“요즘 TV에 백종원 씨가 많이 나오거든요. 저 사람이 내 남편이었으면… 제가 어떤 덕을 쌓아야 (다음 생에) 저런 사람이랑 결혼할 수 있을까…”

남편과의 불화로 2년째 대화를 나누지 않는 힘든 나날을 보내고 있다는 질문자. 그는 20년 동안 노력했으나 어느 순간 놔버리게 됐다고 털어놓았다. 그에 대한 법륜스님의 대답은 이러했다. “쥐가 계속 쓰레기장만 뒤지면서 음식을 찾다가 어느 날 접시에 자기가 제일 좋아하는 고구마가 딱 얹혀 있어. 햐, 나도 이럴 때가 있구나. 그 안에 뭐 들었을까. 예, 쥐약입니다. 다 돌보시는 분들이 있어서 쥐약이 자기한테 안 나타나는 거고, 나타나면 쥐약인 줄 알아요.”


풀어보자면 질문자가 남편의 가치를 제대로 보지 않고 있다는 의미였다. 법륜스님은 질문자가 대화하려고 노력했다고 하나 결국 남편을 바꾸려고만 했을 거라며 그건 제대로 된 소통이 아니라 지적했다. 이어서 직장 다니는 사람을 조금 더 포용하고, 남편 이야기를 좀 더 들어주라는 조언을 건넸다. 마지막으로 남편만 한 남자를 찾기 어렵다며 “가능하면 있는 거 다듬어서 쓰는 게 나아요”라고 덧붙여 웃음을 자아냈다.


딸이 가정을 버리고 봉사에만 몰두해 고민이라는 엄마, 공부하려 하는데 계속 휴대전화만 보게 된다는 중학교 2학년 학생, 알코올 중독 때문에 힘들다는 남성, ‘아름답게 죽음을 맞이하는 방법이 있을까’란 질문을 던진 요양원의 물리치료사까지 질문은 다양했지만, 법륜스님의 답은 일관됐다. 질문은 무거웠지만, 답은 경쾌하고 쉬웠다. 마치 문제가 모두 해결된 것 같았다. 그런데 어느 순간 헛헛해졌다. 정말 나만 바꾸면 모든 게 해결될까? 

물론 관점을 바꾸고 마음가짐을 달리하는 것만으로 해결되는 문제들도 많다. 그러나 모든 문제를 그런 식으로 접근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 현상을 간과한 채 수용자의 변화만을 촉구하는 애꿎은 일이 반복될 수 있기 때문이다. 가령, 남편과의 불화로 고민하는 아내에게 더 참아보라고 조언하는 건 생각보다 잔인한 일이다. 게다가 있는 거(남편) 다듬어서 쓰는 게 낫다는 말은 고민을 한없이 가볍게 만들어버렸다.


또, 업무와 관련 없는 잡무에 동원하는 직장 내의 불합리로 고민하는 질문자에게 “성격이 좀 더러운가요?”라며 (질문자의) 욱하는 성격 탓으로 몰아가고, “도자기 굽다가 풀 뽑다가 (누가) 오면 인사하고 그래야지…”라며 부당함에 대해 별다른 문제의식을 갖지 않았다. 물론 뒤에 자신은 분업화되기 전의 시대를 살았기 때문에 큰 문제로 와닿지 않는다고 인정하긴 했지만, 상사의 무례한 언행에 대해서도 비슷한 투의 조언을 건네 의아함을 자아냈다. 


날이 갈수록 심각해져 가는 청년 실업 문제에 대해 조언을 구한 질문자에겐 “’(취업하지 못하면 집도 마련하지 못하고 심지어 결혼까지 포기해야 한다는 말은) 저는 힘들어서 대통령 되는 꿈도 포기하고, 재벌 되는 꿈도 포기하고, 배우하고 결혼하는 꿈도 포기했습니다’라고 말하는 것과 같게 들려요. 그게 과연 포기라는 말에 들어갈 수 있는 말인가”라며 전혀 공감하지 못하겠다는 반응을 보여 당혹스럽게 만들었다. 


그러면서 자신이 100m를 10초에 뛰겠다는 목표를 세우면 그게 이뤄지겠냐면서 어떤 목표를 설정하느냐에 따라 포기는 성취감으로 변화할 수 있다고 설파했다. 결국 ‘(구직) 눈높이를 낮춰라’고 말해 논란을 불러일으켰던 정치인의 말과 다를 게 없었다. 물론 문제는 자질이 아닌 사회적 조건이므로 도전했다가 실패했다고 해서 너무 괴로워하지 말라는 의미도 담고 있었지만, 청년들이 처한 현실에 대한 섬세한 접근이 결여된 대답이었다.

26일 방송된 2부에서도 법륜스님의 조언 방향은 그대로였다. 손주를 얻고 싶어 딸에게 임신 얘기를 꺼낸다는 엄마, 한 스님이 고3 딸을 출가시켜야 명이 길어진다고 해 고민이라는 엄마, 원서를 낸 대학교에 다 떨어져 고통스럽다는 고3 학생, 16년 만에 아이를 가졌지만 아이만 홀로 두고 떠나게 될까 봐 두렵다는 엄마, 4년째 희소 암 투병을 하는 남편을 잘 보내주고 싶다는 아내까지 법륜스님은 집착하지 말 것을 권유하고 내려놓으라고 조언했다.


이런 법륜스님의 ‘즉설’들은 불필요하거나 과한 걱정을 하고 있는 질문자들, 지나친 부담감과 압박감을 느끼고 있는 사람들에겐 일정 부분 유익할지 몰라도 사회적 문제와 맞닿아 있는 이들에겐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았다. 답이 쉽다는 것, 그건 결코 바람직한 일이 아니다. 질문의 무게만큼 답도 어려워야 마땅하다. 자신이 정확하게 알고 있는 분야에 대해 진지하고 오랜 성찰이 담겨 있을 때 비로소 한마디를 건넬 수 있는 것 아닐까.  


‘모든 문제의 본질은 ‘너’이니까 마음을 바꿔 먹어라. 그러면 마음이 편안해질 거다’라는 조언이 언제까지 통용될까. 또, 어디까지 유효할까. 한 명의 종교인에게 세상의 온갖 물음에 대한 답을 구하고, 모든 고민을 해결해 달라고 요구하는 것이야말로 시대착오적이다. 그리고 모르는 것은 모른다고 하면 된다면서 정작 모른다는 말은 하지 않고, 얼토당토않은 조언을 건네는 장면을 방송으로 지켜봐야 하는 건 곤혹스러운 일이다. 


백종원 같은 남편 찾지 말고 옆에 있는 사람을 다듬어 쓰라는 <법률스님의 즉문즉설>을 통해 확인할 수 있었던 건 한 가지뿐이었다. 남편이 (퇴직 후에도) ‘신문 가져와라’, ‘커피 타 와라’고 시켜 화가 난다는 고민에 대해 “그럴수록 남편에게 더 잘해보세요. ‘그동안 수고하셨습니다. 이제 푹 쉬세요. 제가 잘 모시겠습니다’ 이런 마음으로 남편을 대해 보라”던 조언(2016. 12. 21.)에서 한 걸음도 나아가지 못한 법륜스님의 인식이다.

* 외부 필진 버락킴너의길을가라 님의 기고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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