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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례식에서 울지 않았다고 슬프지 않은 건 아니다

조회수 2020. 1. 23. 15:3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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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나의 상처를 판단하는가?

* 2018년 5월 22일 직썰에 실린 글을 재발행합니다.

엄마의 장례식에서 울지 않은 나는 비정상인가?

출처: 에드바르 뭉크 <이별>

모친상을 당한 지 4일 만에 학교에 갔다. 공결 기간 7일을 전부 채우지 않은 나를 보며 동기들은 연신 “괜찮냐”고 물었다. 그러고 보니 장례식에 찾아왔던 친척들도, 친구들은 내게 끊임없이 괜찮은 거냐며 말을 걸었다. 그들 앞에서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장례식장을 지키는 동안 나는 식음을 전폐하지도 않았고 울며 밤을 지새우지 않았다. 옛날엔 부모가 죽으면 무덤 옆에 움막을 치고 3년간 묘를 지키는 시묘살이도 있었는데, 하루하루 아무렇지 않은 듯이 지내고 있자니 패륜도 이런 패륜이 없지 않을까. 엄마를 그렇게나 사랑했는데, 눈물 한 방울 나오지 않은 스스로가 이질적이고 이기적으로 느껴졌다. 


사십구재가 끝나고서야 나는 한참 동안 앓았다. 참았던 눈물이 터져 나오듯 정말 엉엉 울었다. 아무도 없는 빈집에서 기다려도 엄마가 돌아오지 않는다는 것이 그제야 실감이 난 것이다. 뒤늦게 찾아온 슬픔은 커다란 해일이 돼 나를 공격했다. 사십구재면 탈상이라는데 이제 괜찮아져야 하는 시기에 나는 왜 이제야 비로소 괴로워하는가.

우는 것만이 슬픈 것이 아니다

인생에 있어서 큰 사건을 당하면 트라우마가 남는다고 한다. 하지만 만인이 같은 일을 겪는다 해서 다 같은 정도의 불안을, 슬픔을 겪는 건 아니지 않나.

“성폭행당한 주제에 뭐가 저렇게 당당해.”

“피해자면 좀 더 주눅 들어있어야 하는 거 아니야?”

성폭행 피해자들이 흔하게 겪는 말이다. 그 어디에도 고통받는 사람들이 지켜야 하는 행동 수칙 따위는 없다. 하지만 사람들은 사회가 그려둔 피해자의 모습에서 벗어난 사람에게 진정성이 없다고 타박하고 심지어 그들의 상처를 의심한다.


상처의 종류는 다양하다. 누군가는 시간이라는 치료약을 통해 스스로 상처를 관리할 수 있고 또 누군가는 시간을 버텨낼 힘도 없어 곁에서 끊임없이 지켜줘야 한다. 그 어떤 행동에도 정답은 없으며 특정 행동만이 피해자다운 것도 아니다. 


나는 여전히 엄마를 생각하면 눈물이 나온다. 동시에 매일 아침 일어나서 밥을 먹고 출근을 위해 2호선을 타는 일상을 산다. 이런 나는 엄마를 사랑하지 않는 것일까. 아니, 그 누구도 내게 그런 말을 할 자격은 없다. 어떻게 남의 상처를 아픔을 단언하는가. 무얼 안다고서. 무너지는 그 마음을 얼마나 안다고.

“사건을 당한 것도 억울한데 꼭 트라우마가 남아야 해?”

“심플하게 생각해. 사건이 났고 넌 잘못이 없고. 시간은 지났고 현재는 경찰이 된 거지.”

- tvN 드라마 <라이브> 中

* 외부 필진 20timeline 님의 기고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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