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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에서 "학생, 예수 믿어?" 묻던 아저씨에게

조회수 2020. 1. 19. 11:0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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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 예수 믿어? 안 믿으면 지옥 가~"
“학생, 예수 믿어? 안 믿으면 지옥 가~”

1호선 동대문행 지하철. 아침 8시. 출근 시간인데도 아직 빈자리가 두어 개 남아있었다. 하지만 그 아저씨는 결코 자리에 앉지 않았다. 그는 강하고 담대한 얼굴로 열차 복도의 중앙에 서서 모두에게 설교하기 시작했다.

“지금은 말세의 때입니다. 예수의 이름을 믿지 않으면 지옥 심판을 받는다고 성경에 쓰여있숩니다. 예수천당 불신지옥! 예수 믿으십시오.”
출처: ⓒGETTY IMAGES
Illustration of city crowd on public transport

야근에 회식에 숙취에 찌들어 출근하는 직장인들의 표정은 놀랍도록 평온했다. 승객들은 대부분 의자에 앉은 채 쪽잠을 청하고 있었다. 지독한 하루가 시작되기 전에 1분 만이라도 휴식을 취하길 원하는 표정이었다. 설교자 아저씨는 자신을 바라보는 사람이 아무도 없자 인상을 잔뜩 찌푸렸다. 그러곤 전투를 치르듯 지옥의 두려운 모습들을 허공에 읊어댔다.


하필이면 내가 고개를 들다가 설교자 아저씨와 눈을 마주치고 말았다. 젠장. 자는 척할 걸… 아저씨는 내 앞으로 다가오더니 다짜고짜 “예수를 믿냐?”고 물었다. 나는 믿는다고 대답했다.

“거. 내가 보기에는 믿음이 부족해 보이는데? 한번 대답해봐요. 예수님이 어디 계시는데?”

굉장히 귀찮은 사람이 꼬였군. 나는 “그냥 가세요. 저 바빠요. 아저씨”라고 말했다. 그러자 아저씨는 전투에서 승리한 표정으로 “학생, 심판 안 받고 지옥 안 갈려면 예수를 똑바로 믿어야 돼”하곤 의기양양하게 지하철의 다음 칸으로 갔다.

그 아저씨는 알았을까? 자신이 심판의 메시지로 인용하는 성경의 구절들이 소외된 이웃들의 살을 발라 먹는 이기적인 권력자들을 향한 엄중한 경고들이었다는 것을.


성경 속 아모스(구약 성서 속 예언서) 등에 등장하는 ‘여호와의 심판’이란 예수를 모르는 사람을 지옥으로 보내겠다는 요지의 글이 아니다. 가난한 자들과 소외된 자들에게 무관심한 정치 지도자들을 향해 하나님의 뜻대로 이웃을 사랑하고 정의를 펼치지 않으면 망하게 하겠다는 요지의 경고다. 


그 아저씨는 선지자들이 정치 지도자들에게 맞아 죽을 각오로 전했던 성경의 내용을 들고 지하철 아침 출근의 피곤에 찌든 이웃들에게 다가가 예수에 대한 지식을 뽐내고 심판 여부를 측정하려고 했던 것을 알았을까? 

교육의 기능을 상실한 교회

교회는 교육의 기능을 상실하고 있다.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 자기의 이른 아침 시간을 바칠 만큼 열정 있고 헌신적인 사람들에게, 교회는 성경의 참뜻과 문맥을 가르치지 않는다. 대신 개교회의 전도 프로그램에 최적화된 사람으로 훈련시킬 뿐이다. 사람들을 ‘예수천국 불신지옥’의 전사들로 만들어놓을 뿐이다. 유감스럽게도 순진한 사람들을 앞세워 개인 사업을 확장시키려는 이기적인 장삿속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하나님은 자기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지 말라고 하셨는데 하나님의 이름과 메시지가 포장돼 개교회 사업 확장의 도구, 혐오의 도구가 되게 하는 것을 언제까지 지켜만 보실까.


의기양양 지하철의 다음 칸으로 건너가는 아저씨의 뒷모습이 참 쓸쓸해 보였다. 뒷머리가 듬성듬성 빠져있었고 바지 안에 집어넣으려 한 것으로 보이는 셔츠의 밑단이 헤진 채 삐져나와 있었다. 똑같이 어려운 삶에서 발버둥 치는 이웃들에게 “모든 삶이 헛되고 지옥을 피하려면 예수밖에 없다”라는 말을 기계처럼 반복해야 한다고만 배웠을 아저씨에게 진짜 예수님이 찾아오시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너의 삶. 이미 지옥같이 힘들었던 거 다 안다”라고 토닥이는 진짜 예수를.

* 외부 필진 고함20 님의 기고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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