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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마 박지성의 믿음이 코치를 울린 날

"코치님이 올 때까지 기다리라고 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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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한일 월드컵이 한창일 때였다. 당시 나는 SBS에서 <인생대역전>이라는 재연 프로그램 연출을 맡고 있었다. 이는 “그 시작은 심히 미약하였으나 역경을 딛고 대박을 터뜨린 이들의 성공담”을 재연으로 꾸미는 프로그램이었다. 틈틈이 월드컵에 열광하는 와중에 그럴듯한 대박집 식당 주인 취재에 골몰하고 있던 나에게 갑자기 선배의 호령이 날아왔다.

"모든 아이템 걷어치우고 월드컵 대표 관련 아이템으로 해."

예선전 마지막 경기에서 박지성의 왼발 슛 한 방이 포르투갈 선수들을 집으로 돌려보낸 다음 날이었다. 지금 이 시국에 용빼는 식당 사장님 성공 스토리를 한들 무슨 소용이 있느냐, 선수들을 주인공으로 해서 재연을 찍자는 이야기였다. 멘붕이었다. 지금 나더러 선수들 묵는 호텔에 잠입이라도 하여 인터뷰 따 오란 얘기냐고 따졌지만, 선배는 간단하게 내 반항을 진압했다. “누가 선수 인터뷰하래? 그 아버지나 애인, 아내들을 인터뷰하면 되지. 장수를 잡으려면 말(馬)을 쏘라고 했어.”


결국, 다음날 날이 밝자마자 나는 ‘말’을 쏘러 달려 나가야 했다. 목적지는 강원도. 왕년에 박지성이 거쳐 갔던 초등학교 (중학교였을 수도 있다) 축구부 코치님이 강원도 어느 리조트에서 식당을 운영하고 계신다는 소문을 들었기 때문이다. 불원천리 강원도를 찾았던 것은 박지성 선수의 유명한 에피소드 때문이었다. 당시 인구에 회자했던 사연이니 아는 사람은 이 얘기를 알 것이다.

세류초등학교(당시 국민학교) 축구부 시절의 박지성

출처ⓒ스포츠서울

축구부 아이들이 좀처럼 훈련에 집중하지 못하자 초등학교 축구부 코치가 아이들을 꾸짖고 있는데 학부모들이 찾아왔다. “이놈들! 돌아올 때까지 꼼짝 말고 훈련하고 있어!”라고 일갈한 후 학부모들과 교문 밖을 나선 코치는 간단하지 않은 저녁과 반주까지 곁들인 후 별빛의 기울기가 급해진 다음에야 학교로 들어왔다. 그런데 코치는 범상치 않은 모습을 발견하고 우뚝 서고 말았다. 운동장 한복판에서 얼굴이 시뻘겋게 된 한 소년이 땀을 뻘뻘 흘리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박지성이었다.


다른 아이들은 쉽게 돌아오지 않을 것 같은 코치를 기다리기를 일찌감치 포기하고 합숙소에 들어가서 휴식을 취하고 있었지만, 꼬마 박지성은 우직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당황하여 “너 지금 뭐하는 거니” 물으니 꼬마 박지성은 “코치님이 돌아올 때까지 기다리고 있으라 하셔서요.” 하며 순박하게 되물었다고 한다. 


그런즉 “지성이는 이렇게 떡잎부터 될성불렀더라.” 하는 뻔한 증언을 따는 것이 나의 강원도행의 이유였다. 그런데 나는 솔직히 이 이야기를 믿지 않았다. 세상에 횡행하는 소문이라는 것이 진실과 실제보다는 과장과 오해를 부모로 둔 경우가 훨씬 더 많다는 것을 경험으로 알기 때문이다. 하지만 전직 코치는 어김없는 사실이라고 강조했다. 어색해진 분위기를 돋워 주려고 한마디 덕담을 던졌다. 

"하하 그렇게 기른 제자가 저렇게 명성을 떨치니 스승으로서 보람도 있으시겠어요."

그런데 전직 코치님의 답이 의외로 선선하지 않았다.

"제가 지성이를 기른 게 아니라, 지성이가 저를 거쳐갔던 겁니다. 말은 바로 해야죠. 제가 길렀다고 하면 너무 우스운 말이 될 겁니다."

"아 뭐. 하하 그래도 가르치셨으니까."

"그때 일 말입니다. 지성이가 착해서도 그랬겠지만, 난 다른 느낌이 있었습니다. 걔는 저를 믿었던 거예요. 잘난 선생이든 못난 선생이든 저 아무개를 믿어 준 겁니다. 난 그때 지성이가 대견스러웠던 게 아니에요. 눈물 나게 고마웠어요. 제가 걔를 가르친 게 아니라 걔가 나를 가르쳤지요. ‘코치 너 똑바로 해라 나는 널 믿는다. 그러니 네 말을 이렇게 열심히 따르는 거 아니냐’ 이렇게 얘기하는 거 같더라고요."

2002년 아직 여드름 자국도 가시지 않았던 박지성이 포르투갈을 침몰시키는 왼발 슛을 성공시켰을 때 TV를 지켜보던 코치 역시 굵은 눈물을 흘렸다고 했다. 내가 지도한 아이가 잘해서가 아니라 나를 믿어 주었던 고마운 아이가 저렇게 성공을 한 것이 한없이 기뻤다는 것이다.


그날 그가 운영하는 식당에 왔던 손님들은 공짜 밥과 술 벼락을 맞았다. “한국 축구인의 하나로서” 손님들과 건배를 나눴던 전직 코치님은 그날도 “왕년에 쟤가 내 밑에 있었습니다.” 같은 공치사는 입 밖에 내지 않았다고 했다. 


가끔은 눈물마저 글썽거리는 전직 코치님 앞에서 나는 ‘믿음’이라는 존재를 다시 생각했었다. 한 충직한 꼬마 축구 선수가 많은 지도자 중의 하나로 스쳐지나갈 수도 있었을 한 사람에 대해 보낸 신뢰가 저렇게 평생 마음에 달고 사는 훈장이자 자신을 비춰 보는 거울이 될 수도 있었다고 하는 감탄이 그 하나였고, 나는 누구에게 그런 신뢰를 준 적이 있었던가, 누구를 그렇게 철석같이 믿어 본 적이 있었던가, 강원도에서 서울로 돌아오는 내내 곱씹어 봤지만 끝내 떠올리지 못한 아쉬움이 들었다.

* 외부 필진 김형민 님의 기고 글입니다.


** 2016년 6월 10일 직썰에 게재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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