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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어리는 의외로 단순하게 풀린다” 말의 힘 보여준 ‘블랙독’

한마디 말이면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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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많은 인연 사이에서, 어떤 인연은 스쳐 지나가기도 하고 응어리지기도 한다. 그리고 맺힌 응어리는 의외로 단순한 데서 풀리기도 한다.”

입시설명회가 코앞으로 다가왔다. 대치고등학교에는 긴장감이 감돌았다. 전담 부서인 진학부는 히든 카드로 한국대학교 입학사정관을 초청하기로 했다. 학부모들에게 제대로 어필할 기회였다. 그런데 애초에 돕기로 했던 입학사정관이 악천후로 제주도에 발이 묶이는 바람에 다른 입학사정관이 참석하게 됐다. 문제는 그가 대치고등학교에 악감정이 있는 백은혜(송찬희)라는 사실이었다.


눈앞이 아찔해졌다. 4개월 동안의 노력이 모두 허사로 돌아갈 수도 있었다. 이미 진학부는 한 차례 백은혜 입학사정관의 ‘갑질’에 된서리를 맞은 적이 있었다. 입시 정보를 얻기 위해 한국대를 찾았던 진학부는 질문에 애매한 대답으로 일관하고 핵심을 교묘하게 비껴가는 백은혜의 냉담한 태도에 곤욕을 겪었다. 도대체 왜 저러는 걸까. 고하늘(서현진)은 그 상황이 의아하기만 했다. 


알고 보니 백은혜는 대치고에 유감을 품고 있었다. 과거 대치고에서 기간제 교사로 일했던 그는 정교사를 시켜주겠다는 교장 선생님의 말만 철석같이 믿고 최선을 다해 일했다. 누구보다 열정적으로 학생들을 가르쳤다. 그러나 약속을 이뤄지지 않았다. 백은혜는 도연우(하준)에 밀려 정교사 임용에 실패했고, 쓸쓸히 학교를 떠나야 했다. 당연히 대치고에 좋은 감정을 갖고 있을 리 없었다.

배명수(이창훈)와 도연우(하준)는 차라리 학원과 연계해 입시설명회를 꾸려나가자고 제안했다. 그러나 박성순 부장(라미란)은 “감정적인 거 빼고 손익을 따져야죠”라며 단호하게 선을 그었다. 이번 입시설명회의 성과에 진학부의 존폐가 걸려 있다는 걸 알고 있었기에 박성순의 입장에선 어떻게든 사활을 걸어야 했다. ‘성장’이라는 키워드를 살려 입학사정관과 학부모를 설득해 내야만 했다.


그러나 ‘성장’을 효과적으로 설명하는 건 쉽지 않았다. 진학부는 강의 내용을 수정하기로 했지만, 이내 고착 상태에 빠져 있었다. 돌파구를 제시한 건 고하늘이었다. 처음의 미약했던 시작을 강조한 아이스크림 가게의 홍보 전략에서 힌트를 얻었다. 고하늘은 대치고의 밑바닥을 솔직하게 오픈하고, 우리가 그 밑바닥으로부터 얼마나 올라왔는지를 보여주자고 제안했다. 


마치 학종(학생부종합전형) 에서 3, 4 등급이었던 학생이 1등급으로 성적이 향상되는 것이 줄곧 1등급을 유지했던 학생보다 강한 임팩트를 주는 것에 착안한 전략이었다. 또, 성장이라는 테마를 설명하기에 적합한 스토리텔링이기도 했다. 물론 그러기 위해선 학부모들 앞에서 대치고의 민낯을 스스로 까발려야 했지만, 박성순은 해볼 만한 싸움이라고 판단하고 밀어붙였다. 


사실 강의의 방향성이나 그 내용보다 중요했던 건 백은혜 입학사정관이었다. 그가 적극적인 태도를 보여주지 않는다면, 그가 부정적인 발언이라도 하면 모든 게 물거품이 될 게 뻔했다. 그보다 참석 여부조차 장담할 수 없었다. 응어리가 여전히 남아 있는 듯 보였다. 심지어 교장 변성주(김홍파)는 백은혜를 기억조차 하지 못했다. 첫 만남에서 백은혜를 기억하지 못했던 진학부 선생님들처럼 말이다. 


그런데 “맺힌 응어리는 의외로 단순한 데서 풀리기도 한다”는 고하늘의 말처럼 백은혜의 오랜 상처를 치유한 건 예상치 못했던 예수정(윤여화) 선생의 인사였다. 기간제 교사 시절의 자신을 기억하며 반갑게 인사를 건넨 예수정과 마주한 백은혜는 그제야 활짝 웃을 수 있었다. 꽁꽁 얼어붙었던 마음이 녹아 내렸고, 맺혀 있던 응어리가 풀렸다.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건 복잡한 공식이 아니었다. 

“저는 사는 게 꼭 1,000m 오래 달리기 하는 거 같은데, 선생님은 사는 게 놀이터구나 그런 생각했었거든요, 그때. 근데, 어떻게 여기 다시 와보니까 그건 아니었겠구나, 사는 게 놀이터인 사람은 없는 거지. 그런 생각이 드네요.”

하준은 입시설명회를 마치고 돌아가는 백은혜를 쫓아가 사과했다. 함께 일했던 동료 교사를 알아보지 못했던 미안함을 고백했다. 무신경함이 때로는 누군가에게 큰 상처가 될 수 있다는 걸 깨달았다. 백은혜 역시 자신이 오해하고 있었다고 털어놓았다. 사는 게 놀이터인 사람은 없었다. 누구나 힘겹게 어깨에 자신의 짐을 짊어진 채 1,000m를 달려가고 있었던 것이다.


지난 1월 13일 방송된 tvN <블랙독> 9회(시청률 4.393%)는 입시설명회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학교 내의 다양한 이야기들을 몰입감 있게 풀어냈다. 배은혜의 상처를 치유한 예수정의 온기는 보는 이들의 마음을 뭉클하게 했다. 이를 통해 우리 주변의 이들을 돌아볼 심적 여유를 가지도록 했다. 누군가를 기억하는 건 매우 사소한 일이지만, 한 사람의 삶을 바꿔놓기도 한다는 걸 새삼 깨달을 수 있었다. 


또, 성장을 보여주기 위해 밑바닥을 내보이는 강의 전략을 짠 고하늘의 성장도 인상적이었다. 이번에도 한걸음 더 나아갔다. 마지막 장면에서 고하늘은 생업으로 바쁜 엄마가 끝내 입학설명회에 오지 않아 슬픔에 빠진 진유라(이은샘)를 위로하기 위해 달려갔다. 쪼그려 앉아 울고 있는 유라의 옆에 함께 앉아 ‘저녁은 먹었니?’라고 말을 건네는 고하늘의 모습은 감동적이었다. 우리는 이런 선생님을 기다리고 있었던 모양이다.

* 외부 필진 버락킴너의길을가라 님의 기고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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