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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썰

전쟁이 일어나면 당신이 겪게 될 일들

한 독일병사가 남긴 세계제2차대전 D-Day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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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이 터지면 대부분의 철부지가 겪게 될 땅개의 비극을 알려주려고자 D-Day 당시의 참혹한 기억을 정리해 보기로 했습니다. 이야기의 주인공은 프랑스 코탕탱(Cotentin) 반도의 709보병사단 919척탄병연대 소속 스테판 하이네베츠(Stefan Heinevez) 병사로 유타(Utah) 해변에서 D-Day를 맞이했습니다.

오마바 해변의 독일군 방어시설입니다. 꽤 공들여 구축한 시설이지만 연합군의 물량 앞에서는 아무런 소용이 없었죠.

1943년, 그는 시실리에서 부상당한 후 다리를 절게 되었고 대서양 장벽 토브룩 벙커에 배치되었습니다. 토브룩은 한두 명이 들어갈 수 있을 정도 규모의 원형 콘크리트 벙커입니다. 덮개가 있는 형태가 있고 없는 형태가 있는데, 적 보병이 대형방어시설에 접근하지 못하게끔 노획한 프랑스나 체코전차 포탑을 올려 둔 형태도 있었습니다.

대서양 장벽에는 주로 부상병이나 외국군(탈영해 고향에 돌아가지 못하도록)이 배치되었지만 흔한 오해와 달리 전투력이나 사기가 떨어지는 2급 전력이 아니었다고 합니다. 하이베네츠와 함께 배치된 제프(Sepp)도 벨기에인으로 자원입대했습니다.

당시 부대는 전투경험을 가지고 있는데다 연합군의 침공을 이미 예상하고 있었기 때문에 긴장감이 높았습니다. 아직까지는 해볼 만하다는 자신감이 남아 있었고 프랑스를 내주면 고향의 가족이 위험해진다는 위기의식으로 사기가 높았습니다.


하지만 D-Day 직후 연합군의 압도적인 물량공세를 직접 경험한 후 그들은 도저히 이길 수 없는 전쟁이라는 것을 절감했고 그 뒤부터 대대적인 탈영과 항복이 이어집니다. 일반 병사의 눈을 통해 전쟁이 얼마나 무서운지를 느껴보시기 바랍니다.

독일병사의 눈으로 본 D-Day. 1부

장교가 자정을 넘어 오토바이를 타고 토브룩으로 오더니 상황이 심상치 않다고 했다. 남쪽에 공수부대가 투하되었으며 연대장이 상황에 대해 잘 알고 있다고 말했다. 어둠 속에서 항공기 움직임이 더욱 활발해졌다. 탐조등과 대공포가 서쪽을 향했는데 탐조등 전력이 부족해서 소용이 없었다. 북쪽 하늘 여러 곳에서 화염이 일어났는데 분명히 불타는 항공기였다. 제프와 나는 큰 걱정을 하며 새벽을 기다렸다.


남동쪽에서 폭발음이 들리기 시작했다. 장교에게 전화를 걸었는데 자리에 없었다. 새벽 동이 트면서 어렴풋이 하늘이 보이기 시작했다. 북쪽으로 향하는 쌍발항공기가 질서 없이 줄을 이었다.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검백색 줄무늬가 있었지만 항공기식별훈련에서 배운 C47형으로 공수부대 수송용이라는 것이 기억났다. 남쪽에 낙하산병 투하가 있었다는 것이 분명했다. 


이탈리아 참전 때와 같이 목이 마르고 손가락이 떨렸지만 장애에도 불구하고 연합군보다 잘 싸울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전투경험이 없는 제프도 동요하지 않았다. 그는 쌍안경으로 사방을 둘러보고는 남쪽에서 섬광이 보인다고 알려주었다. 그러다 갑자기 강력한 포격이 시작되었다. 낮은 비명소리를 낸 첫 번째 포탄이 우리와 방어거점 사이에 떨어졌다. 비명소리로 보아 포격이었는데 이탈리아에선 경험하지 못한 강력한 위력이었다. 우리는 바닥에 머리에 손을 올리고 바닥에 엎드려 있었다. 20분 정도의 포격 후에 저공비행 소음이 들렸다. 지휘소에 전화를 걸 수 없었다. 


그때의 장면이 지금도 생생하다. 조금도 과장하지 않고 영원히 그대로 남을 것이다. 해변 안쪽의 목장 소떼가 피를 흘리며 쓰러져 있거나 불이 붙어 날뛰고 있었다. 발에 불이 붙은 한 마리가 우리를 향해 돌진해 오기에 기관총으로 쓰러트렸다. 황당하게도 6월 6일, 첫 번째 사격이었다. 


방어거점 쪽은 먼지 때문에 보이지 않았는데 머스탱 전폭기가 땅에 처박혀 불이 나고 있었다. 대공포에 맞았는지 아니면 저공비행 중에 포탄을 맞았는지 모르겠지만 캐노피 안에는 조종사가 움직이고 있었다. 엔진 쪽에서 불이 크게 번지더니 불꽃을 날리며 폭발했다. 탄약이 터지며 사방으로 날아 다녔고 조종사는 보이지 않았다. 


하늘에는 다시 흑백색 밴드를 두른 항공기가 남쪽으로 저공비행하고 있었다. 독일공군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는데 아마 다른 병사들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다. 


남쪽에서의 공격에 대비해 기관총을 큐폴라링에 걸고 제프에게 뭐가 보이는지를 물었다. 제프가 돌아보며 대답하려는 순간에 목이 뚫렸다. 목뒤로 총알이 뚫고 나가며 피와 피부가 뿌려지는 것이 보였다. 다시 한 발이 가슴을 뚫고 등으로 나왔다. 말 그대로 눈앞에서 조각나 버렸다. 나는 적이 안 보였지만 남쪽으로 기관총 세례를 퍼부었다. 


나무 한쪽에서 작은 물체가 보였는데 이탈리아에서 봤던 연합군의 수류탄이었다. 다행히 내 앞에 오기 전에 터졌고 얼굴과 어깨에 작은 파편이 튀었지만 큰 부상은 아니었다. 즉시 50m 밖의 나무를 쏘아 산산조각냈다. 그러다 내 왼쪽에 뭔가 움직이는 것을 보았다. 다친 소라고 생각했는데 그물망을 씌운 녹색 철모가 보였다. 미군이었다. 그를 향해 쐈고 철모가 공중에 떠 있는 것을 보았다. 적의 손이 보이자 다시 기관총탄을 퍼부었다. 솔직히 말해서 아무런 느낌도 없었다. 포위된 상태였고 다른 위험을 찾느라 감정을 느낄 여유가 없었다. 포격의 충격으로 귀가 들리지 않아 걱정됐다. 


방어거점이 어렴풋이 보였다. 콘크리트 지붕이 내려 앉아 부서졌고 그 너머로 바다가 약간 보였다. 처음 보는 녹색 빛의 선박이 보였다. 한참 후에야 그날이 사상최대의 상륙작전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렇지만 그 당시 내가 본 것이라고는 모래 언덕 사이의 바다 한 부분뿐이었다. 탄창을 좀 더 가져온 후에 나무에 몇 차례 퍼부었더니 적 총탄이 기관총 방패로 날아들었다. 


귀가 먹은 상태라 아무 소리도 못 들었는데 갑자기 내 옆에 사람이 쓰러졌다. 그는 거점에서 달려온 병사로 가슴에 몇 발을 맞아 괴로워했다. 몇 명이 해변 쪽에서 벙커로 달려오고 있었지만 한 명씩 차례로 총에 맞아 쓰러졌다. 한 명은 머리에 맞아 뇌가 날아갔고 다른 한 명은 배를 맞은 후에 피를 토하며 다리를 끌었다. 다른 한 명은 목을 맞고 목 위가 거의 잘려나갔다. 나는 앞을 향해 오랜 동안 사격을 했고 그 덕분에 한 명이 내 뒤까지 다가왔다. 처음 보는 중위였는데 그가 가진 MP40로 장교라는 것을 알았다. 

그가 소리친 덕분에 겨우 알아들을 수 있었다. “적의 상륙전차가 해변에 올라와서 거점을 태웠다.” 상륙전차라니? 차를 잘못 본 것이라고 생각했다.

“방어거점이 사라졌다. 총을 가지고 나가자.”

“토브룩을 떠나라는 명령입니까?”

“병력을 데리고 다음 벙커로 가서 합류하지.”

남쪽 2km에는 또 다른 벙커 라인이 있었다. 해변에서 아군이 속속 나타났고 탄창을 비우며 엄호사격을 했다. 몇 명이 쓰러졌지만 나도 톰슨기관단총을 든 미군 3명을 쏘았다. 중위가 몸을 일으켜 일부러 목표물이 되었는데 아무도 쏘지 않았다. 그는 이동하자고 소리질렀다. 땅에 쓰러진 3명의 미군을 지날 때에 갑자기 한 명이 움직였다. 중위는 재빨리 기관단총으로 머리를 쏘았고 다른 두 시체도 확인사살했다.


한 명이 톰슨총과 여분의 탄창을 집었다. 절대로 하지 말아야 할 행동이었다. 적의 무기를 든 채로 포로가 된다면 우리나 연합군이나 그대로 둘 리가 없었다. 동부전선이라면 현장사살감이었다. 그렇지만 톰슨은 대단한 무기였고 1930년대부터 갱 무기로 유명했기 때문에 그럴 만도 했다. 온전치 않은 다리를 끌며 최선을 다해 움직이는데 중위가 큰 소리로 저주를 했다. 주변을 보니 2명이 사라졌다.

“탈영했군. 포로가 되고 싶었겠지. 거점에서 봤는데 연합군은 오늘 포로를 잡지 않을 생각이야. 놈들은 화염방사기로 모두 태워버렸어.”

중위가 물을 주었는데 놀랍게도 술이 많이 섞여 있었다. 중위는 여러 면에서 상반된 사람이었는데 이름은 결국 알지 못했다. 노동포로가 섞인 한 무리의 시민이 지나갔다. 중위는 프랑스어로 지하에 숨으라고 말했다. 수십만 명의 러시아, 폴란드 남녀가 프랑스 강제노동에 동원되었는데 농장 노동자로 보였다. 그 중 한 명이 뭐라고 말대답을 했고 중위가 갑자기 그의 가슴에 총을 쏴 죽였다.


적의 침투를 막기 위해 둑을 무너트려 저지대가 넘쳤다. 2km 너비가 1m 넘게 물이 찼는데 한쪽에 파모(Famo)반궤도 트럭이 약간의 기름이 남은 채로 그대로 있었다. 우리는 모두 올라탔다. 나중에야 알았지만 버려진 이유가 있었다. 파모는 전폭기의 좋은 사냥감이었다. 나무가 양쪽으로 우거진 긴 길을 몇 초 가기도 전에 전투기 한 대가 순식간에 지나가면서 총탄을 퍼부었다. 나는 뒷자리에 앉아 있었는데 총탄이 엔진과 운전석을 꿰뚫었다. 옆으로 떨어져나간 병사는 파모의 궤도에 깔려 완전히 으스러졌다. 파모는 엔진이 불타면서 확실한 표적이 되었고 우리는 모두 뛰어내려 길 옆으로 뛰어갔다. 전투기가 돌아와 파모를 완전히 박살냈다.

전투기 공습은 아주 가벼운 예고편에 불과했습니다. 그 뒤를 이어 끔찍한 공습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가던 길에 우리는 다른 무리를 만났고 이제 20명으로 불어났다. 그들은 해군, 보병과 러시아 의용군(ROA)이었다.

영화 <라이언일병 구하기>의 한 장면입니다. 두 병사가 항복하면서 본인들은 체코인이라며 살려달라고 애원하는데도 미군은 빈정거리며 사살합니다.

독일병사의 눈으로 본 D-Day. 2부

ROA(러시아 의용군)는 전쟁초반 소련과 폴란드에서 포로가 되었다가 국방군에 자원했다. 탈영이 우려되었기 때문에 노르망디에 배치되었는데 연합군에 다시 포로가 되면 보복을 당할까 두려워 최후까지 싸웠다고 들었다.


가끔씩 전투기가 다가와 기총소사를 하거나 그냥 지나갔다. 하늘에는 독일공군이 없었기 때문에 그들 마음대로였다. 총탄을 맞은 사람은 그냥 길 옆에 두고 떠났다. ROA 한 명이 배에 여러 발을 맞고 두 동강이 났는데 나는 현장에서 달아나느라 그 시체를 짓밟고 지나갔다.


갑자기 앞에서 총격이 있었고 한 명이 죽었는데 아군 토브룩이었다. 우리를 알아본 병사는 다른 병사에게 총을 쏘지 말라고 경고했다. 내 다리로는 달릴 수 없어서 혼자 뒤처져 있었는데 러시아 병사가 나를 도와주었다. 


두 번째 벙커 라인에 들어섰다. 100m 간격으로 땅 위에 약간 올라온 콘크리트 구조물로 도로가 아주 잘 보였다. 이곳에도 폭격이 있었지만 벙커는 무사했다. 주변에 반궤도트럭, 큐벨바겐, 오토바이와 마차가 뒤엉켜 있었다. 75mm 대전차포와 기관총도 여러 정이 있었고 참호와 벙커에는 해변에서 후퇴한 병사가 가득했다. 벙커 뒤에는 20mm 대공포도 있었다. 사방이 저지대이고 트여 있어서 적절한 위치의 방어거점으로 보였다. 의무병이 모르핀과 암페타민(각성제)를 섞은 음료를 주었다. 벙커 하나에 들어갔더니 내 MG34가 있어 무척 반가웠다.

75mm 대전차포도 있었고, 여러 개가 연결되어 있었다고 하니 이런 식의 벙커라인인 것 같습니다.

처음부터 벙커에 있던 병사는 우리에게 미친 듯이 질문을 해댔다. 전차가 있어? 화염방사기는? 등등. 거점에서 탈출한 병사들끼리 서로 본 것을 주장해댔고 공포분위기가 맴돌았다. 하사 한 명이 꾸짖자 조용해졌다. 하사는 남동쪽에서 증원군이 오고 있기 때문에 전차가 올 때까지만 버티면 상륙한 적을 바다에 다시 몰아넣을 수 있다고 말했다. 남쪽에 기갑사단이 배치된 것을 알고 있어서 다들 그렇게 생각했다.


시계가 부서져서 몇 시인지 모르겠지만 벙커에서 버티면 그만이었다. 벙커 안은 습기가 많았고 더워서 땀이 눈가로 흘러내렸다. 다들 무기를 들고 연합군의 공격을 기다렸다. 그렇지만 연합군은 우리가 기다리는 대로 공격하지 않았다. 


야보(Jabo, 전폭기)! 라는 외침이 들렸다. 콘크리트 창으로 밖을 내다보니 3대가 엄청난 속도로 급강하하고 있었다. 커다란 원통형 엔진을 가지고 있어서 썬더볼트라는 것을 바로 알 수 있었다. 도색이 거의 되지 않은 금속 그대로라 놀랐다. 대공포를 돕기 위해 기관총을 급하게 쐈지만 무의미한 짓이었다. 20mm 대공포탄은 매우 밝은 색으로 하늘을 향해 꾸불거리며 날아갔다. 몇 발이 전폭기 한대의 날개를 정확하게 맞춰 멀리 쫓았지만 다른 두 대가 다가와 100m 정도 높이에서 폭탄을 떨어트렸다.

정식명칭은 Republic P-47 Thunderbolt입니다. 1.13톤의 폭탄을 장착하고 12.7mm 기관총 8정(3,400발)을 탑재한, 그야말로 공포스러운 존재였습니다.

대부분의 항공기가 날개가 반쯤 날아가도 무사히 귀환할 수 있습니다.

그 짧은 순간이 기억에 영원히 각인되었는지 자세히 기억난다. 한 대가 2개씩 작고 검은 폭탄을 떨어트리자 우리 앞에서 튕겼다. 한 개는 바로 머리 위로 넘어가 벙커 사이로 갔고 다른 하나는 벙커 지붕을 맞고 꺾여서 다른 곳에서 터졌다. 우측의 토치카가 폭탄에 맞아 연기가 났지만 아직 그대로 서 있었다.


썬더볼트는 다시 다가왔다. 이번에는 6~8대였다. 한 대씩 차례로 폭탄을 퍼부었다. 대공포가 다시 한 대를 맞췄고 긴 연기 자국을 남기다가 벙커 왼쪽에 박히면서 터졌다. 대공포도 조용해졌고 폭탄은 연달아 떨어졌다. 그 중에 하나는 병사로 가득 찬 참호로 들어갔다. 폭발과 함께 동료들의 신체 조각들은 물론이고 무기와 군복조각이 사방에 흩뿌려졌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바닥에 엎드려 귀를 막고 있는 것뿐이었다. 


벙커가 여러 번 흔들렸고 콘크리트 창으로 파편과 잔해가 쏟아져 들어와 요란한 소리를 냈다. 포병 한 명이 비명을 질러댔고 전우들이 바닥에 눕히곤 두들겨 팼다. 다른 병사가 그 자리를 대신하는 동안 계속 숨죽여 흐느꼈다. 


다른 사람들은 십자성호를 긋거나 기도를 드렸고 욕을 퍼붓기도 했다. 잘 들리지 않았지만 다들 입술을 움직이고 있었다. 폭격은 겨우 1~2분에 불과했는데 영원처럼 느껴졌다. 벙커지붕이 크게 흔들리며 돌조각이 떨어져 나와 팔다리를 부러트렸다. 폭격이 끝날 때까지는 아무도 도울 수 없었다. 


이내 폭격이 멈췄고 나는 밖을 내다 보았다. 우측 토치카는 한쪽이 완전히 날아갔고 폭탄을 맞은 참호엔 팔다리가 잘린 사람 몸통이 검게 타 버린 채 연기를 내고 있어 끔찍했다.

철제 토브룩을 대량생산해서 쉽게 설치했는데, 이건 너무 심하게 두들겨 맞았군요.

‘또 야보다!’ 하는 고함소리가 들려 왔다. 미군은 항공기가 끝없이 나오는 모양이었다. 이번에도 썬더볼트였지만 날개 아래에서 흰색 빛이 연기를 내며 내려오는 것을 보니 이번엔 로켓이었다. 한 번도 가까이에서 로켓폭발을 본 적이 없어서 어떤 일이 벌어질지를 알지 못했다.


로켓은 어떤 면에서는 폭탄보다 더 악랄했다. 탄두에는 쉬이 하는 소음과 함께 백색 빛을 내며 폭발하는 인화물질이 있었다. 첫 번째 로켓탄이 다른 벙커에서 폭발했다. 백색 화염이 벙커를 뒤덮었고 마치 동물의 숨소리나 신음 같은 소리를 냈다. 


다른 로켓탄이 순식간에 우리 벙커라인을 덮쳤다. 한 발이 대전차포 창 밖에서 터졌고 인화물질이 쏟아져 들어와 포를 뒤덮었다. 불은 꺼지지 않았고 포병을 덮친 후에 탄약더미로 옮겨 붙었다. 포 부근에 있던 사람은 백색화염에 불탔는데 바닥에서 울던 병사도 근처에 쓰러져 있던 부상병도 모두 불탔다. 군복이 먼저 불타 벗겨지고 그 다음 맨살에 불이 붙었다. 75mm 포탄 한 발이 화염에 폭발했고 벙커 안을 이리 저리 부딪치며 사람을 토막 냈다.

별 것 아닌 것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127mm 로켓 10발을 장착한 모습입니다.

누군가 벙커 철문을 열어 제쳤고 나도 몸을 던졌다. 지옥에서 먼저 빠져나가려고 서로를 밀고 당겼다. 머리에 불이 붙어 쓰러진 누군가를 밟고 밖으로 나가 몇 발자국 달리다가 그만 뒤를 돌아보는 실수를 했다. 나는 실제로 지옥을 봤다. 평생 잊지 못할 끔찍한 광경이었다.


백색 인화물질은 여전히 폭발하며 미쳐 빠져 나오지 못한 사람을 산채로 태우고 있었다. 맨몸뚱이가 불을 덮인 채로 기어서 빠져 나오려고 했다. 대전차포와 기관총탄이 터져 안에 있는 사람들을 찢어 놓았다. 몇 사람이 등과 다리에 불이 붙은 채로 밖으로 나왔고 나는 다시 뒤로 물러났다. 비명과 신음소리만 들렸다. 


우측 벙커도 비슷한 상태였다. 한쪽 구멍에서 백색화염과 연기가 치솟고 있었다. 세 번째 벙커 철문은 닫혀 있었지만 창에서 화염이 쏟아져 나오고 있었고 연달아 폭발하고 있었다. 근처에 있던 트럭과 반궤도트럭도 옆으로 뒤집혀 조각나 있었다. 뒤에 있던 20mm 대공포는 폭격에 맞아 큰 구덩이가 나 있었다. 나와 몇 사람만 살아남았다. 


나중에 그것이 백린탄이라는 것을 알았다. 연합군이 처음 사용한 화학폭탄으로 액체처럼 불타 흐르며 모든 것을 태워버렸다. 참호에 있던 시체는 새까맣게 그을린 뼈만 남았고 나머지는 모두 불타 없어졌다. 


충격 때문에 아무런 생각도 하지 못하고 그대로 굳어져 있었다. 총도 없고 군복은 누더기가 되었고 모르핀 칵테일 약효도 떨어져서 몹시 떨렸다. 연기와 먼지로 뒤덮여서 주변을 알아보기 힘들었다. 그때 국방군 두 명이 다가왔고 우리는 주저 앉아 잠시 기다렸다. 장교는 나타나지 않았고 연기 속에서 나타난 다른 사람은 남동쪽으로 달아났다. 한 명이 판처슈렉(Panzerschrek)과 탄 두 발을 들고 나타났다.

판처슈렉은 88mm 대전차화기로 160mm 장갑을 관통시킬 수 있었습니다. 시가전에서 보병엄호가 반드시 필요한 무기였습니다.

도로 쪽에서 전차소리가 들려다 안 들렸다 했다. 다른 두 명은 벙커가 파괴되었으니 후퇴하자고 했지만 판처슈렉을 가지고 있는 한 명은 두 발을 쏘고 도망가자고 고집 부렸다. 200m 거리에서 연합군 전차를 부술 수 있고 아군전차가 도착하면 훈장을 받는다고 말했다. 그가 미쳤다고 생각했지만 나도 모든 것을 놓아버린 상태였다. 두 명은 벙커 뒤로 사라졌고 내가 장전수가 되기로 했다. MP40과 탄창 두 개를 집어 들었다. 도로가 잘 보이는 잔해 사이에 자리를 잡았다. 판처슈렉은 장전방법을 알려주고는 후폭풍을 피해 옆으로 가라고 말했다. 바닥에 엎드려 도로를 보니 불타는 나무연기 속에서 전차외곽이 보였다.


차체가 높은데다가 커다란 별이 그려져 있어서 목표물로 그만이었다. 거리는 200m 정도였는데 판처슈렉 사수가 “셔먼이야. 저 놈은 이제 끝났어.”라고 말하고는 내가 뭐라고 하기도 전에 발사했다. 발사관 뒤로 엄청난 스파크와 화염이 나와 얼굴이 화끈거렸다. 탄이 셔먼으로 날아가 차체 아랫부분을 때렸다. 폭발은 크지 않았지만 차체에서 철조각이 많이 떨어져 나왔고 트랙이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다. 전차는 심하게 요동을 쳤지만 차체기관총이 움직이지 않아 놀랐다. 장전수가 죽었다고 생각했는데 갑자기 포탑기관총이 사격을 퍼부었다. 셔먼은 불타는 소리가 들리더니 더 이상 사격을 하지 않았다. 해치에서 승무원이 빠져 나오고 있었다. MP40으로 기관단총을 든 병사를 먼저 쏘아 쓰러트렸고 나머지는 달아났다.

MP40 최대사거리는 200m입니다. 증언이 다소 과장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옆으로 돌던 두 번째 셔먼은 구동휠 옆을 맞아 트랙이 벗겨졌다. 백발백중의 엄청난 전과였다. 두 번째 셔먼은 대인탄을 쏘기 시작했다. 우리는 콘크리트 잔해 뒤에서 꼼짝도 하지 못했다. 그러다 다른 전차의 트랙소리가 들렸다. 조금 전까지의 승리감은 죽음의 공포로 바뀌었다. 판처슈렉 사수는 등과 목에 파편을 맞아 많은 피를 흘리고 있었다. 판처슈렉을 버리고 부츠에서 수류탄을 꺼내더니 내게 주었다. ‘전차에 수류탄을 던지라고?’하며 당황했는데 포로가 되느니 자폭하자고 말했다. 더없이 훌륭한 병사이거나 미친 놈이 분명했다.

독일병사의 눈으로 본 D-Day. 3부

우리는 프랑스를 방어해 본토를 지키는 일개 보병일 뿐이었다. 자살할 이유가 없었다. 콘크리트 잔해 뒤에 숨어 적이 고폭탄으로 우리 주변을 박살내는 동안 남쪽에서 다시 전차소리가 들렸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최후의 순간에 전차 지원군이 오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 짧은 순간에 대대적인 전차부대의 반격으로 미군을 다시 바다에 몰아넣는 상상을 했다. 그런데 나타난 건 3호돌격포 한 대뿐이었다. 낮은 차체에 75mm 대전차포를 장착한, 대전차용으로 유명한 포였다. 이탈리아에서도 많은 셔먼을 부쉈는데 이번에는 한 대뿐이었다. 혹시나 싶어 뒤를 계속 돌아봤지만 더 이상 없었다. 전차장이 상황을 알아보려고 단독으로 출격한 것이었다. 


3호돌격포는 우리 옆을 재빨리 지나쳐 가더니 도로 쪽에 몇 발을 발사했다. 충격과 폭발음이 들렸다. 판처슈렉 사수를 일으키려고 했지만 그럴 힘이 없어서 콘크리트 뒤에 눕히고 떠날 수밖에 없었다. 3호전차는 계속 포격하면서 서서히 후진했다. 전차장이 머리를 내밀고 빨리 올라타라고 손짓했다.

측면 장갑을 잡고 뒤에 올라탔는데 엔진배기구 때문에 엄청 뜨거웠다. 전차는 주변의 차량잔해를 밀어붙이며 남쪽으로 향했다. 도로에는 셔먼 3대가 주저 앉아 있었다. 두 대는 로켓탄에 맞았고 다른 한대도 불이 붙은 채로 서 있었다. 그 뒤에 다른 전차와 보병이 있었지만 길이 막혀 우리를 추격하지 못했다. 우리는 남동쪽으로 몇 km 이동해 숲 속에 모여 있는 소수의 기갑부대와 합류했다.


돌격포 몇 대, 대형장갑차 몇 대 그리고 하노마그 보병 약간이 전부인 부대였다. 10대와 30명이 전부였던 기억이 난다. 차량은 나뭇가지로 심하게 위장했고 아무도 숲 밖으로 나갈 엄두를 내지 않았다. 끊임없이 연합군 전폭기 소리가 들렸는데 우리에겐 대공포가 아예 없었다. 장갑척탄병에게 들으니 사단장이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 


본대를 찾을 방법이 없어서 장갑척탄병부대와 함께하기로 했다. 의무병에게서 각성제를 다시 받아 기운을 차리고 탄창과 수류탄도 받았다. 대부분 미군과 교전경험이 없는 어린 병사들이었다. 탄약상자 위에서 수프를 먹는 동안에도 썬더볼트는 머리 위를 오갔다. 


무장친위대 보병 소대가 합류했다. 모두 17살 정도로 어렸는데 MG34와 MP40으로 중무장한 모습이 너무나도 안 어울렸다.

장갑차 2대가 정찰을 나가 미군포로를 잡아 심문하기로 했지만 돌아오지 않았다. 숲 좌우 측에서 폭발음이 들려 이대로 있다가는 고립된다는 걱정이 컸다. 전차장이 사단장의 명령이 있었다며 남쪽으로 2km 떨어진 방어진지로 가자고 했다. 남쪽 길은 농장 트랙터나 다닐 만한 흙길이었고 좌우가 높은 프랑스 보카쥬(Bocage)였다. 보통 양쪽은 지뢰가 매설되어 있었다.

추축군과 연합군 모두 고통스러워 했던 프랑스 교외 흙길입니다.

기세좋던 영국군이 비트만에게 일격을 당한 빌레보카쥬가 생각나죠.

장갑차가 선봉에 서고 그 뒤를 하노마그 탑승 보병과 도보의 무장친위대가, 뒤는 3대의 돌격포가 지켰다. 가장 마지막 전차는 후진으로 이동했다. 좁은 데다가 굽은 길이 많아서 사람이 걸어가는 정도의 속도였다. 전차병은 공중에서 길가의 잡목과 구분하지 못한다며 느린 속도가 더 안전하다고 말했다. 다리장애 덕분에 돌격포에 올라 나뭇가지 속에 몸을 숨겼다.


길은 점점 내려 앉아 돌격포 포탑 위가 주변과 비슷한 높이가 되었다. 은폐하기에 최적이었지만 외통수이기도 했다. 전차장은 차량이 한 대라도 멈춘다면 그대로 뭉개고 지나가겠다고 경고했다. 미군 공수부대가 어디에서 갑자기 튀어나올지 몰라 긴장은 극에 달했다. 


실제로 길가에 낙하산과 시체가 몇 구 있었고 나무 위에 걸린 시체도 있었다. 굽은 길을 돌자 길가 위에 미군 시체가 더 보였다. 모두 무릎을 꿇고 등뒤로 손이 묶인 채로 뒤에서 총에 맞은 것처럼 보였다. 전차병은 분명히 SS 소년병 짓이라고 말했다. 이 장면을 보면 미군도 우리를 포로로 잡지 않을 것이 분명했다. 


목표까지 몇 km만 남았을 때에 야보가 남서쪽에서 다시 나타났다. 워낙 위장이 잘되어 있었기 때문에 그냥 지나쳐주기만을 기도했다. 처음에는 기도가 맞아떨어지는 것 같았다. 6대 중 처음 2대는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머리 위를 날아갔지만 그 다음 두 대는 급강하하더니 캐노피의 조종사와 얼굴이 마주칠 정도로 낮게 지나갔다. 전차병이 소화기로 사격했지만 효과가 없었다. 


썬더볼트 편대가 선회해서는 북쪽에서 남쪽으로 차례로 공격해 왔다. 우리는 절망적인 상황이었다. 썬더볼트 날개 아래에서 흰색 연기를 뿜으며 로켓이 날아들었고 우리는 피할 곳이 없었다. 나는 각성제를 먹은 힘으로 전차에서 뛰어내려 길가에 엎드려 숨을 죽였다. 이번에는 이탈리아에서 본 적이 있었던 고폭탄이었다. 그들은 우리 뒤의 미군 시체를 잘못 알고 산산조각냈다. 덕분에 학살의 증거는 사라졌다.


그렇지만 이번에는 우리 행렬을 노리고 날아들었다. 흙길은 순식간에 도살장으로 변했다. 로켓고폭탄이 돌격포에 떨어져 측면장갑을 찢어내고 위에 무성하게 덮여 있던 위장을 날려버렸다. 돌격포 두 대가 엔진데크에 맞아 불을 뿜었다. 후진하던 마지막 전차는 상부에 맞았는데 로켓이 뚫고 들어갔을 것이다. 좌우로 충돌하더니 상부가 폭발로 날아갔다. 


안에 타고 있던 전차병도 함께 치솟았고 잠시 후에 연기를 내며 철과 사람 살 조각이 사방에 떨어졌다. 로켓은 계속 날아들었다. 이번에는 좌우로 피신한 무장친위대 소년병을 쓸어버렸다. 절반 정도가 산산조각났고 내장이 터져 나가 안이 텅 빈 몸통이 불타고 있었다.

앞에 있던 소년병이 도살장을 빠져나가려고 했지만 로켓공격을 받은 하노마그가 후진하기 시작했다. 불길에 휩싸인 하노마그는 뒤에 있던 소년병들을 궤도로 깔아뭉개다가 불타는 돌격포와 부딪친 후에야 멈췄다. 흙길은 화염, 조각난 신체, 부숴진 차량과 폭발하는 탄약으로 뒤덮였다. 목숨을 건진 소년병은 불길에 탄약이 터지면서 부상을 입었다. 한 명은 불길에 휩싸여 일어섰다가 벨트의 수류탄이 터지면서 팔다리가 잘려나갔다.


야보가 북쪽으로 기수를 돌렸고 잔해에 등을 맞은 나는 호흡이 고통스러웠다. 나는 24시간도 안되어서 해변 벙커에서, 두 번째 벙커라인에서 그리고 기갑부대 행렬에서 세 번의 공격을 당했다. 연합군의 압도적인 무력에 좌절감을 느꼈고 차라리 항복하자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지만 한편으로는 죽을 고생을 다 한 후에 항복하기보다는 일단 다음 방어선까지 가자는 생각이 들었다. 살아남은 병사가 하나 둘씩 나타났다. 


부상병은 그대로 둘 수밖에 없었다. 모르핀이나 붕대도 없었고 내 몸 하나 가누기도 힘들어서 그들을 데리고 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 한 명은 내장이 튀어 나왔는데도 의식을 잃지 않고 손을 흔들었다. 다른 병사가 머리에 총을 겨누더니 고통을 덜어주었다. 그 상황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의 도움이었다. 


결국 목표로 했던 강력한 방어선에 도착했고 의무병의 진찰을 받아 갈비뼈가 여러 개 부러진 것을 알았다. 부상병 후송마차에 올랐는데 눈과 귀가 멀고 손이나 발을 잃고 심한 화상으로 군복과 피부가 달라붙은 병사들 틈에 있으려니 죄책감이 들었다. 회복병동에서 손을 움직일 수 있는 부상병은 화기를 수리하는 노동을 했다. 힘들지 않고 오히려 고통을 잊을 수 있어서 좋았다. 6월 6일에 겪었던 충격 때문에 밤에 잠을 자지 못했다. 부상병은 연합군을 직접 겪었기 때문에 더 이상 바다로 밀어 넣는다는 주장을 믿지 않았다. 오히려 파리를 내줄 것으로 생각했고 그 예측이 정확했다. 


7월에 재편성된 사단에 합류했다. 탄약을 수송하는 오펠 트럭 운전병이었는데 7월 말에 후방까지 침투한 미군에게 포로가 되었다. 끝까지 싸우라는 명령을 받았지만 소총과 수류탄을 가지고 셔먼을 상대할 수 없어서 순순히 항복했다. 우리는 해변 근처의 수용소로 옮겨졌는데 여러 국가의 포로 2,000명 정도가 있었고 병과는 매우 다양했다. 공군정비병도 있었다. 미군은 우리에게 관심을 두지 않아서 우리끼리 수용소를 운용했다. 


수용소에 있으면서 미군의 말도 안 되는 물량공세를 더 확실하게 목격했다. 모든 것이 기계화되었고 보급품도 트럭이나 기차로 운송했고 연료는 무한정 사용했다. 지프나 트럭이 고장 나면 수리하지 않고 공장에서 나온 신품을 바로 사용했다. 음식도 미국에서 만든 통조림을 먹었다. 우리가 프랑스를 지키기는커녕 조국도 지킬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끝.

상륙직후라 독일군 포로도 비교적 제 모습이었습니다.

포로가 신입포로에게 질문하는 모습인데 분위기가 상당히 즐겁죠? 동부전선과 달리 서부전선 포로는 귀향이 보장되어 있었습니다.

몽골부터 러시아인까지 다국적 의용군포로입니다.

망작 마이웨이의 소재가 된 사진 한장입니다. 일본인 또는 한국인이 독일군 포로로 잡힌 모습입니다. 왜 망작이냐고요? 폭탄에 맞아 공중 높이 떠도 사소한 찰과상이 전부였던 영화입니다.

* 외부 필진 우에스기 님의 기고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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