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댓글0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o i

번역할 언어 선택

뷰 본문

직썰

‘완벽한’ 성폭력 피해자는 이미 죽고 없다

무엇이 ‘착한’, ‘믿을만한’ 피해자인가?

3,394 읽음
댓글0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o i

번역할 언어 선택

정의의 여신상

출처ⓒ인터넷 갈무리

“For much of our history, the “good” rape victim, the “credible” rape victim has been a dead one.”

(대부분의 역사에서 “착한” 성폭력 피해자, “믿을 만한” 성폭력 피해자는 이미 죽어버린 피해자였다.)

– 캐나다 온타리오 법원, 2016년 07월 21일 선고, 2016ONCJ448 판결 [514] –

“착한”, “믿을 만한” 성폭력 피해자

캐나다 온타리오 법원의 마빈 주커 판사는 “진짜” 피해자가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가에 대한 비현실적인 기대들, 피해자가 멍청하게 혹은 부적절하게 행동한 것이 원인이라는 비난들을 일컬으며 이 해묵은 ‘강간 신화’[1]를 법정에서 추방할 것이라 말한다. 이제는 피해자에게 ‘무결함’을 요구하며 절벽으로 내몰 수 없다는 선언이다.

완벽한 피해자를 만드는 법(法)

대부분의 역사에서 “착한” 성폭력 피해자, “믿을 만한” 성폭력 피해자는 이미 죽어버린 피해자였다. 왜 이미 죽고 없는가? 피해자라면 응당 절개를 지키기 위해 사력을 다하다 그 자리에서 가해자의 손에 죽거나 미처 죽지 못했다면 치마를 뒤집어쓰고 뛰어내려서 결백을 증명해야만 하기 때문이다.


법은 철저히 남성의 언어로 고안됐다. 만약 여성이 법을 만들었다면 기원전 18세기경 최초의 법치국가 바빌론의 강간당한 기혼 여성들은 가해자와 함께 묶여서 강에 던져지지 않았을 것이다. 약 4000년의 세월이 흘러 문명사회에 들어선 법은 이제 여성을 강에 던지지 않는다. 대신 절벽 끝까지 내몰 뿐이다. 그렇게 진실을 말할 입을 잃었을 때, 피해자는 비로소 완벽한 피해자가 된다.

“사람들은 여성의 말을 4분의 1 정도만 믿는다. 한 남성이 가해자라는 사실을 사람들이 믿게 하려면 같은 일을 겪은 여성 4명의 고발이 필요하다.”[2]

부산페미네트워크가 부산지법 앞에 마련한 고(故) 구하라 님의 추모 공간

출처ⓒ부산페미네트워크
의심스러운 것은 피해자의 거짓말?

“In dubio pro reo”란 “의심스러운 것은 피고인에게 유리하게”라는 뜻으로 흔히 ‘무죄추정의 원칙’으로 해석되는 전통적 법언이다. 무죄추정의 원칙은 혐의의 입증책임을 국가에 귀속시킨다는 뜻이다. 피고인이 유죄 판결을 받기 전까지 증인을 거짓말쟁이 취급하는 일과 결코 같지 않다.


그렇다면 ‘의심스러운 것’은 무엇을 말하는가? 무죄추정의 원칙은 합리적 의심이 남지 않도록 하는 기준과 관련 있다. 1997년 캐나다 연방대법원이 정의한 합리적 의심이란 상상되거나 하찮은 의심이 아니다. 동정 혹은 편견에 기반하지 않아야 하며, 이성과 상식에 기반해야 한다. 합리적 의심은 증거의 존재 혹은 부재에 의해 논리적으로 추론된 것이어야 한다.[3] 


무죄추정의 원칙이 정말로 공명정대하고 합리적 의심이 정말로 합리적이라면 문제가 없다. 놓치고 있는 중요한 한 가지는, 누구의 이성과 상식이냐는 물음이다.

- 떡볶이가 화대라는 (남) 판사는 경계선 장애 청소년의 이성과 상식을 모른다.

- 레깅스 불법촬영은 성적 수치심을 유발하지 않는다는 (남) 판사는 피해 여성의 이성과 상식을 모른다.

남성의 언어(즉, 법)가 체화된 판사들은 ‘비장애인 이성애자 성인 남성’의 이성과 상식에 기반하여 사건을 해석한다. 그래서 “법대로 하라”는 외침은 여성들에게 그저 공허하다. 법의 객관은 남성의 주관과 다르지 않기에.

‘Ni Una Menos’는 단 한 명도 잃을 수 없다는 뜻의 스페인어로 2015년 아르헨티나에서 시작된 반여성폭력 운동 구호이다.

출처ⓒNicholas Allen
#NiUnaMenos, 단 한 명도 잃을 수 없다

여성의 말을 4분의 1만큼만 신용하는 것을 그들은 ‘합리적 의심’이라 이름 붙인다. 증인은 법정에서 “양심에 따라 숨김과 보탬이 없이 사실 그대로 말하고 만일 거짓말이 있으면 위증의 벌을 받기로 맹세합니다”[4]고 선서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재판장은 증언을 납득하기 힘드니 직접 불법촬영물을 확인하고자 했다. 생존자가 들려준 진실에 대한 법정의 대답은 확고했다. ‘가해자는 법을 두려워하지 말라, 거짓말쟁이가 되기 싫다면 피해자는 모든 비난과 책임과 수치를 짊어져라.’ 남자는 일상으로 돌아갔다. 여자는 영원히 일상으로 돌아가지 못했다. 또다시 한 명을 잃고 말았다. 이런 현실에서, 우리는 무엇을 기대할 수 있는가? 여성에게 ‘법대로’할 법(法)은 어디에 존재하는가?


[1] 강간에 대한 잘못된 통념을 이르는 말. 강간신화(Rape Myth)란 다음과 같다. 피해자가 사력을 다해 저항하지 않았다면 진짜 강간이 아니다. 대부분의 범죄자들은 피해자가 모르는 낯선 사람이다. 강간은 통제 불가능한 성욕 때문에 일어난다. 범죄자는 정신 이상자이다. 피해자가 먼저 유혹했을 것이다. Relationship & Sexual Violence Prevention Center, “Rape Myth and Facts”, Washington University in St.Louis


[2] Catharine A. Mackinnon, #MeToo Has Done What the Law Could Not, NY Times, Feb.4, 2018 


[3] R v. Lifchus (1997), 1997 CanLII 319 (SCC) 118 CCC (3d)1, 번역 출처: 한국성폭력상담소 


[4] 형사소송법 제157조 (선서의 방식) 

* 외부 필진 고함20 님의 기고 글입니다.

<직썰 추천기사>

직썰을 앱으로 만나세요.

(안드로이드 버전)

작성자 정보

직썰

    실시간 인기

      번역중 Now in translation
      잠시 후 다시 시도해 주세요 Please try again in a mo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