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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불륜 복수극’만 남은 ‘VIP’의 아쉬운 전개

“같이 가자, 지옥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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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문 중에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도대체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은 걸까? 소위 ‘VIP’라 불리는, 자본주의 사회의 최상위 포식자들의 민낯을 드러내고 싶었던 걸까. 비싼 옷과 우아한 명품들로 치장한 화려한 겉모습과 달리 그들의 내부는 썩어 있다는 사실 말이다. 혹은 VIP들을 근거리에서 뒤치다꺼리해야 하는 직업적 특성 탓에 조금씩 그들과 닮아가는 사람들(VIP 전담팀)의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걸까. 뭐가 됐든 참 애매하다.


스스로를 꽁꽁 싸매고 있던 SBS 월화 드라마 <VIP>가 9회 만에 ‘불륜녀 찾기’를 비롯한 몇 가지 비밀들을 털어놨다. 박성준(이상윤)이 바람을 피웠던 상대는 온유리(표예진)였다. 이로써 불륜 여부에 대한 의혹도, 사무실 내의 다른 용의자에 대한 의심도 풀리게 됐다. 또, 온유리는 성운 백화점 부사장 하재웅(박성근)의 내연녀가 아니라 혼외 자식이라는 사실도 함께 밝혀졌다. 


성준은 나정선(장나라)에게 부사장의 명에 따라 유리(라고 직접적으로 언급하진 않았다. 성준의 불륜 대상이 유리라는 걸 파악한 건 정선의 추리였다.)를 보살피던 중 연민을 느꼈다고 고백했다. 힘겹지만 꿋꿋하게 살아가는 유리의 모습에 조금씩 마음이 움직였던 것일까. ‘참 쉽지 않은 삶이었겠구나’로 시작된 측은지심은 곧 애틋한 감정으로 발전됐다. 그리고 모든 걸 파괴해 버렸다. 


유책배우자(혼인 파탄의 책임이 있는 사람)인 성준은 ‘깨진 유리 조각은 붙일 수 없다’며 이혼을 요구했고, 정선은 그 깨진 유리 조각 때문에 피를 철철 흘리는 건 나라며 울부짖는다. 그리고 정선은 이혼할지 말지 결정하는 건 자신이라고 못 박았다. 성준의 불륜 그리고 이어진 거짓말 등에 심한 배신감과 모멸감을 느낀 정선은 “전부를 잃는 게 어떤 건지 보여줄게. 같이 가자. 지옥으로”라며 복수를 준비했다.

그동안 <VIP>의 고구마 전개에 속이 답답했을 시청자들은 9회를 보고 숨통이 트였다 생각할 것이다. 꽤 많은 진전이 있었다. 불륜이 명확해졌고 그 대상이 밝혀졌다. (정선에게 문자를 보낸 사람은 아직 오리무중이다.) 그러나 여전히 이 드라마가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인지 명확히 알기 어렵다. 그저 매우 자극적일 ‘정선의 복수극’을 담고 싶었던 것일까.


안갯속을 헤매는 것 같던 상황은 해소됐지만, 문제는 캐릭터들에 대한 호불호가 너무 강력해졌다는 것이다. 성준과 유리의 불륜은 그 어떤 공감대도 끌어내지 못했다. 성준의 감정은 느닷없고 그 이후의 행동들 역시 너무 생뚱맞았다. 또, 유리의 입장에 감정 이입할 여지가 없다. 그리하여 시청자들은 오로지 정선에게 몰입할 수밖에 없다. 그 어떤 복수를 하더라도 지지할 수밖에 없도록. 


또 한 가지 안타까운 점은 여자 캐릭터들의 파편화다. 백화점이 배경인 <VIP>에는 유독 여자 캐릭터가 많은데, (권력 다툼 중인 임원진과) 성준을 제외하면 사실상 여자들의 독무대라고 할 수 있다. 능력이 출중하고 강단 있는 이현아(이청아), 승진에 애가 타는 워킹맘 송미나(곽선영), 내성적이지만 들풀처럼 강인한 온유리, 호탕하고 의리 있는 VIP 컨시어지 실장 강지영(이진희)까지.

그런데 이 매력적인 캐릭터들이 불륜이라는 소재에 휩싸이자 자신만의 이야기를 하지 못하고 고꾸라져버렸다. 현아는 급기야 사망한 VIP의 보관 물건을 훔치는 범죄자가 되고야 말았다. (이는 공론화되지 않고 유야무야 됐다.) 미나의 임신은 ‘누구의 아이냐?’라는 눈초리의 대상일 뿐이었다. 유리 역시 내연녀인가 아닌가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지영은 그저 ‘빅마우스’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이들 간의 긍정적인 상호작용은 찾아볼 수 없었다. 질투와 시기, 음해와 박해만이 남아 있었다. 또, 정선을 제외한 나머지 캐릭터들은 밉상이 돼 버렸다. 이제 드라마의 남은 추진력은 오로지 정선의 흑화일 뿐이고, 정선이 저들에게 얼마나 잔혹하게 복수를 하느냐에 드라마의 시청률은 요동칠 것이다. 실제로 더욱 자극적으로 변한 <VIP>의 시청률은 11%대로 뛰어올랐다. (8회 11.4%, 9회 11.3%) 


장나라를 비롯한 여성 배우들의 연기가 눈길을 끄는 반면, 그들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는 스토리 라인이 두고두고 아쉽기만 하다. <VIP>의 차해원 작가가 그저 ‘불륜의 권선징악’을 그리고 싶었던 것이라면 이렇게까지 판을 벌일 필요가 있었을까 싶다. 지금처럼 정선을 제외한 나머지 모든 캐릭터를 이해 불가의 영역으로 몰아넣어야만 속이 후련했을까?

* 외부 필진 버락킴너의길을가라 님의 기고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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