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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 신해철 소환한 '놀면 뭐하니?' PD 김태호의 천재성

조회수 2019. 10. 28. 10:35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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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성이 번뜩이는 기획이 이어지고 있다.
“저… 깜짝 놀랐고요. 해철이 형의 특유의 저음, 그 목소리가 바로 어제 녹음한 것처럼 생생하게 공연장에 가득 차는 게… 여러 가지 감정들이 밀려왔고 해철이 형 특유의 시적인 가사, 이야기 같은 것까지 느껴져서… 갑자기 몇 년 전에 우리 곁을 떠나셨는데 혼란스러울 정도로 여기 다시 지금 저 무대 뒤에 계신 듯한 느낌을 받았어요.”

낯선 멜로디에 익숙한 목소리가 무대를 채웠다. 트레이드마크라 할 특유의 저음이 공연장에 차곡차곡 쌓이기 시작했다. “해철이 형…?” 이적은 그 음성의 주인공이 고(故) 신해철이라는 걸 금세 알아챘다. ‘유고스타’(유재석+비틀스 드러머 링코스타)로 변신했던 유재석은 깔끔한 검은색 정장으로 갈아입고 다시 무대에 섰다. 그의 표정은 진중했고 비장했다. 객석은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시작 전부터 눈물을 훔치는 이도 있었다.


고(故) 신해철의 미발표곡 ‘아버지와 나 파트3”를 원곡으로 한 ‘STARMAN’이 울려 퍼졌다. 신해철과 평소 친분이 있던 이승환이 전체적인 곡 작업을 맡았고 국카스텐의 하현우가 보컬로, 유재석이 드럼으로 함께 참여했다. ‘마태승(마왕 신해철+서태지+이승환) 콘서트’ 성사를 코앞에 두고 안타까운 일을 당한 고(故) 신해철에게 ‘마음의 부채’를 갖고 있다던 이승환은 멋진 곡으로 그 부담을 덜었다.

‘지구의 별이 되어 살다 우주의 별로 돌아가다’라는 가사는 고(故) 신해철이라는 사람과 그의 삶을 잘 표현해 줬다. 5주기를 앞두고 비밀리에 만들어진 이 무대는 이적의 말처럼 뮤지션에게 바칠 수 있는 최고의 추모라 할 만했다. 현장에 있던 뮤지션들과 관객들은 감동적인 무대에 울컥했다. 방송을 지켜본 시청자들도 쉽사리 가시지 않은 여운에 한동안 먹먹했을 것으로 짐작한다.


MBC <놀면 뭐하니?> ‘유플래쉬’의 릴레이 음원 대장정이 막을 내렸다. 유재석의 척박하고 앙상한 8비트 드럼이 몰고 온 나비효과는 생각보다 거대했다. 우선, 다양한 음악인들의 참여를 끌어냈는데 사상 초유의 일이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로 호화로운 구성이었다. 펑키 마스터 한상원부터 멜로망스의 정동환, 새소년의 황소윤까지 나이와 장르를 불문하고 수많은 뮤지션이 한뜻으로 뭉쳤다. 


더욱더 흥미로운 건 단순히 많이 출연한 것에서 그치는 게 아니라 “(유재석 덕분에) 뮤지션들의 뒷모습을 엿볼 수 있었다”는 유희열의 말처럼 음악의 본질에 더 가까워질 수 있었다. <놀면 뭐하니?>는 하나의 노래가 탄생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노고가 요구되는지 보여줬다. 그리고 음악은, 아니 결국 우리의 삶은 협력을 통해 이뤄진다는 메시지까지 전달하는 데 성공했다.

김태호 PD는 거기에서 한발 더 나아가 히든 무대로 고(故) 신해철을 추모하는 노래를 선물했다. 그 또한 기존의 다른 곡들과 마찬가지로 릴레이를 통해 완성했다. 그 예상하지 못했던 감동적인 무대를 지켜보면서 ‘그래, 방송이란 이런 거지’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놀면 뭐하니?>는 방송의 위세가 전과 같지 않은 시대에 다시 한번 방송의 의미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듯했다.


게다가 <놀면 뭐하니?>는 단순히 시청률만으로 평가할 수 없는 프로그램이다. (<놀면 뭐하니?> 14회 시청률은 5.9%였다.) 그 까닭은 기존의 방송들과 달리 안정함보다는 실험적인 면모를 지녔기 때문이다. 관찰예능이 여전히 대세를 점하고 있고 먹거나 놀러 가거나 그도 아니면 가족들을 데리고 나오는 몇 가지 아이템이 기승을 부리는 현 상황에서 <놀면 뭐하니?>는 색다른 시도를 하며 안간힘을 쓰고 있다.

<무한도전> 종영 이후 휴식기를 가진 김태호 PD의 복귀가 확정됐을 때 그가 어떤 아이템을 들고나올지 무척 궁금했었다. 그러나 김태호는 ‘일회성 아이템’이 아니라 ‘영속적인 시스템’을 들고나와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했다. 릴레이를 통한 협력은 무한 확장 가능한 틀이었다. 드럼 독주회를 끝낸 유재석 앞에 하프가 놓인 건 이를 잘 보여준다. 심지어 음악뿐만 아니라 다른 분야에도 적용 가능하다.

“<전국노래자랑> 스무 번 이상 나가도 몰라보던데 이번에 방송 두 번 나가고 사람들이 전부 인사하는 게 불편하더라고. (웃음)”

한편, <놀면 뭐하니?>는 주말 황금시간대에 방송되는 만큼 중장년층 시청자의 유입이 무엇보다 중요한 숙제였다. 김태호 PD는 젊은 층에 유독 어필되는 쪽이었고 이는 장점이자 약점이기도 했다. 김태호는 그 빈틈을 트로트로 채워 넣었다. 유재석을 ‘유산슬’이란 무대 이름을 쥐여준 ‘뽕포유’ 역시 트로트계의 다양한 음악인들이 참여한다는 점에서 릴레이 방식과 무관하지 않다.


불과 15분 만에 ‘합정역 5번 출구’를 작곡하고서 별일 아니라는 표정을 짓는 ‘박토벤’ 박현우 작곡가를 비롯해 잘 알려지지 않은 음악인들을 소개하고 있다는 점에서 <놀면 뭐하니?>는 방송의 순기능을 충실히 보여주고 있다. 프로그램에 수많은 재능이 등장하지만, 그 판을 깐 김태호 PD 또한 방송으로 자신의 재능을 뽐내고 있다.

* 외부 필진 버락킴너의길을가라 님의 기고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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