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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일한 기록' 훈민정음이 세계에서 높이 평가받는 이유

‘조선왕조실록’도 함께 등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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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훈민정음』 해례본 어제 서문

1997년 10월 유네스코는 한국의 『훈민정음』을 『조선왕조실록』과 함께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했다. 유네스코가 고문서 등 전 세계의 귀중한 기록물을 보존하고 활용하기 위해 1997년부터 2년마다 세계적 가치가 있는 기록유산을 선정하는 사업에 첫 대상으로 훈민정음이 선정, 등재된 것이다.

1997년에 『훈민정음』과 『조선왕조실록』이 등재된 이래 2001년에 『승정원일기』와 세계 최초 금속활자본인 『불조직지심체요절』, 2007년에는 『조선왕조 의궤』와 『고려 대장경판·제 경판』, 2009년에는 허준의 『동의보감』, 2011년에는 조선 후기 왕들의 언동을 기록한 『일성록』과 『5·18 민주화운동 기록물』이 각각 등재됐다.

2013년에는 이순신 장군의 『난중일기』와 한국 근대화의 기록인 『새마을운동기록물』, 2015년에는 『한국의 유교책판』과 『KBS 특별생방송-‘이산가족을 찾습니다’ 기록물』, 2017년에는 『국채보상운동 기록물』과 『조선통신사에 관한 기록』, 『조선 왕실 어보와 어책』 등이 등재됨으로써 한국은 모두 16개의 세계기록유산을 보유하게 됐다.

‘세계기록유산(Memory of the World)’은 “전 세계 민족의 집단 기록이자 인류의 사상, 발견 및 성과의 진화 기록을 의미”(국가문화유산 포털)한다. 유네스코의 세계기록유산 선정기준은 대체로 다음과 같다.

① 국가를 초월하여 세계사와 세계 문화에 큰 영향을 준 자료

② 역사적으로 중요한 시기를 이해하는 데 필요하거나 그 시기를 특별한 방법으로 반영하는 자료

③ 세계사 또는 세계 문화 발전에 이바지한 지역에 대한 정보를 지닌 자료

④ 세계사 또는 세계 문화에 이바지한 인물과 관련이 있는 자료

⑤ 세계사 또는 세계 문화의 중요한 주제를 기록한 자료

⑥ 형태와 스타일에서 중요한 표본이 된 경우나 뛰어난 미적 양식을 보여주는 자료

⑦ 한 민족의 문화를 초월하는 뛰어난 사회적·문화적 또는 정신적 가치를 가지는 자료

1997년에 처음으로 시행하게 된 세계기록유산에 『훈민정음』이 선정된 것은 바로 이러한 기준에 부합하는 기록유산이었기 때문임을 말할 필요도 없다. 무엇보다도 『훈민정음』은 지구상에 쓰이고 있는 문자 중 유일하게 누가 만들었는지, 어떤 원리와 과정을 거쳐서 만들었는지가 기록돼 있는 유일한 문자이다.

인류 문명의 핵심인 ‘문자를 만든 과정이나 결과에 대해 기록’해 놓은 기록물은 지구상에 『훈민정음』 하나뿐이다. 훈민정음은 ‘문자의 창제와 운용에 관한 사항’을 모두 기록해 놓은 지구상의 유일한 책이다.

『훈민정음』은 세종대왕(재위 1418-1450)이 직접 1443년(세종 25년) 12월에 창제하여 1446년(세종 28년) 9월에 반포했다. 세종은 <훈민정음>이라는 책자를 만들어서 이 독창적인 문자를 온 나라에 알렸다. 오늘날 국경일인 한글날(10월 9일)은 이날을 기념하고자 제정한 것이다.

▲ 훈민정음 해례본 합자해 부분

세종의 훈민정음 반포에는 세종의 ‘어제 서문’과 본문에 해당하는 ‘예의’와 ‘해례’, 그리고 정인지가 쓴 ‘서’로 구성된 『훈민정음 해례본』이라는 해설서가 포함됐다. 『훈민정음』 원본으로 불리는 이 책은 국보 70호를 지정돼 있으며 현재 간송 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다. 

세종은 자음은 발성 기관인 입과 혀의 모양을 본뜨고, 모음은 대자연의 기본 요소인 하늘과 땅과 사람(천·지·인)의 삼재의 모양을 본떠서 훈민정음 스물여덟 글자를 만들었다. 이 ‘문자 체계의 혁명’에 힘입어 사람들은 한자로는 쓸 수 없던 우리말을 완벽히 표기할 수 있게 됐다. 

표의문자인 데다가 글자의 획이 복잡해 쓰기도 쉽지 않았던 한자 대신 표음문자인 한글의 등장은 문자에 대한 접근성을 높였다. 성리학을 공부한 양반의 전유물이었던 문자를 초보적 형태지만 서민들도 쓸 수 있게 된 것이었다. 누구나 쉽게 배워서 일상의 말을 완벽하게 적을 수 있게 됨으로써 조선 후기에는 평민문학이 출현하는 등 민족문화도 새로운 차원으로 발달하기 시작했다.

한글은 그 독창성은 말할 것도 없고, 대체 불가능한 문자로서 누구나 쉽게 배울 수 있어서 한국인의 문해율을 결정적으로 높일 수 있었다. 오늘날 유네스코가 문맹 퇴치에 이바지한 이에게 주는 상을 세종대왕상(King Sejong Prize)이라고 일컫는 사실이 『훈민정음』이 세계 문화에 끼친 영향을 보여주는 것이다.


*덧붙임: 훈민정음이 세계기록유산 등재가 확정된 10월 1일은 그 55년 전인 1942년 한글을 연구하던 국어학자들을 일제가 ‘민족의식’ 이유로 검거·구속한 '조선어학회 사건'이 일어난 날과 겹친다.

1942년 10월 1일 일어난 조선어학회 사건은 33명이 검거되어 최종 기소된 이는 12명이었다. 이들에게는 “고유 언어는 민족의식을 양성하는 것이므로 조선어학회의 사전 편찬은 조선 민족정신을 유지하는 민족운동의 형태다…….”(함흥지방재판소의 예심종결 결정문)라 하여 ‘치안유지법’의 내란죄가 적용됐다.

복역 중 1943년 12월에 이윤재(1888~1943)가, 1944년 2월에는 한징(1886~1944)이 옥중에서 순국했다. 이극로(1893~1978), 최현배(1894~1970), 이희승(1896~1989), 정인승(1897~1986)은 1945년 해방이 되고 나서야 석방됐다.

숙원인 <조선말 큰사전> 간행을 앞두고 일제는 조선어학회의 주요 구성원인 한글학자들을 치안유지법으로 엮어 구속함으로써 이 조직을 궤멸시키려 했다. 그러나 3년이 채 되지 않아 일제는 패망했고 조선어학회는 복원됐다.

조선어학회는 1947년에 <조선말 큰사전> 1권을 을유문화사에서 간행했고, 이후 1957년까지 마지막 6권을 펴냄으로써 조선어사전 편찬사업을 마무리할 수 있었다. 오늘날 우리가 한글을 자랑스럽게 쓸 수 있음은 이들의 희생과 헌신 덕분임은 말할 나위가 없다. (관련 글: 일제, ‘조선어학회 사건’ 기획, 검거를 시작하다

* 외부 필진 낮달 님의 기고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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