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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은 온전한 '개인'이었을까?

조회수 2019. 8. 20. 14:32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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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에서 암묵적으로 작동하던 엘리트의 가족주의가 공론장에 드러났다

맞지 않는 안경을 쓰면 시선이 어그러진다. 조국 후보자를 바라보는 시선에 대한 얘기다. 두 가지 정도 사회학적인 얘기가 가능할 것 같다.


1.


우선 ‘친인척’을 걸고 넘어지는 것에 대한 문제라거나, 친인척의 문제까지 후보자의 자질과 엮는 것은 문제라는 비판은 개인주의와 핵가족 제도를 전제로 하고 있다. 말하자면 개인의 책임 범위는 핵가족에 머무르며, 또 이런 시각으론 성인이 된 자식의 죄라는 부모 개인에게 물을 수 없다는 결론에도 이를 수 있다. 나에겐 이것이 상식적인 감각이다.


그러나 ‘압축적 개인화’ 과정을 겪은 한국사회에서 이런 윤리가 꼭 일반적으로 통용되진 않는다. 재벌가가 아주 대표적인 사례이고, 그외에도 이 사회의 많은 엘리트층은 사돈에 팔촌까지 부정한 부의 축적에 끌어들여 한 편을 먹는다. 특히 엘리트일수록 개인주의보다는 가족주의에 가까운 것이 한국의 현실이다. 가족을 통해 개인의 출세와 부의 축적에 동원할 수 있는 자원이 다르기 때문이다. 지금 조국을 바라보는 미디어의 일반적 시선도 이런 시대적 감각을 갖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허나 일반적인 엘리트의 출세 및 부의 축적 방식이 꼭 조국 후보자 일가의 경우에도 드러맞는다고 말할 순 없다. 그렇다면 조국 후보자가 온전히 ‘개인’이었을까. 아니면 가족주의적으로 일가의 출세와 부의 축적에 기여했는가. 이것이 첫 번째 쟁점이고, 이 둘 사이 어딘가에 조국 후보자가 위치하고 있지 않은가 싶다. 전자일수록 지금 시대의 평균적인 감각에 가깝다면 후자일수록 엘리트만의 감각에 가까워진다. 미디어는 후자의 시선으로 ‘혐의’를 갖고 조국 후보자를 바라보고, 대중은 전자의 눈높이로 바라본다. 경제적, 사회문화적, 그리고 담론적 양극화이고, 양극의 시선 모두 조국을 정확하게 읽어내는 데 성공하고 있는지 의문이다.



2.


물론 이런 쟁점은 조국 후보자의 청문회 통과 여부와는 꽤 무관한 쟁점일 것이다. 전공자로서 내 관심사는 사회학적으로 흥미로운 쟁점을 다뤄보는 것이기도 하다. 앞서 서술한 개인주의와 가족주의라는 두 가지 방식(동시에 시선 혹은 담론)의 차이는 조국 후보자에 대한 평가의 방식과도 연결된다. 한국 엘리트의 가족주의에 익숙한 사람은 조국 후보자에게 도덕주의적인 평가를 가하는 경향이 있다. 마치 혼네와 다테마에를 구분하는 것처럼 공사를 구분하여, 사적인 현실에서는 가족주의와 인맥을 동원한 출세와 패거리 형성에 스스로 동참하지만, 공적인 명분의 차원에선 이것을 도덕적인 문제라고 인식한다.


이러한 기묘한 도덕주의는 불법/합법을 넘어선 문제다. 김의겸 대변인 때와 같이 조국 후보자의 경우에도 불법과 합법이라는 쟁점과 엘리트 가족의 출세 및 재산 증식 방법이라는 쟁점 두 가지가 뒤섞여 있다. 그렇기에 법적 문제는 아니지만 도덕적으로 문제다, 혹은 반대로 법적으로 문제될 게 없으므로 개인의 자유의 차원이다, 라는 논리들이 등장한다. 그래서 법적으로 문제가 아니라면 도덕적인 문제인가 아닌가가 중요한 쟁점처럼 보인다.


그러나 개인주의의 입장에 선 다수 대중의 시선은 그와 다르다. 국가나 사회가 아니라 가족복지로 버텨온 사회에서, 출세를 위해 투자할 자본이 없는 가족은 그 끈끈함을 쉽게 상실한다. 애초에 가족구성원(주로 장남)의 출세에 가족의 자본을 투자해온 것은 그것이 가족 전체의 이익으로 돌아올 것이란 믿음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투자 자본이 없다면 애초에 가족의 유대 자체가 무의미해진다. 없는 집안에는 빚과 상속 문제로 대가족이 갈라선지 오래이며, 핵가족의 경우에도 없는 집안일수록 상대적으로 그 유대가 약해진다.(사실 가정폭력도 빈곤이라는 원인에 의해 촉발되는 경우가 상당하고.)


이렇게 계급계층적인 수준에 따라 ‘개인주의’를 강요받는 조건이 달라진다. 이런 입장에 서서 조국 후보자를 바라보면 그것은 도덕주의보다는 계급적 박탈감으로 다가온다. 불법/합법이나 부도덕/도덕은 이미 그런 행위를 할 자본이 있는 엘리트들의 담론에 가깝다. 반면 없는 사람들에겐 도덕 이전에 실존적인 격차로 다가온다. 자신과는 전혀 다른 세계의 이야기로 들리기 때문이다. 문제는 미디어나 정치가 조국 후보자 논란을 이런 입장에서 다루지 않는다는 것이다. 엘리트와 대중의 간극이 벌어지지만 정작 언어를 다루는 엘리트들은 대중의 삶엔 관심을 갖지 않는다.


3.


조국 후보자의 변에 따르면 고딩이 논문 저자로 이름을 올리는 게 특별히 불법은 아니라고 한다. 이공계가 아니라 모르겠지만 그럴 수 있겠지 싶은 해명이다. 하지만 앞서 언급한 것과 같이, 현실에서 암묵적으로 작동하던 엘리트의 가족주의가 공론장에 드러나는 것과 같은 충격을 준다. 그렇게 경력과 실력을 쌓아 출세의 길을 걷는 것이 누군가에겐 자신과 아주 먼 세계의 얘기처럼 들린다. 문재인 대통령은 후보 시절에 ‘기회의 평등’과 ‘과정의 공정’을 누누이 얘기했지만, 그것이 계속 공염불처럼 들릴 수밖에 없다. 조국 후보자는 사노맹의 지향을 오늘날의 ‘경제 민주화’라고 설명하는데 그 역시 참 공허한 말이다. 나는 참 노회찬이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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