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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사 사죄 위해 임종 직전 한국 찾은 일본 할머니의 사연

3·1절 100주년인 올해 마지막 한국 여행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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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에다 다쿠오 제공/서울신문

“일본은 한국에게 진심 어린 사죄를 해야 한다”고 주장해온 일본의 1928년생 에다 유타카 씨가 지난 3월 한국 여행을 끝으로 임종을 맞은 사실이 알려졌다.


서울신문에 따르면 8월 14일 에다 유타카 씨의 장남 에다 다쿠오에 따르면 할머니는 올해 3·1절을 앞두고 “죽기 전 나를 한국에 데려가 달라”고 부탁했다. 어릴 적 북한 압록강변의 산골에서 자란 유타카 씨는 “’순남이’라는 조선인 식모가 나를 정말 예뻐하고 잘해 주었는데 우리 어머니가 순남이를 얼마나 구박하고 괴롭혔는지 모른다”며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그게 마음에 걸려서 남북이 통일되면 꼭 순남이랑 살던 동네에 찾아가 용서를 구하고 싶었다”고 한다.


유타카 씨는 “한반도가 남북으로 나뉜 건 일본 때문”이라는 부채 의식도 가지고 있었다. 평소 유타카 씨는 “1945년 2월에 일본이 연합군에 항복하려 했으나 국가 지도부가 결단을 내리지 못했다. 이후 소련이 참전하면서 남북이 나뉘었다. 그러니 우리(일본)는 남북 분단에 막대한 책임이 있다”고 말했다.

서울 종로구 옛 일본대사관 앞 소녀상

출처©연합뉴스

그런 만큼 에다 유카타 씨는 지난해 열린 세 차례의 남북 정상회담에 큰 기대를 했다고 한다. 지난 2월 28일 휠체어를 타고 한국에 도착한 유타카 씨는 3월 1일 3·1절 100주년 광화문 기념행사에 태극기를 흔들고 다음 날에는 임진각 망배단을 찾아 남북통일을 기원했다. 3월 3일 서대문 형무소에 방문할 때는 “많은 이가 고통받고 죽어간 이곳을 내가 앉아 갈 수는 없다”며 휠체어에서 일어났다. 한국 여행의 마지막 날에는 옛 일본대사관 앞 평화의 소녀상을 찾았다.


에다 유카타 씨는 한국 여행이 끝난 후 10일 후인 3월 14일 세상을 떠났다. 그는 자신을 화장한 뒤 어릴 적 살던 북한 압록강 근처에 산골(화장한 유골을 가루로 만들어 지정된 장소나 산・강・바다 등에 뿌리는 것)해달라 유언했다. 


에다 유카타 씨의 이야기가 알려지자 한국 누리꾼들은 “이런 분들이 많아지면 좋겠다”, “감동했다. 나도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도록 더 노력해야겠다”, “할머니의 손주도 올바른 역사관을 물려받았을 것”이라며 감동을 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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