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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경제보복’과 ‘불매’ 사이에서 생각해볼 5가지

일본의 의도는 한국의 신뢰 상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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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베 신조 일본 총리

출처ⓒ연합뉴스

8월 2일 일본 정부의 한국 ‘화이트리스트 배제’가 각의에서 통과됐다. 때문에 통보 후 21일 뒤인 8월 28일부터 본격적으로 시행된다. 일본은 공식적으로 한국과의 외교 관계를 격하시켰다. 실제로 이를 행정적 절차로 시행함으로써 그 파장을 장기화했다. 이제 게임은 시작됐다. 좋든 싫든 우리는 게임에 응해야 한다.


다만 여기서 중요한 것이 몇 가지 있다. 이번 사태를 두고 우리가 마치 “이번 기회에 일본을 한 번 손 봐주자”라던가 “일본 놈들에게 본때를 보여 주자”와 같은 마음을 가져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아베 정권과 일본 우익들은 한국인들이 이런 마음을 갖길 바라고 있을 수도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까.

1. 일본의 의도는 한국의 신뢰 상실이다

일본 아베 총리와 문재인 대통령

출처ⓒ연합뉴스

일본 정계에서 한일관계를 이야기할 때 ‘한국은 골대를 자주 옮긴다’는 말을 하곤 한다. 한국은 정권 교체 시기마다 대일관계의 원칙을 뒤바꾼다는 것이다. 일본 입장에서 한국을 신뢰할 수 없다는 이야기다. 이번 화이트리스트 배제 역시 공식적인 이유는 한국이 전략물자 관리를 제대로 하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표면적으로 강제징용 피해 보상 등의 한국 사법부 판결을 문제 삼은 것이 아니다.


일본은 ‘국제적 협약에 의해 약속된 전략물자의 관리를 올바르게 수행하지 못하는 국가를 특별대우가 가능한 우방이라고 볼 수 있겠는가’라는 질문을 국제 사회에 던진 것이다. 이에 대해 한국 측의 공식적인 응답은 “지금 두들겨 맞으려고 그런 소리 하시냐”가 아니라 “너나 잘하세요”가 돼야 할 것이다. 비록 그 이면의 이유는 일본 기업의 자산 압류라는 사법부 판결에 있겠지만 국제 사회의 시각은 이와는 다를 수 있다. 


때문에 게임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지금 일본에 제대로 맞대응하려면 시민사회에서 다소간의 과격한 레토릭을 줄여나갈 필요가 있다. 경기 시작 전 열띤 응원전을 펼칠 때는 죽이니 살리니 할 수 있다. 다만, 링 위에서도 흥분해 상대방을 혼쭐낼 생각에 골몰하다가는 상대의 의도에 말려들게 된다.

2. 재화는 불매하되 마음은 불매하지 말자

출처ⓒ연합뉴스

나는 지금까지 일본 불매운동에 대해 명확한 행동을 하지 않았다. 그 이유는 바로 1번을 생각해봤을 때 불매운동으로 인한 민간 교류의 부수적 피해(collateral damage)가 결국 한국에 대한 국제사회의 신뢰 상실로 이어질까 우려됐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느 한 국가가 타국에 대놓고 경제적 손실을 입히려 드는 마당에 가만히만 있을 순 없는 노릇이다. 


문제는 이러한 부수적인 피해가 ‘일본국’이 아닌 ‘일본인’에게 확대되는 경우다. 독도 갈등이 불거진 2005년 일부 음식점은 “일본인과 개 출입금지”라는 안내문을 붙였다. 이를 보고 황당했다는 중앙일보의 칼럼이 아직도 기억난다. 물론, 현재 대한민국의 시민의식은 당시보다 더 성숙하다. 일본 정부에 대한 부정적인 감정을 한국을 방문하거나 거주 중인 일본인에게 표출해서는 안 될 것이다. 


일본의 시민사회는 2001년 새역모 교과서 사태 때 새역모의 교과서 채택률을 0.039%에 그치게 만든 민주적 성숙함을 보유하고 있다. 자유민주당(자민당)이 장기 집권하는 것과는 별개로 말이다. 일본국 정부와 우익을 불매할지언정 일본인 개인을 배척하기 시작하면 그것이 바로 한국의 신뢰도를 상실케 하는 것이며 일본의 우익 세력들이 노리는 바인 것이다. 

3. ‘적’이라면 가까이 두고 그들이 오게 하라

출처ⓒ구글 캡처

지난 7월 15일 몇몇 언론 보도는 당황스러웠다. 서울대학교 일본연구소가 2018년 8월 HK사업이 종료된 이후 연구 지원이 끊겨 학술 활동을 잠정 중단했다는 것이다. 보도 후 관정이종환교육재단이 2억 5천만 원을 쾌척해 잠시 숨통이 트였다. 하지만 임시방편일 뿐이다. 한편, 일부 광역단체는 한일 간의 스포츠·학술 교류 등 민간교류 일정을 취소하는 모습을 보였다.


외교 갈등이 번졌을 때 피해야 할 행동 중 하나는 한국 쪽에서 먼저 민간교류를 단절하는 것이라고 본다. 상대에게 또 다른 보복의 빌미를 던져줄뿐더러 한번 끊긴 민간교류의 맥을 다시 잇기는 쉽지 않다. 향후 더 큰 갈등의 원인을 만들 수도 있다. 현재 일본에서는 집권당인 자민당의 우경화와 그에 비롯된 한일 갈등이 지속되면서 지한파 의원들이 설 자리를 잃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이건 일본이건 서로 보이지 않는 안갯속에서 무기를 아무렇게나 휘두르다간 더 큰 상처를 입을 수 있다. 


때문에 어떻게든 일본과의 접촉면을 넓혀서 일본에 한국 사회의 목소리를 전달한 창구를 좁게나마 마련해야 한다. 민간교류의 중요성은 이럴 때일수록 더욱 크다. 이를 고려하지 않은 지방자치단체 등의 민간교류 일정 취소는 결국 특정 정치인들의 공명심에서 발로된 것일 뿐이라는 뜻이다. 특정 상황에서 적은 친구보다 더 가까이해야 하는 존재일 수 있다.

4. 시장은 불확실성을 싫어할 뿐이다

문재인 대통령

출처ⓒ연합뉴스

흔히 ‘불확실성 해소’라는 말을 한다. 일본의 경제 보복이 한국 경제에 가져오는 가장 큰 문제는 특정 금액의 손실이 아니다. 바로 “얼마나 손실이 날지 반대로 이득이 될지 도무지 모르겠다”는 불확실성이다. 만약 이 불확실성이 해소되고 윤곽이 드러나면 경제는 자연스레 손실을 치유하는 또는 이익을 향유하는 방향으로 흐르게 된다.


8월 2일 국무회의 중 문재인 대통령은 “승리의 역사를 다시 한번 만들어 내겠다”고 다소 강한 어조의 메시지를 전달했다. 정부는 시민들에게 ‘나가자, 싸우자, 이기자’ 식의 메시지를 내보내는 것보다 현재 정부가 예측 가능한 위험에 대해 어떻게 대처하고 불확실한 위험에 대비해 다양한 대처 방안을 마련하고 있다는 메시지를 내야 한다. 경제 심리에 제대로 된 보급을 제공해야 한다는 뜻이다. 


지금이야 막 일본에 공격당한 터라 사람들도 ‘나가자 싸우자 이기자’는 메시지에 호응할 수 있다. 하지만 사태가 장기화되고 2분기부터 시작된 경기 하강 국면이 지속되면 사람들도 지친다. 그런 상황에서 정부가 다시 한번 ‘돌격 앞으로’를 외친다면 정부에 대한 시민들의 신뢰도는 하락할 것이다. 경제는 심리의 집합이며 그 심리에도 보급이 필요하다. 그것은 정부의 올바른 메시지에서 오는 것으로 생각한다.

5. 기업의 대응을 지켜보자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문재인 대통령

출처ⓒ연합뉴스

이번 사태에서 기업과 관련해 몇 가지 기억에 남는 장면이 있다. 이재용 부회장을 비롯한 삼성의 수뇌부가 반도체 특수가스를 확보하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모습, 국내 중견·중소기업이 국내 반도체 대기업이 사용할 수 있는 수준의 특수가스 기술을 이미 보유 중이라는 일종의 낭보, 현대자동차가 과거부터 꾸준한 노력 끝에 상당 부분 국산화를 이룩했다는 소식 등이다.


이번 한일 갈등을 우려하는 사람들은 삼성전자가 일본과 거래를 끊더라도 차질 없이 반도체를 생산할 수 있다는 뉴스가 나온다면 안도의 한숨을 내쉴 것이다. 현대차가 일본산 부품이 없이도 미국에서 다시 잘 나간다는 이야기를 들어도 마찬가지다.  


엄밀히 보면 이번 한일 갈등은 이기고 지는 차원의 싸움이 아니다. 한국과 일본 중 어떤 나라가 국제사회에서 더욱 성숙하고 신뢰할만한 국가인지를 증명하는 것이다. 검증의 절차는 아마 많은 사람에게 희생을 요구하는 가혹한 과정이 될 수도 있다. 

* 외부 필진 님의 기고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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