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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을 지옥으로 몰고 간 ‘통킹만 조작 사건’

피격 사실을 조작해 참전 명분을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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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통킹만에서 북베트남 어뢰정으로부터 공격을 받았다는 미국의 구축함 매덕스(USS Maddox)

▲ 통킹만

1964년 8월 2일은 일요일이었다. 이날 미국 언론들은 베트남 통킹(Tonkin)만 해상에서 정찰 중이던 미국의 구축함 매덕스(USS Maddox)가 북베트남의 어뢰정으로부터 공격을 받았다고 보도했다.

미군 구축함이 공격받았다?

미 해군은 매덕스와 함께 작전하던 동급의 구축함 USS 터너 조이(Turner Joy)가 반격을 가해 북베트남 함정 1척을 격침하고 2척을 파손시켰다. 북베트남군에서는 10여 명의 사상자도 나왔다. 그러나 선제공격을 당했다는 미군은 한 명의 부상자도 없었다.


이틀 뒤인 8월 4일 미국의 존슨(Lyndon B. Johnson) 행정부는 매덕스와 터너 조이 구축함이 또 한 차례 공격을 받았다고 발표했다. 두 함정은 북베트남 연안으로부터 12해리(22㎞) 안에 들어와 활동하고 있었는데 주위에는 북베트남의 함정이 한 척도 없었다. 실제적인 공격은 없었는데도 구축함들은 자신들을 공격하기 위한 수중음파탐지기와 무선 신호를 발견했다는 것이었다. 


두 번째 공격에 관한 전문을 받고 존슨 대통령은 즉각 전면적인 보복 공격을 지시했다. 그는 그날 저녁 존슨은 다음과 같은 ‘대국민 선언문’을 발표했다.

“미국의 함정들은 공해상에 있었다. 미국의 함정들은 방어적 태세만 갖추고 있었다. 우리는 전쟁을 하고 싶지 않다. 그러나 북베트남의 이러한 불법행위로 인하여 우리의 남베트남 국민과 정부에 대한 총체적인 지원은 더욱 배가될 것이다.”

▲ 베트남전쟁 확대를 결정한 존슨 대통령

존슨의 연설이 끝난 뒤 미국의 전폭기들이 북베트남 연해의 어뢰정 기지와 원유저장고를 폭격했다. 의회에서는 미국이 베트남전쟁에 적극적으로 개입할 것인가에 대한 논의가 시작됐다. 미국의 대통령도 의회의 동의 없이는 임의로 전쟁 개입을 확대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미 의회에는 이 사건에 의문을 제기한 의원이 없지 않았지만, 재조사를 위한 전문은 제공되지 않았다. 주요 신문들은 정부의 발표를 중계하기 바빴다. 


8월 7일 마침내 의회에서는 존슨 대통령에게 전쟁에 대한 모든 권한을 위임하는 결의안, 이른바 ‘통킹만 결의’가 통과됐다. 이 결의안을 반대한 의원은 놀랍게도 단 두 사람뿐이었다. 그것은 사실상의 북베트남에 대한 선전포고였다. 이후 미국의 공개적인 군사 개입이 시작됐다. 

미국, 북베트남에 사실상 선전포고

그리고 마침내 남북 베트남 사이의 내전이었던 베트남전쟁은 미국 등 외국 군대가 개입하는 국제전으로 비화했다. 이 결의는 이후 250만여 명의 미군과 50여만 명에 달하는 한국군을 전선으로 투입했고 베트남 사람들을 끝나지 않는 전쟁의 고통 속으로 몰아넣었다.

▲ 미국이 참전하면서 베트남전쟁은 8년 이상 이어졌고 군인들은 말할 것도 없고 숱한 민간인이 희생됐다.

▲ 베트남전쟁은 일찍이 미군이 한 번도 만나지 못한 형태의 전쟁이었다. 전선은 정글뿐 아니라 주변에도 있었다.

결의안 통과 직후인 1964년 8월 14일에 타임(TIME)이 통킹만 사건에 대한 정부 안 논의가 부재했던 데 대해 의문을 제기했지만, 대중들은 아무도 이를 주목하지 않았다. 통킹만 사건의 진실은 1971년부터 그 실마리가 풀리기 시작했다.

▲ 박태균, 한겨레출판, 2015

1971년 6월 뉴욕타임스(New York Times)는 ‘통킹만 사건의 두 번째 교전은 미국이 북베트남 개입을 정당화하기 위해 조작된 것’이라고 보도했다. 기사를 쓴 실 니항 기자는 7천 쪽에 이르는 <펜타곤 페이퍼((Pentagon Papers)>를 입수해 분석한 결과 통킹만 사건의 두 번째 교전(1964. 8. 4.)은 사실이 아니라는 걸 밝힌 것이다.


또, 한나 아렌트(Hannah Arendt)의 <공화국의 위기: 정치에 있어서 거짓말(Crises of the Republic: Lying in Politics)>을 통해서 존슨이 통킹만 사건 직후 대국민 성명을 발표할 때 그 자신은 물론 맥나마라(Robert McNamara) 국방장관도 북베트남의 공격을 확신하지 못했다는 사실이 폭로됐다. 


20여 년 뒤인 1980년대에 관련자들은 증언을 통해 통킹만 사건에 대한 본격적으로 문제를 제기하기 시작했다. 이 증언을 통해서 드러난 것은 통킹만 사건은 그 실체가 매우 불분명한 대신, 그것이 베트남전 본격 개입의 기폭제가 됐다는 것은 분명하다는 것이었다.

“비행 중 매덕스호의 보복 공격을 목격했는데 그 근처에는 어떠한 북베트남의 해군 함정도 없었으며 단지 검은 바다와 유령만이 있었을 뿐이었다. 오히려 터너 조이호에서 매덕스호를 향해 무엇인가를 발사하는 것 같았다.”

- 해군 항공기 조종사였던 제임스 스톡데일(James Stockdale)의 회고록(1984년)

“북베트남 해군의 매복이나 공격에 대해서 전혀 확신할 수 없었고 그에 대한 전문을 분명하게 국방부에 보고했다.”

- 북베트남의 공격에 관한 전문을 보냈던 헤릭(John J. Herrick) 대령

“매덕스호에 가까이 있는 북베트남 함정으로부터 어뢰가 발사된 것 같다. 그러나 소리만 있었지 보이지는 않는다. 계속되는 매덕스호의 어뢰 관련 보고서는 분명하지 않으며 매덕스호 자체의 엔진 소리를 (어뢰 공격으로) 잘못 탐지한 것 같다.”

- 헤릭이 보낸 ‘북베트남 공격에 대한 전문’(1964.8.2.)’

“당시 미국 정부에서는 북베트남에 대한 폭격을 시작하기 위한 하나의 계기를 기다리고 있었으며 그것이 바로 통킹만 사건이었다.”

- 존슨 행정부 관료 조지 볼(George Bowl), 영국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2005년에도 뉴욕타임스는 통킹만 사건이 미 국가안보국(NSA)의 고의적 정보 왜곡이었다고 보도했다. 1964년 사건 당시의 문서를 조사한 NSA 역사담당관 로버트 하뇩(Robert J. Hanyok)은 1차 공격은 있었을 가능성이 있지만, 의회 결정의 결정적 계기가 된 2차 공격은 명백히 없었다고 결론을 내렸던 것이다.

▲ 미국은 전비로 111억 달러(80조 정도)를 소모하고 5만 8천여 명의 병사를 잃고도 전쟁에서 패배했다.

통킹만 사건이 시사하는 것은 냉전시대엔 국가의 결정에 이의를 제기하는 게 쉽지 않았다는 것이다. 냉전 시대는 ‘안보’나 ‘국익’이라는 이데올로기가 모든 이성적 논의를 제압해 버리면서 모든 국가 결정이 검증 없이 사실로 집행됐던 시대였다.

서서히 드러난 통킹만 사건의 진실

통킹만 결의에 따라 전권을 위임받은 존슨 행정부는 본격적으로 베트남전쟁에 개입하게 된다. 1965년 2월부터는 B-52 전폭기로 북베트남 폭격에 나섰고 연인원 250여만 명에 이르는 지상군도 파견하기 시작했다. 박정희 정권이 한국군 전투병을 파병하기 시작한 것도 같은 해였다. (관련 기사: 베트남으로부터의 귀환)


베트남전쟁은 대의도 명분도 없이, 세계 경찰국가를 자임한 미국이 개입해 수렁에 빠져버린 전쟁, 그래서 굴욕적인 패배를 당한 전쟁, 고엽제와 양민학살로 얼룩진 전쟁이었다. 제국주의에 대항한 ‘베트남의 민족해방전쟁’이기도 했고 “미국이 ‘반공 십자군 성전’이란 허울 아래 저지른 추악한 전쟁”(리영희)이기도 했다.

▲ 북베트남군에 의해 사이공이 함락(1975. 4. 30.)되기 직전에 헬리콥터로 탈출하는 남베트남 사람들

이후 8년간의 지루한 전쟁 끝에 1973년 1월 남북 베트남과 미국 사이에 파리평화협정(Paris Peace Accords)이 조인됐다. 그해 3월 말까지 미군과 한국군의 철수가 이뤄졌고 1975년 4월 30일 사이공이 함락되면서 남베트남은 패망하고 이듬해 베트남 사회주의 공화국이 선포됐다.


결과적으로 1964년 8월 2일에 발생한, 실체가 불분명한 양국 간의 군사적 충돌이 8년여의 전쟁으로 이어졌다. 의도됐든 되지 않았든 미국은 전비로 111억 달러(현재 가치로 700억 달러 이상, 80조 정도)를 소모하고 5만 8천여 명에 이르는 병사를 잃고도 이 전쟁에서 패배했다. 그러나 돌이켜보건대 ‘전쟁의 대차대조표’란 얼마나 속절없고 허망한 것인가.

* 외부 필진 낮달 님의 기고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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