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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인 성범죄' 애써 감싸는 언론, 대체 왜..?

조회수 2019. 8. 4. 13:0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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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인물은 언젠가 썩는다.

‘언론인 성범죄’ 감싸는 언론들!?

출처: ⓒ연합뉴스 캡처

7월 8일 SBS 간판 앵커였던 김성준 논설위원이 지하철에서 여성을 불법 촬영한 혐의로 입건됐다. SBS만 부끄러운 게 아니었다. 같은 날 KBS 13년 차 남성 기자(이모 씨)가 후배 여성 기자 여럿을 상습적으로 성희롱해 정직 처분을 받은 것이 뒤늦게 알려졌다. 여러 언론사는 동종업계 ‘언론인’의 성범죄 사실을 연일 보도했다. 그중 머니투데이의 7월 20일 자 기사 ‘정병국·김성준·강지환… 다 가진 남자들이 도대체 왜?’가 눈에 띄었다. ‘다 가진 남자들이 도대체 왜’?!

“김성준은 1991년 SBS 공채 1기 기자로 입사해 보도국 기자를 거쳐 보도국 앵커, 보도본부장까지 맡아 사회적인 지위가 높았다. (…) 전문가는 이들의 행동이 외적으로 모범을 보여야 한다는 압박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고 이 영향으로 욕구를 잘못된 방식으로 분출한다고 분석했다. 또 성적인 일탈에서 기인할 수 있다고 진단했다.” (기사 중)

머니투데이의 기사는 유명 언론인 남성의 성범죄에 면죄부를 준다. 그들의 사회적 지위와 그 압박이 성범죄의 ‘원인’이었다는 논조다. 그들 스스로 갈망한 ‘존경과 명망’이 범죄 앞에서는 ‘압박과 스트레스’로 탈바꿈한다. 그들의 성범죄는 ‘성적인 일탈’이라는 표현으로 감싸진다.

“대중은 이들을 높은 수준의 사회적 눈높이로 바라보는데, 이와 달리 그릇된 행동에서 만족감을 추구했을 수 있다는 것이다.” (기사 중)
출처: ⓒ머니투데이 캡처

개인의 일탈로 성범죄의 심각성을 낮추는 여러 기사가 쏟아지던 참에 참 신선하다. 대중의 사회적 눈높이와의 괴리가 그들을 흥분시키는 자극제였다는 어투다. ‘대중’, ‘사회적 지위’ 단어를 꺼내든 신박한 구조적 해석이다. 아니, 머니투데이는 해석만 했을 뿐 구조를 놓쳤다. 모범을 보여야 한다는 스트레스가 왜 여성을 볼모로 하는 성욕으로 풀어져야 하는지 사회적 지위를 가진 남성이 어떤 위계관계에서 성범죄를 저지르는지 설명하지 않는다. 남성 언론인의 성범죄가 의미하는 것이 무엇인지 파고들지 않는다.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 쇼>에서도 ‘김성준 몰카, 유명 앵커가 왜?’의 제목으로 머니투데이와 비슷한 논조의 대담이 이어졌다. 김 논설위원을 비롯한 불법 촬영 범죄자의 사회적 지위에 집중했다. 그러나 여전히 “부러울 거 하나 없는 그런 사람들이 왜?”라는 실없는 질문만 되풀이할 뿐 필요한 지적은 나오지 않았다. 해법은 요원한 채로 피해자의 고통은 또다시 언론사에 의해 소비되고 전시됐다. 

언론의 거친 생각, 그걸 지켜보는 우리

출처: ⓒ한겨레

SBS는 별다른 조사와 징계 없이 김 논설위원의 사표 수리 소식을 전했다. 꼬리를 자르며 간판 앵커의 범죄 혐의를 숨기기 급급했다. 최근 벌어진 일련의 사건과 보도는 언론 신뢰를 무너뜨렸다.


한국일보 최문선 기자는 2000년 한 연예인의 불법촬영 성관계 동영상을 공유하던 남성 동료 몇몇을 떠올리며 ‘후진 시절’이라 말했다. 그러나 불과 몇 개월 전 언론인 익명 단체 카카오톡 방에서 불법촬영 영상 공유와 성매매 정보 공유가 벌어졌다. 몇 주 전 지상파 언론사 간판 앵커는 시민을 상대로 성범죄를 저질렀고 또 다른 언론사는 그 내부에서 성희롱과 성추행이 벌어졌음이 드러났다. 그렇다. 여전히 ‘후진 건 별로 달라지지 않았다’. 


한국기자협회는 기자협회보를 통해 최근 사건에 대한 입장을 밝혔다.

“최이숙 동아대 교수의 발언을 빌리자면 일련의 사건들은 “일부 언론인들의 일탈이나 일부 남성 기자들의 박약한 젠더 감수성에서 비롯된 것이 아닌 지난 수십 년간 언론계에서 취재 관행이라는 이름으로 용인해왔던 문화가 만들어낸 역사적 구성물”이다.” (기사 중)

반복되는 문제와 그 역사, 더 이상 언론인 한두 명의 일탈이 아니다. 색다른 이유와 독창적 진찰을 내놓을 것이 아니다. 문제는 언론사 구조다. 여성을 말하는 언론의 닳은 프레임과 취재 관행이 반복되는 문제의 원인이다. 그 모든 성찰 없는 답습이 오늘의 부끄러운 언론을 만든 것이다. 그러니 이제는 알아야 한다. 고인 물은 언젠가 썩어버린다는 것을. 언론사는 깨달아야 한다.

* 외부 필진 고함20 님의 기고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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