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인 성범죄' 애써 감싸는 언론, 대체 왜..?
‘언론인 성범죄’ 감싸는 언론들!?
7월 8일 SBS 간판 앵커였던 김성준 논설위원이 지하철에서 여성을 불법 촬영한 혐의로 입건됐다. SBS만 부끄러운 게 아니었다. 같은 날 KBS 13년 차 남성 기자(이모 씨)가 후배 여성 기자 여럿을 상습적으로 성희롱해 정직 처분을 받은 것이 뒤늦게 알려졌다. 여러 언론사는 동종업계 ‘언론인’의 성범죄 사실을 연일 보도했다. 그중 머니투데이의 7월 20일 자 기사 ‘정병국·김성준·강지환… 다 가진 남자들이 도대체 왜?’가 눈에 띄었다. ‘다 가진 남자들이 도대체 왜’?!
머니투데이의 기사는 유명 언론인 남성의 성범죄에 면죄부를 준다. 그들의 사회적 지위와 그 압박이 성범죄의 ‘원인’이었다는 논조다. 그들 스스로 갈망한 ‘존경과 명망’이 범죄 앞에서는 ‘압박과 스트레스’로 탈바꿈한다. 그들의 성범죄는 ‘성적인 일탈’이라는 표현으로 감싸진다.
개인의 일탈로 성범죄의 심각성을 낮추는 여러 기사가 쏟아지던 참에 참 신선하다. 대중의 사회적 눈높이와의 괴리가 그들을 흥분시키는 자극제였다는 어투다. ‘대중’, ‘사회적 지위’ 단어를 꺼내든 신박한 구조적 해석이다. 아니, 머니투데이는 해석만 했을 뿐 구조를 놓쳤다. 모범을 보여야 한다는 스트레스가 왜 여성을 볼모로 하는 성욕으로 풀어져야 하는지 사회적 지위를 가진 남성이 어떤 위계관계에서 성범죄를 저지르는지 설명하지 않는다. 남성 언론인의 성범죄가 의미하는 것이 무엇인지 파고들지 않는다.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 쇼>에서도 ‘김성준 몰카, 유명 앵커가 왜?’의 제목으로 머니투데이와 비슷한 논조의 대담이 이어졌다. 김 논설위원을 비롯한 불법 촬영 범죄자의 사회적 지위에 집중했다. 그러나 여전히 “부러울 거 하나 없는 그런 사람들이 왜?”라는 실없는 질문만 되풀이할 뿐 필요한 지적은 나오지 않았다. 해법은 요원한 채로 피해자의 고통은 또다시 언론사에 의해 소비되고 전시됐다.
언론의 거친 생각, 그걸 지켜보는 우리
SBS는 별다른 조사와 징계 없이 김 논설위원의 사표 수리 소식을 전했다. 꼬리를 자르며 간판 앵커의 범죄 혐의를 숨기기 급급했다. 최근 벌어진 일련의 사건과 보도는 언론 신뢰를 무너뜨렸다.
한국일보 최문선 기자는 2000년 한 연예인의 불법촬영 성관계 동영상을 공유하던 남성 동료 몇몇을 떠올리며 ‘후진 시절’이라 말했다. 그러나 불과 몇 개월 전 언론인 익명 단체 카카오톡 방에서 불법촬영 영상 공유와 성매매 정보 공유가 벌어졌다. 몇 주 전 지상파 언론사 간판 앵커는 시민을 상대로 성범죄를 저질렀고 또 다른 언론사는 그 내부에서 성희롱과 성추행이 벌어졌음이 드러났다. 그렇다. 여전히 ‘후진 건 별로 달라지지 않았다’.
한국기자협회는 기자협회보를 통해 최근 사건에 대한 입장을 밝혔다.
반복되는 문제와 그 역사, 더 이상 언론인 한두 명의 일탈이 아니다. 색다른 이유와 독창적 진찰을 내놓을 것이 아니다. 문제는 언론사 구조다. 여성을 말하는 언론의 닳은 프레임과 취재 관행이 반복되는 문제의 원인이다. 그 모든 성찰 없는 답습이 오늘의 부끄러운 언론을 만든 것이다. 그러니 이제는 알아야 한다. 고인 물은 언젠가 썩어버린다는 것을. 언론사는 깨달아야 한다.
* 외부 필진 고함20 님의 기고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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