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불매 때문에 힘들다' 소설 쓰다 딱 걸린(?) 조선일보

조회수 2019. 8. 2. 12:08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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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힘들긴 하다. 하지만..

조선일보가 일본 불매운동을 보도하면서 황당한 사연을 소개했습니다.


한국에서 35년째 일본 여행 ‘랜드사’를 운영하는 김씨(가명) 부부가 있는데 요새 일본 불매운동 때문에 어렵다고 합니다. 부부는 “왜 우리는 휴가를 안 가냐”라는 초등학생 아들의 질문에 “엄마·아빠가 갑자기 수입이 없어져서”라고 답했다고 합니다. 


사실이라면 정말 안타까운 사연입니다. 그런데 조선일보의 기사를 읽은 한 시민이 페이스북에 해당 기사가 이상하다며 몇 가지 지적하는 글을 올렸습니다. 부부의 연령대와 여행사 설립 시기 등이 맞지 않는다는 겁니다.

출처: ⓒ조선일보 캡처

초등학생 아들이 6학년이라고 가정하면 한국 나이로 13살입니다. 부부가 35년째 여행사를 운영하고 있다고 했으니 고등학교 졸업 이후 바로 일을 시작해도 현재 부부의 나이는 53살이 됩니다. 


문제는 우리나라의 해외여행 자유화가 된 시점이 1989년 1월 1일이었다는 사실입니다. 기사대로라면 부부는 해외여행 자유화가 되기 전부터 이를 예견(?)하고 해외여행과 관련된 일을 시작한 겁니다. 


이 부분을 조금 더 자세하게 알려드리겠습니다.

출처: ⓒ경향신문PDF
▲ 1987년 이전에는 50세가 넘어야 해외여행이 가능했다.

1989년 해외여행 자유화 이전에 외국을 가려면 여권 발급부터 힘들었습니다. 유학, 출장, 공무 등 명확한 사유가 있어야 했고 여권은 한 번만 쓸 수 있는 단수여권이 기본이었습니다. 해외 출국자들은 무조건 반공교육도 받아야 했습니다.


물론, 이전에도 여행사들은 있었습니다. 1912년 일본이 설립한 동아교통공사의 조선 지국이 그 시작입니다. 해방과 함께 공기업으로, 다시 주식회사 등으로 차츰 바뀌었습니다. 


1989년 이전의 여행사들은 유학, 출장, 공무 등의 공식적인 해외 출국을 위한 항공권 발급 등을 주요 업무로 삼았습니다. 실제로 해외여행 자유화 이전에는 지금처럼 인터넷이 아니라 무조건 여행사에 가서 수기로 작성된 항공권을 받아야 했습니다. 


일부 사람은 해외여행도 가능했지만, 연령은 50세가 넘어야 했습니다. 1987년이 되면서 40세부터 가능한 것으로 연령 기준이 낮춰졌습니다. 


여행객을 위한 여행사도 존재했습니다. 바로 일본을 중심으로 외국에서 오는 여행객들의 한국 여행을 담당하는 랜드사입니다. 롯데, 한진, 세방, 한남, 세일 등이 일본 유명 여행사들의 랜드사로 큰돈을 벌면서 성장했습니다. 

출처: ⓒMBC 뉴스데스크 캡처
▲ 1989년 1월 1일부로 해외여행 완전 자유화가 실시됐다.

1989년 1월 1일을 우리나라 여행 업계에 광복절과 같은 날이라고도 부릅니다. 온 국민이 자유롭게 해외여행을 갈 수 있게 된 날이기 때문입니다. 해외여행 자유화가 되면서 우후죽순 여행사가 생겼고 관련 상품도 쏟아졌습니다.


조선일보는 김씨 부부가 현재 직원 4명 있는 여행사를 35년째 운영해왔다고 보도했습니다. 한국에서 가장 큰 하나투어도 1993년에 설립됐습니다. 그런데 기사 속 부부는 1984년~1986년에 여행사를 설립한 것입니다. 


또 하나 이상한 점은 아들이 ‘우리는 휴가를 안 가냐고 했다’는 부분입니다. 여름이니 당연히 휴가를 갈 수 있습니다. 그런데 여행업계 사람들이 성수기에 여름휴가를 간다는 게 의아합니다. 그것도 부부 모두가 여행사를 운영하면서 말입니다. 여행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이라면 수긍하기 어려운 대목입니다. 


기사 본문을 보면 ‘랜드사’라는 말이 나옵니다. 랜드사는 흔히 ‘현지 여행사’라고 합니다. 여행사가 관광객을 모집한다면 랜드사는 여행 실무를 담당합니다. 


만약 서울에 있는 A라는 여행사가 일본에 단체 관광객을 보내면 B라는 일본 내 랜드사가 단체 관광객의 가이드와 호텔, 숙박 등의 일정을 도맡아 합니다. 


대형 여행사에 비해 랜드사들은 을의 위치에 있어 저렴한 비용으로 울며 겨자 먹기 식 단체 관광객을 맡습니다. 손해 본 금액을 커미션으로 충당하기 위해 쇼핑을 위주로 관광객들을 데리고 다니기도 합니다. 

출처: ⓒ비즈한국 캡처
▲ 작년부터 소규모 여행사를 비롯한 여행사들의 폐업과 부도가 이어지고 있다.

한국인들이 일본 여행을 가지 않거나 취소하면서 여행 업계가 타격을 입은 건 사실입니다. 그런데 최근 여행사들의 실적 부진은 비단 일본 불매운동 때문만은 아닙니다. 최근 저가항공이나 개별관광이 늘면서 작년부터 문 닫는 여행사가 급증했습니다.


조선일보 기자는 일본 불매운동 때문에 여행사가 힘들어졌다고 주장하기 위해 사실이 확인되지 않은 사례를 기사에 억지로 집어넣었습니다. 조금만 따져봐도 기사의 허점을 바로 지적할 수 있습니다. 


여행사가 어려워진 그 이유를 다각도로 분석하고 정확한 기사를 써야 하는 것이 기자가 해야 할 일입니다. 기자는 소설가처럼 상상 속의 이야기를 쓰는 직업이 아닙니다. 

- 유튜브에서 보기: 

기사가 아닌 소설(?) 쓰다 네티즌에게 걸린 조선일보

* 외부 필진 님의 기고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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