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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일본 불매운동'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조회수 2019. 7. 24. 15:32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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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청구권협정부터 다시 살펴보자.
출처: ⓒ연합뉴스

7월 21일 밤늦게 친구가 카카오톡으로 말을 걸어왔다. 애기가 이제 잠들었네, 하는 일 없이 주말이 갔네, 하는 말들을 크크 거리며 주고받다가 느닷없이 그가 물었다.

“야. 근데 요즘 하는 일본 불매는 해야 하는 거냐 말아야 하는 거냐. 지금 누가 양아치 짓을 하는 거야?”

갑작스러운 질문에 두서없이 아는 대로 설명을 길게 늘어놨다. 개떡 같은 설명이었을 텐데 찰떡같이 알아들어 줬다. 불매운동에 동참해야 할 것 같긴 한데 우리가 약속해놓고 안 지키는 건 아닌지 찝찝했단다. 뉴스에서 팩트체크라는 것들을 봐도 명쾌하지가 않다는 민원(?)을 남기고 자러 가 버렸다.


뺨은 기자에게 맞고 와서 왜... 하여간 나도 직업분류상 기자니까 지금에 대한 나름의 팩트체크와 개인적 의견을 이렇게 기록으로 남겨본다.

[질문 1]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나?

출처: ⓒ연합뉴스

많은 한국인에게 일본은 아직도 미운 나라다. 20세기 초 일제강점기에 선조들에게 행했던 차별과 불법 행위들을 아직 사죄하지 않고 배상을 지연하고 있다는 이유가 가장 클 것이다. 한편으로는 이제 좀 사이좋게 지내자는 의견도 적지 않다. 1965년 일본이 한국 정부와 맺은 한일청구권협정을 통해 할 일을 다 했으니 이젠 미래를 봐야 한다는 것이다. 최근 한국 반도체 분야에 대한 일본 정부의 공격으로 이 이야기 타래들이 다시 공론장 위로 떠 올랐다.

[질문 2] 한일청구권 협정이 뭔가?

출처: ⓒ연합뉴스

한일청구권협정은 1965년 일본과 한국 사이에 체결된 ‘한·일 양국의 기본관계에 관한 조약’의 부속 협정이다. 일본이 양국 국민의 재산과 국가간, 그리고 양국 국민간의 청구권에 관한 문제의 해결과 양국간 경제협력 증진을 희망해 한국에게 무상 3억 달러, 유상 3억 달러, 차관 2억 달러를 제공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유상+차관 5억 달러야 그렇다 치고, 왜 일본은 한국에게 무상으로 3억 달러를 줬을까. 이 협정 2조 1항에는 다음과 같은 규정이 있다.

“양 체약국은 양 체약국 및 그 국민(법인을 포함함)의 재산, 권리 및 이익과 양 체약국 및 그 국민간의 청구권에 관한 문제가 1951년 9월 8일에 샌프런시스코우시에서 서명된 일본국과의 평화조약 제4조 (a)에 규정된 것을 포함하여 완전히 그리고 최종적으로 해결된 것이 된다는 것을 확인한다.”

일본은 협정문에 삽입된 이 규정을 근거로 대한민국 정부뿐 아니라 일제강점기 한국 피해자(개인)들에 대한 보상 및 배상 문제가 모두 해결됐다고 말한다. 청구권협정에 적혀 있는 도합 8억 달러의 금전적 편의 제공이 그 대가라는 것이다. 1990년대 이후 한국 정부와 민간에서는 이런 일본의 주장이 잘못됐다고 반박해왔다. 일본 일각에서는 한국이 협정을 맺어 돈을 가져가놓고도 이제 와서 아니라고 잡아떼는 신뢰할 수 없는 국가라는 주장을 편다.

[질문 3] 이런 일본 얘기가 맞나?

1951년 미국 샌프란시스코 평화조약 체결식

결론부터 말하자면 틀렸다. 일본이 맺었던 다른 청구권 포기 사례들이 그들의 주장을 부정하고 있다.


우선 민주주의를 채택하고 있는 현대 국가가 타국과 맺은 조약으로 자국민의 재산권을 소멸시킬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던져보자. 특정 조건하에서 가능하다. 국가가 타국을 대신해서 국민의 소멸되는 재산권에 상응하는 보상을 해당 국민에게 해주면 된다. 1965년 즈음 일본은 국제 사회와 두 개의 청구권 조약을 맺었다. 하나는 샌프란시스코 평화조약(1951), 다른 하나는 일소공동선언(1566)이다. 한일청구권협정에서 일본의 위치가 가해자였다면 위 두 조약에서는 전쟁 패망국이라는 피해자의 입장이었다. 그래서 이들 조약을 수행했던 일본의 자세를 보면 한일청구권협정 당시 피해자였던 한국이 일본에 기대할 수 있는 역할도 미뤄 짐작해볼 수 있다. 


일본은 샌프란시스코 조약에서 미국에 대한 원폭 피해자의 손해배상 청구권을 포기했다. 일소공동선언에서는 시베리아에 억류된 피해자들의 손해 배상 청구권을 포기했다. 당연히 양국에게 피해를 입은 일본 국민들의 보상 청구가 잇따랐다. 일본 정부는 이들과의 소송에서 뜻밖에도 ‘일본은 미국 및 소련 정부에 대한 국민의 손해배상 청구권을 포기한 게 아님’이라는 주장을 편다. 


해당 조약에서 포기한 청구권은 일본 국가가 가졌던 청구권 및 외교적 보호권일 뿐 일본 국민이 개인으로서 가진 청구권을 포기한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외교 보호권이란 국가가 자국민이 입은 피해에 대해 상대국에게 대신 책임을 추궁하는 국제법상의 권리를 말한다. 


일본이 이런 이색적인 대답을 내놓은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위에서 설명했듯 국가가 개인의 청구권을 팔아먹으면 개인들에게 대신 보상을 해야 한다. 그런데 개인의 청구권이 아니라 외교 보호권만 포기했다고 하면 보상을 해줄 필요가 없다.


이 같은 논리는 한일청구권협정으로도 이어진다. 흔히 한국 사람들은 이 협정으로 한국만 청구권을 포기했다고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다. 일본도 한국에 대한 청구권을 포기했고, 이것이 포괄적인 배상 책임의 면제를 의미하는 것이라면 일본 정부는 해방과 동시에 한국에 각종 자산을 두고 일본으로 도주한 일본인들에게 적절한 보상을 해야만 하는 문제가 발생한다. 협정의 협상 담당관이었던 타니다 마사미는 1966년 시의법령 3월호에 실린 청구권문제라는 내용의 글에서 청구권 협정으로 포기한 것은 외교 보호권일 뿐이기 때문에 한반도에 자산을 남기고 온 일본인이 일본 정부에 보상 청구를 할 수 없다고 해설했다. 


일본 정부의 이런 해석은 1990년대까지 이어진다. 다카시마 우슈 외무대신 관방심의관은 1991년 3월 일본 국회에서 “시베리아에 억류됐던 일본인 피해자가 소련에 대한 청구권을 가지느냐”는 질의에 대해 “일소공동선언에서 청구권 포기는 국가가 자동적으로 갖는 것으로 생각되는 외교 보호권의 포기이고 일본 국민 개인의 청구권까지 포기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밝혔다. 


한일청구권협정이 한국 국민의 청구권을 포괄적으로 소멸시키는 내용이 아니라는 점은 일본이 1965년 제정한 ‘대한민국 등의 재산권에 대한 조치법’에도 잘 드러나 있다. 이 법률의 내용은 대한민국과 그 국민이 가진 일본 국가 또는 국민에 대한 채권은 1965.6.22에 소멸한 것으로 한다는 내용이다. 일본 측 주장에 따르면 한국 국민의 청구권은 이미 1965년 협정 체결과 동시에 소멸된 것인데, 그걸 다시 소멸시킨다는 취지로 법을 하나 만든 셈이다. 이는 논리적이지 않은 주장이고 2012년 한국 대법원 판결에서도 이 점을 지적한 바 있다.

[질문 4] 그럼 한국의 주장은 무엇인가?

출처: ⓒ연합뉴스

한국 대법원은 2012년 미쓰비시 강제징용 배상 사건에서 미쓰비시 측에 강제 징용에 대한 배상금을 지불하라는 판결을 내리면서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과 관련해 상세한 판단을 내놓은 바 있다. 크게 다음의 4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①한일협정 때 받은 3억불은 청구권 문제 해결과 법적 대가관계에 있는 게 아니다.

② ①에 따르면 대한민국의 외교적 보호권은 포기되지 않았다고 봐야 한다.

③ 한일협정 당시 양국 정부는 일제의 한반도 지배가 불법인지 합법인지에 대해 합의하지 못했다.

④ 배상의 범위나 규모는 양자간에 불법행위가 먼저 규정돼야 정해지는 것이다. ③에 따르면 양국 정부는 한반도 지배가 불법인지 아닌지도 합의하지 못했으므로 개인의 손해배상청구권이 청구권협정의 적용대상에 포함됐다 보기 어렵다.

[질문 5] 이런 한국 얘기가 맞나?

출처: ⓒ연합뉴스
2005년 8월 회의 중인 ‘한일회담 문서 공개 후속 대책 관련 민관공동위원회

결론부터 말하자면 ③, ④는 맞다. ①, ②는 좀 애매하다.


우선 이 판결을 내리는 과정을 보면 대법원은 사실 관계 인정에서 2005년 민관공동위원회의 견해를 가져다 쓰고 있다. 당시 민관공동위원회에서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 등 일본 정부와 군대 등 일본 국가권력이 관여한 반인도적 불법행위에 대해서는 청구권협정으로 해결된 것으로 볼 수 없고 일본 정부의 법적 책임이 남아 있으며 사할린동포 문제와 원폭피해자 문제도 청구권협정 대상에 포함되지 않았다’는 취지의 공식 의견을 표명했는데 이게 대법원이 보는 사실관계에 부합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대법원의 판결문을 보면 위에 인용했던 민관공동위원회의 ‘일본군 위안부 문제 등 일본 정부와 군대 등 일본 국가권력이 관여한 반인도적 불법행위’ 해석 부분이 ‘식민지 지배에 직결된 불법행위’로 확장된다. 물론 이런 시각은 최근 국제사회의 조류를 상당부분 수용했을 때 가능한 해석이다. 그러나 한 국가의 대법원이 이 내용으로 판결을 내기엔 조금 무리한 적용이라는 생각이다. 우리 대법원 판결대로라면 20세기에 식민지를 가졌던 나라들은 (강제로 식민지를 만들고 사람들 끌어다 일 시켰을 테니) 모두 피식민지 국가에 대해 배상의 여지가 남아있는 셈이 된다. 


①, ②는 사실 일본 입장에서는 싸우자는 얘기나 다름없다. 이게 현실에 비춰볼 때 다소 무리한 논지 전개였다는 점은 대법에서도 어느 정도 인지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대법원은 판결문 후반에 ②에 대한 안전장치를 걸었다. 문언을 그대로 옮기면 “원고 등의 청구권이 청구권협정의 적용대상에 포함된다고 하더라도 그 개인청구권 자체는 청구권협정만으로 당연히 소멸한다고 볼 수는 없고, 다만 청구권협정으로 그 청구권에 관한 대한민국의 외교적 보호권이 포기됨으로써 일본의 국내 조치로 해당 청구권이 일본국 내에서 소멸하더라도 대한민국이 이를 외교적으로 보호할 수단을 상실하게 될 뿐이다”라는 부분이다. 이 구절의 의미는 향후 대한민국 정부(행정부)가 ‘청구권 협정으로 외교적 보호권은 이미 상실된 게 맞다’고 유권해석을 내리더라도 개인의 청구권은 그와 무관하게 소멸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부분이 생각해 볼 부분이다. 행정부가 어떻게 행동하든 재판 결과에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면, 재판의 애초 취지인 강제징용 피해자의 손해배상청구권이 인정된다는 판결을 하면서 굳이 한일청구권협정으로 외교적 보호권이 포기되지 않았다는 쓸데없는 정보를 판결문에 담을 이유가 없다. ③, ④만으로도 판결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관할을 넘어서는 일종의 쓸데없는 정치적 행위인 셈이고, 당시 대법관들 중 일부는 외교적 보호권은 소멸됐다는 의견을 내기도 했다. 


무엇보다 대법원 판단대로라면 1965년에 일본이 무상으로 3억 불 주고 수억 불 차관까지 얹어 한국에 제공하면서 자신들의 이득은 아무것도 챙겨가지 않은 게 된다. 되레 해방 전후 한국에 거주하던 일본인들이 급히 본국으로 돌아가면서 챙겨가지 못했던 적산들에 대한 일본 측 청구권만 소멸된 셈이다. 이런 주장과 해석은 제3국 입장에서 보면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렵다.

[질문 6] 불매운동 해야 되나 말아야 되나

출처: ⓒ연합뉴스

국가의 역사 활용이라는 게 원래 적당히 밀고 당기고 거짓말하는 게 있다. 옳고 그름도 중요하지만 그보다는 좋고 싫음, 그리고 생존의 논리가 지배하는 영역이기 때문에 그렇다.  


지금 한국 산업 둘러보자. 2018년 한국 경제성장률이 2.7%인데 그중 반도체 빼면 1.4%로 떨어진다. 수출 주력인 전자분야는 반도체 빼면 최근 5년 동안 성장률 마이너스 상태다. 이런 상황에서 아베가 일본이 반도체 소재를 독점 공급하고 있는 분야를 이용해 공격을 시작한 거다. 역사는 핑계다. 실질은 같은 공간을 공유하는 국가 사이의 주도권 다툼이다. 양국 사이의 지위가 교통정리 될 때까지 쉽게 끝날 싸움이 아니고, 반도체 분야에서 다른 분야로 확산될 가능성도 있다. 


한국의 반도체 산업이 타격을 입는 게 당신 개인의 위협으로 느껴진다면 그 반격의 일환으로 불매운동을 하는 게 맞다. 반면 한국의 반도체 산업이야 어떻게 되든 나의 생활은 크게 상관없다고 느껴진다면 안 하는 게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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