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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 고부갈등에 ‘비혼 장려 프로그램’이라 불린 예능

‘이상한 나라의 며느리’가 종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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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혼 장려 프로그램이다.”

“요즘 저런 시어머니가 어디 있어? 조작 아니야?”

매회 방송이 끝나면 뜨거운 반응이 뒤따랐다. MBC <이상한 나라의 며느리> 관련 기사에는 댓글이 금세 주렁주렁 달렸다. 한쪽에서는 자신이 겪었던 일들을 꺼내놓으며 ‘아직도 변한 게 없다’고 성토했다. 그 공감의 외침에는 오랜 울분이 뒤섞여 있었다. 절절한 경험담이 담긴 댓글은 끝도 없이 계속됐다.


그러나 반대쪽에서는 ‘시가 식구들만 나쁜 사람으로 만든다’며 반발했다. 비혼을 장려하는 사회악 프로그램이라며 비난했다. 또, 요즘에 저런 시어머니가 어디 있느냐며 모든 게 대본일 뿐이라 심드렁해 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만큼 많은 관심을 받던 <이상한 나라의 며느리>가 지난 7월 18일을 끝으로 막을 내렸다. (갑작스러운 종영이라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방송 시간을 오후 8시 55분에서 10시 5분으로 옮기면서 주 시청자 유입에 성공했고, 그에 따라 시청률이 평균 1~2% 가량 올랐지만 종영을 피할 수는 없었던 모양이다. <이상한 나라의 며느리> 최종회의 시청률은 4.2%였고, 최고 시청률은 5.0%(49회)였다.

2018년 4월 파일럿 방송으로 첫선을 보인 후 모두 52회가 전파를 탔다. 1년이 훌쩍 넘는 기간 총 14명의 며느리가 출연해 자신들이 사는 ‘이상한 나라’의 이야기를 꺼내 놓았다. 출연 횟수나 분량과 관계없이 쉽지 않은 결정이었을 것이다. 방송은 짧고 시월드는 긴 법이니까. MC 이지혜는 “며느리를 대표해 용기 내 출연해준 ‘며느리’들이 있었기에 <이상한 나라의 며느리>가 있었다”며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이상한 나라의 며느리>는 다른 관찰 예능과 달리 출연자들이 ‘예쁜’ 모습만을 보여줄 수 없었다. ‘결혼 이후 며느리에게 보다 많은 책임과 희생을 요구하는 이 사회의 불합리한 관행을 과감하게 꼬집어’ 내는 것이 프로그램의 목적이었기 때문이다. 의견 충돌, 갈등, 다툼을 중점적으로 다뤄야 했고, 문제점과 개선해야 할 부분을 드러내는 데 초점을 맞췄다. 이를 통해 시청자들에게 다양한 고민거리를 제시해야 했다.  


물론, 며느리뿐 아니라 남편과 시어머니를 비롯한 가족들의 용기도 있었다. ‘불합리한 관행’의 편에 서 있는 만큼 욕을 먹을 가능성이 높았음에도 출연을 결정한다는 게 결코 쉬운 선택은 아니었을 것이다. 개중에는 ‘우리는 화목해서 아무 문제가 없다’고 여겨 흔쾌히 출연을 결정했다가 후폭풍을 견디지 못해 중도에 빠진 가족들도 제법 많을 것이다.  

<이상한 나라의 며느리>를 통해 저들의 용기 있는 출연을 통해, 각양각색의 부부와 가족의 모습을 통해 우리는 무엇을 배웠을까? 그건 아마도 ‘이상한 나라’의 존재를 인정하게 됐다는 것 아닐까. 공론의 장을 통해 지속적으로 현실 속의 ‘시월드’를 다룸으로써 더 이상 ‘이상한 나라’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도록 만들었다. 며느리에겐 공감대를 형성했고, 다른 가족들에겐 '혹시 우리도 그런 것 아닐까?’라며 돌아볼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다. 


또, 부모와 자식이 상호 간에 심리적 독립을 이뤄내야 한다는 것도 <이상한 나라의 며느리>가 누차 강조했던 메시지였다. 성인이 된 아들을 여전히 품 안의 자식처럼 여기는 부모들의 태도가 불필요한 개입과 간섭으로 이어졌고, 그로 인한 갈등은 결과적으로 고부 갈등의 양상으로 드러났다. 혜상이 힘들었던 건 시어머니와 규택의 관계가 명쾌히 분리돼 있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결국, 모두가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상호 간에 적정한 거리를 유지해야 한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이상한 나라의 며느리>는 고부 갈등의 본질에 대해서도 이야기했다. 흔히 생각하듯 ‘여적여(여자의 적은 여자)’ 구도 때문이 아니었다. 그 갈등의 핵심은 ‘행복하지 않은 시어머니 (이자 며느리이자 아내)’였고, 그건 곧 불합리한 가부장제로 인한 현상이었다. 가족 내 가사 노동의 불균형은 방송을 통해 가장 많이 확인할 수 있었던 문제였다. 집안일과 육아는 여자의 몫이라는 인식이 여전히 팽배했고, 제사 또는 가족 모임에서 주방과 거실이 분리돼 있는 장면은 허다했다. 


가령, 평소 집안일을 거의 하지 않았던 미호의 시아버지는 며느리가 오기만 하면 ‘좋은 시아버지’ 흉내를 내며 주방일을 하고 청소를 거들었다. 이런 모습을 본 시어머니가 서운해하는 건 당연한 일이다. 그 감정은 고스란히 며느리에게 전가될 가능성이 높다. 몇 차례의 다툼 끝에 시아버지는 주 2~3회 청소를 하겠다고 선언했다. 시어머니는 그 정도라도 하면 다행이다는 심정으로 흔쾌히 받아들였다. 몸도 마음도 편안해진 시어머니는 며느리를 힘들게 할 이유가 없다. 

<이상한 나라의 며느리>는 막을 내렸지만, ‘이상한 나라’는 아직 견고하게 유지되고 있다. 다행스러운 점은 공감의 목소리가 컸고, 변화의 필요성을 역설하는 목소리도 강했다는 것이다. 드물지만 자성의 목소리도 들렸다. 오정태는 그 대표적인 사례이다. 처음에 등장할 때만 해도 그는 거실 소파와 한 몸이었다. 또, 성 고정관념에 사로잡혀 있기도 했다. 그러나 방송을 통해 그는 점차 개선돼 나갔다. 

“대한민국의 며느리들이 이상한 나라가 아닌 행복한 나라에 사는 그날을 응원하겠습니다.”

우리가 그날을 응원해야 하는 까닭은 분명하다. 그래야 모두가 행복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누군가의 일방적인 희생으로 쌓은 성은 조그마한 충격에도 무너지기 십상이다. 끊임없는 소통과 대화, 상대방의 입장에 대한 공감과 이해를 통해 만들어진 성만이 지속성을 갖는다. <이상한 나라의 며느리>를 통해 나눴던 이야기들이 부디 이 땅의 수많은 며느리에게 자그마한 위안이 됐기를 바란다. 그 위안이 다음 발걸음을 내딛는 데 필요한 용기가 되길 희망한다.

* 외부 필진 님의 기고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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