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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날 개 패듯 한다" 말 나온 조선시대 복날의 풍경

조회수 2019. 7. 12. 16:34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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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자비한 폭행을 꼬집은 말이다.

7월 12일은 초복이다. 열흘 뒤인 22일은 중복, 그리고 20일 뒤인 8월 11일 말복이다. 아직 더위는 체감하기 어렵지만 어쨌든 복날은 복날이다.


24절기에는 들지 않지만, 삼복은 여름을 나면서 사람들이 매우 친숙하게 맞고 보내는 절기다. 여름 더위와 연관된 절기인 소서와 대서가 잘 알려지지 않아 무심히 보내는 것과 비교되는 대목이다. 복날이면 사람들은 더위를 이기고자 개장국(보신탕)과 삼계탕을 먹거나 수박을 차게 해서 나눠 먹곤 하는 것이다. 


삼복은 음력 6월에서 7월 사이의 절기로 초복, 중복, 말복을 가리킨다. 하지로부터 세 번째, 네 번째 경일과 입추 후 첫 번째 경일을 각각 초복, 중복, 말복이라 하며 이를 삼복, 또는 삼경일이라 한다.

삼복, 혹은 삼경일

경일이란 ‘날의 간지’인 일진을 구성하는 천간(십간), 즉 갑, 을, 병, 정, 무, 기, 경, 신, 임, 계 가운데 ‘경’이 들어가는 날이다. 이를테면 경오, 경진, 경인, 경자, 경술, 경신 등이 그것이다.


천간(십간) 가운데 경일을 복날로 삼은 까닭은 경의 속성은 약하고, 오행 중 금(金)이며, 계절로는 가을을 상징하기 때문이다. 가을의 기운이 든 경일을 복날로 정한 것은 더위를 극복하라는 뜻에서다. 


복날은 10일 간격(경일은 10일 만에 돌아온다)으로 들기 때문에 초복에서 말복까지는 20일이 걸린다. 이처럼 20일 만에 삼복이 들면 ‘매복’이라고 한다. 하지만 말복은 입추 뒤에 오기 때문에 만일 중복과 말복 사이가 20일이 되면 ‘달을 건너 들었다’해 ‘월복’이라 한다. 삼복은 음력이 아니라 양력의 개념을 적용한 것이어서 소서(7월 7일)에서 처서(8월 23일) 사이에 들게 된다.

출처: ⓒ독립기념관
▲ 삼계탕

복날은 ‘장차 일어나고자 하는 음기가 양기에 눌려 엎드려 있는 날’이라는 뜻이다. ‘엎드릴 복(伏)’ 자는 사람이 개처럼 엎드려 있는 모습으로, 가을철 금(金)의 기운이 대지로 내려오다가 아직 여름철의 더운 기운이 강렬해서 일어서지 못하고 엎드려 복종한다는 의미다.


이는 여름의 더운 기운이 가을의 서늘한 기운을 제압해 굴복시켰다는 뜻이다. 곧 오행에서 여름은 불(火)에 속하고, 가을은 쇠(金)에 속하는데, “여름 불기운에 가을의 쇠 기운이 세 번 굴복한다”라는 뜻으로 복종한다는 뜻의 복(伏) 자를 써서 삼복이라 한 것이다.

사라지는 개장국, 문전성시 삼계탕

출처: ⓒ국립민속박물관
▲ ‘보신탕’으로 알려진 개장국

삼복의 기원은 중국 진나라 때, 일 년 중 무더위가 맹위를 떨치는 시기여서 ‘삼복더위’라는 말이 생겨나기도 했다. 복날에는 무더위에 시달려 떨어진 체력을 회복하고 보신하기 위해 개를 잡아먹는 풍습이 있었다. 무자비한 폭력을 빗대어 꼬집을 때 쓰는 속담으로 “복날 개 패듯 한다”가 생긴 연유다.


복날엔 개장국과 삼계탕을 즐겨 먹었다. 특히 복날 한적한 숲속의 냇가로 가서 개를 잡아 개장국을 끓여 먹는 풍속을 ‘복달임’, ‘복놀이’라 했으며 함경도에서는 개 잡는 것을 ‘개놀음’이라 불렀다. 또 복날 더위를 먹지 않고 질병에 걸리지 않는다고 해 팥죽이나 수박, 참외를 먹었다.

“참외 쟁반에다가 맑은 얼음을 수정같이 쪼개 놓으니, 냉연한 한 기운이 삼복을 제어한다. 푸줏간에는 염소와 양 잡는 것을 보지 못하겠고, 집집마다 죄 없는, 뛰는 개만 삶아 먹는다.”

조선 후기의 문인으로 『세시풍요』를 지은 유만공(1793~1869)이 읊은 복날의 풍경이다. 홍석모(1781~1857)도 『동국세시기』에서 복날에 개장을 먹는 민속을 구체적으로 서술하고 있다.

“개를 삶아 파를 넣고 푹 끊인 것이 개장[구장(狗醬)]이다. 닭이나 죽순을 넣으면 더욱 좋다. 또 개장국에 고춧가루를 타고 밥을 말아 먹으면서 땀을 흘리면 기가 허한 것을 보강할 수 있다. 생각건대 『사기』 진덕공 2년(기원전 676)에 비로소 삼복 제사를 지냈는데, 성안 대문에서 개를 잡아 해충의 피해를 막은 것으로 보아 개를 잡는 것이 복날의 옛 행사요, 지금 풍속에도 개장이 삼복 중의 가장 좋은 음식이 된 것이다.”
▲ 복날에는 수박, 참외를 먹기도 했다.

복날 개고기를 먹는 까닭은 오행설로 설명된다. 여름은 불[화(火)], 가을은 쇠[금(金)]인데 개는 서쪽에 해당하며 ‘금’에 속한다. 화기가 드센 복날은 불이 쇠를 녹이는 ‘화극금(火克金)’, 쇠퇴한 금의 기운이 왕성한 개를 먹어 쇠를 보충하고자 했다. 그래야만 더위로 허해진 심신의 균형을 바로 잡을 수 있다고 믿은 것이다.

복날, 사라진 풍속들

복날에 지방에서는 술과 음식을 준비해 계곡이나 산을 찾아 하루를 즐겁게 보냈는데, 더위를 피하면서 하루를 쉰 듯하다. 서울에서는 삼청동 성조 우물물을 먹으며 계곡물에 머리를 감거나 목욕을 했다. 이날 부녀자들은 약수에 머리를 감으면 풍이 없어지고 부스럼이 낫는다고 해 해마다 이를 행했는데, 이를 ‘물맞는다’라고 했다.


또한, 연중 가장 무더운 복날엔 날씨가 벼를 자라게 한다. 그래서 벼는 복날마다 한 살씩 나이를 먹는다고 해 초복은 벼가 한 살 되는 날이기도 하다. 이날 떡과 전을 장만해 논에 가지고 가서 농사가 잘되도록 비는데, 이를 ‘복제’라 한다. 물론, 이미 사라진 풍속이다. 


삼복 날씨는 농사의 풍흉을 점치는 데 이용되기도 했다. 삼복에 비가 오는 것을 ‘삼복비’라고 하는데, 전남에서는 복날의 비를 농사비라 해 기다리며 부산에서도 비가 오면 풍년이 든다고 믿었다. 한편, 강원도에서는 천둥이 치면 산과가 흉년이 든다고 여긴다. 


또한, 대추나무는 삼복 즈음에 열매를 맺는데, 이때 비가 오면 열매를 맺지 않는다고 해 “복날 비가 오면 보은 처녀가 운다”는 속담이 있다. 보은 지역은 대추 농사를 많이 짓는데, 복날 비가 오면 대추가 흉년이 들어 가계가 어려워지므로 결혼하기 어려워진다는 말이다. 강원 지역에서는 주로 초복에 거미를 잡아 말려서 분말로 만들어 두며, 감기에 걸렸을 때 그 가루를 먹었다.

출처: ⓒ민중의소리
▲ 개장국, 즉 보신탕이 퇴조하면서 삼계탕집은 복날이면 문전성시를 이룬다.

근년 들면서 여름 무더위가 유례없이 끔찍해 사람들이 여름을 나느라 큰 고생을 했다. “없는 사람이 살기는 겨울보다 여름이 낫다”는 속담도 옛말이 된 것이다. 올해 더위는 지난해만큼은 아니라고 하지만, 전기요금 개편 등의 정책을 시행해 더위에 대비하고 있다. 


죄 없는 개만 희생됐던 개장국 풍습도 슬슬 사라져가고 있다. 드물지 않게 성업 중이던 보신탕집이 속속 문을 닫고, 전국 곳곳에 있던 개 시장도 이제 몇 군데밖에 남지 않았다. 이제 사람들에겐 개는 반려동물이라는 인식이 정착돼 복날의 보신용으로 상상하기 어렵게 된 것이다. 


덕분에 삼계탕은 문전성시다. 복날 어름이면 매체마다 삼계탕집 앞에 줄 선 사람들의 모습을 비추는 게 기본일 정도다. 그러나 음식값도 예전 같지 않다. 한때는 만 원 미만으로도 먹을 수 있었던 삼계탕이 2만 원 가까이 값이 오르면서 이른바 ‘금계탕’이 된 것이다. 이래저래 더위는 물론 ‘없는 사람’이 지나기엔 강파른 시절을 우리는 살고 있다.

* 외부 필진 낮달 님의 기고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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