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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썰

2009년 노무현, 그를 배웅하며

어느새 노 전 대통령 서거 10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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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노무현 사료관

어느새 노무현 전 대통령의 10주기다. 2009년 5월 23일 그의 죽음은 이 땅의 정치인들에게는 어떻게 해야 국민의 지지를 받을 수 있는지를, 국민의 사랑을 받는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를 가르쳤고, 그를 지지한 국민에겐 정치적 지지의 시종이 어떻게 이뤄져야 하는지를 깨우쳐줬다.


그러나 여전히 국민의 지지를 받는다는 것은 어렵고 힘든 일이다. 노 전 대통령은 적어도 지지를 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또는 성공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것이 옳은 길이어서, 스스로 가야 할 길이라는 걸 깨달았기 때문에 그의 길을 간 지도자다. 그를 따르려던 정치인들은 그 길이 아무나 갈 수 없는 길이라는 걸 눈치챘을 것이다. 


그가 떠난 지 8년 뒤에 그의 비서실장이던 ‘친구’ 문재인이 대통령이 됐고 정치적 동지들이 새로운 정부를 구성했다. 그는 노무현의 10·4선언을 이어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 통일을 위한 판문점선언’을 통해 ‘한반도의 항구적이며 공고한 평화 체제 구축’을 위한 큰 걸음을 내디뎠다. 


그러나 문재인 대통령의 ‘소득주도성장’ 경제 정책은 곳곳에서 암초를 만나면서 힘들게 이어지고 있으나 반전을 기대하기는 여전히 쉽지 않다. 집권 초반기에 80%를 웃돌았던 지지율은 지금 50% 이하로 떨어졌다. 


3년 후, 그는 어떤 길을 가게 될까. 단언하기는 어렵지만, 그가 노 전 대통령이 갈 수밖에 없었던 길로 가는 일은 없을 듯하다. 노 전 대통령의 죽음으로 지지자와 국민은 어떻게 정치적 지지와 비전을 지키는지를 이미 학습했기 때문이다. 


2009년 노무현이 떠난 이후, 그해 5월 24일과 29일에 썼던 두 편의 글로 그를 추억·추모하고자 한다. 

노무현, 남은 자들의 성찰 참회 (2009. 5. 24. 작성)

▲ 노무현의 눈물. 그를 생각하는 국민감정은 애증이 교차할지 몰라도, 그의 진정성은 누구나 인정한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을 접한 곳은 서울 교사대회로 가는 전세버스 안에서였다. 누군가가 그가 자살을 기도했다는 소식을 전하기 무섭게 차내 TV의 뉴스 채널은 그의 죽음 주변을 계속해서 보도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사망 사실을 확인해 줬고, 이내 그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것도 밝혀졌다.


검찰 수사가 그에게 미치기 시작할 때쯤이다. 나는 언뜻 그가 죽음을 선택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잠깐 했다. 신문에 불법적으로 공표된 피의사실이 사실이고, 그가 그 책임을 지고자 한다면 그의 선택은 죽음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그러나 나는 날마다 지면과 뉴스 화면을 장식하는 그의 ‘비리 관련 기사’를 씁쓸하게 지켜보면서 이내 그 생각은 접어버렸다.


나는 애당초 그의 죽음을 심상하게 받아들였다. 한 인간의 죽음 앞에 짓는 우리의 표정이란 게 그렇지 않은가. 나는 그 죽음을 애도하며, 그것으로 그는 자신의 정치적 삶에 대한 책임을 진 셈이라고 생각했다. 죽음 가운데 무겁지 않은 죽음이 어디 있겠는가. 그러나 나는 그가 자신의 방식대로 자신의 문제를 종결한 것으로 생각한 것이었다. 


노무현은 민주주의를 지향한 많은 민주시민에게 있어서 ‘애증’의 인물이었다. 우리 정치사에서 그만큼 국민의 적극적 지지와 사랑을 받은 정치인이 또 누가 있을까. 그는 때로 사람들에게 자랑과 자부였고, 희망과 꿈이었다. 그러나 그는 때로 환멸이었고, 배신이었고, 절망이기도 했다. 


그에 대한 지지를 접고 그를 비판하기 시작한 숱한 시민들에게 그는 환멸이면서 그러나 버리지 못하는 추억이고 꿈이었다. 많은 사람이 그를 맹렬히 비난하다가도 그의 반대자 앞에서는 시치미를 떼어야 하는 이율배반에 시달리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나는 그의 실패가 개혁진영에 두 가지 상처를 던졌다고 생각한다. 그가 지지자들의 기대에 반하는 실정을 거듭하다 결국 정권을 내준 것은 대중들에게 개혁진영에 대한 ‘불신’을 광범위하게 학습한 것이 그 첫째다. 퇴임 후 그는 비리 혐의로 검찰에 소환됨으로써 그 비리의 성격과 상관없이 ‘그들도 별수 없다’는 인식을 다시 대중들에게 학습시킨 것이 그 둘째인 것이다. 


나는 그의 비극적 죽음이 결국은 이 나라의 민주주의의 성장통쯤으로 정리되리라고 생각하면서 이내 그 생각을 떨쳐 버렸다. 그러나 대회를 마치고 귀가하는 서너 시간 동안 줄기차게 방송된 TV 뉴스를 바라보면서 나는 조금씩 마음이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전혀 의식하지 않은 일이었다. 그런데도 조금씩 그의 죽음이 무겁게 다가오기 시작했다. 그것은 단순한 죽음, 스쳐가는 사고가 아니라 이 나라 민주주의와 그 역사, 새로운 시대를 열고자 했던 한 정치인의 좌절과 패배였고, 그것이 환기해 주는 우리 자신에 관한 확인이었기 때문이다. 


버스 안에서 소식을 전하던 후배는 울고 싶다고 했다. 대회장에서 만난 친구는 눈물지은 아내 이야기를 하면서 오늘 밤 술을 마시며 눈물을 흘리게 될지도 모르겠다고 우울하게 말했다. 귀가하면서 전화를 걸었더니 아내는 전화기 저편에서 울먹였다. 종일 뉴스를 보면서 눈물을 흘렸다고 했다. 


오늘 아침(2009년 5월 24일), 긴급 제작돼 배달되어 온 한겨레를 읽으며 나는 그제야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나는 거의 내용도 바뀌지 않는 뉴스를 보고 또 보았다. 시간이 지날수록 새록새록 새로워지고 짙어지는 이 슬픔을 나는 받아들이기로 했다.

▲ 안동 중심가에 시민단체가 설치한 분향소

▲ 자전거를 타는 노무현 전 대통령

출처ⓒ노무현 사료관

세상에 슬프지 않은 죽음이 어디 있는가. 스스로 자신의 목숨을 끊은 이 참담한 실존 앞에서 인간 노무현, 정치인 노무현의 죽음은 마치 아픔처럼 새롭게 자라나고 있었던 것 같다. 그에 대한 지지와 상관없이 많은 사람이 그의 죽음 앞에 애도하는 것은 한 인간의 실존적 결단 앞에 바치는 인간의 예의다.


‘서거’가 아니라 ‘자살’이라고 보도하라고 망발한 극우 파시스트나 죽음으로서 책임을 져야 한다고 주장했다는 추악한 퇴물 정치인은 그런 뜻에서 보면 인간에 대한 예의조차 없는 이들이다. 그들은 자신과 자기 계급의 작은 이해를 위해 인간의 존엄조차 서슴없이 저버린 셈이다. 


누구는 정치적 타살이라고 하고, 누구는 모든 책임을 지고 갔다고 한다. 가족과 친지, 측근과 친구 등을 반년 동안 집요하게 압박해 소기의 정치적 성과를 낸 검찰의 전공은 눈부시다. ‘검사와의 대화’에서 증명했던 머리 좋은 검사들의 ‘기개’는 죽은 권력을 난도질하는 데도 발군이었다. 소환 조사 뒤 20여 일 동안 처리를 끌며 ‘망신거리’를 흘려 그 주검에다 침을 뱉게 했던 그들은 얼마나 늠름한 공권력인가. 


서울에선 자발적 시민들의 분향소 설치와 분향을 통제하고 있는 경찰 때문에 조문객들은 지하철역까지 줄을 늘어뜨리고 있다고 한다. 그러면서 정부는 공식 분향소를 열겠다고 한다. 정권은 국민의 애도가 촛불로 타오를까 봐 전전긍긍하고 있고 서울 중심가에 물대포까지 배치했다고 한다. 권력에는 시민들의 애도조차 두려운 것일까. 


노무현의 죽음에 대한 시민들의 애도는 자기 파당의 이해만이 눈에 보일 뿐 진실과 공의 따위야 오불관언인 세상, 순식간에 2, 30년 전으로 퇴행하고 있는 민주주의에 대한 우려. 그것 자체인지도 모른다. 시민들은 정치인 노무현의 죽음을 통해 지난 10여 년간 가꾸어 온 민주주의와 그 가치를 새롭게 기억하고 있는지 모른다. 


그의 죽음과 함께 검찰은 겸연쩍게 수사를 접었지만, 정치인 노무현이 저질렀던 혐의가 사라지는 것은 물론 아닐 터이다. 그러나 그것과 무관하게 사람들은 새삼 2009년, 우리가 서 있는 자리를, 그 역사적 의미를, 지난 세기 내내 싸워서 지켜온 가치들을 성찰하고 있다. 많은 사람이 흘리는 눈물, 그 슬픔의 의미는 성장에 영혼을 팔고 있는 오늘의 삶과 가치에 대한 뜨거운 참회일지도 모른다.

‘그’를 배웅하면서 (2009.05.29. 작성)

▲ 베이스볼 파크 회원들과 MLB 파크 회원들이 마련한 광고(1면)

▲ 시민들과 시민사회단체가 성금을 모아 마련한 광고 (17면)

노무현 전 대통령의 국민장 날이다.


간밤에 자리에 들면서 내일(2009년 5월 30일) 조기를 달아야겠다고 생각했는데 정작 아침에는 출근을 서두르느라 깜빡 했다. 출근해서 수업에 들어가는데 생각이 났다. 급하게 아내에게 전화를 걸어 조기를 게양하라고 일렀다. 지금쯤 우리 집 베란다에는 조기가 쓸쓸하게 펄럭이고 있을 것이다. 


오늘자(2009년 5월 29일) 한겨레에는 노무현 전 대통령과 관련한 네 건의 전면광고, 그리고 세 건의 하단 통광고가 실렸다. 전면광고 중 하나는 한겨레에서 실은 듯하고 나머지 셋은 누리꾼들이 모금으로 이뤄진 광고다. 그런 광고를 실을 수 있는 신문이 있다는 것도 그나마 축복이다. 

▲ 82cook, 사진을 사랑하는 사람들 등이 마련한 전면광고 (7면)

▲ DVD 프라임 내 회원들이 마련한 전면광고 (15면)

광고 문안들이 마음에 아프게 닿아왔다. 모두가 익숙한 내용이다. 밀짚모자를 쓴 미소 짓는 그의 얼굴 아래 쓰인 글귀가 유독 눈길을 끌었다. 딸애에게 그 문안을 읽어주는데 내 목소리가 좀 흔들렸나 보다. 아이의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매달려 있다.

당신이 다시 태어나
바보 대통령이 또 한 번 된다면,
나는 다시 태어나 그 나라의
행복한 국민이 되겠습니다.

‘행복한 국민’……. 국민을 향해 허리 굽히고 미소 짓는 권력자, 원칙을 위해 이익을 버리는 바보 대통령을 둔 국민은 행복하다. ‘그 나라의 행복한 국민’. 그건 정말 수사가 아니라 현실이 될 수 있을까.


만면에 미소를 피운 그의 얼굴을 담은 광고 한 편이 거기에 대답하고 있다. 그가 쓴 친필 “강물은 바다를 포기하지 않습니다. 강물처럼!” 아래에 그렇게 적혀 문구로.

이제 우리가 강물이 되겠습니다.
어떤 어려움에도 포기하지 않고
바다에 이르는 그 날까지
묵묵히 흐르겠습니다.

당신은 우리 마음속의 영원한 대통령입니다.

신문을 덮으면서 생각한다. ‘새로운 시대를 여는 맏형이 되고 싶었는데 정작 구시대의 막내 노릇을 할 수밖에 없었다’는 그를 보내며 사람들은 그가 지향했던 시대와 그 가치를 재확인하는 것이다. 그래서 그 죽음은 더욱 무겁고 아픈가 보다.


희망은 그를 ‘마음 속 대통령’으로 기리며, 스스로 ‘강물’이 되리라는 사람들에게 있다. 갈 길은 멀고 쉽지 않다. 그러나 지난 7일 동안의 국민장 기간 내내 분향소에서, 봉하마을에서, 덕수궁 앞에서 눈물을 씻었던 사람들, 그 눈물의 의미를 새롭게 새긴 이들에게서 나는 녹록지 않은 희망을 훔쳐보며, ‘바보’ 노무현을 배웅하기로 한다.

구시대의 막내로서가 아니라,
새로운 시대를 여는 밑거름으로서
노무현 대통령,
당신을 보냅니다.
편히 쉬소서.

▲ 누리꾼들이 성금을 모아 만든 전면광고 (28면)

▲ <씨네21> 듀나의 영화낙서판 글귀로 만든 전면광고 (13면)

* 외부 필진 낮달 님의 기고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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