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내 '몸뚱이'를 혐오해온 이유
매년 여름이 시작될 즈음 하는 고민이 있다. “내 몸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사실 1년 중 하루도 이 고민에 대해서 쉬는 날은 없지만, 여름에는 유독 심해진다. 내 몸을 화장실 거울 앞에서 혼자 보는 것이 아니라 이젠 세상 밖에 내놔야 하기 때문이다.
페미니즘을 접하고, 페미니스트 친구들과 교류하고, 내 몸에 대한 무례한 시선들을 어느 정도는 차단할 수 있게 되면서 내 몸에 대한 고민은 줄어드는 듯했다. 또 세상 역시 조금은 변했는지, ‘Love Yourself(너 자신을 사랑하라)’라는 말이 대세처럼 떠돌고, “자꾸 거울 보지마. 몸무게 신경 쓰지 마. 넌 그냥 그대로 너무 예쁜걸”(Zion.T-No Make Up)과 같은 가사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게 됐다.
하지만 세상이 사랑하는 몸의 모습은 정해져 있다. 그리고 그 기준에 따르면 내 몸은 전혀 사랑할 구석이 없었다. 옷을 사러 쇼핑몰에 들어가면 굳이 찾지 않는 한 마른 몸의 모델밖엔 볼 수 없고, 소셜미디어에서는 여전히 마른 몸들이 찬양받고 있다. 그러다 화장실에 서서 거울을 보고 있노라면 이것이 ‘정상적’인 몸이 맞는지, 사회에서 허락될 수 있는 몸인지 알 수 없었다. 일상적으로 접할 수 있는, 사회가 원하는 몸의 형태가 이렇게나 획일적인데, 그와는 너무 다른 모습인 내 몸을 사랑하라니.
도저히 사랑할 수는 없는 몸을 붙들고 온종일 고군분투하다 보면 곧 몸에 대한 혐오로 이어지기 십상이었다. 나를 사랑하라는 공허한 명령은 결국 나를 혐오하게 되는 모순적인 결론으로 이끌었다.
사실 정말 날씬한 몸을 선망하는 것뿐이었다면, 나는 식단을 짜고 운동을 시작했을 것이다. 나는 날씬하고 싶기보다는 그저 나를 벌하고 싶었다. 어느 날엔 죽어라 굶다 내 몸이 망가져서 언젠간 죽기를 바랐고, 또 다른 날엔 감당하지 못할 만큼의 음식을 먹은 뒤에 억지로 토하는 괴로움을 통해 나에게 벌을 줬다. 그저 나는 거식과 폭식을 반복하며 용서할 수 없는 나의 몸에 벌을 줬다.
하루에 한 끼나 먹을까 말까 하는 생활로 살이 꽤나 빠졌던 때가 있었다. 그때의 몸에 완전히 만족하진 못 했지만, 그 정도의 몸이라면 노력을 통해 사랑할 수 있었다. 내가 드디어 해냈다고 생각했다. 아, 나도 내 몸을 사랑하게 됐구나. 하지만 식욕을 되찾고 밥을 챙겨 먹기 시작하면서 당연히 살은 다시 쪘다. 자연스레 내 몸에 대한 사랑 역시 식었고, 오히려 살이 빠지기 전보다도 더 몸을 혐오했다. 내가 사랑했던 몸만이 진짜 나의 몸이라는 억지를 부리며 혼란스러운 날들을 보내야 했다. 나는 사실 내 몸을 사랑한 것이 아니라 내가 사랑할 수 있는 몸을 사랑했던 것뿐이다.
그렇기에 나는 내 몸을 사랑하고 싶지 않다. 몸을 사랑한다는 것은 결국 그 순간의 몸의 형태를 사랑하는 것이나 다름없고, 그 사랑은 몸이 변화하는 순간 너무 쉽게 빛이 바랜다. 나는 다만 내 몸과 화해하고 싶다. 내 몸이 어떤 모습이든 이 몸을 사랑하지도, 미워하지도 않고 그저 선선한 마음을 갖고 살아가고 싶다.
* 외부 필진 님의 기고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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