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지개 옷 입고 사진 찍었다' 학칙까지 바꿔 학생 징계한 장신대

조회수 2019. 5. 10. 15:00 수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번역중 Now in translation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다양한 분야의 재밌고 유익한 콘텐츠를 카카오 플랫폼 곳곳에서 발견하고, 공감하고, 공유해보세요.

학생들은 징계 불복 소송을 제기했다.
출처: ⓒ법률신문
4월 25일. 서울동부지법에서 무지개 학생 징계 불복 소송 첫 공판이 열렸다

1. 사진 1장으로 시작된 징계 사건의 경위

“어느 사진을 보면 그 당시 상황이 제일 잘 나올까요?”

재판부 판사의 공판 첫 질문이었다. 서울시 광진구에 위치한 장로회신학대학교(이하 장신대)의 학생 징계, 학칙 개정, 19년 신입생 반동성애 서약서 작성 실시, 4월 25일 열린 징계 무효 소송 첫 공판까지. 이 모든 것이 사진 한 장으로 시작된 일이기 때문이다.


스크린에는 각자의 색깔로 무지개색 옷을 맞춰 입고 평범하게 서 있는 학생들의 사진이 떠올랐다. 긴장감도, 불온한 기색도 없는 밝은 사진. 학교 채플이 끝난 후 무지개 깃발을 들고 찍은 학생들의 사진엔 법정의 엄숙한 분위기와 어울리지 않는 맑은 표정까지 묻어 있었다. 


지난해 5월 17일 장로회신학대학교 학생들은 ‘국제 성소수자 혐오 반대의 날’을 맞아 “우리 안에 있을지도 모를 성소수자를 위해서, ‘함께 살자’는 의미에서” 사진을 찍었다. 학교 측은 해당 학생 4명을 징계(1명 정학, 3명 근신)했고, 정학을 당한 학생 1명은 6개월의 유기정학 기간이 끝났음에도 여전히 복학하지 못하고 있다.

출처: ⓒ페이스북 캡처
장신대는 개인 소셜미디어에 올린 사진을 이유로 학생 4명을 징계했다.

2. 장신대 학생 징계, 어떤 점이 부당한가?

장신대는 무지개색 옷을 입고 사진을 찍어 소셜미디어에 게시했다는 이유로 신학대학원생 4명을 징계했다. 무지개 색깔이 ‘동성애’를 표현하는 색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해당 사진을 찍었던 2018년 5월 17일 장신대에는 학생의 동성애 관련 표현을 규제하거나 징계 대상으로 삼는다는 학칙이 없었다. 있지도 않은 규정으로 학생을 징계하게 된 것이다. 


이후 학교는 학칙을 개정해서 동성애 관련 표현을 한 학생을 징계할 수 있다는 조항을 추가했다. 그러나 바꾼 학칙을 지나간 시간을 거슬러 소급 적용하는 것은 법률 불소급의 원칙을 따르는 우리나라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개정한 학칙(동성애 관련 표현 징계)으로 지나간 일에 대해 징계할 수가 없으니, 학교 측은 ‘교육상의 지도를 따르지 않은 학생’, ‘수업을 방해한 학생’, ‘학교 구성원 및 학교의 명예를 훼손한 학생’에 대한 징계 규정을 사유로 내세웠다. 


위의 징계 사유는 너무 쉽게 반박이 가능하다. 무지개색의 옷을 입는 건 지도교수가 하지 말라고 지도한 일이 없기 때문에 지도를 따르지 않았다고 볼 수 없고, 예배가 끝난 후 조용히 사진 찍은 것이 전부인 이들의 행위가 수업을 방해했다고도 볼 수 없다. 또 ‘명예 훼손’이라면 오히려 징계 사실을 적시한 자료집을 만들어서 노회에 배포하는 등 학교가 앞장서서 구성원(학생들)의 명예를 훼손한 것에 가깝다.


이러한 상황에도 학교가 밀어붙여서 학생을 징계한 것은 헌법에 명시된 양심의 자유와 표현의 자유를 지나치게 억압하는 재량권을 넘어선 징계다. 개인이 소셜미디어에 사진 한 장 찍어 올린 것에 교육지도, 수업방해, 명예훼손까지 운운한다면 누가 이 학교의 징계를 피할 수 있을까? 


징계를 받은 네 학생 중 한 명인 서총명씨는 유기정학 6개월을 징계받았다. 원래대로라면 6개월이 지난 19년 3월에는 정학이 종료돼야 했지만, 학교 측은 휴학처리를 해주고 통보 없이 정학을 6개월 연장했다. 현재 서총명씨는 여전히 정학 상태다.

3. “동성애를 반대하지만 동성애자 혐오도 반대한다”

재판부는 양측에 자료를 더 제출할 것을 요구했다. 동시에 6월 27일 오후 2시 40분 서울 동부지방법원에서 2차 공판을 예고했다.


재판부는 학교 측에게 질문했다. 

“학교와 교단은 ‘동성애를 반대하면서 동성애자 혐오도 반대한다’고 했는데, 두 가지는 서로 모순되는 것 아닌가요? 아무리 생각해도 이 두 가지가 매치가 안 되네요. 지금 말로 대답하지 말고, 이해가 되게끔 다시 작성해서 제출하세요.”

동성애를 반대하지만 동성애 혐오는 반대한다는 모순, 동성애자를 싫어하는 건 아니지만 내 눈앞에 띄지는 말았으면 한다는 모순, 죄인은 환영하지만 죄는 미워하자면서 태어난 것을 선택의 문제로 간단히 치부해버리는 모순. 이 모순은 기득권의 무지와 폭력에서 비롯된다.


다음 공판 때 학교는 어떤 대답을 준비할까? “동성애를 반대하지만, 동성애자를 혐오하는 것에도 반대한다”고, 소심한 용기를 냈을 뿐인 학생들의 학습권을 위협하는 피고의 신분으로 학교 측은 피해 학생 앞에서 떳떳이 말할 수 있을까?

4. 공판 후 신학대학원장 인터뷰에 대한 생각

법정 안에 앉을 자리가 부족할 정도로 많은 방청객이 참여했던 재판. 공판이 끝나고 법정을 나가며 공개방청에 참여했던 사람들이 하나둘 입을 열었다. “학교가 학생 상대로 너무 심했더라”, “너무 억지로 (징계)해서 학교가 질 게 뻔해 보이던데”. 많은 사람이 징계 학생 편에서 목소리를 냈다.


방청에 참여했던 신학대학원장이 돌아가는 길은 외로웠을까. 아니면 학생들을 징계로 몰아넣은 것이 조금은 후회가 됐을까. 그는 공판이 끝난 후 한 인터뷰에서 “서로 충분히 얘기해서 풀 수 있었고 학교는 그럴 의향도 있었다. 그런데도 학생들이 학교를 적대적으로 생각해서 이런 소송까지 진행하는 게 선생으로서 참담하다”는 심정을 전했다. (관련 기사: ‘무지개 퍼포먼스’ 장신대생들, 징계 무효 소송 시작)


학생들이 충분히 얘기하자고 학교에 징계 재심을 청구을 때 재심을 거부한 건 학교다. 신학대학교의 징계가 학생의 진로와 사역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뻔히 알면서도, 1년 가까이의 시간을 학교에 돌아오지 못하게 막아놓고서, 인제 와서야 대화하고 싶었다는 말은 얼마나 기만적인가.

“선생님들은 우리를 예배당 밖으로, 학교 밖으로 몰아냈지만, 우리는 굳게 닫힌 예배당을, 학교를 바라보지 않고 등을 돌려 세상을 바라보며 그곳에서 성문 안으로 들어가지 못한 사람들과 함께할 것이다. 이것이 우리가 예수를 따르는 삶이며, 선생님들께서 가르치신 것들을 행하며 사는 삶이다.”

- 서총명씨의 고함20과의 인터뷰 중에서

* 외부 필진 고함20 님의 기고 글입니다.

<직썰 추천기사>

모든사람이그런거아닙니다무새의 최후

낙오자들의 섬

이 콘텐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